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2화 (222/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2화

EP 34-향수병(1)

대한민국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5년 단위로 돌아가는 나라라는 뜻이었다. 보통 연차가 쌓일수록 나라에 망조가 드는 식이다.

특히 대통령 임기 끝날 무렵에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다. 선거 이기고 싶은 정치인들이 온 나라를 레슬링장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공직사회고 일반사회고 구분 없이 온갖 기득권층이 뛰어들어 사투를 벌이는데, 교육계, 의료계, 금융계, 등등 사회 전반에서 국지전이 터진다.

그리고 사회란 것이 본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라, 어느 한 곳에서 개판이 나면 일이 요상하게 엮여서 폭탄이 터지기도 하는데.

당연히,

헌터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 * *

때는 양판석 대통령 임기 끝나기 대략 90일 전.

본격적으로 정치인들이 깽판치기 시작할 무렵이고, 정당은 총력전 체제로 변화하기 위해 후보자 경선에 들어갈 타이밍이었다.

온갖 대선주자들이 이때부터 자기 공약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 공약 한 마디에 온 사회가 출렁거린다. 그런 시기다.

물론 선거철 공약이라는 게 다 그렇듯 대체로 개소리에 가까웠지만, 그 개소리가 먹히니까 선거철이 선거철인 거다.

“실장님. 보고드릴 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

나도 꼴에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이 시국에 편하게 쉬지는 못했다. 정부에서 사고 치면 어느 때보다 심하게 얻어맞는 시절이니까.

그리고 사람도 실수를 하는데 정부가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정도는 두들겨 맞아야 하는 거다.

물론 양판석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방법도 있지만, 다 늙은 대통령 몸빵 세우는 것도 그림이 영 좋은 건 아니고…….

결국 효도 차원에서라도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나는 또다시 퇴근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꿉꿉한 공기. 찌뿌둥한 허리. 그리고 시꺼먼 국정원 아저씨들과 부비적대는 직장생활이 어느덧 2주째.

대선 끝나고 사표 쓰기만 기다리던 어느 날, 피채원이 이상한 소식을 물어왔다.

“국방당 대선주자 경선 토론이 유튜브 조회수 6백만을 찍었던데요.”

“국민당도 그 정도는 나오지 않아? 청중엽이랑 김두식이랑 토론 퀄리티가 좀 나오던데.”

“기호 4번. 지지율 0.6% 짜리 후보가 사고를 쳤어요.”

“왜? 전 국민에게 각성제 공짜로 풀겠대?”

“아뇨.”

“일본 침공해서 식민지 만들겠대?”

“아뇨.”

“그러면 뭔데?”

피채원은 대답 대신 태블릿을 내밀었다.

나는 끄응- 쇳소리를 내며 동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호통소리.

「서울 탈환! 왜 못 합니까? 1천만 수도권 난민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당연히 서울을 탈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수도권 게이트를 전부 폐문하면 국내 헌터들 일자리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관련 업종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국군이 북진해야 하는데 현재 탄약과 기름 보유량을 고려하면 국방에…….」

「그러면 유재경 후보자에게 묻겠습니다. 서울 탈환. 하실 겁니까? 안 하실 겁니까?」

「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마석은 석유입니다. 석유 그거 냄새난다고 전부 파내 버리면 앞으로 수입만 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국제유가 요동치면 나라가 기울어지는…….」

「그러면 괴수하고 공존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대한민국의 주적은 누굽니까!」

「홍근영 후보자님, 제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지 않습-」

「대통령 되시겠다는 분이- 괴수 박멸시키겠다! 이거 한 마디도 못해서 되겠습니까!?」

서울 탈환.

1천만 수도권 난민들의 염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 *

“말- 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비서실장 주재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온 경제수석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다른 청와대 참모들도 이구동성으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쏟아냈다.

“일본 내전 이후로 경제가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사실상 전쟁특수로 이루어진 일시적 호황입니다. 이걸 어떻게 끌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데, 여기서 서울탈환을 시도하는 건 자충수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것도 그렇고. 수도권에서 나오는 마석 비율이 총에너지 소비량의 40퍼센트 아니었나요?”

“지금은 28.6 프로인가 그럴 겁니다. 일본도 그렇고 수입이 좀 늘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마석수입국인 거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네요. 서울 탈환한다고 그 게이트를 전부 닫아 버리면 에너지 파동이 올 겁니다. 헌터 업계도 반 토막 나겠고요.”

“수도권 게이트는 203개 중 150개가 이미 폐문됐습니다. 나머지는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사실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정치권에서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죠. 브레이크 터지면 고위헌터 계약을 확충하면 되는 문제죠. 그걸 다 닫아버리고 서울을 피난민 주거지로 쓴다는 건,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입니다. 건물이나 인프라도 복구 불가능한 상황 아닙니까.”

“이미 한국은행 내부에서 다음 분기 금리인상을 확정지었습니다. 가계 집단붕괴 우려되서 한계까지 버틴 건데, 여기서 더 버티라고 하면 민생이 아니라 국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으음.

절반 정도는 못 알아들었지만, 아무튼 서울탈환 하지 말자는 소리다.

나는 대충 알아들은 척하고 청와대 비서진을 다독였다. 다들 정치인이 아니라 공무원 출신이라 그런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하. 선거철 공수표에 너무 무리하게 반응할 필요 없습니다.”

“실장님…….”

”기성언론에서도 현실성 없다고 반박하지 않았습니까. 언론사 사주, 그리고 재벌들도 국내 게이트 닫히면 얼마나 타격이 큰지 아는 겁니다.”

“하지만 한승문 실장님, 원옥분 전북지사가 이미 호응했습니다. 벌써부터 언론에 긍정적인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데…….”

“아, 그분은 대통령 되려고 서울에 대한 향수병을 퍼뜨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예?”

“나중에 대선 본선에서 사회적 대타협 운운하면서 서울 탈환은 미루고, 새만금 신도시에 피난민들 우선분양으로 주택 나눠주겠죠.”

“……아.”

“그게 4년 전에 세워놓은 자기 선거전략입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신도시 만들어서, 서울 피난민들 들여보내고 표 받아먹는 거요.”

“그, 그렇습니까…….”

“원래 어렵고 간절한 사람일수록 투표장에 잘 가지 않습니까.”

“…….”

“……크흠!”

어느새 회의실의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들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너무 적나라하게 말했나. 왠지 어린아이들에게 산타가 있다는 걸 알려준 기분이라 살짝 머쓱하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당분간 핫해졌다고 정치인들 숟가락 올려놓기 시작할 텐데, 굳이 정부 차원에서 개입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괜히 SNS로 대꾸하다 뉴스 타지 말고 국정 운영에 집중하지요,”

* * *

“실장님. 대통령님이 G20 회담 마치셨다고 하네요. 신임 일본 총리와도 인사 나누셨고요. 미국에서는 내일 중으로 돌아오신다고…….”

“올 때 기념품 사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그리고 국토부에서 조류독감 TF 가동한 지 1달 언저리쯤 되었는데요…….”

피채원도 이제 베테랑 비서관이 다 됐다. 녀석은 내 헛소리를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보고를 이어갔다.

“충청도 조류독감은 이제 안정기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고요. 계란 가격 2배로 오른 것 말고는 별다른 피해 없습니다.”

“다행이네.”

“그리고 여도연 치안관님이 초인지원청 건물에 대련실이나 연습장 좀 만들어달라고 민원 넣으셨는데요.”

“그, 누나는 롯데백화점 1층에서 범죄자랑 추격전하다 죄다 박살낸 거 본인 월급으로 채워넣기 싫으면 조용히 좀 있으라 그래.”

“알겠습니다.”

“이제 끝이지?”

“네.”

“퇴근!”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니 창문 너머로 석양이 보였다.

새빨간 저녁 노을이 사무실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피채원도 마찬가지였는지 초췌한 얼굴에서 미세한 웃음기가 보인다.

“이야아……. 해 떠 있을 때 퇴근하는 게 얼마 만이냐.”

“그러게요.”

“저녁 뭐 먹을래?”

“약속 없으세요?”

“대통령 임기도 거의 끝났는데, 누가 비서실장한테 저녁밥을 사줘? 나 이제 개털이야.”

“그러면 집에서 치킨이나 시키죠.”

“아, 맞다. 오늘 무한도전…….”

“시즌 3 첫방송이요.”

별것 아닌 잡담을 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퇴근하는 공무원들과 눈인사를 하며 주차장에 가고, 언제나 그렇듯 조수석에 피채원을 태우고 라디오를 켰다.

「앞서 여야는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6월까지 추경안을 편성하여…….」

「감철 초상관리부 선임감찰관의 자서전, ‘붉은 한강’이 5주째 베스트셀러에…….」

「국방당 내부 경선이 진흙탕 싸움으로 접어들면서, 유재경 전 총리의 독자출마가 점쳐지고 있습니다. 국방당 내부에서는 신당창당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마침 광안대교를 지나고 있어서 운전석 창문을 살짝 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앞머리를 날린다.

동백섬 국회의사당 너머로 붉은 노을이 수평선에 걸쳤다. 햇빛이 파도를 따라 넘실거리며 흩어진다.

노을. 바다. 섬. 그리고 구름.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풍경이었다.

“우와…….”

피채원의 입에서 감탄이 새었다. 저도 모르게 낸 소리였는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나도 작게 웃으며 힐긋힐긋 창문 너머 풍경을 훔쳐봤다. 운전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고개는 정면에 고정시키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휙 돌렸다.

내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나는 운전에 강박증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평소에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짓거리였다.

피채원도 그걸 모르지 않아서 화들짝 놀라 내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의원님?”

“아, 아니…….”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하늘이 약간 일그러졌던 것 같은데.”

저녁 노을은 조용히 바다에 내려앉고 있었다.

* * *

「서울 탈환 그거. 아니죠?」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정부에서 여론 이끄는 거요.」

“대통령 임기 다 끝나 가는데 우리가 뭔 선동을 합니까. 공영방송 보도국장한테 밥 사달라 그러면 김밥천국으로 부른다니까.”

「아이! 농담하지 말고!」

“진짜로 정부에서 여론 선동하는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안심하십쇼, 천금순 사장님. 왜 이렇게 겁을 먹어요? 대쪽 같던 인간이.”

전화기 너머로 잉잉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평소에도 천사장 말투가 좀 그래놔서, 그다지 간곡한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회사 망하기 직전이라 그러죠. 그 망할 홍근영 뭐시기가 서울탈환 이야기 꺼내니까 GS 방위대행사 주식이 거덜이 났다니까요…….」

“그동안 자신감은 지갑에서 나왔던 거구나…….”

정부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서울탈환’ 논쟁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사실 아는 사람만 아는 거지만, 여론조작에 동원되는 인원은 보통 수천 명 내외다. 인터넷이면 수백 명으로 충분하다. 기자는 수십 명.

그런데 대한민국 4천만 국민 중에 1천만 명이 서울탈환을 부르짖고 있었다.

수도권 피난민들의 목소리가 대한민국 선거정국을 뒤흔들었다.

무려 재벌들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자기도 알겠지만 수도권 탈환하면 국내 헌터업계는 그대로 반 토막이에요. 사실상 멸망이라고 봐야죠. 수도권 빼면 북한뿐인데, 누가 범죄자들 득실거리는 곳에서 헌팅하고 싶겠어요?」

“예. 예. 압니다. 알아.”

「안전하게 헌팅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지면, 헌터 육성 자체가 망가지는 거예요. 이렇게 통제 잘되고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사냥터가 전 세계에 어디 있어요? 오죽하면 미국 애들이 초보들 데리고 원정을 오겠냐고…….」

“사냥하다 수틀리면 국군이 구해주고. 위험할 때 소리만 쳐도 치안관이 달려가죠. 예.”

「헌터강국 대한민국! 천금순을 국회로! 뭐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선거를 해야지, 서울 탈환 그거, 어우, 이런 흉악한 이야기가 나돌아서야 되겠어요?」

“아,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하십쇼! 식물정부 비서실장 붙잡고 하소연해봤자 소용없어요!”

자꾸 찐따를 붙는 천사장을 매몰차게 떼어내려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달라붙어 입을 놀렸다.

이 여자가 전화기 너머에 있는 건지, 진짜로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원옥분, 유재경, 김두식. 누가 당선되든 자기가 실세인거 모르는 사람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어요.」

“아! 좀!”

「경제인들 사이에서 집단행동 나오기 전에 미리 경고해주는 거예요. 나는 독고다이라 끼어들진 않을 거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좀 거칠게 나올 수도 있거든요.」

“원옥분 그 노인네가 대통령 되려고 여론조작하는 거 다 알잖습니까! 홍근영이도 그 따까리고! 근데 왜 나한테 달라붙냐고!”

「어머. 홍근영 후보자가 원옥분 수하였어요? 그건 몰랐네. 고마워요!」

“야!”

뚝.

나는 끊긴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푸욱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천사장이 짜증나서 내쉰 한숨은 아니다. 정보를 흘려도 문제가 생…… 길 사람은 아니고, 조만간 또 갚아줄 날이 있겠지.

다만, 피난민들 처지가 워낙 불쌍해 놔서 그렇다.

서민들도,

재벌들도,

심지어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정치인들도.

사실, 아무도 피난민들을 위하고 있지 않았다.

“…….”

게이트가 열리고 1천만 명이 죽었다. 대부분 수도권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유가족들은 그대로 난민이 됐다.

그들은 정부가 마련해준 주거지에서 산다. 땅값 저렴한 충청도의 허름한 빌라가 대부분이다. 푸르지오 살던 사람들이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정부가 그들의 재산을 구제해주면 나라 국고가 거덜나고, 1천만 명의 과거 재산을 조사할 방법도, 여력도 없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래도 집이 없거나 밥을 굶지는 않지만, 사람이 밥만 먹기 위해 사는 동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황무지가 된 서울을 탈환하기에는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아진 상황…….

“……쓰읍.”

뭐. 감수성이 너무 뛰어나면 정치인을 못하는 법이다.

내 일은 사회혼란을 막아내고, 경제를 살려서 다수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지, 인권운동가로 변신해서 삭발투쟁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오늘도 적폐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가다듬고, 다시 업무로 돌아가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초상관리부 장관, 양일호다.

“어어. 양 장관님. 오랜만이야. 조만간 사표 쓸 생각 하니까 좋지?”

「큰일 났어요.」

“음?”

「헌터들 파업한대요.」

“음?”

「서울탈환. 하지 말라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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