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8화 (218/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18화

EP 33-범죄와의 전쟁(2)

앉은 자리에서 삼라만상을 들여다보는 게 내 일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어디 영화에 클리셰처럼 나오는 국가기밀도, 내가 기밀을 지정했으면 지정했지 내가 모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북한에 신설된 일본 난민 거주구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범인은 S급 이상의 염동술사로 추정되며, 현재 금강산으로 도주하여……」

「국경선 일대에 경비계엄이 발동된 한편, 9급 헌터로 알려진 여도연 치안관이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소식이……」

내가 뉴스속보로 사건을 확인한 것부터가 사건의 심각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 * *

“별거 아니다.”

“……괜찮다고?”

“어어.”

여도연이 무덤덤하게 손을 흔든다. 내 등을 흠뻑 적신 식은땀이 무색하게도, 참으로 긴장감 없는 반응이었다.

의식불명이라던 그녀는 응급실 병상에 있었다. 현장에서 막 돌아온 모양인지 너덜너덜해진 와이셔츠와 양복바지 차림 그대로다.

나는 병실 구석에 걸린 검푸른 치안관 코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의식불명이라던데.”

“어, 뭐, 그, 알잖냐.”

지나치게 태평한 반응이었다. 순간 욱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꾹 참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알긴 뭘 알아?”

“아니, 헌터들 과로하다 보면 졸려서 픽 하고 쓰러지는 거. 요즘 장전읍 사태 뒤처리하느라 고생 좀 했더니…….”

“……정신적인 문제라 이거지?”

“그래. 몸에는 별 이상 없다. 엄마한테 이상한 소리나 하지 마라.”

“……나 참.”

나는 가족의 건강에 예민한 편이었다.

내 감수성이 유독 뛰어난 게 아니라, 교통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내면 누구나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의식불명이란 소식을 접하고도, 나는 병원이 아니라 청와대 상황통제실로 먼저 찾아가야 했다.

그게 내 책임이었다.

일과 내내 가슴께 언저리에 묵직한 돌덩이를 올려둔 기분이었지만, 국정원과 보안사에서 준비한 회의까지 마치고 온 참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여도연의 뻔한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까 봐.”

“뭐?”

“까 보라고.”

보호자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까딱까딱 손짓하자, 여도연이 칫, 하고 혀를 찼다.

그녀가 주섬주섬 와이셔츠를 들어올렸다. 옆구리를 물들인 보라색 피멍이 훤히 드러났다.

“아이고…….”

사람 얼굴보다 커다란 피멍에 저절로 곡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도연도 격투기 선수 출신이라 고등학생 시절부터 온갖 피멍은 달고 다녔지만, 저건 단순한 상처라기보다는 심각한 중상에 가까웠다.

’의학’의 ’의’자도 모르는 일반인의 시선에서 보아도 심각한 상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옆구리를 물들인 보라색 피멍은 시각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피멍을 살짝 건드렸다.

“아악!”

“아, 아차……!”

여도연이 미꾸라지처럼 펄쩍 몸을 뒤틀었다. 응급실 침대가 살짝 찌그러졌다. 지켜보던 의사의 입에서도 탄식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옆구리를 잡고 꿈틀거리는 여도연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뭔가 열이 받았다.

“머, 멀쩡하다매!”

“미친놈아! 그걸 왜 눌러!”

* * *

“사람 잡는 헌터였다.”

“……뭐?”

가까스로 진정한 여도연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S급이다 뭐다 그러는데. 내가 보기에는 A급 언저리였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수렵 경력 1년차 된 6급 헌터 느낌……?”

한국 헌터 급수 시스템이 복잡해서 쉽게 와닿는 비유는 아니었지만, 수렵 경력 1년차에 6급을 달았으면 적당히 재능 넘치는 유망주 느낌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국정원의 추측과는 상당히 다른 의견이다.

나는 계속 말해보라고 턱짓했다. 여도연이 날카로운 눈매를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지금 뉴스에서 S급 염동술사라고 설레발을 치는 이유가, 그 새끼가 조진 애들이 우리나라 톱이라서 그럴걸.”

“누가 당했는데?”

“갑자기 일본인 거주 구역에서 시체가 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그래서 가장 먼저 조정식 치안관이 달려갔지.”

“쌍칼 쓰는 친구? 여다솔 치안관보랑 같이 다니는.”

조정식, 여다솔.

압구정파 간부 출신의 옵저버들. 나이는 어리지만 해외에서도 통하는 실력의 초인들이었다.

압구정파 정찰조장 출신이라 괴수 추적에도 일가견이 있고, 정찰과 탐색으로는 국내 최고의 헌터들이었다.

“그래. 걔네가 나선 이상 추적은 쉬웠지. 시체를 보자마자 범인을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교전을 시작하자마자 과다출혈로 기절해서 실려 왔다. 다른 치안관들도 사정은 비슷했고.”

“……뭐?”

믿기 힘든 소리였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고위 헌터 대접을 받으려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고위 헌터들이 얼마나 괴물 같은 인간들인지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초인지원청 치안국은, 그 고위 헌터들 중에서도 베테랑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런데. 그 괴물들이 고작 1명에게 줄줄이 쓸려나갔다? 그건 내 상식 밖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도연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새끼. 출력으로 따지면 A급이었다. S급에 가까운 A급도 아니야. A급 중에서도 조금 떨어지는 A급.”

“……장난해? A급 염동술사 하나가 치안관들을 개박살을 내놨다고?”

“그걸 염동술사라고 하기에도 뭣한데 말이다…….”

여도연은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참 막막하다는 기색이었다.

“염동술사가 다 같은 염동술사가 아니잖냐.”

“어.”

“누구는 물건을 들어올리고, 누구는 비행이 가능하고, 누구는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것만 가능하고, 누구는 허공을 베고…….”

“염동술사라고 분류되는 초인들도 자세히 따져보면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거잖아. 여기까진 아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총을, 쏜다고 해야 하나?”

총? 그건 또 희한한 소리였다. 여도연이 무언가 민망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일반인이 총 든 사람을 못 이기는 건 당연하지 않냐?”

“치안관들이 일반인은 아닐텐데.”

“그 놈도 일반인은 아니었다. 사용하는 힘의 총량은 별 것 아니었는데, 그 염력을 점으로 모아서 쏴버리니까…….”

“…….”

“속수무책인거지.”

여도연이 슬쩍 자기 옆구리를 가리켰다. 와이셔츠와 양복바지 사이로 보라색 피멍이 살짝 보였다.

염동술로 쏘는 총이라.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군. 쉽게 비유하자면 여도연은 철판을 두른 상태로 총에 맞은 거였다.

그리고 한국 최고로 단단한 여자인 여도연이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다른 치안관들의 상태도 대충 짐작이 됐다.

“……바람구멍이 났겠군.”

“허벅지에 구멍이 송송 뚫린 상태에서 멀쩡하게 싸울 사람은 없지. 어디 그 뿐일까. 접근하려고 하면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고. 잡았다 싶으면 하늘로 도망가버리는데.”

“그런 잔기술에 치안관들이 당한 건가?”

”……그래. 다행히 사망자는 없지만, 다들 나름대로 충격이 큰 상태다.”

여도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힘없이 말했다.

“나도 그렇고.”

* * *

갑작스런 사건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염동술사 하나가 북한에 위치한 일본인 거주구역에서 일본인 4명을 사살했다. 한국인 부상자는 많지만 사망자는 없다.

일각에서는 묻지마 살인으로 추정하고, 언론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증오범죄로 분류하지만, 국정원에서는 한국을 향한 테러로 분석했다.

한편, 일본 본토에서는 한국이 일본인들을 학살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발표는 아니지만, 정부가 퍼뜨린 정보였다.

물론,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장전읍 사태의 배후자들처럼.

그리고 한국인 헌터 사냥의 범인들처럼.

물 밑으로 떠도는 흉흉한 소문들만이 뒤숭숭한 사회의 밑바닥을 서늘하게 벼려내고 있었다.

“아무튼. 범인은 그냥 S급 이상의 염동술사로 해달라는 게 치안관들의 요청이야.”

「하긴, 대한민국 최고위 헌터들이 A급 헌터 하나에게 쓸려나갔다는 게 밝혀지면, 충격이긴 하겠죠…….」

전화기 너머로 양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간 밤을 샌 모양인지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괴수 잡는 실력이랑, 사람 잡는 실력이 별개인 건 진즉에 알았지만, 이렇게 당하니까 충격이긴 하네요. 조만간 저 장관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난여론이 워낙 거세서…….」

“유감이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봐.”

「그냥 미리 그만두면 안 될까요. 조만간 국정감사 시즌이라 괜히 국회 불려갔다가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원래 뱃지 장관은 안 건드리는 거 알잖니. 네가 현역은 아니지만 의원들도 상도덕은 알 거다. 호정이도 국회에 있는데, 뭘…….”

「그래도…….」

“응, 안 돼.”

「하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의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덕분에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몇백 명의 죽음에도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심심찮게 유명 도시는 물론이고, 국가의 붕괴 소식까지 들려오는 세상이다.

오히려 어제 제주도 시내에서 발생한 5중 추돌사고의 파급력이 더 거대했다. 사망자 중에 연예인이 2명이나 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 연예인과 재벌이 몰려 사는 세상이니 발생한 비극이었지만, 오히려 제주도 땅값이 매일같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거론하고 있었다.

“…….”

이게, 과연 내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는 문득 여도연의 부탁을 떠올렸다.

“아, 맞다. 일호야.”

「예?」

“여도연 치안관이 의식불명에 빠졌던 건, 과로가 겹쳐서 그랬던 거라고 해달라던데. 내일 바로 업무에 복귀하겠댄다.”

「왜요? 병가 내고 좀 쉬시지.」

“본인 말로는 히어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라고 그러더라.”

「……그거 사실왜곡 아닌가요?」

“……심약한 소시민들을 위한 착한 거짓말로 치자고.”

「네…….」

양일호와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TV에서는 재편성된 WPO 헌터랭킹을 다루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인 측정 결과가 확보되지 않아, 한국인 헌터들이 세계랭킹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국내 랭킹이 공표된 것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종편 시사예능채널에서 적당히 유명한 예능인이 너스레를 떨며 대본을 읊었다.

「아-역시 예상대로 감지윤 양이 부동의 1위네요. 마력 측정기를 깨부순 유일한 초능력자! 등굣길에 책가방 매고서 괴수 잡는 헌터는 감지윤 양뿐일 거예요?」

「2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영웅! 전직 헌터 협회장, 그리고 WPO 평의회 한국 대표! 타임지를 장식한 주인공, 홍선아 헌터입니다!」

「3위는 우리 소드마스터. 동대문의 소년 영웅에서 세계가 사랑하는 기사회의 중심까지! 한국 대표 나이트, 설진운 헌터!」

“…….”

다 아는 얼굴들이 방송에서 튀어나오니 기분이 참 오묘했다. 오히려 내가 TV에 나오는 것보다도 생소한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헌터 업계는 저 랭킹이란 놈을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었다. 해외의 흐름을 따라가는 현상이었다.

헌터들도 이제는 PMC에 소속된 군인처럼 일하기보다는, 축구선수들처럼 자유롭게 거래되기 시작할 거고, 점차 헌터 업계의 민영화, 자본주의화가 시작되겠지.

그래.

어느 곳에서는 헌터가 일본인 4명을 죽여도, 다른 곳에서는 헌터들에게 랭킹을 매겨서 예능에 출연시키는 세상이었다.

세상 모든 곳에는 각자 나름의 문제가 있고, 정치인은 문제 하나에만 매달리기에는 너무도 바쁜 직업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좀 끝냅시다.”

***

장전읍 사태.

북한 정부에서 직접 인민들의 장기를 해외로 팔아치우고,

남한 고위층은 그 장기를 적극적으로 수입한 데다,

심지어 정체불명의 세력이 개입해 한국인 헌터를 조직적으로 사냥해서 연구 목적으로 장기를 적출한 최악의 사건.

초상사회의 밑바닥은 여전히 남아 건전한 질서를 위협하고 있었고, 나는 기나긴 추적 끝에, 드디어 꼬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 헌터를 사냥해서 장기를 털어가질 않나. 북한 정부와 결탁해서 인민들 장기를 무역하지를 않나. 이제는 제주도에 테러까지 저지르고서, 멀쩡한 야밤에 4명을 죽이기까지.”

“아, 앞에 두 사건은 저희가 한 게-”

“적어도 당신네, 아니, 일본이랑 관련이 있는 사건이라는 건 압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

국정원에서 마련한 안전가옥.

집 안에는 대통령 경호처 소속 공무원 7명이 있었는데, 사실 이들이야말로 헌터랭킹에도 집계되지 않는 ‘사람 잡는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도 ‘사람 잡은 헌터’가 하나 있었다.

제주도 테러 사건 당시 연회장에 있던 고위 헌터들을 막아 세우고, 일본인 거주 구역에서 4명의 일본인들을 살해하고, 치안관들의 추적을 피해 도주한 당사자.

그리고.

북한으로 끌어들인 일본 시민군의 핵심 간부.

“이유정 씨.”

그녀는 4명을 사살한 연쇄살인마 답지 않게, 꽤나 평범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일단, 아는 거 다 말해보십시오.”

그날, 양판석은 한승문이 기나긴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일본 정부. 그리고 야쿠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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