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6화 (216/296)

EP 32 - 말, 말, 말 (6)

「북한이 국내의 반란군과 폭도들을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내정간섭입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한국은 즉각, 국가간의 신뢰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중단하고...」

일본의 반발은 매우 거셌다. 고작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총리가 직접 생방송에 나선 것이다. 이 정도면 입에 거품을 물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일본의 반발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향했다. 한국이 북한을 사실상 지배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으니까.

물론, 우리에게 핑계는 충분했다.

양판석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청와대 대변인이 여유롭게 대본을 읊었다.

사실, 일본 총리의 항의에 일개 대변인이 반박하는 것부터가 살짝 도발이긴 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 탄압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를 하고 있을 뿐, 북한을 실질적인 행정권역에 포함시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독도와 같이 실효지배에 따른 주권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지난 수십년 동안 견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북한의 외교권을 행사하는 최고위원회 소속 인민공화민주협의체는 독재정권에게서 주권을 되찾은 북한 시민들의 민주정부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는 북한 대안 공화국의 행정적 실효 지배를 일부나마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외교권 행사에 관여하는 것은 을사늑약과 다를 바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한국은 북한 시민들의 자성적인 통일과도정책을 지지하며, 일본 내부에서 발생하는 인권 탄압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흐음.”

나는 TV로 상황을 확인하고서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청와대 친구들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으음.

개소리였다.

* * *

솔직히, 우리는 북한과 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1천만 북한 시민을 포용하는 건 경제적, 정치적인 자살에 가까웠고,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별도로 정부를 세웠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북한에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은 딱 하나, 행정대집행(行政代執行) 대통령 시행령뿐이다.

즉, 북한이 인민을 다스리는 ‘의무’를 저버리면, 우리가 ‘대신’ 의무를 집행하고 ‘비용’을 징수하겠다는 소리인데.......

사실 행정대집행도 보통은 광화문에 좌판 깔아놓고 데모하는 시위대의 불법 시설물 철거할 때나 사용하는 법이었다. 보통은 시청 공무원들을 보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가 북한에 보낼 공무원이, 경찰인지, 국군인지, 아니면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 치안관들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고 말이다.

즉, 한국은 언제나 북한에 합법적으로 무력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이었고, 북한 지도부는 한국 상임고문단의 실질적인 지시를 받는 위치였다.

그러니 청와대 대변인의 주장은 사실상 개소리였다.

그러나 말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개소리도 곱게 포장하면 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미국의 몫이었다.

「존경하는 미국 시민 여러분. 어젯밤, 저는 북한과 일본 사이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번에 당선된 미국 대통령은 대선을 무려 3번이나 치른 여자였다. 심지어 대선 후보 아내로 뛴 것까지 포함하면 총 5번이다.

그 정도면 자연인이라기보다는 걸어 다니는 정치동물에 가까웠다.

덕분에 그녀는 곧장 짐승적인 감각으로 행동에 나섰다. 나와 이미 짜웅을 본 CIA 국장이 있었으니 뒤통수 걱정은 그나마 덜했다.

「동북아싱아의 외교현안에 대해 가슴 아픈 우려를 표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최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멘트가 꽤나 부드러웠다. 적어도 겉으로는.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연히 단결해야 합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당선인의 신분이지만, 저는 위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일단 중립을 자처하며 변죽을 건드리는 말이긴 했지만, 쉽게 말해서 일본 내전에 개입하겠다는 소리였다.

물론 일본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박에 나섰지만, 미국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자기들도 눈치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동북아시아 위기! 클린턴이 나서나!?」

「북한의 돌발행동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제이나 헤스펠 CIA 국장 연임...... “현안에 집중하겠다”」

미국은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덕분에 우리도 마음 놓고 행동을 시작했다.

나는 일단 비서실장의 권능으로 외교라인을 가동했다. 외교부 장관도 빠꼼이였으니 대충 상황파악이 끝났을 게 분명했다.

나는 마음 편히 전화를 걸었다.

“이태영 장관님, 저 한승문입니다. 요즘 북쪽 때문에 바쁘실 텐데 잠시 시간 되시는지요?”

「아이고~ 비서실장님 아니십니까? 국무회의 때 자주 뵀었는데 세월이 참 무상하네요. 외교수석에게 상황은 대강 들었습니다.」

“지금 일본 반응은 어떻습니까?”

「허허. 오히려 조금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전 때문에 민심도 흉흉한데 마침 잘 걸렸다고나 할까요. 정작 우리 쪽에 항의는 요식적인 선으로만 하면서도, 일본 내부에선 선전포고라도 할 것처럼 분노하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야쿠자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야쿠자들은 잠잠합니다. 대놓고 독재 중이니 여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집단은 외교부가 아니라 국정원에서 관리합니다.」

“그러면 시민군은요?”

「글쎄요. 제가 알기로 그쪽은 한국과 연락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워낙 세력이 줄어든 탓도 있고요. 물론 실장님이 말씀하신다면 며칠 내로 연결은 가능할 겁니다.」

“아뇨, 됐습니다. 그것보단는 일본 정부 실무진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비공식적으로요.”

「그러면 그쪽에서 한국에 입국하도록 의사를 타진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외교부 장관의 말대로, 일본 측의 외교특사가 한국에 방문하는 건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회담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 방문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예전에 중국이 원전 문제로 동북아시이를 협박했을 때 한구에 방문했던 요시무라 간사장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자유민주당 부총재였으니, 일본 정부가 이번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오랜만입니다. 한 실장.”

“반갑습니다, 요시무라 부총재.”

우리는 국정원이 마련한 안전가옥에서 접선했다. 일본 내각정보관이 동석하겠다고 하는 걸 국정원이 제지한지라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요시무라 부총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문을 텄다. 내전 중인 마당에 한국과 척을 지기는 싫은 모양이다.

“허헛. 예전에 뵀을 때부터 동량지재인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 거물이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한 실장과 친분을 쌓아놓는 것이었는데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차 바쁜 상이에 서론은 길지 않았다. 분위기는 금세 진지해졌다.

나는 미국의 말을 전하는 것처럼 의사를 타진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에 들어간 상황이라 먹히는 뻥카였다.

“부총재. 다름이 아니라, 일본 시민군을 북한으로 옮기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허.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내민 패는 시민군의 대규모 망명이었다. 일본에 있는 시민군을 북한으로 옮기자는 거다.

물론 부총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말을 이었다.

진실이 9할, 거짓이 1할이었다.

“사회주의자들끼리 알아서 지상낙원을 만들게 하자는 거죠. 북한이야 어차피 불모지니 기껏해야 농경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리에 맞는 말씀이라고 보기는 힘들군요. 한 실장. 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대규모 망명이 전례가 있던 일입니까? 애초에 누가 일본인의 거주이전을 마음대로 논하는지요?”

“누구겠습니까?”

“......설마.”

“그쪽은 아예 군대를 보내서 준전시상태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서구권에게 동북아시아 정국은 정치적으로 항상 가치 있는 무대였으니까요. 외교 전문가 한 번 되어보겠다고 무리를 하길래 그나마 우리가 중재한 결과가 이겁니다.”

“......유감스럽게도, 국민은 거래의 대상이 아닙니다.”

“공공연하게 비국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시민군을 국민으로 간주하시는 겁니까? 시민군 그거 끽해 봐야 몇 명이나 됩니까. 예전에는 10만 명이라는 소리도 있었는데, 지금ㅇ은 1만 명도 못 되는 것으로 압니다. 전투병력은 헌터까지 포함해서 1천 명도 안 되고요.”

“한 실장.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시민군의 숫자가 그만큼 미미하다는 겁니다. 고위 헌터가 많아서 그나마 대접받는 거지, 실상은 몇천 명 수준의 쉘터 아닙니까.”

확실히, 시민군의 숫자는 지극히 적었다. 말이 삼파전이지 그 지옥도에서 어떻게 시민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일본 내전이 시작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시민군이 기대를 모았던 것도 외신이 잠깐 반응해줬던 시절뿐이지, 지금은 고작 1만 명도 안 되는 잔당에 불과했다.

이건 사실 정부군과 야쿠자가 중부지방의 시민군을 괴수들을 막아주는 총알받이로 사용한 탓이었다.

그 결과, 10만 명에 달하던 시민군 세력의 대부분이 죽거나, 야쿠자의 하수인이 되거나, 정부군의 앞잡이가 되었다.

남은 건 악으로 똘똘 뭉친 반정부주의자들 뿐이다.

“일본 정부나, 야쿠자나, 시민군에게 못할 짓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말씀 조심하시죠. 한 실장.”

“우리도 북한에게 못할 짓 많이 했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 와서 일본이 시민군을 흡수해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정부를 뒤집어버리겠다고 사회주의 깃발까지 든 이들입니다. 반정부주의자들이랑 같이 지내느니 국외추방시킨다 치고 쫓아버리시죠.”

“.......”

“이 기회에 미국이 벼르고 있는 주일미군 재배치까지 성사시켜 줍시다. 그때 항공모함이든 뭐든 태워서 보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미국 비위를 맞춰줘야 동북아시아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주권을 찾는 거죠. 일본을 호주 꼴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의 원흉은 업적에 눈이 먼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주일미군 안전 문제로 이미 미국의 골칫덩이가 되어 있었다.

만약 일본이 아직까지 현실감각이 남아 있다면, ‘진짜 미치광이’와 ‘미치광이 전략’을 구분할 줄 안다면, 그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

“.......”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요시무라 부총재가 싱긋 미소 지었다.

“......하하. 조금 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합시다. 한 실장.”

일본이 협상을 받았다.

* * *

“......자네도 가끔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지.”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통령님.”

양판석이 짧게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저었다.

“쯧. 그러고 보니 이 중에서 외국물을 가장 많이 먹은 게 자네였구만. 흐음. 그래. 그것도 자네였지. 유럽 사태 때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기사회를 만들어놓고 말이야. 어쩌면 외교에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가, 감사합니다.”

으음. 새로운 재능을 찾은 건가.

아무튼.

우리는 강원도 속초항에 있었다. 북한과 맞닿아있는 도시의 항구다. 수평선에서는 주일미군과 일본 시민군을 태운 미국 항공모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멸종하지 않은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시민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었다.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이 초봄 꽃샘추위에 섞여 불어온다.

“......콜록!”

추운 바닷가 항구에 한참이나 서 있었더니 목이 칼칼했다. 목감기가 오려는 모양이다.

속초항에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 그리고 북한 최고위원회 꼭두각시들이 쭈뼛쭈뼛 서 있었고, 그들을 촬영하는 카메라 스태프와 수많은 일반인 구경꾼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 시민군이 아니라 다른 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CIA 국장이 종종걸음으로 걸어와서 말을 걸었다.

“한 실장. 당선인께서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예. 국장님. 카메라 대기시키죠.”

“......아, 그리고. 이번 일은 정말 감사하게 됐습니다. 당선인께서 전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별말씀을요.”

한편, 일본에서는 갑작스런 테러가 일어났다. 평소 정부를 비판하는 참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사회주의 만세’를 외치며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지만 참의원은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테러범은 현장에서 긴급체포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번 테러가 시민군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일본 총리는 국민에게 읍소하며 시민군들에 대한 국외추방을 선포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자에 대한 척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과연 누가 빨갱이로 몰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일본 내부의 시각에 가깝고, 서구권에서는 조금 관점이 달랐다.

대체로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호통에 일본이 꼬리를 말았다는 식으로 포장되는 중이다.

덤으로 주일미군도 일부분 주한미군으로 변경됐고 말이다. 이것 또한 미국이 염원하던 일이었다.

일각에서는 당선인이 대체 뭘 했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작은 쇼맨십을 발휘하기로 했다.

“도착했습니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로날드 레이건이 속초항에 입항했다.

“CVN-76 has arrived!”

“카메라 옮겨! 카메라 옮겨!”

“기자분들, 통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뒤섞인 취재진 무리가 흥분에 차올랐다. 축구장 3개 넓이의 항공모함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자신만만하게 웃는 할머니였다. 동시에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고, 미국 대통령 선거의 당선자였다.

그녀는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손을 흔들었다. 시민들의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모든 장면이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허허,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양판석 대통령이 흐뭇하게 웃으며 미국 당선인에게 걸어가 악수를 청했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과 예비 대통령이 화기애애하게 손잡고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일본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했다.

이제 북한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일본 시민군들이었다.

당연히 내게도 따라붙는 카메라가 여럿 있었다.

“대한민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 가, 감사합니다.......”

물론 이런 행사가 늘 그렇듯, 내가 누구와 이야기할지도 미리 정해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일본 시민군 간부 중 하나가 한국인이었다.

나는 이 여자와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했다. 최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이름은 이유정. 원래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는데 게이트가 열려서 못 돌아왔다고 한다. 직업은 염동술사고 한국으로 치면 1세대 헌터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토닥였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고국에 돌아오신 것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유정이는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몸도 삐쩍 마른 게 외국엣 고생이 정말 많았던 모양이다.

나는 내친김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유정이를 안아 주었다. 양심 반 가식 반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나는 파르르 떨고 있는 이유정이를 놔두고, 옆에 있는 일본인들에게도 인사를 돌렸다.

“이시즈카 씨라고요? SS급 강체술사라고 들었는데 팔이 부러져 있네요. 얼마나 고초가 많으셨으면.......”

“아, 아닙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가 자유주의 나라이긴 해도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요. 북한에서 거주하시긴 하겠지만 무슨 일 있으면 마음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본인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돌리고, 잠시 피채원을 손짓해서 불렀다.

피채원이 바닷바람에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야. 채원아.”

“......네. 의원님.”

나는 녀석에게 은밀히 속삭였다.

“만약 일본에서 활동하던 테러리스트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거다. 분명히 시민군들 틈바구니에 잠입해서 틈새를 노리겠지.”

“......아, 네.”

“이번에 들어온 일본인이 대략 8천 명이야. 앞으로 북한에서 거주하긴 하겠지만 몇 달간 건강검진이나 행정처리를 겸해서 심사를 거칠 거다. 그동안 네가 고생을 좀 해줘야갰다.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일본 시민군 틈바구니에 테러리스트가 있는지 확인해봐라. 헌터가 꽤나 많아서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믿을 구석이 너밖에 없구나.”

“......아, 네.”

휴우. 나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이것으로 일본 내전은 잠시 소강상태가 된 것과 다름없다.

괴수를 막아주던 시민군이 빠졌으니 야쿠자와 정부군이 마음 놓고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쌈박질하던 병력을 괴수 사냥에 돌리면 그리 많은 피해가 생기지도 않을 거였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덩달아 북한에도 고급 인력들이 투입됐다. 원래 자급자족하던 사람들이라 생존력도 괜찮고, 헌터도 많아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괴수들 막기에도 좋을거다.

비록 내 외교적 성과가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홀랑 넘어가 버리기는 했지만, 정치를 아는 인간인데 입을 싹 씻을 리도 없으니 보상을 기대해도 되겠지.

으음. 방금 양판석에게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참 좋았다. 앞으로 외교 쪽으로 나가볼까.

마침 양판석이 내게 손짓했다.

“네! 대통령님!”

나는 대통령들 틈에 끼어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기 위해 달려갔다.

일본 사태를 혓바닥으로만 해결한 순간이었다.

EP 32

말, 말, 말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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