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2화 (212/296)

EP 32 - 말, 말, 말 (2)

「제주도 테러 사건 당시. 한승문 전 장관이 테러범과의 교전에서 활약했음이 밝혀지며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경찰은 오늘 사건 당일의 CCTV 영상을 공개했는데요, 인질로 잡힌 사람이 한승문 장관……」

「현역 헌터들도 가끔 간과하는 사실인데, 한승문도 1세대 헌터죠. 그것도 PMC에서 최고로 쳐주는 특수초상능력자로 분류됩니다. 이건 게이트 열릴 때 정말 코앞에 있던 사람들, 그러니까, 다른 세상의 마력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사람들만 가끔 있는 일인데요, 그런 사람이 전설적인 전투에 전부 참가했으니까……」

「오늘 오전, 석재봉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SNS를 통해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혔는데요, 재선의원 출신의 보수 인사가 호남에 유입되며 총선 판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편 후임으로는 한승문 전 장관, 지회갑 전 전남지사가 하마평에 오르고……」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정확히는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흘렀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국회 인사청문회 날이 밝아왔다.

인사청문회.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를 거치는 행위다. 사람 하나 세워두고 매서운 질문과 검증의 쓰나미가 몰려든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회 동의 없이도 임명이 가능했고, 그래서 국회는 무조건 동의를 안 해줬으니, 그냥 후보자 잡아 조지는 연례행사에 가까웠다.

그래서 대충 적당히 썩었으면 통과하고. 좀 많이 썩었으면 떨어지는 게 국회 인사청문회였다. 그리고 나는 경력이 짧았으니 썩었다기보다는 살짝 숙성된 축이었다.

문제는, 원래 대통령 비서실장은 인사청문회랄 것이 없었는데, 똑같은 장관급인데 뭘 봐주냐면서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누구든 청문회 한번 하면 반쯤 불구자가 되어 나오기 십상이었던지라, 아마 누군가(혹은 누군가들)의 손길이 닿은 결과물인 것 같았다. 비서실장도 청문회 하자는 소리야 한참 전부터 있었으니 그리 유별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어차피 비서실장에게는 국정감사가 청문회를 대신했다. 미리 매 맞는다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장관 노릇도 했었으니 처음 겪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후우.”

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가시지 않았다.

감사원장으로 지목된 이문영 대법관은 지난 사법파동을 지휘한 정권공신, 그리고 최초의 여성 감사원장이라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전쟁영웅 김두식 사령관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는 다들 무난하게 통과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결국 화제의 중심은 가장 만만한 대통령 비서실장 청문회에 몰렸다.

그리고 선거철 국회의원은 그 누구보다 화제에 목마른 야수들이었다.

* * *

“초상관리부 장관, 양일호! 한승문 오른팔입니다. 집권‘야당’ 원내대표, 이호정! 한승문 왼팔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 한승문? 이게 한승문 공화국입니까?”

한승문 공화국이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올만한 어휘력은 아니지만 네이버 메인뉴스를 차지하기에는 적절한 멘트였다. 아마 거기까지 계산하고 말하는 거겠지.

나는 청문회장 후보자석에 앉아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담담한 척을 했다. 국방당 김재룡 의원은 카메라에 대고 한참이나 욕을 하다가 내게 질문했다.

“초상관리부 장관 자리에 앉아서 국회를 좌지우지하더니. 이제는 본격적인 비선실세가 되겠다! 그런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아아, 대통령이 불러주셨다? 그러면 불출마는 왜 하셨습니까? 그거 믿고 국회의원 따위는 출마도 안 했던 겁니까?”

“지나친 억측은-”

“이게 국민에 대한 우롱이 아니고 뭡니까! 대체!”

“…….”

“왜 대답 안 해요!”

질문을 해놓고 대답할 시간을 안 준다. 그러다가 화나서 한소리 하면 국회에 대한 능욕이 된다. 그렇게 사람에게 흠집 내는 게 양판석이 자주 사용하던 전략이었다.

물론 이것도 모양 빠지는 짓이라 본인이 직접 안하고 꼬붕한테 시키곤 했지만, 저 김재룡이라는 인간은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은 모양이다.

즉, 당에게 버림받은 국회의원이라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든 국민들 관심을 끌어보려고 나를 공격하고 있는데, 하필 신수광이네도 망하기 직전인 상황인지라, 어떻게 양쪽이 합이 맞은 것 같았다.

“아, 예. 발언시간 끝났습니다. 다음, 국민당, 심우중 의원.”

“의사진행발언! 의사진행발언 요청합니다!”

“네, 마이크 꺼졌어요. 심우중 의원 질의하세요.”

국방당 질의가 끝나고. 국민당 질의가 시작되자마자 신수광계 국회의원 하나가 나를 물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를 힐링해 줘야 하겠지만, 어째 질문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헌터 협회의 존재감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왜냐. 소위 3대 길드라고 불리는 거대기업자본이 초상능력자들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신에너지 사업도 대기업 독점. 헌팅 매니지먼트도 대기업 독점. 대체 초상관리부는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여기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초상능력자들에 대한 처우는 대한민국의 국방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철저한 규제와 감시로 임했고. 당시 경제환경이 중소기업이 사업하기 좋지 못했습니다. 규제를 통과한 게 대기업 뿐이었-”

“그 규제를 만든 게 누굽니까? 초상관리부 장관 한승문 아닙니까? 그 결과로 대기업의 무자비한 독점체제가 나왔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겠습니까?”

“당시 저의 소임은 공정한 시장경제를 이루는 게 아니라.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독점이라고 보기에는-”

“국가가 최우선이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각성제 40만 개를 외국에 갖다 넘겼습니까?”

“……아니-”

“질의 마치겠습니다.”

피 말린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사람 몰아세우니까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내 편을 들어줘야 할 사람들조차 적극적이지 않았다.

국민당 정갑수 의원. 듣기로는 청중엽계 사람이라고 했는데, 청중엽의 명령을 받고 나를 지켜줘야 하는 양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후보자. 온갖 의혹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묻겠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안 했다. 자신있게 말씀해 보십시오.”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말 믿겠습니다.”

“예?”

그 어떤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국회방송은 여전히 생중계로 송출되던 와중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해프닝이 있었다. 청문회 도중에 보좌관들이 피켓을 들고 난입했는데, 덕분에 청문회장에서 개싸움이 일어났다.

“위원장님. 지금 저 보좌관 뭐하는 짓입니까?”

“남 발언하는데 조용히 좀 하세요.”

“현수막 피켓 시위하는 거예요?”

“민주당에서 배운 거야.”

“좋은 걸 배우셔야죠!”

“다시 발언하겠습니다.”

“퇴장시켜요! 저게 뭐예요!”

“하다하다 보좌관까지 시켜서…….”

“뒤에 나가세요! 어디 신성한 회의석상에서 저러고 있어요!”

“위원장님. 제가 발언하는데 이렇게 소란스럽게-”

“아니, 야당 의원을 왜 겁박하는-”

국민당과 국방당. 양당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파벌 간의 고성방가가 오갔고, 위원장은 의사봉을 몇 번이나 두드리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내 자료제출에 대한 공방도 오갔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신수광 쪽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나를 물어뜯었다.

“지금 대한민국 2천만 난민들이 거주지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승문 후보자는 부산 해운대 단독주택에서 월세 600만 원을 내며 거주했어요. 600만 원이면 요즘 경상북도 산골에 원룸도 하나 잡기 힘듭니다.”

“아니-”

“질문 안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호화저택의 소유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양판석 대통령의 아들 양정석 씨입니다. 사실상 양판석 대통령의 자택이지요. 뭐, 후보자가 양판석 대통령의 숨겨진 자식이면 모를까.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 시점에 국방당 호남 의원들이 대통령 모욕이라며 분노를 토하며 일어났지만, 절벽 끝에 몰린 신수광계는 더 이상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후보자는 보안 문제였을 뿐. 금전적 이익관계가 오간 것이 아니다. 이런 모호한 답변만 내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산내역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는데, WPO 평의원의 신변자료는 국가기밀이라며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

“그건 차기 평의원이 선출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말 끊지 마세요. 아무튼 후보자 재산 내역도 모르고 하는 청문회가 제대로 된 청문회냐 이겁니다. 철저한 정권 부역자와, 그의 사익을 위한 정권이, 이런 보여주기식 청문회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결국, 양판석을 지지하는 국방당 의원들이 청문회장을 나가버렸다. 청문회를 통제해야 할 상임위원장은 영혼이 빠져나간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게 점심시간 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 * *

사실 청문회 점심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 아니라 일종의 작전타임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여론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점심밥을 먹었다. 참치김치 컵밥을 우물거리며 핸드폰으로 여론을 체크했다. 인터넷은 지금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오죽하면 양일호가 내게 전화를 걸어 따질 정도였다.

“여보세요? 어, 일호야.”

「아니, 재산내역을 왜 제출 안 했어요!」

“허허, 오랜만이다. 야.”

「지금 반응 장난 아니에요!」

물론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여론은 본격적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살던 단독주택 사진이 뉴스포털 대문을 차지했다. 댓글로는 배신감을 느꼈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하기야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정치인이 이 시국에 호화생활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험이 있었다.

그것도 지난 몇 년을 투자한 보험이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아직까지도 재산내역을 제출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렇게 청문회는 이어졌다.

“한승문 후보자.”

청문회가 재개되자 국회의원들의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오전의 개판은 탐색전이었다는 것처럼,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됐다.

인터넷으로 여론을 분석한 국회의원들은, 내 재산에 대한 집중공격에 들어갔다.

“법리와 법감정의 간극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국민 정서법 문제를 감히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의 공정성을 떠나, 이 시국에 고위공직자가 호화저택에서 생활하고 있음은…….”

“대통령이 실보유한 호화저택에서 시가보다 저렴한 월세를 제공받았다. 이게 뇌물이 아니고 뭡니까? 그것도 WPO 평의원이라는 핑계로 재산내역을 숨기고서. 지금껏 이런 생활을 누려오고 있었던 겁니까?”

“이것은 엄연히 뇌물성 부동산계약입니다. 재산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게 이중계약이었는지, 실거주했는지도 어떻게 압니까? 지금 국민이 우스워요? 조속히 재산내역 공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전에 어린애처럼 땡깡부리던 인간이 뇌물성 부동산계약 운운하고 있으니 뭔가 어색했다. 국회의원 아이큐는 비트코인처럼 요동친다고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한참이나 내 뼈와 살을 분리할 것처럼 청문회를 이어가던 와중, 갑자기 보좌관들이 난입해 식은땀을 흘리며 국회의원들에게 자료를 돌렸다.

“…….”

국회에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고성이 오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온다.

이윽고, 여태껏 구석에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이호정이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의사진행발언 신청하겠습니다.”

“하, 하십시오.”

이호정이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오직 녀석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번졌다.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후보자는 지난 3년에 걸쳐 수입의 절반을 수도권 난민들에게 기부했습니다. 차재균 정권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기부활동입니다.”

“그렇게 모인 재산. 제주도 테러 당시 제주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PMC를 고용하느라 전부 소진됐습니다. 심지어 빚까지 14억이나 생겼습니다.”

“WPO 평의회에 소속되며 국가보안법에 의해 일시적으로 신상정보가 동결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공직자 재산공개만 보아도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 의원은 지금의 일방적이고 무도한 정치공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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