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1화 (211/296)

EP 32 - 말, 말, 말 (1)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던 새벽이 지나고 나는 가까스로 감지윤과 독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뭐? 테러범을 놓쳤다고?”

“으응…….”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감지윤과 싸워서 도망치다니. 테러범들도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감지윤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다. 이런, 너무 보채는 목소리였을까. 사실 탈출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석연찮기는 했다. 내가 테러범과 직접 싸워본 바로는, 감지윤 정도면 전부 제압이 가능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 스쳤다.

“……지윤아. 거기에 두 명이 더 있었다고 했지?”

“응. 그래서 전부 다섯 명.”

만약, 테러범 중에 감지윤을 제압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있다면, 혹은 감지윤과 비견될 정도의 초능력자가 있다면…….

그건 최악의 사태였다.

나는 애써 웃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지윤아. 아저씨가 보채는 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해서 그러는데. 혹시 테러리스트를 제압하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아니…… 나도 잡으려고는 했는데…….”

녀석이 민망하게 웃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얼굴을 스윽 들이밀었더니 부끄러운 듯 뒤로 물러선다.

“아니…… 그게…….”

감지윤은 펑퍼짐한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흙바닥에 발을 질질 끌었다. 몸을 배배 꼬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중얼거렸다.

“짜부될 것 같아서…….”

* * *

“잘못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답니다.”

“뭐가?”

“테러범이요.”

“…….”

양판석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기묘한 표정이다. 약간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입에서 영혼 같은 게 빠져나오나 슬쩍 봤더니, 어금니 임플란트가 눈에 들어왔다.

양판석은 추태를 보인 것을 깨달았는지 헙, 하고 입을 닫았다.

“그, 그래. 그래서 테러범들에 대해 확인된 바는 있나?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게.”

“인원은 다섯 명. 일단 외국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대인전이나 초상능력은 뛰어난 축이지만, 잔실수가 많은 걸 보면 전문가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테러리스트도 전문가가 있나?”

“잠입이나 사보타주를 훈련받은 군인은 아니라는 거죠.”

테러범들은 무언가 나사 빠진 구석을 보였다. 얼굴을 가렸으면서 자판기 뽑아먹다가 지문을 남겼다던가. 국적을 숨기려고 어색한 한국말을 사용했으면서 ‘칙쇼’라는 비명을 질렀다던가.

물론 기만전술일 수도 있고, 일본인을 포함한 다국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비명소리 하나로 국적을 추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확실한 건 그거다.

“아마추어들이었다고 합니다. 납치나 습격도 그냥 초능력으로 밀어붙였지, 전문기술이 동원되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경찰도 추적이 쉬웠답니다.”

“하긴, 천 박사를 납치하려던 놈들이 감지윤이 얼굴도 못 알아봤으니…….”

양판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건 그렇고, 추적은 어떻게 됐나?”

“서귀포에서 테러를 일으킨 3명. 그리고 제주시 인근에서 천 박사를 납치한 2명. 이렇게 5명이 한라산 국립공원에서 접선했습니다.”

이번 테러는 철저한 계획범죄였다. 그야말로 최적의 시기를 노린 양동작전. 이상한 애를 납치하지만 않았어도 성공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던 와중 감지윤 양과 교전이 발생했고, 가까스로 탈출한 테러범들은 한라산 국립공원을 배회하다가, 무인 자판기에서 콜라 2개, 사이다 3개를 절도하고서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다는데요.”

“쯧, 아쉽게 됐군.”

양판석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도 아쉬움은 그저 아쉬움일 뿐. 상황이 굉장히 순조롭게 진압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양판석이 내게 물었다.

“사망자는 없는 게 확실한가?”

“사망자도 없고. 중상자도 없습니다. 청중엽 지사가 재벌들 먼저 챙긴 덕분에 언론도 잠잠하고요.”

“어쩐지 조용하더니만…….”

“안 그랬으면 지금쯤 난리가 났겠죠.”

테러 피해자인 재벌들이 조용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언론에서 사회안전망의 붕괴니, 공권력의 추락이니, 난리를 치고 있었을 터이다.

다행히도 청중엽 지사는 어둠의 협상력을 발휘하여 뒷일을 마무리 지었고, 언론은 양판석의 훌륭한 대처를 찬양하며 친정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 중반 선거철에 언론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거의 부처나 공자 수준의 예의범절을 보이는 거라고 보면 됐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만약 언론이 양판석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사태 초기대응에 앞장섰던 나를 칭찬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원옥분, 청중엽, 유재경,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였으니까.

그래. 그거면 된 거다.

정치라는 게 다 그랬다.

“자네도 정말 수고 많았네. 무사한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테러범을 때려잡았다지?”

“정확히는 인질로 잡혔었죠.”

“저녁밥 먹던 와중에 테러 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래도 자네가 연구소에 헌터들을 보낸 덕분에 경찰도 그나마 욕을 덜 먹었네. 오죽하면 김 청장이 고맙다고 그러더군. 조만간 사임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참고로, 내가 사재를 털어 헌터들을 고용했던 일은 경찰과 협의하고 저지른 일이 되었다.

영세 언론사에서 경찰이 수사는커녕 재벌만 싸고돌았다는 이야기를 흘리길래, 내가 자청해서 요구한 결과였다.

덕분에 양판석의 눈빛에서는 꿀이 뚝 뚝 떨어지는 중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더라면 전부 다 대통령이 뒤집어쓰는 게 이 바닥 전통이었으니까.

어쩌면 이번 테러에서 가장 목숨이 위험했던 건 양판석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내 덕에 구사일생한 양판석은 주름진 눈가를 기울이며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라는 말만 안 나와도 소원이 없겠는데. 자네가 그 소원을 이뤄줬군. 혹시 따로 바라는 게 있나?”

“예.”

“……대답이 너무 칼 같은데.”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비서실장을 제안하셨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아니. 그건 안 되지. 근시일 내로 입장 발표할 테니까. 신변 정리하고 인사청문회나 준비하게.”

* * *

“뭐, 그렇게 됐습니다.”

“축하드려요. 성공하셨네!”

“글쎄요. 성공이라기엔 조금 애매한데…….”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천사장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하, 올해 크리스마스는 망했네요. 하루 종일 병원에서 정밀검사만 받다가 하루가 끝나다니.”

“그새 MRI 찍으셨습니까?”

“내 몸은 소중하니까……?”

그녀가 슬며시 손으로 몸을 감쌌다. 그 자기애 덕분인지 천사장은 그 난리를 겪고도 무사했다. 얼마나 멀쩡한지 곱고 허연 얼굴에 흠집 하나 없다.

다행인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깁스를 감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머리에 붕대를 감은 피채원을 툭 툭 건드렸다.

“채원아. 이번 여행 어땠니?”

“참신하고 새로웠네요. 특히 개머리판으로 머리 맞고 뇌진탕으로 기절한 거요.”

“나도 살면서 총은 처음 쏴봤다. 그것도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비행기가 도착했다. 천사장의 전용기다. 그녀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며 비행기 계단에 올랐다.

“자기들, 나도 잘 해보려고 한 거거든요. 원래 예정대로였으면 지금쯤 다 같이 레스토랑에 있었을 건데…….”

“레스토랑은 무슨, 줄초상 날 뻔했구만…….”

“어허. 비서실장 되실 분이 마음을 곱게 쓰셔야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숨부터 나왔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면 뭐하나. 어차피 비서실장은 양판석 임기 끝나면 잘린다. 즉, 이것도 결국 2년짜리 계약직이라는 거다.

과연 요즘 세상에 평생직장은 없는 걸까. 나는 언제쯤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부산에 내 집 마련을 할 수는 있을까.

그 와중에 천사장의 호화스러운 전용기를 보니 텅 빈 지갑이 유독 와 닿는다. 이러다가는 다음 달 피채원 월급도 못 줄 것 같다.

나는 마음으로 펑펑 울면서 전용기 안에 있는 안마의자에 앉았다. 안마의자 리모콘을 찾고 있으니 천사장이 활기차게 웃는다.

“자, 부산으로 갑시다! 이제 제주도는 쳐다도 안 볼 거예요!”

“GS 본사가 제주도에 있지 않았습니까?”

“워, 원래 사장은 출근 안 해도 돼!”

그런 소리를 직원들 앞에서 하다니. 전용기였으니 승무원들도 전부 직원 아닌가. 역시 돈이 깡패라는 말이 와 닿는 순간이다.

그리고 돈으로 무력을 고용하는 것도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5명의 고위헌터를 6시간 남짓 고용했더니 고위공직자 전 재산이 날아갔다.

그렇다고 그리 많은 재산을 축적해 놓은 것도 아니었지만, 생명수당을 고려하더라도 헌터들 몸값은 장난이 아니었다.

“후우…….”

주머니가 비어버리니까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공직자가 돈에 엮이면 하면 감옥 가던데. 이러다가 정말 피채원을 강원랜드로 보내야 할 판이다.

차마 천사장에게 그 돈 돌려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저 허탈하게 비행기 창문만 들여다보고 있을 무렵,

“아차, 이거 받아요.”

“뭡니까.”

“글쎄요. 크리스마스 선물?”

천사장이 검은색 007 가방을 건넸다.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그 가방을 받아 챙겼다.

“이, 이게 뭡니까.”

“환불금이에요. 알고 보니까 그때 헌터들이 임무를 소홀히 했다더라구. 그래서 회사 규정대로 의뢰금을 돌려주는 거예요.”

“뭘 소홀히 했는데요?”

“그건 사외비!”

“근데 왜 현찰로 줍니까?”

“글쎄요. 금융당국에 들키면 안 되니까……?”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받고 싶던 돈이었지만 막상 받으니 심장이 턱 막히는 것 같다. 이거 먹고 탈나면 어떡하지.

그래도 돈에는 죄가 없으니 갑자기 천사장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거 먹으면 배탈 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런 심정으로 돈가방을 떨떠름하게 어루만지고 있으니, 천사장이 농담이라며 손을 내젓는다.

“하하, 농담이에요. 정상적인 루트로 드리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 그런가요? 혹시 김영란 법은…….”

”지금은 민간인이잖아요? 예전에는 공무원이라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그냥 친구간 성의 표시다 생각하고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천사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나는 돈가방을 슬쩍 피채원에게 들어보였다.

“채원아. 이거 네가 받을래?”

“……제가요?”

“잘못되면 감옥 갈 사람은 따로 있어야지.”

“…….”

피채원이 조용히 나를 쳐다봤다.

인간쓰레기를 보는 눈빛이었다.

나는 결국 돈가방을 돌려줬다.

“아무래도 이 돈은 받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네? 검은돈 이야기는 정말 농담인데요. 규정상으로도 정말 문제없는 일이에요. 실제로 변변찮은 전투도 한번 없었고, 헌터들 인센티브도 제대로 나갈 거고, 본사만 손해 보는 상황이라…….”

“그래도 못 받겠습니다. 넣어 두세요…….”

“으음. 상황도 상황이었고. 공익을 위해 무료로 하겠다고 말하면 여론도 괜찮을 텐데요. 그런 마케팅도 많잖아요? 대기업이 연말에 뭐 공짜로 해줬다고…….”

천사장은 정말로 나에게 미안한 것 같았다. 서로 대충 형편도 아는데, 그녀가 나에게 돈을 받는 건 벼룩의 간을 빼먹는 짓이었으니까.

사실은 내가 이런 돈을 아예 꺼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소싯적에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천사장 카드로 이것저것 긁고 다녔고, 지난 보궐선거 때는 관습적인 정치자금까지 걷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음습한 눈빛으로 주변을 슬쩍 둘러본 뒤에,

그녀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잠시 귀 좀…….”

“뭐, 뭔가요.”

“……조금 더 좋은 그림이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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