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0화 (210/296)

EP 31 - 겨울철 여행은 가는 거 아니다 (4)

“이게 다 양동작전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

“정황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청중엽 지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나라 잃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 심정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필 제주도에서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까. 그것도 재벌들의 목숨이 엮인 문제가 아니던가.

그런데 자꾸 손톱 깨물면서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는 게, 이상한 행복회로 돌리면서 트집잡으려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청중엽이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그…… 한승문 의원님.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확실히 그렇다는 증거는 없-”

“당장 경찰 풀어야 합니다.”

“예?”

“연구소에 경찰특공대 파견해야 합니다.”

나는 청중엽을 강하게 압박했다.

원래 사람은 이유보다는 핑계를 가까이 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러니 이상한 헛소리하기 전에 일단 경찰부터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제주도 자치경찰의 지휘권은 청중엽에게 있었다.

“당장 경찰병력 연구소로 돌리시죠. 어쩌면 이미 각성제를 탈취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제주도 전체를 뒤져도 모자랄 마당에 이미 끝난 테러현장 붙잡는 건…….”

“아, 이, 일단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지사님. 테러범은 공중으로 도주했습니다. 일단 헬기부터 풀어서 샅샅이 살피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헬기 몇 대나 있습니까?”

“그, 그게, 사용 가능한 헬기가 지금은 없는 상황-”

그러니까. 지금 테러범들이 각성제 연구소를 습격했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경찰도 못 보내고, 헬기도 못 띄운다?

그 말에 발작적으로 노호성을 터뜨린 건, 어처구니없게도 옆에서 듣던 웬 아저씨였다. 그는 대뜸 청중엽 지사에게 달려들어 윽박질렀다.

“아니! 청 지사! 그게 무슨 소립니까? 헬기가 없다니!”

“하, 하하, 정 회장님 아니십니까? 일단 침착-”

“내가 하나 반출해 달라고 아까 요청했잖습니까! 대체 언제까지 이딴 테러현장에 있어야 하냐니까! 헬기 하나 준비하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웠어요?!”

“지금 그런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

“누군 되고, 누군 안 돼? 지금 당신 나 무시하는 거야? 허.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 당장 헬기 가져오라니까!”

재벌로 추정되는 아저씨는 횡설수설하며 청중엽 지사에게 분노했다. 방금 막 생명의 위협에서 빠져나온지라 이성을 상실한 모양이다.

어쩌면 본성이 드러난 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재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들 헬기 타고 안전지대에 가겠다며 청중엽 지사를 협박했다. 경찰들은 그런 그들에게 안심하시라며 눈도장을 찍으려 안간힘을 썼고 말이다.

“…….”

결국, 모든 공권력이 재벌들의 귀가 도우미로 사용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치이는 청중엽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청중엽 지사님. 이것만 말씀해 주십쇼. 지금 당장 출동 가능한 병력이 있습니까?”

“그, 그럼요! 거, 걱정 마십시오. 일단 현장만 정리하고…….”

“아, 예.”

제길. 이거 아무래도 경찰과의 협조는 그른 것 같다.

나는 불쌍한 청중엽 지사를 내버려 두고 가만히 상황을 파악했다. 제주도의 경찰 명령권은 제주도지사에게 있었으니, 경찰은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제주도지사를 설득하기에는 재벌들이 문제였다. 모든 헬기는 재벌들을 귀가시키는 데 동원되고, 경찰은 테러범 추적보다 재벌들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공문 좀 때리고, 전화도 몇 통 돌리고, 결국 공무원 팔 비틀면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다.

그때. 피채원이 말했다.

“의원님.”

“왜?”

피채원이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헌터가 공무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 * *

“천금순 회장님!”

경찰 수사관이 천 사장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금방 경호원들에게 제지되어 밀려났다. 경호원이 전부 헌터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수사관은 포기하지 않고 천사장을 붙잡았다. 그리고 애절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천 사장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회장님! 제발 협조 부탁드립니다! 사태 파악을 위해서는 목격자의 협조가…….!”

“하하, 미안한데 테러 현장에 더 있기는 싫네요. 빈혈 기운도 있는 것 같고. 어디서 누가 또 공격할까 무섭기도 하니까.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죠. 네…….”

“지금 증언 한 마디가 정말 귀중한 상황입니다. 제발!”

“일단 안전을 확보하고. 그 이후에 말씀을 드릴게요. 내가. 예?”

“회장님!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이면. 그러니 부디 시간을…….”

“아, 알겠으니까 보채지 좀 마세요. 어지러워…….”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장이 아니라, 사장…….”

경찰 수사관의 간곡한 요청이 먹혀들었다. 천금순 사장은 지하벙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손짓으로 헌터들을 물렸다.

막 죽다 살아난 모습이 꽤나 예민해 보인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엉망으로 헤집으며 경찰차 보닛에 걸터앉았다.

“그니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자면…….”

그녀가 다크써클이 조롱조롱 매달린 눈을 껌뻑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경찰 수사관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메모장을 들었다.

테러 현장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탓에 횡설수설하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영양가 있는 증언이었다.

“승문 씨가 단상 옆 비상구 문을 여니까 방독면들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세 명이었나? 나는 깜짝 놀라서 열린 문짝 뒤로 숨었는데, 어떻게 안 들키고 아직까지 살아 있네요.”

“단상 옆 비상구…… 그리고요?”

“테러범 하나가 승문 씨, 아니. 한 장관님을 붙잡았고. 피채원 비서관이 장관을 구하려고 몸을 던졌죠. 그리고 테러범한테 개머리판으로 맞고 쓰러졌는데, 내가 보기에는 거기서 승문 씨 야마가 돈 것 같애……. 눈빛이 확 바뀌더라구.”

“네?”

“아니, 인질로 잡힌 사람이 갑자기 테러범 총을 박살 내더니, 자기 잡고 있던 사람을 자빠뜨려서 쥐어패더라니까요? 막, 막, 어떻게 몸을 뱀처럼 꼬아서 물 흐르듯이 샤샤샥…… 눈 한번 깜빡이니까 사람 하나가…….”

“예?”

“나중에는 피 칠갑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총질까지 하는데, 그 눈빛이, 어우, 살짝…… 무슨 느낌인지 알죠?”

“예?”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그런 느낌? 어어, 딱 저런 거.”

“예?”

천 사장의 삿대질에 경찰 수사관이 고개를 휙 돌렸다. 마침 한승문이 지팡이를 짚으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몰골이었지만 두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당황한 수사관이 입도 벙긋 못하고 있으니, 한승문이 대뜸 다가와 한마디 건넨다.

“천 사장님.”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어디 다친 덴 없죠? 아깐 정말-”

“헌터들 고용 좀 합시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 * *

「A팀. 연구소 도착했습니다. 현재까지는 외견상 이상 무.」

「B팀. 지하통로로 진입합니다. 현재 지하 2층 연구실로 향하는 중입니다.」

「여기는 C팀. 방공망 확보했습니다. 하늘에는 이상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고작 15명을 고용했을 뿐이지만 인건비가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심지어 나는 지금 민간인 신분인지라 세금 처리도 되지 않았다.

GS 그룹 총수에게 지인 세일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자, 잘하셨습니다. 테러범은 총기를 소지하고 있으니,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테러범들의 수법은 이러했다.

재벌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한다면, 설령 누군가 양동작전을 경고하더라도 경찰이 마비된다. 왜냐. 재벌들이 안전을 위해 경찰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제정신이 박힌 나라였으니 결국 일시적인 혼란에 불과했지만, A급에서 S급 이상 가는 헌터를 동원하는 테러범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니 결국은 시간싸움인 것이다.

누가 먼저 각성제를 훔치느냐.

누가 먼저 연구소를 지키느냐.

누가 먼저 도둑놈들을 잡아 조지느냐.

거기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연구소 이상 없습니다. 의원님.」

“뭐라고요?”

「습격이라든지. 잠입이라든지. 별다른 특이사항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내 예상이 틀렸다고?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심지어 헌터는 연구소에 있던 국정원 요원을 바꿔주기까지 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장관님.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니, 최 국장님. 정말로 무사한 것 맞습니까?”

「국정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근무지를 지킵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그리고 설진운 헌터도 양동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헌터 절반을 남겨두고 출격했고요.」

“혹시…… 테러리스트에게 협박받는 중이라면. 웃음기 없이 진지하게 말씀해 보십쇼.”

「하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정말로 무사합니다.」

그때. 제주 국제공항에 보내놓았던 설진운 헌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나는 무전기를 집어넣고 핸드폰을 들었다.

“어어, 설 헌터. 괜찮습니까?”

「공항은 괜찮습니다. 장관님. 국군에서 이미 특공대를 파견하셨더군요. 그나저나 연구소는 무사한가요?」

“어, 어어, 별 이상은 없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테러리스트들이 이러고 그냥 돌아갔다고?

차라리 무슨 메시지를 남겼으면 모를까, 이런 짓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그때, 어떤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나는 테러범이다.”

나는 테러범이다.

만약 내가 각성제를 훔치려는 상황이라면, 과연 각성제를 훔칠까? 아니면 각성제를 만드는 방법을 훔칠까?

현재 시각 새벽 2시 3분. 나는 천화란 수석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래. 감기자랑 감지윤은 부산에 놔두고, 제주도에 혼자 살고 있었으니 잠든 상황이면 못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대신 연구소를 지키는 국정원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직까지 무전기가 연결되어 있었는지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천화란 박사님 말씀이십니까?」

“예.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마…… 거의 항상 숙직실에서 지내시는 걸로 아는데요. 일단 확인해 보겠습니다.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운지라 인원 파악이…….」

“네, 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로부터 2분 후.

천화란 박사의 실종 소식이 들려왔다.

* * *

“……성공했나?”

“네!”

“잘했다.”

두 복면인이 야산에서 접촉했다. 둘 다 어색한 발음의 한국어를 사용했고, 한 사람은 2명의 인질을 들쳐메고 있었다.

인질을 들쳐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대장. 호텔 쪽 애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원래는 인질극으로 시간을 끌었어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교전으로 급히 탈출했다. 부상을 입었다는 소리도…….”

그때. 대장이라 불린 남자가 말을 멈췄다.

“그 아이는 뭐지? 한 명만 데려가는 거 아니었나?”

“아, 그게, 아마 천 박사의 딸처럼 보입니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더군요. 하필 제 얼굴을 봐버려서 그냥 마취시켜서 데려왔습니다.”

“쯧. 쓸데없는 짓을…….”

테러범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어린놈까지 데려갈 여유는 없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뭐, 뭐라고요?”

“어디 쇼핑센터에 갖다 놓든가.”

테러범 두 명이 어린애를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을 때, 테러범 세 명이 하늘에서 비틀비틀 내려왔다.

염동술사는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털썩 쓰러졌다. 그녀가 들쳐메고 있던 두 명의 테러범도 마찬가지였다.

“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은, 시X, 총 맞아 뒤질 뻔…… 으윽!”

염동술사는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녀는 방독면을 벗고 진술을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동료들을 짚으면서.

“타까시 이 새끼는 총 박살 나니까 병신 됐고, 이시즈까 아저씨는 인질한테 두들겨 맞고 뻗었습니다.”

“뭐, 뭐라?!”

“나는 거기 있던 헌터들 상대로 간신히 버티다가, 타까시가 섬광탄 터뜨린 틈에 겨우 도망쳤는데…….”

염동술사가 트라우마 걸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어떤 미친놈이 테러범을 쫓아와서 총을 갈기냐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시즈까 아저씨 팔 뽑아버린 놈이, 자기 다리가 잘린 채로 기어 와서 총을 쐈다니까요? 미친 새끼 아니야…….”

염동술사는 거의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대장이 염동술사를 진정시키던 그때.

잡혀 있던 인질이 조용히 움찔거렸다.

“……오호.”

감지윤이 슬며시 눈을 떴다.

* * *

천화란 박사가 실종된 지 2시간이 지났다.

양판석의 대처로 진정된 경찰이 그제서야 기능하기 시작했고, 초상관리부 치안관들도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수색에 나섰다.

국군은 아닌 밤중에 진돗개를 발령하여 장병들이 전부 집합했다. 듣기로는 휴가나 외박도 전부 잘렸다고 한다.

“아니, 그러니까…….”

그리고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수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내가 가장 먼저 붙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양판석이었다.

“각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 거 맞지요?”

「자네, 나를 너무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거 아닌가?」

“죄송합니다. 원래 임기 말 대통령만큼 위험한 사람이 없어서…….”

「……원래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에 헛짓거리하는 게 우리네 전통이긴 해도. 일단 나는 아닐세.」

나는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을 탐문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지금은 이것뿐이었다.

그러던 도중, 충격적인 소식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감 기자님. 천화란 박사님이랑 지윤이가 같이 있었다고요?”

「아, 그렇다니까요……! 오늘이 겨울방학이라 아침에 제주도 내려갔는데-」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감 기자는 처자식의 비보에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읍소했다.

나도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렇게 일단 간신히 감 기자를 진정시키고 대처에 나설 무렵,

감지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납치된 이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다니. 이처럼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긴장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어, 아저씨!」

“지, 지윤이니?”

「나 탈출했어! 어디로 가면 돼?」

“천화란 박사님은! 박사님은 괜찮으셔!?”

「으응. 엄마 기절했다가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고소공포증으로 또 기절했어. 지금 하늘이라…….」

나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잔뜩 깨진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본다. 12월 25일 새벽 4시 50분이었다.

“의, 의원님! 괜찮으세요?”

“채원아…….”

온몸에 긴장이 풀려 길바닥에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나는 실낱같은 목소리로 피채원에게 말을 남겼다.

“지윤이…… 탈출했다고…….”

“네……?”

“청와대에 카톡 보내…….”

피채원이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건 종결을 보고했다. 그제서야 유리 조각이 잔뜩 박힌 팔뚝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묵직한 근육통이 온몸을 압박했고, 서서히 밀려드는 졸음에 천천히 눈을 감는다. 아무래도 이대로 길바닥에서 기절할 것 같았다.

“인생…….”

몸은 다치고. 머리는 피곤하고. 옷은 찢어졌고. 통장은 헌터 15명 고용했다고 순식간에 텅텅 비었다. 울고 싶었다.

차마 울 수는 없으니 길바닥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런데 무언가 차가운 것이 콧등 위로 떨어졌다.

피채원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 오네요.”

차가운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함박눈이었다.

내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천 사장이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화,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사실 이것 때문에 여행 가자고 했던-”

사장님.

네?

조용히 하세요.

네…….

EP 31

겨울철 여행은 가는 거 아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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