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1 - 겨울철 여행은 가는 거 아니다 (1)
이빨.
정치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이빨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이도 많은 양반들이 온종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니 당연한 일이다.
당장 어디 비서실장이 이빨 몇 개 뽑았다는 소리는 심심찮게 들려오고, 질질 새는 발음으로 놀림거리가 되었던 대통령은 이빨만 13개를 뽑은 이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양판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석재봉 실장.”
“네. 각하.”
“임플란트 어디서 했어요?”
대통령의 은근한 질문을 받은 석재봉 비서실장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처수가 치과의사라…….”
“그래서 지극정성으로 받으셨구먼.”
“하하,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양판석이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었다.
“나는 다섯 개 했지.”
"하하. 저는 여섯 개 했지요."
"허허."
60대 노인 두 명이 서로를 바라보고 모처럼 화기애애하게 미소지었다.
둘 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 * *
양판석 대통령과 석재봉 대통령 비서실장은 임플란트와 치아건강에 대한 논의를 한참이나 이어갔다.
이야기는 결국 양판석이 석재봉의 처수가 운영하는 치과를 언젠가 한 번 들리겠다는 약속으로 마무리됐고, 그들은 그제서야 국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저께 대형사고 하나 터졌다던데. 어떻게 됐습니까?”
“네. 충남 아산에서 헌터 하나가 능력조절을 못하고 사방을 불태웠습니다. 하필 달동네라 화재가 워낙 빠르게 번지는 바람에…….. 다만 신수광 비대위원장이 최근 주류 언론과 각을 세우고 있는지라, 화재 소식은 그닥 보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으음. 북한 쪽 독립군은 어떻게 됐고?”
“국정원에서 핵심 인사들 중심으로 여론조성에 나서는 중입니다. 지금까지는 상당히 순조로운 것으로 압니다.”
“그래요. 가급적이면 단독정부 꾸리겠다는 말은 안 들렸으면 좋겠고. 무력은 항상 대기시켜도, 어지간하면 대화로 푸는 걸로 합시다. 괜히 일 나면 이래저래 욕먹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이후로도 양판석은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고서는, 그냥저냥 흡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좋습니다. 혹시 미국 대선 관련해서 청탁 들어오면 즉각 보고하도록 하시고…… 그래요. 이만 가보세요.”
그러나 석재봉 비서실장은 집무실을 나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다.
“저어, 대통령님.”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슬슬 신변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 그만두고 국회의원 출마하겠다는 소리였다. 양판석의 머리에서 자동으로 번역기가 돌아갔다.
석재봉은 원래 원옥분의 측근이었다. 그것도 한때 재선의원이나 했던 공화당 인사다. 그러니 지금 정계에 복귀한다면 3선 의원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석재봉은 원옥분의 측근인 동시에 양판석의 스파이였다. 그는 게이트 사태 내내 원옥분의 일거수일투족을 양판석에게 보고했다.
덕분에 양판석은 지난 대선에서 원옥분을 꺾었고, 석재봉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청와대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만약 원옥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가장 먼저 목을 쳐낼 사람이 석재봉이었다.
양판석은 거기까지 생각을 끝마치고 입을 열었다.
“유재경 전 총리를 밀어줄 생각인가?”
“하하, 아무래도…….”
“유재경 총리가 평생 공무원으로만 살아서 국회 사정에는 문외한일 겁니다. 우리 석 실장이 국회 경력도 충분하니 큰 도움이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혹시 지역구는……?”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광주 쪽에 사무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광주라…… 이제는 광주 지역구만 15개가 넘어가는데…….”
국방당의 유재경이 부산에 출마했으니, 석재봉이 광주를 담당하겠다는 소리였다. 겸사겸사 호남의 맹주였던 양판석의 후광도 받고 말이다.
양판석은 그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석재봉에게 쓸만한 지역구를 점지해줬다. 그리고 국방당 당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석재봉에게 차기 원내대표를 약속받았다.
다른 정치인들이 전부 절름발이 신세가 되자, 조기 레임덕에 빠졌던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석재봉은 그 은혜에 감동하여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집무실에서 나갔다. 하지만 양판석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허어…… 그러면 비서실장은 이제 누가 해야 하나…….”
양판석이 본격적으로 골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양판석의 최대 목표는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나가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가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이었고 말이다.
그를 위해 무난하게 인기를 얻는 전쟁영웅인 김두식을 국무총리로 기용했고, 최근 복지예산과 댓글알바를 풀며 정부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중이기도 했다.
상황이 그러한데 여기서 대통령 비서실장에 엉뚱한 인사를 기용한다면, 융단폭격을 맞고 순식간에 절름발이가 되어 온갖 정치꾼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 가장 무서운 놈은 다음 대통령이다. 힘겨운 대선을 뚫고 만신창이가 된 대통령들은,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적폐청산이라는 것을 하고는 했으니까.
덕분에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거의 전부가 말년이 좋지 않았다. 양판석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니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여보세요?”
아직 해볼 만했다.
“어어, 승문이. 자네 지금 거기 감자탕집으로…….”
* * *
“……대통령 비서실장이요?”
“어.”
“……제가요?”
“그래. 자네가 적임자야.”
양판석은 히죽히죽 웃으며 뜨끈한 감자탕 국물을 들이마셨고, 나는 입에서 감자탕 국물을 주륵주륵 내뱉었다.
집에서 굴 까먹다 양판석이 불러서 나갔는데 나더러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란다.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귀신 홍두께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안 합니다.”
“뭐?”
“죄송합니다!”
내가 정치권을 아예 모르는 놈이면 모를까, 나는 보좌관으로 일선에서 구르던 놈이었다. 따라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지도 훤히 알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무엇인가. 실질적인 청와대의 2인자. 아니. 대한민국의 2인자. 대통령의 오른팔. 합법적인 비선실세.
그리고 일단 들어가면 몇 년 동안 퇴근할 생각은 버려야 하는 곳. 스트레스로 이빨 대여섯 개 정도는 뽑아야 하는 곳.
그게 바로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자리였다.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장관 노릇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능력의 부족함만 실감했지요.”
“허허, 겸손하기는…….”
“이번에 각성제 해외지원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데, 제가 어떻게 나랏일을 하겠습니까? 저는 크게 쓰일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아, 그건 내가 판단하는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슬슬 몸이 맛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지더니, 귀에서 띵- 하고 이명이 울리지를 않나, 이제는 이빨도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예.”
“솔직해서 좋구만.”
그나마 요즘은 정책실장이 경제, 행정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다고는 하지만, 비서실장은 말 그대로 어둠 속의 정치인이었다.
외국에 무슨 일이 터지면 심심찮게 비서실장이 품을 팔아야 했고, 언론과 검찰이 난리를 치면 비서실장이 콧구멍으로 설렁탕을 먹여야 했다.
당연히 업무강도와 스트레스, 그리고 위험성이 매우 컸다.
그래서 어떻게든 양판석의 마수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쳐봤지만, 이 늙은이는 거의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양판석의 수행비서였던 내가, 양판석의 비서실장으로 들어가는 건, 원래 자리를 찾는다고도 말할 수 있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과연 제가 필요할까요……?”
“필요해.”
“아, 아니, 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소방수였다면, 이제는 넓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내 역할이 끝났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세상에 괴물과 초능력자들이 생기고 온갖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겨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
지금껏 거대한 재앙을 피해 살아남았다면, 이제는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도시를 세워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모함하고 무너뜨리는 것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지, 사람을 이끌면서 희망을 퍼뜨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 나는 뤼미에르나 홍선아, 그리고 김춘식 같은 초인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호주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사람이 세상에 더 필요한지는 분명했다.
그렇다고 내가 차재균처럼 완전히 비틀어질 수 있는가? 그것마저도 아니다. 결국 나는 흔하디흔한 회색분자에 불과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세상에 초인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나같이 운좋게 성공한 기회주의자가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 지금이 어쩌면 내가 물러날 때는 아닐까. 적어도 내가 여기서 더 올라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비서실장이 되는 순간 정말로 대선주자가 되는 것인데, 내가 그 위치까지 올라가면 안 되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양판석에게 조심스레 사의를 표했다.
“물론 먹여 살릴 식구가 있으니 집에서 놀지는 못하겠지만, 가급적이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헌터 노릇을 할 수도 있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던가, 아니면 한승문 회고록을 쓰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죠.”
“허어…….”
“사실 제가 앞으로 정치를 한다고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WPO는 노아 뤼미에르가 잘 이끌어줄 것이고, 대한민국은 어차피 민주사회니까 흥망성쇠를 반복하겠죠. 국제정세도 점차 안정되고 있으니…….”
즉, 이제 나는 여기서 더 올라가는 것을 멈추고 싶다. 그게 내 주장이었다.
설득이 어느 정도 먹혔는지 양판석도 그쯤 되자 말수가 적어졌다. 그는 한참동안 듬성듬성한 수염을 쓰다듬더니 내게 말했다.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자네 마음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확실히 세상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 옛날처럼 열댓명이 모여서 졸속으로 처리하던 시절은 진즉에 지났고. 이제는 멸망이라는 단어가 그리 무섭지도 않을 지경이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양판석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네 같은 사람들이 뒷방으로 물러날 만한 세상은 절대 아닐세. 당장 주한미군의 호루스 시스템이 없어진다면 대한민국 전역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게이트에 노출되고, 중국에서 식량지원을 끊어버린다면 이번 겨울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을 거야.”
“…….”
“어디 그뿐인가? 러시아 동부군벌이 생존을 위해 북한으로 쳐들어온다면. 부산 한복판에 초대형 게이트가 예고된다면. 각성제 제조법이 미국으로 넘어간다면. 과연 그때도 우리가 지금처럼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나?”
예기치 못한 위협. 그 말이 마음을 짓눌렀다. 양판석은 담담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겠네.”
“…….”
“그동안 한 번 생각해 보게나. 과연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는 후줄근한 양복을 걸치고 감자탕집을 나가며 한 마디를 남겼다.
“긍정적인 대답 기다리겠네.”
1인분만 계산하고 나간 것은 소소한 복수였으리라.
* * *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권유가 아니라 협박이었다.
그렇게 양판석의 통보 이후 3일이 지났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의 마음으로 도축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송아지는 먹고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한다. 그래서 나도 밥 먹을 때 빼고는 이불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런 인생철학을 설명해 주니, 여도연은 그때부터 나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야. 송아지.”
“뭐요.”
“여물 먹어라.”
나는 어기적 어기적 거실로 나가서 고기 장조림을 손가락으로 대충 집어 먹었다.
그리고 알싸한 소금기가 혓바닥을 강타했다.
“어우, 짜! 이거 장조림 어디서 사왔어?”
“내가 했는데.”
“어쩐지 맛있더라.”
밥도 없이 장조림만 집어먹으니 당연히 짠 거라며, 여도연은 팔꿈치로 내 등허리를 쿡쿡 찔렀다.
세상에서 마음 놓고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으니, 이정도 공격은 너그럽게 받아주기로 했다.
그때, 소파에 누워 이모부 무릎을 베고 뉴스를 시청하던 이모가 노곤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얘. 너 언제 출근하니?”
“……4일 남았네요.”
“너무 죽상으로 있지는 마라. 남들은 평생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자리 아니니.”
“예. 저도 이게 가끔은 꿈인가 싶습니다. 서른 살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꿈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얘. 저기 뉴스 좀 보렴. 베를린이 오늘 완전히 무너졌단다. 후퇴는 끝나긴 했는데 유럽 사람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야.”
“…….”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은 돌조각이 되어 나뒹굴었다. 그 위로 들개를 닮은 괴수 한 무리가 문명을 모욕하듯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부산에 게이트 열리는 순간 저것도 남의 나라 풍경은 아닐 것이었다. 나는 부담감에 인상을 팍 찌푸리고 타는 속을 달래려 냉장고를 열었다.
벌컥벌컥 찬물을 마시고 있으니,
빵-!
하고 들려온 경적 소리에 사래가 들렸다.
“콜록……! 콜록……!”
간신히 속을 달래고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갔다. 경호원들이 웬 새하얀 스포츠카를 둘러싸고서 진땀을 빼고 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마당으로 나가니, 스포츠카에서 누군가 고개를 쏙 빼들고 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오랜만. 잘 지냈어요?”
“……천 사장님?”
“안색이 영 안 좋네. 무슨 일 있나 봐요?”
“그러게 말입니다. 누가 대낮부터 남의 집 앞에서 크락션을 갈기니까 원…….”
천금순 사장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오렌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머리통이 작아서 그런지 선글라스가 지나치게 커 보이는 느낌이다.
게다가 무슨 일인지 한껏 꾸미고 있었다. 평소 후줄근한 양복만 고집하던 인간이 이러니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청중엽 지사한테 못 들었어요? 제주도에서 전경련 회합 있다고 했잖아요.”
“아아, 그랬죠. 재벌들 모여서 친목질 한다고. 그런데 그거 내일 아니었습니까?”
“누가 제주도를 당일치기로 가요! 안 그래요?”
마지막 질문은 나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뒷좌석에 누군가 있었다. 누군가 싶어 자세히 보았다.
피채원이었다.
심지어 양복이 아니라 사복이었다. 졸부같이 보이는 게 딱 봐도 천 사장이 사준 물건이다.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니가 왜 거깄냐?”
“……밥 사주신다고 그래서 나갔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 먹을 거 준다고 따라가지 말랬지.”
“…….”
지하벙커 청와대 끌려가기까지 4일.
갑작스런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