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9 - 헌터들의 세상 (1)
「참이술 : 한승문 국회의원 사퇴? 나랏돈으로 외국 살려주고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소리네요. 기사회한테 얼마나 받아먹었으면.」
「연선웅 : 이분 말 이상하게 하시네!!」
「참이술 : 이상하긴 뭐가요? 당장 충청도 반지하에서 4인 가족이 기생충처럼 사는데, 그걸 버리고 외국에 돈 뿌린 거는 정치인이 할 짓이 아니죠」
「연선웅 : 정치인이 할 짓이 아니다?? 잘먹고 잘살겠다고 700만 명을 죽이는 건 사람이 할짓이 아님! 일제도 잘 먹고 잘살자고 한반도를 침략했는데 그게 옳은 행동이었던가?? 그 교훈을 아는 국민들 70%가 지엄한 양심 앞에 떳떳했는데, 일부 사회 부적응자들이 인터넷에서 꼴값떠는 거 솔직히 꼴보기 싫다!」
「참이술 : 대가리 깨진 인간들 많네. 한번 굶어 보든가.」
「우국충정6 : 단군이래 가장뻔뻔한 개정치인들!! 원옥분각하처럼 선구안들이 죄다나라망했다고 그런다. 하지만 전라도종북좌파출신 양판석과그하수인 한가놈은 귀를틀어막고 기어이나라를 팔아먹었다!!! 당장 검찰군대국민이 발벗고나서 역적들을때려잡고 올바른자유대한 이루어야만대에 부끄럼이 없슬것이다!!!~~」
「adm53 : -틀-」
「혈맹아재 : 책임지고 사퇴하래서 사퇴했는데 문제가 있던가? 애초에 국민투표 결과를 아직까지 트집 잡는 인간들도 참 대단하다. 민주사회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을 못하다니. 옛적에는 이런 사람들을 흔히 반체제인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황ㅤㅅㅡㅋ : 정부가 무상의료, 무료급식, 호남신도시 거주우선권까지 챙겨주는데 아직까지 징징거리는 거 보면 강남아파트 살다가 충청도반지하 들어갔다고 징징거리는 거……. ㅇㅇ」
「엑윽보수 : -홍-」
「냥이노비 : 이렇게 싸우는 것 치곤 현실에서 변변찮은 시위 한번 안 일어났습니다만. ^^ 제 눈에는 사회에 불만 많으신 분들이 인터넷에서 난리 피우는 걸로밖에 안보이네요」
「adm53 : 장전읍에서 장기 팔아먹던 재벌들이 댓글알바 뿌린다는 게 학계 정설」
「만년필 : 이번 선거가 사실 심리적으로 편향된 선거도 맞고, 인서울 대학교 교수가 흙수저 됐다고 반지하에서 연탄 피워 자살한 것도 현실이죠. 하지만 저는 한승문이 옳다고 봅니다. 굳이 장황한 이유를 대기는 싫네요. 사람으로서.」
「참이술 : 그거 보고 대가리 깨졌다고 하는 거임. 생각을 안 하잖아.」
「만년필 : 난독이신가」
「참이술 : 에휴」
* * *
국회의원을 그만두었지만 내가 백수가 된 건 아니었다. 각성제 지원이 성사되며 호주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주로 뤼미에르 쪽에서 군사적인 측면을 담당했고, 내가 행정 쪽을 담당하며 호주 2차 진격을 진행하고 있었다.
“장관. 퀸즐랜드 방어선을 복구했습니다. 하지만 전선에 투입되는 화력이 예전만 못합니다. 7함대 쪽 협조는 언제쯤 진행될 것 같습니까?”
“글쎄요. 미군의 지원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지원이 성사되면 공화당이 대선에서 유리해지는 만큼, 군부에서도 정치권 눈치를 보는 모양이라…….”
“그렇다면 각성제 초동물량 7만 개를 신속히 보급하지요. 확률적으로 A급 염동술사 10명만 각성해도 상황이 굉장히 편해집니다.”
“그렇다고 신규 각성자들이 바로 전장에 투입될 수야 없는 노릇인데…… 기사회 쪽 교육을 거치도록 하죠? 아예 나이트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수도…….”
“……그거 괜찮군요!”
“기사회에 기사들이 많아지겠네요.”
우리는 오히려 예전보다 조금 더 바빠진 느낌조차 없지 않았다. 이게 다 관련 국가들이 반쯤 손을 놓아서 그렇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대선정국 들어가서 여야가 전면전을 시작했고, 호주도 군부와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파워게임을 시작했다.
온갖 깽판의 원흉이었던 중국은 입을 싹 씻고 국제사회에서 잠수를 타고 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마저도 각성제 지원에 대한 반발에 부딪혀 추가적인 조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가 정의를 가로막는군요…….”
뤼미에르는 매일 저녁마다 내게 한탄을 쏟아냈다. 그녀는 수저를 내팽개치고서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동남아시아가 보급을 왜 끊은 거죠? 중국도 가만히 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나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동남아시아 쪽 치안은 한국 PMC가 담당하지만, 정치권들 호위는 주로 미국 PMC가 담당합니다. 말이 호위지 사실상 암살이나 숙청도 병행하지요. 그런데 미국 PMC는 민주당 편이고, 민주당은 호주가 망해야 이득을 봅니다.”
“……하여튼 정치인들이란.”
“……!”
1차 전쟁은 그야말로 인류의 총력전이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파죽지세로 전선을 밀고 나갔다. 거대 군사기업들이 대거 합류하여 보급을 담당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저괴수의 공포가 자본을 멈춰버렸다. 그러니 다들 겉으로는 호주 탈환을 외치기는 해도 섣불리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SNS로는 눈물을 흘려가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아도, 실제로는 국회에서 책상을 뒤집어 엎으며 지원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게 뤼미에르가 머리통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이유였다.
“대체 언제까지 정치인들 장단에 놀아나야 하는지…….”
“…….”
그리고,
나는 그 시점에서 뤼미에르가 내 ‘계획’에 동의해줄 것임을 확신했다.
* * *
“GS 그룹 공동대표.”
“……예?”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생뚱맞은 소리가 들려왔다.
후줄근한 양복 차림의 천금순 사장은 의자에 기대고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이기스 주식 33%. 방위대행사는 21%. 거기에 S급 전속 헌터 대우. 연봉이야 섭섭지 않게 드릴 거고, 부산이랑 제주도에 지하벙커 완비된 자택 2채에, 전용기까지. 콜?”
“…….”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스카우트 제의다. 천금순 사장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다리도 꼬면서 폼을 잡는 모습이 여간 밉상이 아니다. 나는 살풋 웃으며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천 사장님이었으면 콜 했겠습니까?”
“……안 했죠!”
해맑고 씩씩한 대답이었다.
“근데 왜 물어봐요?”
“못 먹는 감 찔러라도 보게…….?”
“그런 말씀은 ‘감’ 기자한테나 하시고요.”
“…….”
가벼운 유머를 던지며 집무실 소파에 앉았다. GS 그룹의 사장실은 오늘도 기괴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으리으리한 장식장 안에 들어 있는 낡아빠진 삼선 슬리퍼. 고급스런 액자 안에 들어 있는 초등학생 크레파스 그림.
그런 것들 따위를 구경하고 있으니, 천사장이 입술을 삐죽거린다.
“뭐…… 일자리 찾으러 오신 거 아니면, 대체 무슨 일로 찾아오셨대요?”
“거, 참.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야 보는 사이인가?”
“돈 필요하시구나?”
“네.”
그녀는 눈을 치켜뜨고서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그 불편한 시선에 정중히 대답했다.
“뭐요.”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기색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핀다. 마인드컨트롤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약을 치기 시작했다.
“천 사장님. 원래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얻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게 가장 훌륭한 투자 아니겠습니까?”
“아닌데요…….”
“저를 도와달라는 게 아닙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700만 난민들. 그들을 돕는 순간 GS 그룹은 수십만 헌터들의 지지를 받는 다국적 기업으로 거듭나는…….”
“자기 혹시 나한테 돈 맡겨놨어요?”
“솔직히 내 덕에 그동안 많이 벌지 않았습니까?”
“그…… 건 그렇긴 한데…….”
“저 덕분에 돈 많이 벌었으면, 그만큼 갚는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 런가?”
“다른 거 다 떠나서. 나한테 투자해서 손해 본 적 있어요? 없어요?”
“없…… 었나?”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쇼.”
그녀는 내 말대로 한참이나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언뜻 맹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저 자그마한 머리통 속에서 어떤 악마 같은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엉뚱한 소리를 툭 내뱉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에요?”
* * *
병석에 누운 홍선아는 꽤나 양호해 보였다.
울긋불긋하던 피부도 그나마 정상으로 돌아왔고, 노인처럼 허옇게 새어버린 백발은 무슨 샴푸를 쓰는지 윤기가 돌았다.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꽃다발에 둘러싸인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편의점 떡볶이에 치즈와 마요네즈 삼각김밥을 비벼먹고 있었다.
“……환자가 그런 거 먹어도 되는 겁니까?”
“어! 의원님!”
TV를 보며 늘어져 있던 그녀는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손을 붙잡고 방방방 흔들었다.
죽다가 살아난 기쁨이 여실히 느껴진다.
“반가워요! 반가워요! 살아서 봐서 다행이다!”
“그렇게 반가우면 떡볶이 한입만 주시던가요.”
“그건 좀…….”
그녀는 커다란 떡볶이 통을 껴안고 나를 째려봤다. 나는 간호사 몰래 반입한 과자세트를 건넨 다음에서야 그녀와 겸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전부리를 걸치며 뉴스를 시청했다. 유튜브의 영향인지 서양 뉴스처럼 아주 자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한승문 장관이 시기적절하게 사퇴하면서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됐어요. 이미 사퇴한 사람한테 사퇴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퇴하래서 사퇴했고, 대국민 사과하라니까 사과도 했어요. 그러면 뭐 특검을 할 거야 검찰조사를 할 거야? 지금 완전히 외통수거든요?」
「맞습니다. 범 야권연대의 공통적인 전략이 한승문 때리기였는데, 진짜 맞을 만큼 맞다가 홀랑 도망치니까 죄다 닭 쫓던 개가 됐어요.」
입안 가득히 감자칩을 우겨넣고 우물거리던 홍선아가 내게 말했다.
“국회의원 사퇴하셨다면서요?”
“아,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정치 그만두시는 건가……?”
“아직 WPO 평의원이긴 한데. 마침 그 이야기하러 왔으니까 잠깐 들어보시죠.”
홍선아의 웃는 얼굴이 살짝 굳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헌터협회 협회장. 때려치우실 거죠?”
“네.”
“예상했습니다.”
이야기는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어차피 서로 알만큼 아는 사이였으니 대화가 편했다.
“일단 정부에서는 지난 사태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훈장감이었으니까요. 게다가 홍선아 씨가 핵폭탄을 막았다는 게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 혹시 나중에 국정원 요원이, 저보고 너무 강해졌다면서 빵야빵야 하는 건 아니죠?”
“솔직히 골치가 아픈 건 사실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그렇게 막장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아닙니다. 그리고 홍선아 씨는 저랑 긴밀한 사이 아닙니까. 어디 공무원이 이상한 소리하면 바로 연락 하십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근데 저한테 이상한 소리 가장 많이 하는 공무원은-”
“아무튼.”
나도 이번 사태를 겪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국적에 따라 목숨의 가치를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두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정치가 항상 해답이 되는 건 아니더군요.”
“…….”
“말이 정치인이지 우리는 결국 선거 이기려고 발악하는 인간들입니다. 집단 이기주의의 화신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자선사업을 할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속내를 터놓았다.
그녀는 파란 눈동자로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니까……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합니다.”
“…….”
“지금은 과도기 아닙니까.”
세상이 격변하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상의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가 구성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변화를 억누르고 통제하려고 했지만, 이미 헌터가 핵폭탄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질서가 선거철만 되면 도덕과 이성을 상실하고 미쳐 날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바뀌어야 했다.
“마침 미국은 선거철이라 맛이 갔고,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러시아는 냉전 중이고, 유럽을 지배하는 건 헌터들이죠.
“…….”
“WPO. 우리가 장악하는 건 어떻습니까?”
“……우리라면?”
“우리 헌터들 말입니다.”
“……우리, 헌터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