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94화 (194/296)

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9)

원옥분의 정치공학은 아주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도미노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사전준비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 사회의 부실함을 알았고, 가장 핵심적인 곳에 바늘 하나를 꽂은 것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최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암흑기에 빠져 있던 신수광이, 다시 정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수도권 시민들이 1천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제 딸을 포함한 수많은 새싹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1천만 수도권 난민들이 빈곤과 추위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호주에 각성제를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배신에 대한 진실을 숨기기까지 했습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세상 어느 정부가 가족과 터전을 잃은 국민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내는 것입니까?]

[10년간 광주를 지킨 호남의 맹주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전라도에 신도시가 다섯 개 건설되고 있습니다. GS 헌터자본과 야합한 한승문이 초상사회를 장악했습니다. 헌터들 사냥터로 써야 한다고 서울탈환을 미루고, 이제는 자기가 국제기구 대장이 되었다면서 외국에 각성제를 뿌려대기까지 합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신수광의 기자회견은 또 다시 조회수 1천만을 돌파했다. 이로써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포퓰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빈곤층을 주요 지지층으로 둔 국민당 내부 신수광 계열은 한승문계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탈당론, 신당창당론, 한승문 출당론까지. 온갖 카드를 내밀며 공세를 가했다.

그리고, 장전읍 장기매매 사태에 연루되어 정부에게 찍소리도 못하던 사회지도층이 이에 호응했다. 제주도지사 청중엽을 위시한 재계가 칼을 뽑은 것이다.

그 칼이 바로 언론이었다.

[한승문, 노아 뤼미에르와 내연 관계!]

[초상관리부 관저 지하에 마석 200톤 존재!]

[미국이 한승문에게 시민권을 제시했다.]

물론 GS그룹과 3대 길드를 위시한 마석경제 카르텔이 존재했기에 일방적인 공세에 휘말리는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지상파와 종편은 거의 보도통제에 가까울 정도로 친정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유튜브, 팟캐스트와 인터넷 신문, 그리고 SNS와 각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기획 루머는 들불처럼 번져나가 분노를 충동질했다.

국민이 분열되었고, 국민투표 날짜가 잡힘과 동시에 여론조사는 붉게 물들었다.

[각성제 해외지원, 반대 73.9%]

[여론조사 결과, 사실상 반대 80% 이상!]

[반대 75%. 정부가 항복하다!]

어차피 통계라는 건 어떻게 조사하느냐에 따라 합법적인 선에서 마음대로 조작 가능한 것이다. 실제 반대는 60% 내외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정부를 주저앉히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양판석과 한승문은 반격의 준비를 끝냈다.

검찰이 캐비닛 속에서 시퍼런 칼날을 꺼내 들었고, 천금순 사장의 계략이 다시금 수많은 기업가들을 넥타이에 매달을 준비가 되었으며, 피채원이 발로 뛰어 수집한 수많은 정보들이 언론에 터져나갈 준비가 끝났다.

그렇게 공권력으로 적들을 개박살낸 이후에 정치인들이 점잔을 떨면서 철저한 명분론과 반박자료를 발표할 생각이었다. 토론회와 공청회도 대대적으로 연출하고 말이다. 그게 집권세력만이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핵폭탄을 쏘아 올리는 것이 한발 빨랐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어느 새벽에, 소름끼치도록 밝은 섬광이 겨울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 * *

미국이 어째서 1차 핵폭격을 예고도 없이 가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미 국방부에서는 한국의 정치적 소요사태가 장기화되는 바람에 대응이 늦어지고 있으니, 바람직한 논의가 이뤄지기 이전에 응급처치를 위해 긴급적인 군사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그 덕에 퀸즐랜드 방어선이 복구되었고, 타운스빌의 70만 난민들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괴수의 주요 플랜트들이 붕괴되었다. 복구되는 것은 순식간이겠이지만 말이다.

거기에 미국은 차르봄바를 능가하는 수소폭탄을 개발했다며, 친환경 핵무기의 상대적 안전성을 호언장담했다. 어차피 핵무기는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들던 것이었기에 그리 이상한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버섯구름이 피어오른 곳은 총 32군데였고, 그중에는 앨리스 스프링스라는 사막 한가운데의 대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대변인과 CIA 내부의 고발자가 괴수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주장하던 곳이다.

그곳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그 어떤 언론도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

이게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아무도 판단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형 핵무기 32개가 지상에 터진 것은 유래가 없던 일이다. 게다가 그 방사능이 괴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미지수였다.

역사상 유래 없을 정도로 미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작금의 사태란 꼬일 대로 꼬인 기괴한 정치역학이 빚어낸 혼란기였다.

그 누구도 이 시대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 어떤 초인도 이 광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는 없었다. 욕망과 재앙으로 점철된 세상 앞에서 모든 인간은 한없이 나약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거대한 핵폭발의 충격이,

지하를 누비던 괴물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 * *

“이게 대체 어떻게…….”

새벽 3시 즈음에 핵폭격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양말도 제대로 못 신고 양판석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사태에 대처하다 보니 날이 밝았다.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화장실에서 구토를 3번이나 했다. 그간의 고난에 대한 후유증이 몰려오는 것이겠지만, 최근의 6시간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나는 침대에 쓰러진 와중에도 나랏일을 논했다.

“……핵폭발에 휘말린 헌터는 없지? 뤼미에르랑 설진운이 쪽은 괜찮대? 작전범위랑 낙진범위가 겹친다던데…….”

“아까 확인하셨잖아요…….”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확인해 보라 그래. 이 미친 새끼들이 아닌 밤중에 핵폭탄을 쏘고 지랄이야. 하아, 진짜…….”

“일단 죽부터 드세요…….”

피채원이 부산 시내에서 본죽을 사왔다. 소고기 야채죽은 아니고 그냥 버섯죽이다. 다데기 좀 섞어 달라고 부탁하려다가 그럴 기운도 없어서 그냥 입에 넣었다.

피채원은 적갈색 플라스틱 숟가락을 후후 불어 내 입에 넣었다. 서른 살 다 되고 긴장 때문에 쓰러져서 병수발 받는 게 조금 민망한 일이기는 했지만, 핵폭탄 32개의 충격은 사람 이성을 잠시 아득히 날려 버리는 데 충분했다.

“야……. 감 기자 좀 불러라. 혹시 모르니까 지윤이 대기시키라고…….”

“새벽에 침착하게 대응 잘하셨잖아요. 그러니 일단 좀 주무세요.”

나는 지하벙커 숙직실 침대에 누워 스스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중얼거렸고, 피채원은 버섯죽을 퍼먹이며 내 입을 막았다. 그리고 반강제로 재우려 들었다.

“이미 초동대처 잘하셨고, 이제는 더 이상 하실 게 없어요. 핵전쟁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핵폭발에 휘말린 사람도 없고요.”

“……그래.”

“대통령님도 지금 눈 붙이셨다네요. 국군 장성들도 모두 소집됐고요. 정 불안하시면 제가 감시할 테니 그만 주무세요. 지금 의원님 몸 상태가 겉보기에도 말이 아니라서 그래요…….”

녀석의 열정적인 권유에 서서히 수마가 찾아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점점 의식이 멀어져 간다.

핵폭격의 충격에서 벗어나 드디어 잠들 수 있겠거니 싶을 무렵.

숙직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뛰쳐 들어왔다.

“장관님!”

“…….”

“사, 사, 상황실로……! 상황실로 오셔야겠습니다!”

나는 국정원 양복쟁이의 호출에 소방관처럼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상황실은 그렇게 어수선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했다. 상황실 중앙에는 양판석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멍하니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들에 눈에 담긴 것은 두려움이었다. 정체 모를 공포가 이 공간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서서히 내게 전염됐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다들 왜 그래요?”

“……한 의원님.”

“아니 사람 무섭게 왜들 그러십니까……?”

김두식 사령관이 조용히 모니터를 가리켰다.

상황실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는 어떤 위성사진을 띄우고 있었다.

그곳은 뱀 모양으로 꿈틀대는 사막이었다.

* * *

시작은 지진이었다.

“……어라?”

마트 찬장이 덜컹거리며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온갖 음식물들이 뒤섞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리창에 사람들이 맞아 죽었다.

대지진이 끝났다.

도심의 길거리는 빌딩에서 떨어진 유리조각들과 넘어진 테이블, 그리고 간판에 깔린 시체로 가득했다. 다행히도 이 시국에 차량을 모는 이들은 없어서 교통사고는 거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기! 여기 좀 들어봐요! 사람이 깔렸어!”

“아, 아아……! 아흐아아아악 -! 조니! 조니! 정신 좀 차려보렴!”

도시에 비명과 공포가 퍼졌다. 방금 전까지 그들과 대화하던 사람이 시체로 변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재앙이 찾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방금의 지진은 재앙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고층 빌딩이 조용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끼이이익-

철근이 비틀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대개의 재난영화에서 나는 것보다 훨씬 조용했다. 때문에 누군가는 머리 위로 빌딩이 엎어지는 순간에도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음?”

주변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행인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거대한 고층건물이 이미 그를 향해 쓰러지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웅 -!

빌딩이 주택가를 덮쳤다. 흙먼지가 가스폭탄처럼 터져나갔다. 인근 수십 킬로미터를 공포에 빠뜨릴만한 충격파였다.

고층 빌딩이 무너지며 지진과 유사한 효과를 냈다. 핵폭발의 자극으로 지표면 인근까지 올라온 괴수가 명확한 목표를 포착하는 순간이었다.

“네! 갑작스레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창문 깨버려! 소방차로 들이받아! 곧장 진입한다!”

“뭐? 병원이 가득 차요? 부상자는 한가득인데 그러면 어디로 보내란 말입니까!”

무너진 빌딩의 인근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생방송 뉴스를 촬영하러 온 기자들, 무너진 빌딩 내부로 들어가려는 소방관들, 그리고 길거리에 즐비한 부상자들을 호송하려는 의사들.

도시는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모두가 이 끔찍한 참사에 집중했다. 전선과 멀리 떨어진 후방이었던지라 더욱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소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도시가 모래에 뒤덮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

사막은 끔찍한 정적에 휩싸였고, 모래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시들었다.

고층 빌딩의 옥상이 사막에 빼꼼 튀어나왔지만, 그마저도 무언가에 의해 모래 속으로 쑤욱 빠져들었다.

사막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고,

모래바람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유사(流沙)를 헤엄치는 거대한 뱀의 형상이 사막의 표면에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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