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8)
「진돗개 : 50만이면 대한민국 국민의 1% 이상이고, 50만이면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 숫자보다 많습니다. 그런 숫자의 각성제를 외국에 뿌린다고요? 저는 반대입니다.」
「1윈月 : 이번 헌터연합이 30만 언저리 아님? 각국에서 엑기스만 뽑아 보내도 호주를 못 쓸어버렸는데 50만 개 지원은 합리적이라고 봄……. ㅇㅇ 글고 대한민국 헌터 숫자는 공표된 적 없는디 님이 어케 알음?」
「진돗개 : 저 GS 방위대행사 실무진입니다. 50만 개는 너무 갔어요. 한승문이 미쳤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쇼하는 겁니다. 차라리 국내에 뿌렸지 저걸 외국에 뿌리는 건 제조비용이나 기대비용이나 따져보면 나라 말아먹는 짓입니다.」
「밍구스 : 나도 헌터되고 싶은데 그걸 외국에 뿌리네. 그것도 우리 세금으로 만든 걸 공짜로. 그러면 나도 이제부터 세금 안내면 되겠다」
「ALAM : 세금이 얼마나 들건 700만의 목숨값보다는 싸죠.」
「싸지방32 : 씹좆승문 개2새끼 저거 영웅놀이 하려고 세금을 허공에 터뜨리네. 지가 사람 못 구해놓고 그 죄책감을 세금으로 풀면 시1발련이 진짜 개머리판으로 대가리 깨버릴까」
「우국충정6 : 댓글여론조작조작으로 불법적가짜로튕겨져나온 전라도양판석정권!! 엉터리로정권잡고 2년이훨신넘도록 자유대한민국과참스러운국민들을위하여 참잘했다고자인하는것이 쌀한톨만큼이라도 있능감!? 단언컨대 티끌만큼도없구나!!!!1 이제그만 사기꾼북괴앞잡이 한승문을데리고 빨랑내려오는것만이 개버러지만도못한 니놈들목숨만이라도보전할 수있는 최선에길이다.」
「우정욱 : 양심 없는 권력은 사람을 해칩니다. 우리 국민들이 길게 봅시다.」
「MPA : 이보쇼 양심은 있는데 돈이 없으면 굶어 뒈져요」
* * *
“나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지?”
“…….”
“오십만 개는 무슨……. 오십만이 누구네 개새끼 이름이야?”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내가 핸드폰은 못 써도 계산기는 두드릴 줄 알어.”
원옥분의 계산이 숫자에 관한 것인지 정치공학에 대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원옥분이 유재경을 찾아왔다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확실한 판단이 섰다는 소리였다.
지난 대선에서 유재경 총리는 결정적인 타이밍에 원옥분을 배신했으니까. 그리고 배신자에게 동업을 제의하는 건 정말 확실한 기회가 왔을때만 할 수 있는 짓이었으니까.
유재경은 갑작스레 찾아온 원옥분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린드버그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긴장을 숨기고 차갑게 응대했다.
“……대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안사람이랑 딸내미가 방에 있습니다. 그리 오래 대접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사정해도 불청객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집주인이 긴장한 것을 눈치채고 피식 비웃기까지 했다.
원옥분은 그의 앞에서 태연하게 빨간 뚜껑 소주를 벌컥거렸다. 살짝 적폐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 검사장 시절 가락이 드러나는 것 같다.
“크으…….”
“……!”
유재경이 원옥분 술 마시는 폼만 봐도 흠칫 겁먹고 있으니, 원옥분이 거침없이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좋은 집 사네?”
원옥분이 유재경의 집을 둘러보았다.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기나긴 공직생활에서 선물 받은 온갖 명품 인테리어가 가득했다.
그리고 조금 기이할 정도로 많은 가족사진이 존재했다. 벽에도, 식탁에도, 화장대에도, 심지어 냉장고 문짝에도 가족사진이 붙어 있다.
그 시점에서 원옥분은 유재경을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할지 판단내렸다.
“가족들이랑 언제까지 이리 지낼 수 있을 것 같나?”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한승문이가 대통령되면 늙은 놈들을 가만히 놔두겠느냐. 이 말이야.”
유재경이 반발하기 전에 원옥분이 잽싸게 말을 이었다.
간교한 말이 대쪽 같은 목소리로 이어졌다.
“일단 자네랑 나는 감방 들어가.”
“……오랜만에 오셔서 지금 무슨 악담을-!”
“자네가 경제통 국무총리지? 한승문이가 뭘 믿고 50만 각성제를 지르겠나? 어차피 각성제 원가랑 제조공정은 기밀이야. 각성제 때문에 경제 말아먹고서 그 책임을 자네한테 돌리는 게 가능한 상황이라고.”
그럴 법한 상황이지만 증거가 없다.
하지만 원옥분은 즉석에서 증거를 만들었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야. 검찰 내부에서 나한테 등을 돌리고 있어.”
“…….”
“양판석이 사위. 그리고 한승문이 국회의원 당선에 개입한 간경수 검사. 그놈이 대검 이능수사부를 장악하고서 검찰 내부에서 반동을 일으키고 있지. 이게 뭘 의미하겠나?”
양판석의 사위가 대검찰청 내부에서 원옥분에게 반항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대검찰청 이능수사부가 초상관리부와 긴밀히 협조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게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동이냐는 해석에 따라 갈리는 문제였다.
원옥분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 정권이 각을 잘 잡고. 자네랑 나를 조지고 있다고. 이해가 안 되나?”
“…….”
“양판석이가 한승문이 대통령 만들려고 환장을 한 거야.”
원옥분은 소주를 벌컥이며 솔직함을 연출했다.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이런 소리를 하겠냐는 메시지를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유재경도 공직생활에 도가 튼 인물인지라 그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저랑 한승문 장관을 싸움 붙이셔도 그리 큰 재미는 못 보실 겁니다.”
“내가 이이제이를 하는 걸로 보이나?”
“아닙니까?”
원옥분이 피식 웃었다.
가소롭다는 듯한 비웃음이었다.
“이대로 각성제 지원이 성사되면 한승문이는 그대로 국제사회에서 영웅 되는 거야. 세계초인기구인지 뭔지에서도 떠받들어 주겠지. 그러면 양판석이 개헌을 시도할 거라고.”
“…….”
“아, 애초에 노동인구 감소 문제는 예전부터 거론되던 거 아니야. 조만간 노동법상 성인을 15세로 낮추는 김에, 헌터들 정치 참여시킨답시고 국회의원 피선거권도 연령대 낮추라는 목소리도 크지 않던가? 그거 말한 사람이 누구야. 한승문이 왼팔 이호정이지?”
원옥분은 진심으로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작게 삿대질했다.
유재경의 동공이 커졌다.
“이 시점에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제한, 30세로 낮춰 버리면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나?”
“…….”
“양판석이 입장도 생각해 보자고. 이 지랄 맞은 시국에 자네랑 나를 뭘 믿고 대통령을 시켜? 감방 갈 일 있어? 그래서 일찌감치 작업치는 것 아니야. 이 사람아.”
유재경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의 마음까지 차갑게 굳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저한테 뭘 바라시는 겁니까.”
“국민들은 지금 각성제 풀면 경제 망한다는 사실을 몰라.”
“……경제가 망하는 게 아닙니다. 경제회복이 물 건너가는 거지요.”
“우리나라 이익을 포기하고 생판 남에 나라에 돈을 뿌린다? 이거 고위공직자 의무 위반이야. 탄핵감이라고. 그런데 기밀이랍시고 그걸 숨기고 있어. 대통령이 자기 오른팔 승계하려고 말이야.”
원옥분이 제안했다.
유재경이 들었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사람이 자네뿐이네. 나는 그래서 온 거야.”
“…….”
“각성제를 뿌릴 때 뿌리더라도 이렇게 뿌리면 안 돼. 국민들은 지금 얼마나 큰 돈이 외국으로 나가는지를 모르고 있잖나.”
칼자국이 지나는 눈매 사이로 흐린 눈빛이 번뜩였다.
애국심인지 노욕인지 모를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국민투표 부쳐.”
“……!”
“젊은 놈이 양심 챙긴다고 나라 팔아먹는 꼴은 내가 못 보네. 이건 한때나마 국가원수 대리였던 사람이 하는 말이야.”
유재경 국무총리는 한참이나 미동도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는 인생에서 가장 복잡한 계산을 풀어내는 중이었다.
해답이 나왔다.
“……저는 대행님 말씀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
“저와 한승문 장관을 싸움 붙이고서, 다음 대선을 노리시려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군요.”
그러나 유재경에게도 신념이라는 게 있었다.
그것이 신념의 탈을 쓴 야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신념은 유재경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래도, 경제회복이 눈앞에 있는데, 국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가게 둘 수는 없겠습니다.”
“…….하!”
“저는 각성제 지원에 쓰이는 자금량에 대해서만 발표하겠습니다. 각성제 지원이 성사되면 경제회복이 물 건너간다는 것. 딱 거기까지만 국민들에게 알리겠습니다. 그걸로 무슨 정치를 하시든 알아서 하십시오.”
원옥분이 유재경을 비웃었다.
배신자에게 보내는 냉소였다.
“국민투표 부치자고 선전포고하는 것은 내가 해라?”
“……저는 경제학자로서 최소한의 본분만 하는 겁니다. 어떻게 곡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유재경 총리는 무표정하게 손짓했다. 축객령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고 집에서 나가는 원옥분의 발걸음은 참으로 홀가분했다.
그녀는 리무진 뒷좌석에서 희희낙락 미소 지었다.
안면마비 장애인이 지어보이는 반쪽짜리 웃음이었다.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거지.”
원옥분을 움직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하는 애국심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권좌에 앉으려는 노욕인가.
유재경을 움직이는 것은 국부유출을 막으려는 경제학자로서의 직업정신인가, 혹은 대통령의 자리에 대한 야망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본인들마저도 말이다.
* *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참담하고 죄송스런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유재경 국무총리가 대통령과의 논의 없이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그는 1급 기밀로 지켜지던 각성제의 제조원가와 현재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대한민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전쟁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경제위기의 완전한 극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만약 각성제 지원이 성사될 시 경제회복에는 실패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라가 뒤집혔다.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 나왔다.
국민들은 두 가지에 대해 분노했다.
첫째는 각성제의 제조원가가 시민들에게 판매하던 가격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각성제 50만개의 대가가 대한민국 경제회복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정부가 국민에게 숨겼다는 것이었다.
그때 원옥분 전북지사가 나섰다.
[각성제 해외지원은 WPO 평의회의 대한민국 대표 자격으로 있는 한승문 전 장관의 의견이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즉, 이번 지원선언은 정부가 명확한 의견을 밝힌 바 없는 비공식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제 72조에 의거하여 대통령은 외교, 국방, 등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해외자금지원에 대한 국민여론이 지극히 분열되고 있는 바, 저 원옥분은 대통령에게 헌정 사상 7번째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겠습니다.]
그녀의 선언은 3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첫째, 한승문 장관과 대한민국 정부를 분리했다. 한승문의 선언에 대한 힘을 비공식적인 것으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둘째. 전북지사가 중앙정부 정책에 대해 들이받았다. 나는 대통령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그리고 셋째. 단순히 해외지원에 대해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라는 묘수를 던졌다. 지금이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고, 대한민국에서 ‘선거’라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양판석 행정부를 박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