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92화 (192/296)

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7)

노아 뤼미에르의 하루하루는 전쟁이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녀는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냈다.

유럽에서도 늘상 하던 일이라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절대로 편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흐으윽…….”

쪽잠에서 깨어난 뤼미에르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풀기도 전에 무전기를 잡아야 했다.

무전기가 그녀에게 말한다.

-타운스빌 자경대가 무너졌습니다! 괴수들이 밀려오고 있어요! 리치몬드 C구역 개미떼 스팟. 추정치 약 7만 개체. 시드니 방면으로 접근 중. 다, 다니엘 웰링턴이 협곡에 고립됐습니다! 여기는 르윈 슈미트체바. 호라이즌 작전 성공. 본부로 귀환합니다. 캠프 와이루나가 붕괴했습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뤼미에르가 황급히 대답했다.

거의 발작적인 수준의 대답이었다.

“……퀸즐랜드 방어선이 이미 무너졌습니다. 타운스빌까지 무너지면 북동부는 완전히 끝장입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버데킨 강을 지켜내십시오. 저도 지금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뤼미에르는 문득 떠올리는 것이다.

여기가 버데킨 강이다.

“……어라?”

무전기는 꺼져 있었다.

* * *

노아 뤼미에르는 한참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천막 입구를 들췄다.

“오? 모처럼 일찍 깨셨군. 일어났으면 빵부터 먹으쇼.”

“……다니엘?”

“무전기는 왜 부여잡고 계시나? 다 부서진 물건을.”

천막에 들어온 것은 수염이 덥수룩한 서양인이었다. 그는 두꺼운 방전용 고무장갑을 낀 채로 뤼미에르의 손아귀에서 무전기를 뺏었다.

그리고 무전기가 있던 손아귀에 바게트빵을 쏘옥 끼웠다.

그러나 뤼미에르는 미동도 없이 허공을 쳐다본다. 그렇게 좋아하던 바게트는 입에 대지도 않는 모습에, 다니엘 웰링턴이 힐끔 눈을 흘긴다.

“……이 인간이 정신이 나갔나?”

그제야 뤼미에르가 날선 대답을 돌려준다.

“……프랑스 사람이라고 바게트를 좋아할 줄 아는 건 전형적인 인종차별입니다.”

“그러면 영국사람 주던가.”

“꺼지세요.”

뤼미에르가 바게트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러나저러나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빵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으음……. 영국 놈들 음식보단 괜찮네요.”

“이 아줌마가 아침부터 시비를 거네? 그 딱딱한 빵쪼가리가 그렇게 맛있수? 나이 먹은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사과파이에 청어 대가리 박은 것보다는 맛있습니다.”

“젠장. 졌군,”

뤼미에르는 순식간에 바게트빵 하나를 가볍게 해치웠다.

그리고 입에 묻은 빵부스러기를 할짝거리며 다니엘에게 질문했다.

“웰링턴. 전황은 어떻습니까?”

“지랄맞지. 여전히.”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지랄맞죠?”

“버데킨 강을 괴수 시체로 가득 메웠어. 그런데도 지평선 너머로 화이트 울프 무리가 몰려오는 중이야. 일단 르윈이랑 그윈 남매가 하늘로 올라가서 폭격하고는 있는데.......”

“피 냄새를 맡았군요. 시체 태우세요.”

“그러면 부산물은 어떡하고? 가뜩이나 돈 없어서 총대장이란 인간이 바게트나 처먹고 있는데 말이야.”

“젠장. 그게 문제군요.”

희망의 상징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는 다시 생지옥으로 돌아왔다. 국제연합이 호주에서 완전히 철수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호주가 인조괴수를 만들었다든가, 미국이 생체실험을 병행했다든가, 아니면 이게 다 중국의 거짓부렁이라던가.

물론 그런 것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장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다니엘. 퀸즐랜드 전역 보급망 상태는 어떻습니까?”

“동남아에서 지원을 끊었수. 남은 건 타운스빌에 있는 것들뿐이야.”

“......피난민들 사이에서 아사자가 나오기 시작하겠군요.”

“호주 방위군은 좋아하겠지. 쓸모없는 군식구가 줄어드니까.”

“웰링턴! 입!”

“미안한데 내 주둥이는 아무도 못 막아. 그리고 내가 틀린 소리 했나? 군대가 피난민들을 그렇게 아꼈으면 지금쯤 시드니에서 기어 나와서 타운스빌을 방어했겠지. 그런데 지금 공군대장이랑 해군대장이 서로 정권 잡고 싶어서 재벌들한테 가랑이 벌려주는 게 현실 아닌가?”

기사회가 당면한 현실은 국제사회의 현안보다는 조금 더 우습고 비참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도 익숙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일단 브리즈번 쪽 병력을 빼죠.”

“허? 욕먹을 짓만 골라서 하는군.”

“군대와 자경단의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브리즈번은 비교적 안전해요. 하지만 이대로 타운스빌이 무너지면 북동부 해안은 초토화됩니다.”

“나도 그건 압니다. 알아. 그런데 브리즈번은 언론사랑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구석 아니요. 거기서 병력을 빼면 온갖 욕을 들어 처먹을 게 뻔한데두?”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아, 시발...... 그렇긴 한데.”

“일단 중요한 곳 먼저 지키고 생각합시다. 전략적인 판단은 커먼 센스에 어긋나는 경우도 왕왕 있지 않습니까? 정 욕먹는 게 싫으면 집에 가시던가요.”

“개소리 마쇼.”

국경없는 기사회의 작전회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세계인의 영웅 취급을 받는 것에 비해 그 수준이 저렴했다. 얼척 없는 헛소리와 욕설이 오가는 회의장이다.

비록 르윈도, 미하일도, 이스마엘도 없이 뤼미에르와 다니엘만 있었지만, 그 저렴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들도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웃음이 그치자 침묵이 시작됐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현실을 자각했다.

“.......”

“.......”

근성으로 버티고 있다.

그게 현실이었다.

“......아도힐 쪽 친구들은 무사히 돌아갔습니까?”

“새벽 비행기 타고 돌아갔수.”

“잘됐군요.”

“잘되기는, 시벌거.......”

기사회의 주요 병력들이 하나둘 귀환하고 있었다. 유럽의 시민들이 이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세금을 붓는 취미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 대륙보다 거대한 땅이고, 대부분이 몬스터랜드로 지정된 생지옥이다. 그나마 이렇게 버티는게 가능한 것은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다.

이 거대한 땅에 사람은 700만 명뿐이다. 인간이 거주하는 도시는 20개도 되지 못했다. 나머지는 전부 무너졌다.

즉, 도시 20개만 어찌저찌 지키면 방어가 가능한 곳이 호주다. 그러나 애초에 호주가 이렇게 된 것은 군대가 그렇게 방어만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안심하고 방어하는 동안 괴수들은 이 땅에서 생육했다. 여왕이 협곡에 들어앉아 수많은 괴수를 토해냈고, 그 괴수들이 번식하며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이 지경이 된 거다.

괴수들은 이제 사막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는 괴물이 되었고, 공습과 화기마저도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이제는 방어마저도 힘들 지경이다.

결국 근본적인 대책은 괴수를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그들의 생산력보다 많은 화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조건이 충족됐었다.

그런데 정치꾼들이 다 말아먹었다.

“하여튼 정치가 문제요, 정치가.......”

“.......”

“중국에서 갑자기 지랄을 하더니 미국 대기업들이 호응을 해버리고, 그러다가 댁 친구도 홀랑 돌아가 버리지 않았수?”

방어는 가능하지만 공격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기사회 홀로 이 넓은 땅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패배가 확정되었다.

겨우겨우 버티는 날이 지나갈수록 괴수는 더 강해지고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무너지는 날이 생길 것이다. 그게 인류가 패배하는 순간이다.

다니엘 웰링턴이 현실을 짚었다.

“......외부의 개입이 필수적이요. 이러다가는 모두가 개죽음이니까. 대체 언제까지 버텨야 하지? 괴수들이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게이트 너머로 돌아갈 때까지?”

“.......”

“뤼미에르, 슬슬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요.”

결단이 필요했다.

그도 아니면 기적이 필요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무언가가 그들에게 찾아왔다.

“노아! 다니엘! TV 좀 틀어보세요!”

“뭐야?”

“아, 빨리!”

르윈 슈미트체바가 천막에 날아들었다. 하얀머리의 염동술사는 다급히 리모콘을 찾았다.

뤼미에르가 침대맡에 있던 리모콘을 쥐었다. 그리고 TV를 틀었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과 미국이 대규모 핵폭격을 결정했습니다. 현재 중국 전략화전군이 남중국해에 배치되었고, 미 해군 7함대가 괌에서 소폭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약 400개의 핵탄두가 호주 전역에 투사될 것으로 보이며, 미 국방부는 ICBM의 투입 여부마저도 고려 중에 있다는 뜻을.......]

* * *

노아 뤼미에르는 유럽의 전쟁영웅인 동시에 프랑스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의 정무적 감각은 일반인에 비해 굉장히 탁월했다.

한승문처럼 기상천외한 묘책이 슬슬 튀어나오는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아직 타협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건 호주 정부와 전혀 합의되지 않은 사안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싸움을 멈췄다.

그게 호주 핵폭격이 의미하는 바였다.

미국은 핵폭격을 통해 호주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은폐할 수 있으며, 중국은 미국이 호주를 병참기지로 만드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누가 방사능 낙진 위에 군사기지를 짓겠는가.

이제 중국은 동남아시아 패권을 지키는데 성공했고, 미국 정부는 책임을 민주당에게 떠넘기며 대선을 진행하면 된다.

이렇듯, 이번 대규모 군사행동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해타산 속에 호주 국민들의 안전은 고려되지 않았다.

“방사능의 부작용부터가 가장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둘째치더라도, 괴수들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이에요. 당장 무차별적인 공습 때문에 괴수들이 땅밑으로 내려갔고, 그러다가 이 사달이 난 거 아닙니까.”

뤼미에르는 이렇게 주장하며 기사회를 안심시켰다.

“호주 정부가 절대 핵폭격에 찬성할 리가 없습니다. 당장 국민들부터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어요. 이대로 핵폭격을 수용한다면 총리부터가 길거리로 끌련나올 겁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그날 새벽, 호주 총리가 영국으로 도망쳤다.

정확히는 영연방 소속으로서 국제회의에 참석한 것이었지만. 회의에 참석하는데 일가친척과 전재산을 동반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호주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포했다.

핵폭격을 환영한다고.

* * *

“뤼미에르 본부장님. 총리께서 속히 귀환하라는 부탁을 남기셨습니다.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하더군요.”

“.......”

“핵폭탄이 투하되면 지금처럼 싸울 수는 없습니다. 헌터들을 낙진에 몰아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유럽의 국민들이 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현실은 그보다 험악했다. 뤼미에르의 개인적인 욕심이 유럽을 국제적 호구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유럽이 멸망하지 않았던 것도 그녀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그들을 지켰기 때문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이란 영웅의 속마음에 너그럽지 않은 법이다.

이에 유럽이 그녀에게 요구했다.

“......떠나셔야 합니다.”

“.......”

기사회가 호주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것이 그녀를 추종하는 이들이 바라는 것이었다.

물론 핵폭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괴수들이 방사능에 죽는 생물은 아니다. 지하 수 킬로미터 아래에 있는 괴수가 핵폭탄에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은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인 대지에서 지저괴수와 맞서 싸워야 한다. 애초에 핵폭탄으로 이 거대한 대륙을 불태우는 게 가능한지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말했다.

[파리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시위를 주도한 국민전선의 밥티스트 부총재는 기사회를 향해 속히 귀국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한편 미-중 합동군사작전이 성사됨에 따라......]

“......”

물론, 예전의 그녀였다면 결코 꺾이지 않았을 터이다.

그 어떤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소외받는 이들의 곁을 지켰을 것이며, 모두가 외면하는 전장에서 온 힘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라 지도자다. 게인으로서의 선택과 집단으로서의 선택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니 결국 모두를 살릴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고 영웅으로 남을 수도 없었다.

“.......”

노아 뤼미에르는 충혈된 눈으로 TV를 바라보았다. 모든 언론과 정치세력이 호주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게 미국과 중국이 호주를 외면한 결과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차례였다. 자신마저도 호주를 버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이 그녀에게 영웅을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시대가 이에 답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WPO 한승문 부의장이 긴급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핵폭격을 중단하십시오, 각성제 50만 개를 호주에 지원하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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