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88화 (188/296)

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3)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땅밑을 지나는 거대괴수라니.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지하에 있는 거대뱀이 무서워서 괴수들이 도망을 쳤다고? 도저히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만한 의견은 아니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러나 ‘상식’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문득 깨달았다. 이 세상은 이제 상식에 보답하는 세상이 아니다.

나는 여도연에 말에 수긍하기로 했다.

“……그러면 일단 알아보자고. 근거가 뭔데?”

“협곡. 협곡의 구조를 봐봐.”

“야. 채원아. 짐 챙겨라. 다윈 공군기지로 간다. 혹시 모르니까 뤼미에르도 불러.”

그렇게 새벽 4시에 WPO 의장과 부의장이 미국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사막 끝자락의 군사기지에 발을 들였다.

취침하던 장성들과 병사들이 초비상이 걸려 사열했지만, 나는 지체 없이 사령부로 달려가 문짝을 두들겼다.

“위성사진. 위성사진 좀 봅시다.”

“네? 예?”

“나 한승문인데…….”

“아, 아뇨. 그, 사, 상부의 승인이 있어야.”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조 구하겠습니다.”

진짜로 핸드폰을 꺼내자 사령관이 달려와 시스템 접속을 허가했다. 통신병은 커다란 모니터에 위성사진을 띄웠다.

“어어. 그래. 거기. 조금만 더 옆에.”

나는 여도연이 발견한 협곡을 관측했다. 그리고 날짜를 하루씩 전으로 돌렸다.

달칵. 달칵.

통신병이 마우스를 달칵거릴 때마다 사진은 조금씩 변화했다. 그러나 하루씩 과거로 돌아가는 협곡의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2일 전 사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협곡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라?”

“…….”

“잠시만요. 이럴 리가 없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 거대한 협곡은,

불과 하룻밤 만에 생긴 것이었다.

* * *

“……9월 4일에는 없던 협곡이. 9월 5일에 생겼습니다. 멀쩡하던 땅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진 겁니다.”

“…….”

“말마따나 지하에 거대한 괴수라도 지나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집무실에 모인 일행들에게 조사결과를 통보했다. 아직 공식발표는 안 한 상태지만 이것도 시간문제다.

하룻밤 사이에 협곡이 생겼다. 지질학자들의 조사 결과, 지하 깊은 곳에 침식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학자들도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했다.

아마 샌드웜이겠지. 거대 샌드웜.

지저괴수(地底怪獸).

실제로도 여타 샌드웜들로 인한 지반 침식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협곡의 모습을 통해 지하 이동경로를 유추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협곡은 어느 순간 끊겼다.

샌드웜이 보다 더 깊은 곳으로 하강했다고도 하고, 지반성질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도 했다. 하나 분명한 건 놈과의 싸움이 그리 녹록치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에 뤼미에르가 내게 물었다.

“협곡이 끊겼다…… 그렇다면 추적에 실패한 겁니까?”

“아뇨. 인근에 협곡이 더 있더군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협곡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온 대륙에 비슷한 협곡이 있어요. 놈은 이미 수년간 이 땅의 지하를 마음껏 누비고 있었습니다.”

여다솔이 덧붙여 질문했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안 알려진 건가요?”

“글쎄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유럽보다 넓습니다. 반면, 인구는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죠. 게다가 우리는 놈이 사람 사는 곳에 얼씬도 안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만약 놈이 시드니 같은 곳을 지났다면, 수십만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아직 그런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불행한 것은 이제 곧 그런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 *

“추가적인 지진이나 지반붕괴는 없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워낙 땅이 넓고 괴수로 가득해서, 조사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투입할 수 있는 인공위성의 숫자도 한계에 봉착-”

“그러면 마석반응은요?”

“상위괴수가 너무 많아서 탐지기가 먹통입니다. 옵저버나 패스파인더들을 투입해 봐도 지하에 있는 괴수라서 위치를 파악하기가…….”

“지질학자랑 물리학자들은 뭐라고 그럽니까?”

“그나마 그쪽은 가닥을 잡은 모양입니다.”

인공위성과 탐지기가 못한 일을 과학자들이 해냈다. 이래서 사람이 이과를 가야 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협곡과 협곡을 잇고, 그 거리와 시간대를 재서, 이동시간과 높낮이를 추정하고. 마침내 괴수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발생했다.

“……다음 출몰 위치가 미국 사냥터랑 겹친다고?”

“네, 그것도 7대 길드 중 2개가 칼라밀리 일대에 투입됐습니다. 강변, 호수, 사막, 바위산이 위치한 곳이니까요. 괴수들이 다양한 만큼 위험성도 크고, 수집되는 마석과 부산물의 종류도 다양해서 수익성이 높은 곳입니다.”

“길드 수뇌부랑은 접촉했나?”

“……즉각적인 조치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기랄. 내 이럴 줄 알았지.

지저괴수가 아무리 크다고 해봤자 사냥터 면적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괴수에 불과하다. 초대형 PMC들의 관할지역은 대한민국보다 거대했으니까.

심지어 미국의 7대 길드는 다국적기업이다.

아마존, 애플, 구글 같은 초거대 기업들이 돈을 뿌려가며 전 세계 헌터들을 끌어모은 곳이라, 어지간한 소형 국가보다 많은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애초에 헌터들이 희귀한 연예인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사회 계층화될 정도로 많은 한국이 이상한 거다.

아무튼,

그들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지저괴수 때문에, 한반도보다 거대한 사냥터를 놀려둘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 하루라도 사냥이 중단된다면, 거기서 오는 손해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식 치안관은 이를 보며 한탄했다. 평소 냉정한 척은 하지만 그도 결국 김춘식 좋다고 따라다니던 압구정파인 모양이다.

“젠장……! 그냥 공론화 시키고 밀어붙이면 안 되는 겁니까?”

“미국 정부는 이번 전쟁에 정치생명을 걸었고, 민주당은 이번 전쟁을 망치려고 혈안이 됐어요. 미군이 지금처럼 도와주는 건 최대한 조용히 이번 일을 끝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피해가 발생하면 너무 늦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당장 하루에 수십억 달러씩 벌어들이는 개인사업자들한테 음모론 내밀면서 셔터 내리라고 윽박지르는 꼴인데……. 헌터, 기업, 정부가 엮여있는 국제사업이라 잘못 건드리면 정치적으로 역풍을 맞을 수가 있어요.”

“……지금 정치적 역풍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모르는 소리. 정치적으로 역풍이 불면 행정이 마비됩니다. 행정이 마비되면 예산이 굳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어떤 대처도 불가능해집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마음대로 풀리는 게 아니었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따져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괴수가 튀어나와도 저쪽 손해고, 괴수가 안 튀어나와도 저쪽 본전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겨서 대피를 시켰는데 괴수가 안 튀어나온다? 그러면 우리만 욕먹는 거다,

말귀 안 들어먹어서 손해 보는 거면 저쪽 잘못이지, 왜 우리가 욕 먹어가며 그쪽을 챙겨주겠는가.

그러니 욕 안 먹는 선에서 어느 정도의 인정만 베푸는 게 낫다는 것이 내 계산이다.

“아무튼 기다려 보십시오. 이런 건 전문가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쪽 지도부랑 쇼부를 쳐서…….”

“아뇨.”

“……?”

“그럴 시간 없습니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뤼미에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은은하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코트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껏, 한 발자국 늦어서 구하지 못한 사람이 수천만 명입니다. 그 정도 실패했으면 이제 교훈을 얻을 때도 됐지요.”

“…….”

“공론화 시켜서 전부 대피시키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WPO 의장이니까요.”

그녀는 진짜로 기사회 본부에게 보도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이 걸어뒀던 엠바고를 풀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헌터들에게 지시했다.

“사냥 전부 중단시키세요. 인근 대피소랑 기지에도 피난명령 내리시고요.”

“…….”

“지저괴수 접근 확인되면 즉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합니다. 빨리!”

젠장.

사람을 왜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나도 질 수는 없었다.

“……여보세요? 네. 유재경 총리님. 접니다. 방금 자료 하나 보내드렸는데요. 그거 방송 3사에 속보로 띄울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 지원사격이면 입에 거품 물고 난사하는 거였다. 각국의 보도지침이고 뭐고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려 버리는 거였으니 말이다.

뤼미에르는 나를 슬쩍 보더니 얇고 기다란 눈썹을 씰룩거렸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물론,

그렇게 대피를 시켰건만,

괴수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 * *

「지저괴수에 대한 우려로 오스트레일리아 전쟁이 일시 중단된 가운데, 공포 분위기 확산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손실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WPO 평의회는 대규모 레이드 파티를 편성하겠다는 의사를…….」

「지저괴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정부. 그리고 괴수 하나 잡자고 온 대륙을 들쑤시는 WPO. 그야말로 참담한 탁상행정의 결과입니다. 대선을 고려한 보여주기식 졸속전쟁으로 인해 국민의 재원이 낭비되고…….」

「괴수가 존재하기는 하는 겁니까? 모종의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요? 유럽과 한국의 야합 때문에 미국 헌터들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죠.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체…….」

일주일이 지났다.

13차례의 대규모 피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괴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아.”

TV만 보고 있으면 한숨이 튀어나온다. 반복되는 엉터리 피난에 반발여론이 거세지자, 미국 민주당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물론 괴수의 행적을 예측하고 있는 건 당연히 미군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세력은 신성불가침인 미군을 건드릴 수가 없다.

그러니 모든 비난은 나와 뤼미에르에게 쏟아졌다.

이에 나는 뤼미에르에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아니 괴수가 있기는 한 겁니까?”

“없으면 다행이겠죠. 하지만 지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진원지는 조금씩 이동하고 있고요.”

“애초에 예측이 정확했으면 지금쯤 괴수를 찾았어야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냥 요즘 지진이 많이 일어났다는 게 지하에 거대괴수가 돌아다닌다는 것보다는 현실성 있는 추측일 것 같습니다만.”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괴수가 쏟아지는 건 현실성 있는 이야기입니까?”

“……한국말 많이 늘으셨네요.”

“고맙습니다.”

쯧. 하여튼 한 마디를 안 진다. 나는 심드렁하게 팔짱을 꼈고, 뤼미에르는 의미 모를 미소와 함께 TV를 시청했다.

물론 아나운서는 가열 차게 우리를 까내리고 있다.

「유럽과 한국의 강력한 주장으로 평의회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괴수는 발견되지 않는 가운데, 그간의 손실액이 뉴욕 시의 1년치 복지예산과 맞먹는다는 통계가…….」

“…….”

그래. 안다. 괴수가 있긴 있을 거라는 거.

하지만 조금 불안해서 그렇다.

차라리 사람을 상대하는 거면 모를까 괴수를 상대하는 건 언제나 꺼림칙한 일이었다. 나는 헌터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니 나는 반쪽짜리 헌터다.

사실 피채원을 데리고도 정치를 못하면 그게 바보인 거였다. 막상 이런 처지가 되니 내가 녀석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진다.

오스트레일리아 사태가 끝나면 휴가라도 주던가 해야지. 하여튼 녀석이나 나나 너무 오랫동안 2인 3각으로 전력질주를 한 느낌이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으니, TV를 지켜보던 뤼미에르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장관.”

“예.”

“헌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다리는 겁니다.”

“……예?”

“우리는 짐승과 싸우는 중입니다. 의도도 목적도 없는 광기에 맞설 때에는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십시오.”

“……심연을 들여다볼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런 소리입니까?”

“아! 니체를 아시는군요? 철학은 프랑스인의 친구죠. 제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저도 생철학에 참 관심이 많-”

“글쎄요. 저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게 전부라.”

“아…….”

방긋 웃던 뤼미에르가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흠…… 아무튼 지금 시끄러운 사람들은 대부분 언론인과 정치인입니다. 헌터들은 얌전히 대피지시에 따르고 있지요. 심지어 자발적으로 사냥을 포기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마석 생산량이 폭락한 것 아닙니까? 언론은 공포 분위기 확산으로 경제가 망했다고 떠드는 거고요. 뭐, 한국이야 쟁여놓은 마석 되팔면서 재미 좀 보고 있다지만…….”

“헌터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

“괴수는 곧 나옵니다.”

뤼미에르의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평소의 그녀와는 달리 아리송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점쟁이 주술사처럼 말이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은은한 후광 덕에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장관. 조금 미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각성자들은 감이 굉장히 좋습니다.”

“……육감을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네. 그런 본능적인 예감 말입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사를 눈치채고, 위험한 곳에서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거나……. 그런 게 있습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가끔 양판석이 정치하면서 뭔가를 때려 맞추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당장 정계의 구렁이들만 해도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이 존재했다.

하물며 맨손으로 철판을 으스러뜨리고, 허공에서 불꽃을 창조하고, 산과 바다를 뒤틀어버리는 초인들에게 육감이 없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 뤼미에르의 말은 내게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

“곧 나옵니다.”

“…….”

“두고 보죠.”

* * *

“……쓰읍.”

여도연이 입맛을 다셨다. 무언가 찝찝했다. 귀에서 이명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고, 왠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별로 이상할 게 없었다. 오늘도 흔한 비상대피령이 내려졌고, 헌터들은 투덜대면서도 착실히 짐을 트럭에 옮기고 있었다.

여도연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막의 초승달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두운 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졌다. 천일야화에 나올법한 진풍경이었다.

밤바람은 싸늘했으나 금강불괴의 초인에게는 선선한 산들바람에 불과했다. 으슥한 달밤의 모래바람이 조용히 머리카락을 스치운다.

은은한 바람소리만 들려오던 그때.

그녀가 우뚝 멈췄다.

“…….”

그녀는 망부석처럼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움직이는 건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뿐이었다.

문득, 세상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구름이 초승달을 덮었다. 바람이 기묘하게 비틀렸다. 사막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비틀어짐이 그녀에게 닿았다.

무언가,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어디론가 달려갔다. 임시천막과 컨테이너 트럭 사이를 질주했다. 그리고 전초기지의 외곽 감시초소에 도착했다.

초병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경례했지만, 그녀는 대뜸 손을 내밀었다.

“……조명탄.”

“예?”

“줘 봐.”

병사가 어리버리하게 조명탄을 내밀자, 그녀는 조명탄을 들고 어디론가 질주했다.

그곳은 지평선이었다.

사막의 지평선은 언제나 꿈틀댄다. 거대한 모래 언덕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걸 사구(沙丘)라고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지평선은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여도연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어둠이, 기어오고 있었다.

“…….”

그녀가 거대한 어둠을 향해 조명탄을 쏜 순간.

밤의 장막에 숨어있던 공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괴수는 전혀 거대하지 않았다. 그저 여도연의 가슴께에 다다를 정도다.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커다란 늑대 수준이었다.

다만, 무수히 많을 뿐.

“……개미?”

지평선을 가득 채운 건, 파도처럼 몰려오는 벌레들의 아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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