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86화 (186/296)

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1)

언론에 비치는 한승문의 이미지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었다. 국제적 정의를 실현하는 혁신가. 혹은 대한민국을 막후에서 지배하는 정치가.

두 가지 이미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프레임 대립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한승문이라는 동양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아 뤼미에르는 자신이 한승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반쯤은 그랬다. 공적인 우애와 사적인 친분까지.

그는 매스컴이 조명하는 것보다 훨씬 소시민적인 사람이었다. 때때로는 졸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과감했다.

그는 선량한 인간의 양심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다. 선(善)을 중요시하고, 도리를 따르며, 가끔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착했다.

그녀가 한승문과의 첫만남에서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인상에 잔뜩 긴장했다는 것을 회상한다면, 지금의 헤프기까지 한 평가는 상당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노아 뤼미에르는 참으로 오랜만에 한승문이 낯설어 보였다.

“……담배, 피우셨습니까?”

“자주는 안 핍니다.”

“몰랐군요.”

뤼미에르는 착잡한 표정으로 연초를 꼬나문 한승문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를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 * *

“후우…….”

나는 담배연기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들키면 좆될 수도 있다는 각오는 충분히 해뒀지만, 막상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들키고 나니 착잡함보다는 민망함이 더욱 컸다.

그닥 건전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을 것 같으니 일단 어린애는 내보내는 게 맞겠지. 나는 피채원에게 짧게 손짓했다.

“니는 나가 있어라.”

“네? 하지만……!”

“문 밖에서 기다려.”

“……알겠습니다.”

이 순간에도 남의 마음을 염탐할 것을 지시하고 있으니 무언가 초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직업인걸.

물론 그런 감정이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피채원이 조심스레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나는 자연스레 말문을 텄다.

“한국인 헌터들에게 좋은 사냥터를 몰아줬다라…….”

“…….”

“인정하겠습니다.”

뤼미에르가 들이민 증거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 기묘한 신뢰에 대해 정직으로 보답했고, 진실을 직면한 뤼미에르는 언뜻 허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랬군요.”

“……우선, 저는 모든 지역의 위험도를 3가지 단계로-”

“아뇨. 그런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허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데이비드 김이 떠오르는 새파란 눈동자가 오늘따라 보기가 힘들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

“정치인에게 애국이라는 의무가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정치인이기 이전에 사람 아닙니까? 그러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게 아닙니까?”

너도 사람 새끼인데 왜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질을 치냐는 소리였다.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게 사람 새끼냐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신중하게 대답했다.

“사람이기 이전에 정치인인 겁니다.”

“……뭐요?”

“아시지 않습니까. 정치가 그렇게 인간적인 분야는 아닙니다.”

물론 이 정도 설명으로는 그녀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차가운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후우…….”

문득,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싶어서 담배 한 모금 빨았다.

옛날에는 기침이라도 조금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닥 따갑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차재균처럼 말이다.

“……옛날에. 차재균이라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 * *

세상이 지옥이 됐다.

갑자기 각성한 덕에 남들 머리 위에서 신선놀음하는 헌터들이면 또 모를까. 4인 가족이 반지하 원룸에 살면서 배급 타먹게 된 4천만 국민들에게는 삶이 지옥이었다.

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 어딘가에는 그보다 더한 지옥이 존재했다.

물론 대체로 괴수가 만든 지옥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지옥이 더욱 지독했다.

“일본은 사회지도층의 안전을 위해 공권력을 남용했고, 그 공권력의 빈자리를 야쿠자들이 채웠습니다. 그리고 내전이 터졌지요. 이제는 일본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시민군까지 합세했고, 온갖 초상능력자들이 날뛰며 사람을 썰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선주자들의 분쟁 때문에 감염확산을 막지 못했죠. 또, 좀비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두고 한참을 싸웠습니다. 결국 좀비가 사람이 맞다고 하던 사람들은 좀비에게 물려 죽었고, 좀비가 사람이 아니라고 하던 사람들은 막상 백신이 개발되자 사형될 위기에 놓였죠.”

“중국? 제가 리충빈 총통과 가끔 밥도 먹는 사이지만 그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보다 많은 사람을 죽였단 것을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돋곤 합니다. 면전에 죄송합니다만 유럽은 이제 신분제 사회 아닙니까. EU는 말그대로 주군과 봉신이 연합한 봉건연합이 되었고요.”

이슬람 극단주의자, 멕시코 마약 카르텔, 아프리카 군벌연합은 논할 가치도 없다. 이념도 신념도 없이 욕망을 좇아 국민을 착취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일개 조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르다.

민주주의. 국민주권. 자유주의.

그 누구도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세상은 지옥이 되었지만,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었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돈이 없다고 호소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려달라고 비는 것보다야 훨씬 인간다운 삶 아닙니까. 게다가 경제는 누가 뭐래도 차차 나아질 전망을 보이고 있고,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능력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아니까 그리 답답하지도 않습니다.”

“…….”

“애초에 답답하면 내가 바꿨는데요. 뭐.”

이 다음으로 할 말은 조금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짙은 연기와 함께 내쉬었다.

흐린 연기가 내 염치없는 면상을 조금이나마 가려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나라를 만드는 데에, 차재균 차관의 공헌이 컸다고 봅니다.”

“…….”

“애초에 내가 서울사태 당시 개성 시민 60만 명의 죽음에 개입했는데. 뭔 놈에 400명 죽인 것 가지고 원망을 합니까. 이제는 200명인지 500명인지도 기억 안 나네요. 아무튼 나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적어도 나한테는.”

녹취록이 공개된다면 정치생명이 끝장날 멘트였다.

아주 불편하고,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한 나의 민낯이었다.

지지자들은 등돌릴 것이 뻔했고, 나 스스로도 이런 역겨운 면모를 외면했으나, 결국은 이게 내 본심이었다.

“후우.”

“…….”

뤼미에르는 냉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고, 나는 짙은 자괴감을 내비치며 유럽의 성녀 앞에서 고해성사를 이어갔다.

“……물론 미안하죠. 미안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심지어 나는 그 피해자가 눈 앞에서 죽는 걸 봤습니다.”

“…….”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 겁니다. 아……. 어떤 사람은 사람을 숫자로 봐야 하는 거구나.”

한번 속내를 털어놓으니 그 다음은 편했다.

나는 내 추악한 면모를 여실없이 드러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인에게 좋은 사냥터를 몰아준 겁니다. 저는 선거로 뽑힌 사람 아닙니까.”

“…….”

“물론 욕먹겠죠. 심지어 제게 혜택을 받은 사람들도 저를 욕할 겁니다. 선수는 정직한데 심판이 멋대로 편파판정을 한 거니까요.”

하지만 정치인은 심판이 아니다.

“……제가 욕을 먹더라도 국익이 된다면, 도리에 어긋나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데,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던 사람을 제 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

“그러니……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 해야겠죠.”

장대한 웅변이 끝났다.

노아 뤼미에르의 대답은 간단했다.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변명이군요.”

“…….”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을 해치는 것 아닙니까.”

한승문의 반문도 간결했다.

“제가 그걸 모를 것 같습니까?”

“…….”

“압니다. 알면서도 하는 겁니다. 그러라고 뽑힌 정치인입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조국과 민족을 위한 지도자의 결단.

그 어느 때보다 잔혹한 시대가 마주한 과도기의 그림자.

유럽의 성녀 앞에서, 정치인의 그림자는 너무도 깊었다.

“……선의. 신념. 박애. 저도 참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

“다만……. 가끔은 호인이 아니라 초인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겁니다.”

* * *

거미줄.

뤼미에르는 거미줄을 떠올렸다.

한승문의 뒤로 거미줄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그게 제 원칙입니다. 뤼미에르.”

“…….”

자신만의 선을 긋고, 그 선에 갇혀 사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녀와는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이었다.

한승문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공론화가 되어도 저 하나만 상처 입는 선에서 끝날 겁니다. 애초에 설계를 그렇게 해뒀거든요.”

“…….어떤 수작을 부리셨길래 그러십니까.”

“지극히 소수이긴 합니다만 미국 공영길드와 중국 본토인 길드에게도 혜택을 줬습니다. 그게 밝혀진다면 미국 대기업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고, 중국은 파병군의 94%가 왜 홍콩, 대만, 중앙아시아 피난민들로 이루어져 있냐는 비난에 직면하겠죠.”

그는 이미 모든 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민주당은 오스트레일리아 전쟁을 세금낭비로 폄하하려 총력을 기울일 테고, 공화당은 어떻게든 그 공격을 방어하려고 들 겁니다. 그렇다 보면 제 비위사실은 은폐될 거고, 저는 각성제 좀 풀어서 그 은혜를 갚겠지요.”

한승문은 시종일관 은은한 미소를 보였으나, 후안무치한 태도라기보다는 자조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에 뤼미에르가 차갑게 응대했다.

“제가 직접 공격에 나선다면요?”

“그러면 큰일 나겠죠.”

한승문은 순순히 패배를 시인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안 그러실 거잖아요.”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프랑스 칼레에서의 그 밤하늘. 한승문이 선물해준 인생 최고의 그 순간을. 뤼미에르는 아직 잊지 않았다.

그녀가 중요시하는 도의적 차원에서도 한승문은 공격하면 안 되는 거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뤼미에르보다도 더 유럽의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그걸로 배짱을 부리는 게 미운 건 미운 거였다.

“그걸……!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럽니까!?”

“……!”

뤼미에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언성을 높였다.

“적어도 나한테 말은 해줄 수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 그건-”

“누굴 책상물림으로 압니까? 나 국경없는 의사회 출신입니다! 당신이 국회에서 정치인 시다바리하는 동안 나는 카슈미르에서 하루에 수백 명의 살가죽을 꿰맸습니다! 적어도 한승문 당신보단 프로페셔널이에요! 내 손으로 죽이고 살린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팩트였다.

직업경력의 유무를 떠나 뤼미에르는 이미 수억 명의 사람을 살렸다고 평가받는 위인이다.

그리고 한국 국민은 4천만 명에 불과했다.

“내가 타협도 모르는 책상물림으로 보입니까? 나도 프랑스 대통령이랑 일하던 사람입니다! 온갖 더러운 꼴 다 봤어요!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살리겠다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말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팩트였다.

겉으로만 정의, 평화 운운하는 위선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일관성 있는 외길인생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혼자 뒤에서 다 해먹을 거였으면 평의회 의장은 왜 시켜준 겁니까? 그 잘난 정치력으로 사람 하나 이렇게 바보 멍텅구리 만들어서 혼자 다 해먹을 거면, 나는 왜 의장이랍시고 앉혀놓은 거냐고요!”

“아, 아니-”

“결국은 안 들키고 나쁜 짓하려다가 들키니까 과거 팔면서 야부리 터는 거 아니야!”

팩트였다.

안 들키면 범죄가 아니었지만, 들켜서 이 사달이 난 거였다. 애초에 한승문은 안 들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가끔 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비이성적으로 변할 때가 있다. 특히 친밀한 사람과 싸울 때 감정적으로 변한다.

한승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뭐요? 야부리? 그게 할 말입니까?!”

“못할 말이 뭐 있는데요!”

“그래도 도와준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애초에 여기 지원군으로 온 거잖아요! 내가 무슨 나라를 말아먹은 것도 아니고. 남들 싸우는 데 한 발자국 뒤로 뺀 건데. 무슨 히틀러 소리나 듣고 앉아 있어야겠습니까!?”

“내가 언제 히틀러라 그랬습니까!”

“이래서 노랑머리 외국인은 도와주는 거 아니라더니……! 하여튼 한국이랑 유럽한테 좋은 사냥터는 거의 다 몰아줬는데도 이렇게 욕먹는 거 보면…….”

“좋은 사냥터를 몰아줬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나도 확인 다 끝내고 오는 길입니다. 유럽 쪽 괴수들이 훨씬 강력하고 많았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한국이랑 유럽 사냥터가 고작 1000km도 안 떨어져 있어요. 여기가 유럽보다 커다란 대륙인데 그 정도면 바로 옆동네 수준입니다. 그런데 무슨 괴수들이 달라요?”

“허. 그러면 최근 1달 사이에 괴수가 강해지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저보고 그걸 믿으라고요? 차라리 한국이 우리를 속였다는 게 더 신빙성 있는…….”

“아, 내가 당신을 위험에 빠뜨릴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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