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0)
“……어째 이쪽 괴수가 더 센 것 같냐?”
“예?”
“아니, 손맛이 좀 다른데…….”
한참 사냥하던 여도연이 주먹을 쥐었다 피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녀는 태연하게 괴수의 시체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우지직! 괴수 두개골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피가 그녀의 얼굴에 튀겼다.
그 충격적인 비주얼에 설진운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던 와중, 여도연이 이거 보라면서 피범벅이 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니! 이거 봐봐! 손맛이 다르다니까?”
“아, 알겠으니까 조금만…….”
“골통 까부수는 느낌이 없어!”
* * *
설진운이 한승문을 의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심증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한국인이 흘릴 피를 외국인에게 돌릴 겁니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들려준 포부. 그것을 떠올린 순간 별다른 추측이랄 게 필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한승문을 범인으로 추정하는 것과, 그의 비위사항을 폭로하는 건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였다.
‘……폭탄이다.’
터지는 순간 갈려나갈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당장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을 한승문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관련된 모든 사업체에, 온갖 불명예를 떠안을 한국인 헌터들까지.
특히 이번 전쟁은 미국 대선과 연관된 정치적인 전쟁이었고, 비록 설진운이 정치인은 아니지만 이거 터지면 미국도 난리가 난다는 것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설진운이 결단했다.
‘묻자. 묻어야 한다. 이건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폭탄이다.’
그러나 여도연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왜 이쪽 괴수가 더 세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냐?”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야. 뭔가 이상해.”
여도연이 비록 정밀측정도 안 하고 감으로 때려맞추는 거였지만, 그 ‘감’이라는 게 초자연적인 영역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괴수의 크기, 가죽과 뼈의 두께, 심지어 개체수까지.
여도연은 괴수들 간의 기묘한 차이를 확실하게 눈치챘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며 결론내렸다.
“한국 사냥터보다 여기 괴수들이 더 크고, 강하고, 많아. 이건 분명…….”
“어, 어어어……!”
“유럽 쪽 괴수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거야!”
여도연이 비장한 표정으로 설진운의 양 어깨를 부여잡았다.
“진운아. 이거 뭔가 이상하다. 헌터들이 위험해!”
“네. 네? 네!?”
“젠장. 여기 사령부가 어디야?”
여도연은 즉시 기사회의 사령부로 향했다. 설진운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그녀에게 끌려갔다.
섣불리 제지하면 여도연에게 들키고, 그렇다고 손 놓으면 핵폭탄이 터진다. 힘으로 말리자니 싸우면 진다.
설진운은 필사적으로 여도연에게 수작을 부렸다.
“자, 잠깐만요 누나.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사령부에 전달하면, 예기치 못한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 내 감은 확실하다. 당장 뤼미에르를 봐야 해.”
“그, 그러면 장관님한테 먼저 가죠? 일단은 우리 한국인이니까…….”
“일분일초가 중요한데 여기서 800km 떨어진 곳까지 어떻게 가! 그리고 어차피 승문이랑 뤼미에르 본부장님은 동맹, 아니, 친구니까 상관없잖아.”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던 설진운이 정신을 차린 건, 뤼미에르의 집무실 앞에서였다.
“자, 잠깐!”
“아씨, 깜짝이야!”
“……본부장님께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일단 돌아가시죠.”
집무실 문 앞을 막아선 설진운이 정색하고 부탁하자 여도연도 그것까지 쳐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여도연이 탐탁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그냥 지금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
설진운이 기겁하며 고개를 돌리자, 사령부 집무실 문틈에 금발머리가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가벼운 블라우스 차림의 노아 뤼미에르는 서양인 특유의 커다란 눈망울을 말똥말똥 껌뻑였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아무것도-”
“괴수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설진운이 얼버무리려 했으나 여도연이 더 빨랐다.
뤼미에르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하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말씀하세요.”
“전적으로 감에 기초한 추측이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치안관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유럽 사냥터의 괴수들이…….”
여도연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들어보니 조금은 해괴한 이야기였지만,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판단한 뤼미에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회의를 소집하죠.”
“……!”
설진운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칼레에서 이틀 동안 괴수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이후로 이런 위기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결국, 설진운은 일단 공론화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내기로 했다.
“……잠깐만요. 일단 회의는 미뤄주십시오.”
“으음?”
“……사실-”
* * *
야옹.
어둑한 모니터에서 고양이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
어두운 화면 속의 노인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요즘은 조금 시끄럽던데. 민주당 출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헌터들이 노조도 만들고 말이야…….」
“의도된 상황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각하.”
「그렇다면 다행이군.」
화면이 어두워서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양판석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나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요즘은 내가 웃을 일이 많아. 장전읍 건으로 재계, 언론, 야당은 박살이 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쏟아지는 마석으로 경제까지 살아났지. 수고 많았네.」
“……그때그때 눈치껏 처신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기는.」
어두운 화면 너머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경제에 대해 논했다.
「역시 전쟁이 돈이 되더군. 시체에서 마석이 나오는 전쟁은 역사상 처음이지? 아시아에 이렇게 돈이 모인 적이 없네.」
“대륙은 넓고, 괴수는 많죠. 전진기지와 보급망이 건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전세계 헌터들이 몰려드는 중입니다.”
「그쪽에서 작전권을 관리한다고 했지. 그러면 마석 수출입은 어디에서 통제하나?」
“담당 위원회가 있습니다만, 구워삶을 자신이 있습니다.”
「좋아. 물량 들어오는 대로 죄다 풀어서 마석가격을 폭락시키게. 대기업들이 수입하기 편하도록 말이야.」
“어차피 우리가 기술을 독점하고 있으니 에너지배터리 가격까지 폭락하지는 않겠군요. 네. 알겠습니다.”
「자잘한 반발은 내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해결하지. 별다른 문제는 없나?」
“네. 없습니다. 그나저나…….”
나는 어두운 화면 속, 무릎에 고양이를 올려놓고선 무시무시한 흑막처럼 앉아있는 양판석에게 물었다.
“집무실 불은 왜 끄신 겁니까?”
「하사관 하나가 두꺼비집을 잘못 건드렸네.」
“……저런.”
「아까 어디로 끌려가던데.」
* * *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
싸움만을 위한 싸움은 없다.
결국 모두가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바닥이었다.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탈환을 통해 국제연합의 맹주 자리를 공고히 하고, 차기 대선에서도 승리하겠다는 계산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중국은 미국의 사냥터를 침범하는 등 온갖 수작질을 부리면서 ‘정의로운 미국’ 이미지를 박살내려고 시도하는 중이고, 분열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대고 정통성 경쟁이라도 하듯이 파병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PMC 업계 또한 이번 전쟁을 시대적인 전환으로 받아들였다.
국제교류가 단절되는 바람에 대부분의 길드가 자경단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나, 이번 전쟁을 통해 이름을 떨쳐 다국적 대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
누군가 은밀히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야. 채원아. 재무위에 연락해서 마석 풀라 그래라.”
“…….”
서당개 3년이면 사문난적을 때려잡는다고. 피채원도 이제는 말만 들으면 반사적으로 정치공학용 계산기가 굴러가는 레벨이었다.
1. 마석을 시장에 푼다.
2. 마석 가격이 떨어진다.
3. 마석 수입이 편해진다.
4. 마석을 수입해서 배터리로 가공하는 삼성사이오닉과 SK이노베이션은 기술을 독점했기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배짱장사가 가능하다.
피채원이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 문제점을 짚었다.
“마석 가격 떨어지면 헌터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요. 아무리 세금면제라지만 일당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텐데…….”
한승문의 입에서 교활한 계획이 줄줄 흘러나왔다. 중간에 말을 살짝 흐리는 것을 보니 지금 막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면…… 예산을 뿌려서 눈을 가리자고. PMC에 인재육성지원금 명목으로 교부하면 당분간은 모르겠지. 그동안 우리 관료들이 뽕을 뽑을 테니까 말이야.”
“예산은 어디서 나시려고요?”
“국민연금.”
피채원이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한승문을 노려보았다.
원래 안색이 음울해서 그런지, 시꺼먼 눈빛이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승문이 싸늘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유럽 쪽은 어떻게 됐냐?”
“오늘도 연전연승이던데요.”
오스트레일리아 탈환의 대전략은 포위공격이었다. 수많은 세력의 헌터들이 외곽에 거점을 잡고 중앙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그 성과는 세력별로 비교하기가 아주 쉬웠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활약하고 있는 세력은 바로 ‘국경없는 기사회’였다.
한승문은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리는 눈치였다.
“뤼미에르가 참……. 대단하긴 하다. 그치?”
괴수와의 전쟁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형태의 전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태 초기부터 활약했던 뤼미에르는 지구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장군이었다.
그녀는 휘하 헌터들을 데리고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보호막을 역이용해 비행괴수를 지상에 깔아뭉개고, 한승문에게 배운 레이저로 거대괴수의 목을 쳐내고 지상을 폭격했다.
동시에 헌터들의 신체능력을 향상시키고, 부상을 치유하는데다가, 전략적 판단도 거의 완벽했으니, 그에 견줄 만한 헌터가 거의 없었다.
한승문은 조금 부러운 표정이었다.
“거기는 우리랑 시스템이 다르더라. 거의 군대 수준이더만 뭐.”
한국 헌터는 시가전에 능숙했고, 유럽 헌터는 전면전에 익숙했다.
한국 헌터는 대한민국 국군과의 시너지가 좋았지만, 유럽 헌터는 군대의 지원 없이 싸우는 법을 알았다.
결국은 각자 장단점이 있는 거였지만, 결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리한 건 유럽 헌터들이었다.
한승문은 그게 못내 아쉬운 모양인지라, 피채원이 가볍게 덧붙였다.
“그래도 한국은 헌터가 수백 명 단위로 모여서 싸울 일이 없으니 다행인 게 아닐까요.”
“그래. 유럽은 군대가 없지. 그래서 헌터가 군대 노릇을 했던 건가 봐. 우리 애들은 당장 군대 지원 없으니까 빌빌대는데, 유럽 애들은 보급망이나 차량지원도 상관 않고 자체적으로다가 진격하더라. 어디서 차량을 받아오긴 해야 하는데…….”
한승문은 이후로도 충혈된 눈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피채원은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끼어들었다.
“아침밥은 드셨어요?”
“어, 응? 아니?”
“참치주먹밥 가져왔으니 조금 드세요.”
“얘는 마실 것도 없이 주먹밥을 가져와…….”
한승문은 툴툴거리면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주먹밥을 베어물었다.
“그래. 다음 스케줄은 뭐냐?”
“일단 세수하고 이부터 닦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 * *
“어우. 호텔 직원한테 칫솔 좀 바꿔놓으라고 해라. 잇몸 다 까졌네…….”
“……저어, 의원님?”
“그래. 다윈 공군기지에서 SNS용 사진 하나 박는다고 그랬지? BB크림 발라야 되냐?”
“아뇨. 일정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목욕재계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오니 피채원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살폈더니 거실에 뤼미에르가 앉아 있다.
“뤼미에르? 아니 여긴 어떻게-”
“잠시 말씀 좀 나누시지요. 장관.”
“아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시면…….”
“놀라셨습니까?”
뤼미에르의 목소리가 너무 싸늘해서 대답할 엄두도 못 내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 참 많이 놀랐습니다.”
“…….”
“앉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