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82화 (182/296)

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7)

흐린 하늘에 비가 내렸다. 사막에 내리는 폭우였다. 시체들이 부패하는 냄새가 물비린내에 뒤섞여 초소까지 닿았다.

코를 뚫는 악취에 인상이 찌푸려질 무렵, 초병哨兵은 허리춤에서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6번 초소. 오전 보고. 본부 응답바람.”

-보고하라.

“벨스린 관문에 1 CSR 소속 험비 통과. 블루 마운틴스 국립공원 파견헌터 4인 사망 확인. 그리고 바지에 빗물이 들어가서 꼬추가 가려움.”

-한 번만 더 보고할 때 지랄하면 머리에 스테이플러를 박아주겠다. 그래서 이상은 없나?

“이상 없, 아니 시발 잠깐만. 아무래도 지금 이상이 생긴 것 같다.”

-모, 몬스터인가?

“지평선에 뭔가 있다. 확인하겠다.”

-조심하라.

시드니의 위성도시, 리치몬드의 감시병이 망원경을 들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끄응…….”

추적추적 내리는 소나기가 시야를 방해했다.

지평선 너머로 폐허가 된 도시가 흐릿하게 보인다.

도시와 감시초소 사이에는 공습으로 만들어진 사막이 있었고,

황야에 낀 물안개 사이로 무언가 일렁거렸다.

“……사람?”

다행히도, 사막에서 나타난 건 괴수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것도 호리호리한 모습의 동양인 여자다.

그러나 예사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양복을 입은 여성은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풍우로 그 피를 씻어내며 걸어왔다.

축축한 머리카락에서 핏물이 뚝 뚝 떨어졌고, 머리카락 사이로 비친 눈빛은 살생을 업으로 삼은 사람처럼 형형했다.

요약하면, 보는 누구나 저절로 움츠러들법한 모습이었다,

“누, 누구요?”

“헌터.”

그녀는 사냥꾼이었다.

초병은 그녀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그러나 총부리를 겨눈 이도, 총부리를 마주본 이도, 그것을 위협이라 느끼지는 않았다.

“어, 어디서 오셨소? 최근 파견한 헌터들은 모두 귀환했거나 죽었는데…….”

“한국.”

“하, 한국? 그렇다면, 당신이 UN에서 온다던 지원군이오?”

“그래.”

순간, 초병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UN에서 자신만만하게 보낸 지원군이 고작 한 명. 그것도 동양인 여자 한 명이란 말인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만큼 국제사회를 원망하는 이들이 없었다. 남들은 정치에 대해 논했지만, 그들은 생존에 대해 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젠장…….”

처음에는 미군이 온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만만하게 연설했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 땅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헌터들이 온다고 했다. 한승문이라는 작자가 자신있게 공언했다. 그런데 실제로 도착한 건 뤼미에르의 선발대 뿐이다.

결국 이곳 리치몬드에는 한 명의 헌터만이 지원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매달 수십 명의 헌터들이 죽어나가는 곳이었다.

“……하.”

한 명의 헌터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초병은 비를 맞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빗물에 허망한 자조를 흘려보냈다.

“이봐.”

“……왜, 왜 그러시오?”

그때. 헌터가 초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헌터가 힘 조절 잘못하면 엄한 사람 골로 간다는 것을 알았기에, 초병은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바짝 얼어버렸다.

“안내해라.”

“어, 어디로 말이오?”

“사냥터로.”

“……!”

지극히 간결한 선언이었다. 세상 모든 정치인들은 온갖 미사어구를 붙여가며 나불댔지만, 적어도 눈앞의 헌터는 괴수를 잡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비 내리는 황야에서.

초병은 헌터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하! 이거 보기보다 하드보일드한 분이시군. 좋소! 사냥터로 갑시다. 그런데 일단 본부에 들리셔야 할 것 같은데. 자잘한 수속이라는 게 있는지라.”

“상관없다.”

“좋아! 갑시다!”

초병은 헌터의 하드보일드한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당장 괴수들 골통을 날려버리겠다고 선포하는 듯한 그 태도가, 액션영화에서 항상 악당들의 골통을 쪼개버리는 다크히어로처럼 느껴졌다.

물론, 여도연은 그냥 영어를 못해서 그런 말투밖에 못 쓰는 것이었다.

* * *

몬스터랜드가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왕이 자리잡은 곳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괴수들이 생식능력을 갖출 때까지 방치된 곳이라고도 한다.

하나 분명한 건, 몬스터랜드의 괴수들은 대부분 지구에서 태어난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한 채로 태어나서 더욱 강하고,

자연환경과 지형지물을 알맞게 사용하는지라 더욱 까다로우며,

온갖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생식하는 탓에 더욱 많다.

“대표적인 몬스터랜드가 바로 이 오스트레일리아요. 지랄맞게 넓은 대륙에 사람은 고작 2,500만 명뿐이었지. 물론 지금은 그보다 훨씬 적고.”

“으음.”

“사실 우리나라가 해군이랑 공군은 좀 되는 편이었소. 그런데 육군이 호구라 순식간에 무너졌지. 지금은 기름이 떨어져서 군대가 아예 병신이 됐고. 그래서 우리 같은 자경단이 군대와 협력하며 괴수를 저지하고 있소.”

“으음.”

“그래도 이 땅이 넓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면적은 아주 적어서 나름 방어하기는 좋은 곳이오. 여기처럼 혹스베리 강을 끼고 시드니만 방어하면 편하지.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대륙 구석에서만 버티다가 사막지대를 완전히 방치했다는 것이고, 그 후에는, 뭐…… 알다시피 몬스터랜드가 되어버렸지.”

“으음.”

“혹시 샌드웜이라고 아시오? 괴수들이 사막뱀과 비슷하게 진화했는데, 하도 공습을 때려박다 보니까 땅 밑으로 숨어버렸소. 판타지 속 샌드웜이 그렇게 현실에 나타났지. 문제는 졸라 크다는 건데…….”

초소에서 도시로 가는 길.

헌터와 친해지고 싶은 초병이 온갖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여도연은 그 설명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는 겨…….’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귀가 아니라, 눈과 코로 이 땅을 알 수 있었다.

“자, 도착했군. 리치몬드에 어서 오시오.”

“…….”

리치몬드의 모습은 참담했다. 비 내리는 도시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풍겨왔다. 피와 약품, 그리고 고깃덩이가 썩어가는 냄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없었다. 상이군인들의 뭉툭한 팔다리에는 피고름 묻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헌터는 문득 워킹데드에서나 볼법한 생존자 캠프를 연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경단 본부에 도착했을 때 더 확고해졌다.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군복을 입은 사람에게 명령을 내렸고, 헌터들이 자경단장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불신과 의심이 가득했다.

모두가 이 땅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를 증명하듯, 자경단장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가득했다.

“반갑습니다. 자경단장, 조안나 마이어입니다. 캠프 리치몬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헌터.”

“여도연.”

“……혹시 UN에서 오신 지원군입니까?”

여도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마이어는 무언가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게 무례한 행동임을 알았는지, 마이어 단장이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아, 미안합니다. 헌터님에게 실망한 것은 아닙니다만, 요즘 상황이 조금…….”

“이해한다.”

“그렇다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미군이 온다는 소식에 다들 들떠 있었는데,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상황은 아주 열악했다. 자경단장은 그걸 굳이 설명하지 않았고, 여도연은 설명이 없어도 대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실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헌터님은 혹시 힐러이십니까?”

“아니.”

“그러면 염동술사시겠군요. 대규모 지원군은 아니지만 잘 됐습니다. 중장비가 워낙 부족해서 시설이-”

“나는 염동술 안 쓴다.”

“예? 허면……?”

“나는 주먹을 쓴다.”

영어문법이 어색했지만 대충 강체술사라는 소리였다. 이에 마이어 자경단장은 UN이 드디어 우리를 버렸구나 싶었다.

힐러는 수많은 인력을 복구하고, 염동술사는 수많은 건물을 복구한다. 그래서 보통 한 사람이 전략적인 효과를 내려면 특수직종이 아닌 이상은 그쪽 계통이었다.

그런데 UN에서 강체술사를 보냈댄다. 물론 그만큼 강력하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도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여기 괴수들은 다른 곳과 다릅니다. 인간보다 더 이곳에 잘 적응한 놈들이죠. 그러니 다른 곳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안 될 겁니다.”

해외에서 이름 좀 날리는 헌터들이 와서 죽어나가는 곳이 여기다. 이곳의 괴수들은 다른 곳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람 죽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여기 괴수는 분명히 진화했습니다. 그걸 단순한 강력함의 수준에서 생각하시면 안 될 겁니다.”

자동차 밑에 숨어 있다가 바지 속으로 들어가서 생식기와 항문으로 들어가 내장을 파먹으며 알을 까는 괴수.

평범한 새인 척하고 날아가 사람 얼굴에 산성 배설물을 떨궈 시력을 상실시키고 쪼아먹는 괴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등에 달린 가시로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차를 뒤집고선 사람을 잡아먹는 괴수.

거대한 몸집으로 마을 하나를 뭉개버리더니 폭격기 소리를 들으면 땅을 파고 숨어버리는 괴수.

평범한 불가사리 비슷하게 생겨서는 사실 반쯤 액체라 총알도 잘 안 통하고, 심지어 무리생활을 하는 괴수까지.

“조심하십시오. 명성과 마석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A급들이 한가득-”

쿠우우웅-!

“이런 제기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여도연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자경단장을 포함한 본부의 인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옵저버! 어디야!?”

“북쪽! 로랜즈 방면입니다!”

“젠장……! 비오는 날마다 이 지랄이라니까! 대기조 투입해!”

“모리슨! 마고! 홀트! 연장 챙기고 북쪽 게이트로 나와!”

사이렌 소리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처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여도연은 낙동강 오리알처럼 오도카니 남아버렸다.

그녀를 본부로 안내한 초병이 건들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왜 이 지랄인지 궁금하시오?”

“무슨 일이지?”

“샌드웜이오. 사막뱀처럼 진화한 놈이 폭격을 피해 모래 속으로 들어가더니, 천적이 없어서 바다괴수 급으로 거대해졌지. 비 오는 날은 호흡이 불가능하니 지렁이처럼 지상으로 올라가 꿈틀대는 중이오.”

초병이 설명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지진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여도연은 일단 생명체 하나가 이 정도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랐고, 사람들이 이런 지진 속에서 익숙하게 행동한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이 근처에 네임드 몹이 하나 있지. 요르문간드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놈인데, 오스트레일리아에 등장한 26번째 S급 위험종이오.”

“강한가?”

“어허, 피가 끓는 건 알겠지만 혼자서는 못 잡을 놈이오. 비 오는 날에는 가끔 이 근처에 올라오는데, 몇 번 패주면 저어 멀리 도망가지. 시드니 사령부 쪽에서 조금씩 폭격으로 말려 죽이고 있으니, 우리는 그냥-”

쿠우우웅-!

“아잇, 씨발, 오늘은 조금 질기네.”

“……소리가 커졌는데.”

“착각이겠지. 녀석은 겁이 많아서, 조금만 건드리면 도망을-”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땅울림이 느껴졌다.

지진이 가라앉지 않자 기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자경단장마저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바, 방금 나간 친구들이 전부 후퇴했습니다! 놈이 처음으로 반격을 했답니다!”

“뭐!?”

“우리가 위협이 안 되는 걸 학습한 모양입니다! 놈이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공군 불러, 새끼야!”

“날씨 때문에 4시간 정도 걸린답니다!”

통신병의 그 말은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소름끼치는 침묵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

“…….”

“…….”

물론, 그들이 이런 위기를 겪은 건 처음이 아니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쳐 나왔고, 그 중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했다 하여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살아남았다 해도 옆 사람까지 살아남은 건 아니다.

위기는 항상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흉터가 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위기를 매번 극복할지언정, 그 위기에 절대 익숙해질 수는 없다.

그들이 이번 위기를 극복할지 못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중 누군가가 곧 죽음을 맞이할 것임은 분명했다.

그들은 침묵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 침묵을 깼다.

“가도 되나?”

“……?”

“괴수 잡으러.”

여도연의 진지한 물음은 허무맹랑하다 못해 무책임하게 받아들여졌다.

손님에게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자경단장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하. 그래. 오페라하우스만한 괴수를 어떻게 잡으려고 그러십니까?”

여도연은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영어로 말해야 할지 헷갈려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거다.

“……때려서?”

* * *

[노스 리치몬드에서 26번째 S급 괴수, 요르문간드가 토벌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사냥에 나선 헌터는 고작 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요. 해당 헌터는 괴수의 입으로 들어가 두개골을 으스러뜨린 것으로-]

“아니, 미친, 저걸 때려잡네.”

“괴수가 엄청 크네요.”

몸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부순다니. 괴수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호러가 아닐 수 없었다.

“지가 에일리언이야 뭐야……?”

“잡았으면 된 거 아닐까요.”

“그, 그렇긴 한데…….”

TV 속에서는 괴수의 뇌수로 젖은 여도연이 온갖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애정을 듬뿍 받고 있었다.

특히 리치몬드 자경단장이라는 여자는 울면서 여도연의 등짝에 매달려 볼키스를 계속하다 얻어맞고 떨어지기 일쑤였다.

보다보니 기분이 묘해져서 채널을 돌렸다.

[여기는 캔버라. 노아 뤼미에르가 932번째 헌터를 치유했습니다. 그녀의 빛을 받은 사람마다 새 팔다리를 가지고 걸어 나가는 모습은, 마치 신의 기적을-]

[분화 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카카두 국립공원이 불타고 있습니다. 군 당국은 인근의 모든 괴수들을 이곳으로 유인했으며, 플랜트를 포함한 약 26만 개체의 괴수가 소탕될 것으로 예상-]

[UN 헌터들이 타르쿨라의 여왕개체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당 여왕개체는 약 120m 가량의 침식형 수목괴수였으며, 헌터들은 여왕의 마석을 흡수하고 하늘을 통해 도주하는 중인 것으로-]

다행히도 희소식뿐이다. 나는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채원아. 뉴스에 안 나오는 소식들은 어떻게 됐어?”

“중국 쪽은 우리 외교부가 협상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내심 상황에 만족하고서 지켜보는 중이고요.”

“잘됐네. 그리고?”

“일단 47인의 선발대 중에 사망자는 없습니다. 문제는 4팀이 도심에서 작전하다가 약탈자 몇 명을 사살했다는데…….”

“안 들키면 문제없어.”

“인터넷에 글 올라왔다는데요…….”

“알바 풀어서 지워.”

“네…….”

내 거침없는 리더십에 피채원이 차갑게 식은 눈빛을 보내왔다. 이제는 인간쓰레기를 보는 저 눈빛도 어느 정도 적응했으니 다행이었다.

나는 녀석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야, 인마. 나만 적폐야? 너도 공범이야 이제.”

“쓰레기…….”

“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거니까…….”

이 정도 오명은 감수할 수 있다 이거다.

아무튼 나는 뉴욕의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을 컨트롤했다. 대한민국 외교부와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으며 말이다.

그 아래층에는 감 기자(겸 초상관리부 감찰관), 천 사장, 외교부 차관, 국정원 4차장이 거주하는 객실이 있었고, 그들은 수시로 옥상을 드나들며 업무협력을 거듭했다.

그 결과, 지도 하나가 완성됐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피채원과 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지도를 흩어보았다.

“아, 이거 괜찮게 뽑혔네.”

“대체로 외곽지역이 괴수가 약하고, 대륙 중심부가 상당히 위험한 것 같네요.”

“중간중간에 호수들도 무시하면 안 되겠어. 호수가 무슨 경상도보다 크냐……?”

“그쪽 인근은 괴수의 생태가 바뀌네요.”

“괴수가 다양할수록 헌터들한테 위험한 건 당연하고. 그나마 가장 안전한 건 북서쪽이네. 모래사막 없는 황야라서 돌발변수가 거의 없어.”

“다윈 군사공항이랑도 상대적으로 가깝고요?”

“그렇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헌터지원은 그 거창한 약속과는 달리 2주 정도나 미뤄지고 있었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맹활약 중인 건 뤼미에르를 포함한 47인의 선발대뿐이다.

하지만 나는 적극적인 언론플레이와 책임 떠넘기기로 역풍을 뭉갰다. 선발대의 공적을 자랑하며 여론을 선동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했다.

다행히 선발대의 맹활약 덕에 언론플레이는 성공적이었고, 수십 년 내공을 쌓은 미-중 줄타기 외교의 전문가들인 대한민국 외교부 덕에 정치질도 적당히 순조로웠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의 결실이 이 지도 한 장이었다.

“……우리 선발대가. 아니, 우리 정찰대가 아주 잘해줬어.”

“이 정도면 대략적인 가닥이 잡혔네요.”

“그래.”

어디가 위험한지. 어디가 안전한지.

어떤 지역의, 어떤 지형에서, 어떤 괴수가, 어떤 형태로 진화했는지.

그간 취득한 모든 정보가 이 지도에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 북서쪽이 그나마 안전하다 이거지?”

“네.”

“괴수 종류도 그나마 적고. 모래사막도 없어서 거대종도 없고. 다윈 공항이랑도 가깝고. 동남아시아 보급망도 연결되고, 수틀리면 몰아넣고 불태울 숲들도 있고…….”

오랜 준비 끝에, 나는 드디어 주사위를 던졌다.

“좋아. 오스트레일리아에 헌터들 투입한다.”

“……알겠습니다.”

“한국인들은 무조건 북서쪽이야.”

게임이 시작되었다.

확률조작은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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