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79화 (179/296)

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4)

출국 전날 밤.

-리슈잉 국장. 내일이 출국이었던가?

-네. 총통 각하.

-얼굴 좀 비추고 가시오.

중국의 새로운 주인, 리충빈 총통이 자신을 관저로 불러들였다.

-우선, 범국가초인공조 최고평의회 상무의원 직에 내정된 것을 축하하오. 이는 당과 군부의 숙고 끝에 결정된 사안이며, 최근 대만정국에서의 탁월한 판단력과 지도력이 인정된 결과요.

-최근 종합계획국의 판단실패로 홍콩에 감염폭발이 확산된 것을 감안한다면, 리 국장의 조치는 상당히 효율적이었소. 부디 지금과 같은 판단력을 국제사회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내주기를 소망하는 바요.

즉, 판단력이 무뎌진다면 언제든지 홍콩 작전국처럼 솎아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사람의 말을 너무 과대 해석하는 감이 있었지만, 말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리수영 국장은 리충빈 총통의 잔혹성을 직접 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리충빈이라는 사람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그녀가 알기로,

총통은 ‘신중’이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했다.

-서론이 길었군. 대관절 본 총통이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겠소. 필히 한국에서는 한순원 장관을 최고평의회 상무의원으로 보낼 거요.

-신중하게 처신하시오.

* * *

사실, 정치를 오래 하다 보면, 굳이 복잡한 생각을 않고도 무언가 저절로 떠오르는 경지가 된다.

1+1을 풀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조차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평의원이랍시고 모인 사람들을 보니, 대충 중국이랑 미국이 두드린 계산공식이 저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반갑습니다. 의원님. ‘리 슈잉’이라고 합니다.”

“아, 국가안전부 출신이라면서요? 나랑 자주 보던 친구들이네. 반갑습니다.”

우선, 중국에서는 첩보원을 보냈다. 국정원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대만 쪽에서 사람 깨나 담구던 여자였다. 그만큼 눈치도 빠르고 말이다.

그러니 중국은 평의원을 통해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굳이 나서서 평의원을 좌지우지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중국은 이미 강하다. 그러니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정보원을 하나 박아둔 거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또 달랐다.

“반갑습니다, 의원님. 저스틴 루이스입니다.”

“어어, 반가워요 루이스. 재계에서 일하던 분이시라며? 앞으로 잘들 해보십시다.”

미국은 헌터협회-대기업-정부 사이를 오가던 협상가를 데려다 앉혀 놨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해관계를 조정하겠다는 뜻이다.

정부, 대기업, 협회 사이에서 미국의 뜻을 결정하고, 한국-유럽-중국이라는 초상연맹에 맞서 미국의 뜻을 관철시키고,

심지어 냉전을 이어가는 러시아마저도 어르고 달래겠다는 의도가 읽혔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놈 앉혀놨다 헛짓거리 할까 봐 직접 찾아온 뤼미에르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세계평화를 바라는 위인이었다.

즉,

사실 나도 그런 데에는 관심 없다는 뜻이다.

정치인은 평화보다는 권력을 더 좋아했으니까.

* * *

“일단 의장부터 뽑는 건 어떻겠습니까?”

“…….”

“…….”

“…….”

평의회가 처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안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한승문이 내뱉은 대답이 이거였다.

“평의회도 의회고, 의회에는 의장이 있어야지요. 그러니 의장부터 뽑읍시다.”

그러나 평의회에는 의장이 없다. 애초에 평의회는 수평적인 기구로 설계됐다. 왜냐하면 WPO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인의 영향력이 커지면 안 된다.

한승문은 이 묵시적인 합의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의장한테 무슨 해산권이니, 패스트트랙이니, 그런 걸 주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명함이나 하나 파서 주자는 거예요.”

명예직 의장. 그게 한승문이 주장하는 바였고, 저스틴은 이렇게 반박했다.

“어. 우선 이 말이 조금 무례하게 비추어질까 걱정입니다만, 그래도 조금 생뚱맞은 느낌의 주장이라는 감상을 숨길 수 없군요. 물론 의회의 대표성을 드러낼 인물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에는 동의를 합니다만, 국제기구의 상호형평성을 고려한다면 크게 필요한 자리도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중부정과 영어식 완곡한 표현으로 점철된 말이었으나, 요약하면 결국 ‘개소리 말라’는 뜻이었다.

물론 협상가의 논리로는 완벽했다.

그러나 정치가는 논리로 승부하는 직업이 아니다.

한승문은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면, 의원과 의원이 서로 평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국제연합이니까요. 나라 간 평등이 지켜지는 한, 평의원 간의 직위에도 평등이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미국은 지금 일개 헌터를 데려다가, 대한민국 초상장관이랑 동급이라고 시위하는 거네요?”

“……!”

과격한 주장에 저스틴이 잠시 말을 잃었다. 한승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평의원이 똑같다 치면. 중국에서는 지금 첩보원 하나를 유럽 맹주랑 똑같이 취급하고 있는 겁니까? 뤼미에르 총본부장께서는 리충빈 총통과 독대하는 인물이시지, 국가안전부 국장급이랑 같이 어울리셔야 할 분이 아닙니다!”

한승문은 그 말로 애꿎은 유럽과 중국을 개입시켰다.

순식간에 미국-중국과 한국-유럽의 프레임이 짜여졌다.

보다못한 뤼미에르가 그를 진정시키려 말을 꺼냈다.

“장관, 저는 괜찮으니-”

“아니, 총본부장님!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미국이로서니 말을 이렇게 섭섭하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물론 그건 맞습니다만. 조금 진정하시죠.”

“후우……. 알겠습니다.”

지켜보던 미국 대표의 어이가 가출했다. 맞기는 뭐가 맞다는 소리인가. 땡깡부리는 거 달래놨더니 순식간에 개쌍놈이 되어 버렸다.

물론 중국 대표 또한 위기감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다른 사람들이야 모가지가 날아간다지만, 본인이 잘리는 목은 정치적인 모가지가 아니라 물리적인 모가지였으니까.

결국 리수영이 한승문을 극진히 만류했다.

“한 의원님. 물론 우리 측에서도 대사의 격이 상이한 건 충분히 우려하던 상황입니다. 저 스스로도 이 직을 사양해야 할까 고민했을 정도이니까요.”

“흐음…….”

“다만, 총통께서 저를 이 자리에 세우신 이유가, 한 장관님과 루 총재님을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이랑 유럽이 잘 해줄 것을 믿으니까 거수기만 보내서 체면치레 했다는 입장을 거수기가 말했다.

이에 저스틴 루이스가 덧붙였다.

“맞습니다. 외교적인 마찰을 빚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인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때 아닙니까?”

미국에서도 사실 하원의장이나 당의장급 인사들이 WPO 평의원 직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일개 헌터인 저스틴 루이스가 내정된 것은, 미국이 굳이 평의회 내부에서 마찰을 일으키기 싫다는 뜻이었다.

박수도 손이 맞아야 난다고, 싸움도 급이 맞아야 성립되는 것이다. 애초에 싸우려고 들었으면 저스틴 같은 일개 헌터가 채용될 여지가 없다.

그러니 미국은 한국에게 무례를 저지른 게 아니었다.

이해하기 힘든 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

정치인은 원래 IQ가 분 단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직종이다.

미국은 그걸 몰랐다.

“아! 그건 난 잘 모르겠고!”

* * *

이상의 내용이 일주일간 있었던 치열한 정치싸움의 간략한 전말이다.

그 결말은 간단했다.

“어어! 뤼미에르 의장님!”

“한승문 부의장님? 이거 오랜만입니다.”

WPO 출범 기념 파티장에서 두 사람이 정겹게 악수를 나누었다. 뤼미에르는 의장으로서 기조연설을 끝마치고 오는 길이다.

“최고의 연설이었습니다. 의장님.”

“고맙습니다. 부의장님.”

5인짜리 평의회. 그것도 러시아가 아직 사람을 안 보내서 실질적으로는 4명뿐인 의회에, 의장이랑 부의장까지 있었다.

사실, 한승문이 땡깡부리자고 졸라서 손발은 맞춰 줬지만, 솔직히 그녀 본인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래서 뤼미에르가 조심스레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습니까?”

“예?”

“사실…… 명예직 아닙니까. 의장이나, 부의장이나.”

그렇다. 의장이나 부의장이나 권한 하나 없는 명예직이다. 그런데 한승문은 그걸 따내려고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

뤼미에르는 그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권한 없는 직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이다.

그리고 한승문은 ‘권한’과 ‘권력’이 다른 개념이라고 답했다.

“명예직이라도 있으면 좋은 거죠.”

“……흐음.”

“원래 정치를 하다 보면 명함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권력은 사회적 합의에서 나오는 힘이다. 즉, 남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생기는 힘이다.

그리고 사람을 현혹하는 몇몇 단어가 있다. 의장, 회장, 총장. 하다못해 부녀회 회장까지.

정치인은 그래서 언어에 민감한 직종인 것이다.

한승문이 그 이치를 쉽게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애들 보고 ‘사’자 들어가는 직업 하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사’자 들어가는 직업 앞에서는 기를 못 펴요.”

“사자요? Lion?”

“리용?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영어에요 프랑스어예요?”

한국인과 프랑스인이 언어의 장벽에 막혀 헤매고 있을 때, 피채원이 한승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의원님. 지금 도착했다고 합니다. 홍선아 협회장도 같이요.”

“아, 그래?”

한승문이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아이고, 아무래도 잠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측 헌터들이 도착했다네요. 비행기 일정 때문에 조금 늦은 모양입니다.”

“임팩트 있는 입장을 위해 일부러 일정을 늦춘 건 아니고요?”

“제가 뭐하려고 그런 푸틴 같은 짓거리를 합니까?”

“방금 전까지 권위는 허세에서 나온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나요.”

“그러니까. 그…… 아마도 안 했을 겁니다.”

“예.”

한승문은 어물쩍거리며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노아 뤼미에르. 그리고 피채원뿐이다.

그리고 피채원은 사실 뤼미에르가 조금 껄끄러웠다.

“…….”

“…….”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침묵이 있었다.

검은 생머리의 소녀는 과로에 치여 후줄근해진 양복을 슬쩍 보았다. 무언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반면, 뤼미에르에게서는 세련된 향수 냄새가 났다. 게다가 리본이나 보석 대신,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

솔직히, 피채원은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유럽이 어떤 곳인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이미 피묻은 붕대와 알콜솜 냄새로 얼룩진 세상을 안다.

그걸 보통 지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피채원의 앞에 있는 것은, 그 지옥에서 수억 명을 구해낸 전쟁영웅이었다.

“…….”

그래서 피채원은 작게 목례하고 돌아섰다.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굳이 자신의 초라함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뤼미에르가 소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 반갑네요. 피채원 비서관님.”

“……아, 네. 오랜만입니다.”

“미안한데, 잠깐 말벗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대로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

파티장을 채운 사람들 중 태반이 뤼미에르와 말 한마디 붙여보려고 안달난 사람들이었고, 피채원은 그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인간이었다.

결국 피채원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뤼미에르가 방긋 웃으며 말문을 텄다.

“다니엘이 채원 양을 많이 보고싶어 하더군요. 그 쬐끄만 깡다구는 뭐하고 있냐고 종종 안부를 묻습니다.”

“……혹시 그 쬐끄만 깡다구가 저를 지칭하는 건가요.”

“정확히는 ‘little guts’였죠.”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네요.”

“원래 다니엘 그 수염쟁이가 보고 있으면 기분이 더러워지는 사람입니다. 흔한 영국인이죠.”

“……아. 프랑스랑 영국 사이가 대충 한일관계 비슷했나요?”

“글쎄요. 그건 제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잘…….”

“……아. 네.”

서먹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침묵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승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결국 대화는 누군가의 뒷담화로 이어졌다.

“아니,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확실히 노아 언니 말이 맞습니다.”

“한 장관이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양아치라니까요? 같은 편이라 망정이지. 가끔 보면 얼마나 밉상인지 몰라.”

“솔직히 저도 가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갑질을 워낙 다이나믹하게 하시는 분이라…….”

“그렇죠!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죠? 맨날 보면 자기가 절대적인 갑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자기가 갑이 되는 타이밍을 귀신같이 알아채더라니까요?”

“확실히 장관님이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계시긴 합니다. 저도 가끔 그분이 사람 마음을 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감대를 찾은 두 사람이 신명나게 접시를 깨기 시작했다. 그러나 뒷담화는 점차 깊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걱정으로 흘러갔다.

“그…… 한승문 장관이 헌터들을 견제하는 노선을 타고 있다고 하던데요.”

“……아.”

뤼미에르의 원래 파트너는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헌터들을 견제하다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피채원이 그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물론 정치라는 게 그렇듯 자세하게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었지만, 대충 뤼미에르가 반-헌터 정치사상에 예민하다는 것 정도는 캐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예민해지면 보통 화를 내거나 걱정이 많아진다. 다행히도 뤼미에르는 후자였다.

“으음. 이번에 헌터들로 국제군을 편성한다고 했잖습니까.”

“예. 저희도 국내에서 모병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반발이 작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평소에는 헌터들을 못살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필요해지니까 헌터들을 불러 모으는 격이라…….”

언뜻 비꼬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으나, 피채원은 그 말이 한승문의 정치적 위상을 걱정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어지는 맥락도 비슷했다.

“피 비서님. 혹시, 타격이 심각할 것 같으면, 너무 많은 병력을 차출하실 필요가 없다고 전해주시겠어요?”

“네?”

“게이트 폐문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이 감당하던 부담감도 적어지는 추세에요. 그러니 만약 전쟁부담금 문제가 정치생명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동맹으로서 어느 정도는 대납해 줄 수 있다는 뜻이죠.”

“…….”

피채원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민망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유럽의 도움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그…… 한승문 의원님께서 헌터에 대해 많은 규제를 가하신 건 사실입니다만…….”

세법 개정, 헌터등급제, 장전읍 게이트.

한승문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헌터를 때려잡았다.

그러나 모든 규제에는 원칙이라는 게 있었다.

“최소한의 선은 지키셨습니다.”

한승문이 추진했던 규제법안은, 항상 어딘가 초점이 비틀어져 있었다.

세법개정안. 헌터등급제. 군산분리법.

모두 하위 헌터들과 PMC 계열사를 소유한 재벌기업을 향한 규제방안이다.

“그러니까, 장관님께서는 한 번도 주류 헌터들을 적대하신 적은 없습니다.”

“…….”

“그리고, 대한민국 업계를 지배하는 건 소수의 고위 헌터들이죠. 그리고 그 고위 헌터들은 모두 초상관리부의 심사를 통과해서 고위 헌터가 됐고, 담당 주무관에게 이런저런 혜택을 챙겨받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헌터의 힘은 머릿수가 아니라 먹은 마석의 양으로 재는 법이었다. 그냥 있는 격언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PMC 등급을 그런 식으로 쟀다.

그리고 한승문은 지금껏 고위 헌터들에게 혜택을 줬으면 줬지, 절대로 업계의 핵심 종사자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전례가 없었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났다.

“……어라?”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티장의 바깥에서부터 들려온 소리였다.

이윽고,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장내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덜컹, 문이 열리고, 한승문이 당당히 쩔뚝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그를 뒤따르는 수많은 헌터들을 거느리고서 말이다.

[--!]

파티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지금 새로 입장한 헌터들만 쳐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원과 비견될 만한 숫자였던 탓이다.

“저어, 실례합니다.”

당황한 직원이 한승문에게 다가갔다. 줄곧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

“죄송합니다. 52층 연회장은 PMC 대표급만 참석이 가능하십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휘하 헌터 분들께서는-”

“아, 네. 맞습니다.”

“예……?”

한승문은 자신의 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 사람들 전부 PMC 대표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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