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76화 (176/296)

EP 28-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작전명 ‘멋진 신세대’가 상원의회에 발의되었습니다.”

“The Brave New Generation plan has been introduced to the Senate.”

“정식적인 선전포고 절차를 밟으며 국론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보입니다. 아마 연방 역사상 최초로 ‘사람이 아닌 것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기록될 텐데요. 글쎄요. 일각에서는 정치적 요식행위를 위해 의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트럼프 대통령이 ‘괴수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미군이 전투태세에 나섰고, 국제사회에도 경종이 울렸습니다.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나, 대규모 군사행동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몬스터랜드. 괴수에게 점령당한 땅입니다. 어려울 것 없어요. 점령당한 땅을 되찾자 이겁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시베리아, 그리고 사하라까지.”

“괴수가 무서운 건 그들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무한히 증식하기 때문이에요.”

“무한.”

“얼마나 무서운 숫자입니까?”

* * *

UN 총회 기조연설이 끝나자마자 전 세계의 언론이 뒤집어졌다.

미국 대통령이 제출한 결의안, ‘멋진 신세대’가 너무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몬스터랜드에서 무한히 증식하는 괴수들을 박멸하자는 것.

괴수는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놈들로 충분하다는 것.

지구를 다시 인류의 것으로 만들자는 것.

“결론만 말씀드리면, 다시 이 세상의 주도권을 가져오자는 겁니다.”

“글쎄요. 말이 쉽지 지구 전체를 갈아엎어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인류가 힘을 합쳐야죠.”

“……허어.”

사실상 종족의 명운을 건 전쟁을 시작하자는 소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 뉴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와 봐라. 다들 기겁을 하지.

심지어 말한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라 미친 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비밀계획들이 그렇듯, 어느 높으신 분들은 그걸 미리 알고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높으신 분들 중 하나가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CIA 국장을 마주하는 이유다.

“한승문 의원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번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승인될 겁니다. 만약 반대표를 던진다면 그 어떤 이유를 대든 인류에 대한 반역이 되는 것이니까요.”

“…….”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렇게 만들 겁니다.”

‘그렇게 만들겠다’라.

이게 어떻게든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겠다는 소린지, 어떻게든 반대표 던진 새끼를 조져버리겠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다음 대선과 연관된 일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이죽거렸다.

“뭐…… 첫 번째 공략지점이 오스트레일리아였던가요? 멋지게 오세아니아에 성조기를 꽂는 순간, 미국 대선이 시작되는 거고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멋진 신세대’ 작전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인류의 미래를 위한 군사행동이라는 점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CIA 국장은 다분히 사무적인 태도로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희가 제안드린 건 생각해 보셨습니까?”

“국제기구를 이끌라는 것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의원님을 신생 국제기구의 수장 중 하나로 추대하고 싶다는 겁니다.”

미국은 ‘멋진 신세대’ 작전을 통해 지구상의 몬스터랜드를 박멸할 것이다.

무한히 증식하는 괴수들을 처리하고, 호루스 시스템으로 게이트의 예상위치를 파악하고, 하늘과 바다를 다시 되찾고.

결국 게이트라는 물건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마석 튀어나오는 광산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철저한 관리와 통제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걸 위한 국제기구군요. 이름은 뭡니까? 이것도 왠지 미국 감성 짙을 것 같은데.”

“전략적 국토 개입, 집행 및 병참국 정도로 생각 중입니다.”

“쉴드네요. 마블한테 소송 안 걸린답니까?”

“그래서 딴 거로 바꾸는 중입니다.”

아무튼 헌터와 게이트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는 그럴듯한 국제기구가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 게이트와 괴수들을 자기 멋대로 ‘관리’하겠다는 건, 그냥 침략이었으니까.

그래서 국제기구를 통해 명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옛날 강대국들이 직접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UN 안보리니 WTO니 IMF니 하는 것들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에 CIA 국장이 내게 말했다.

“모든 초인들을 위한 기구가 신설될 겁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제를 만들고, 국제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사안을 조정하고, 무엇보다 이번 작전에 참여하는 모든 초인들에 대한 작전권을 가질 겁니다.”

“……상당히 권한이 세군요.”

“아마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에서 한 명씩 평의원을 차출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해당 국가원수의 위임을 받아서 말입니다.”

무지막지한 국제기구를 이끄는 평의회.

그리고 다섯 명의 평의원.

그러나 결국 그 평의원을 임명하는 건 강대국의 국가원수들.

“…….”

결국 강대국들 입맛대로 세상의 모든 초인들을 통제하겠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이게 가장 자연스러운 힘의 논리였고, 게다가 다행히도 이번에는 우리가 강대국이었지만,

그래도 살짝 떨떠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내 표정에서 읽었는지, CIA 국장이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한국을 여섯 번째 UN 상임이사국으로 추대하는 건 정치적인 부담이 워낙 완강해서 말이죠. 괜히 내전으로 예민한 일본을 자극하기는 부담스럽더군요. 그래도 이게 가장 상호간에 편안한 방식 아니겠습니까.”

“……아, 예.”

아무래도 이 양반이 내가 떨떠름한 이유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나는 강대국으로서 초인들을 억압하는 게 찔렸던 거지, 한국을 상임이사국에 안 올려줘서 삐진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만약 각성제 제조법을 공개하신다면, 즉각 한국을 UN 안전보장위원회 상임이사국으로 추대할 의사가 있습니다.”

“……예?”

“말 그대로, 사실 그거야말로 전 세계의 안전을 보장해 주신 것 아닙니까.”

갑작스런 제안에 눈을 껌뻑이자, CIA 국장은 은근히 미소지으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 있으십니까?”

* * *

-그래서. 뭐라 그랬나?

“신중하게 고려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고려는 했습니다.”

당연히 대답은 ‘NO’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 안 했듯이, 한국 또한 각성제를 독점할 것이다.

왜 중국이 자기네 인민 굶어죽는데 우리한테 쌀을 갖다 바치나? 왜 미국이 비교적 우리에게 양아치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나?

왜 유럽이 대륙 건너편에 있는 나라를 반쯤 형제 취급하며 챙겨주나? 왜 국제사회가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지 않고 있나?

대체 뭐 때문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성장했나?

그 이유는 간단했다.

“헌터의 자연각성 확률은 연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극히 희박합니다. 그리고 헌터 아카데미는 매 분기마다 수많은 각성자를 신규 생산하죠.”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만 상당히 많은 국가들이 한국에게 혜택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혜택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하나뿐이다.

그런 마당이니 조금 빈정이 상하면 각성제 공급을 줄이면 된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동남아시아 내부 정치권에 개입하고 있다.

물론 갑질이 심하면 다구리를 맞을 수도 있으니 우리도 나름 설설 기면서 상대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갑은 갑인 거였다.

“사실 각성제 제조비법을 공개하면 세계평화가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지만…….”

-그래. 그래. 우리는 한국 정치인이지.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이게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양판석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야. 이 사람아. 국제기구 평의원 자리 수락할 거냐 이 말이지.

“……아마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아마’는 또 뭔가?

“사실……. 문제가 좀 많지 않습니까.”

당장 러시아 대표로 누가 나올 것인지부터가 문제다. 걔네 지금 냉전 중인데, 대표를 한 명만 뽑으라니 이게 뭐 하자는 짓인가.

미국이 러시아 내부 냉전에 관여하겠다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멋진 신세대’ 작전과 그걸 진두지휘하게 될 초인기구의 역할은, 자칫 내정간섭으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다.

지구상의 모든 몬스터랜드를 제거하겠다고는 하는데, 당장 일본 중부는 어떻게 손댈 생각인가. 내전 중인데.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도 워낙 땅덩이가 넓어서 국토 내부에 몬스터랜드가 조금 있다. 그런데 괴수 잡겠다고 미군이 상륙했다가 트러블 생기면…….

“그러면 일이 또 복잡해지는 건데…….”

아무래도 심정상 조금 껄끄럽기는 하다.

그러나 양판석은 명쾌하게 판결을 내렸다. 누가 판사 출신 아니랄까 봐.

-해.

“예?”

-자네 말고 할 사람 없어.

* * *

“그렇게 됐다.”

-…….

나는 내 향후 진로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가족들 반응이야 걱정된다며 앓아누웠고, 어중간한 지인들은 전부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양일호와 이호정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양일호는 초상관리부 장관 일 때문에 바빠서 아예 전화조차 받지 못했고,

이호정은,

-하아…….

한숨부터 푹 내쉰다.

녀석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 오빠 국내 정치판은 이제 떠나시는 거네요?

“글쎄다. 국회의원 겸직금지 조항이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 감이 안 잡히네.”

-아니, 아니, 미국이 오빠를 그 자리에 앉혀놓겠다고 먼저 제안을 했던 건, 오빠의 국제적인 정치적 위상을 써먹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그 정도 수준이면 국내 정치판은 별 상관 없지 않나?

“국내랑 국제랑은 또 다르지. 반기문 케이스도 있는데…….”

-그거야말로 이거랑 그거는 다른 거죠. 오빠도 알잖아.

“……그런가.”

아무래도 이호정은 내가 평의회 쪽으로 가게 됐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불안해지니, 녀석이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놨다.

처연한 목소리였다. 녀석답지 않게.

-……다들, 조금씩 떠나네.

“뭐? 일호가 너를 떠나!? 이놈에 새끼 양아치같이 생긴 게 영 미덥잖았-”

-아니, 아니, 무슨 큰일 날 소리래요? 일호는 장관으로 떠나고. 오빠는 해외로 떠나고. 나만 국회에 혼자 남아 있잖아.

“아.”

그 소리였나 보다.

이호정은 살짝 기운 없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정치라는 게 진짜 사람 기 빨아먹는 직업인 것 같다니까요? 맨날 누구랑 싸우고. 멍청한 척하는 너구리들 붙잡고 씨름하고…….

“그래도 권력이 니 옆에 있잖아.”

-글쎄요. 맨날 싸워서 얻어내는 권력이 권력인가? 게다가 옛날 국회의원들은 지금에 비하면 완전 놀고먹는 한량이었죠. 우리가 옆에서 봐서 알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라 20대가 야당 원내대표도 하고 그러는 거다.”

-오빠는 정치 왜 시작했어요?

갑작스레 들어온 질문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하려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결국 형편없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글쎄다.”

뭔가, 시답잖으면서도 웅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일 터이다.

세상이 미치고. 나도 반쯤 미치고. 그냥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소설같은 인생이지만 소설처럼 재미는 없다.

그래서 그 감상도 그저 그랬다. 나는 남의 입을 빌려 말했다.

“천사장도 나보고 그러더라. 왜 그러고 사냐고.”

-어우…… 가려운 데를 긁었네요.

“……너도 나보고 그런 생각하냐?”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잠시 내 인생이 뭐가 문제일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니, 녀석이 먼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여튼……. 정치 그만하고 싶다. 정말. 맨날 신수광이랑 청중엽이랑, 뭔, 권력에 미친 인간들 상대하고 있으면, 나도 미치는 것 같아요…….

“원래 국회랑 군대는 또라이들만 모인 데야. 일호도 나보고 그러더라. 힘들다고.”

그러니 너도 정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 은근히 이런 뜻을 전하자, 이호정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오빠.

“어, 어?”

-오빠 어렸을 때가 조금 기구하긴 했는데. 살면서 흙수저로 살아본 적 없죠?

“…….”

확실히, 고아에 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이모가 잘나가는 변호사라 부족함은 없었다.

부모 역할을 대신해 준 분들도 계셨고, 내가 그분들한테 히스테리를 부렸으면 부렸지, 그분들이 나를 괴롭힌 적은 없다.

오히려 장애인이라 배려자 전형으로 한국대도 합격하고, 군대도 안 가고, 그 덕에 일찍 보좌관으로 취업하고, 그렇게 국회의원까지 됐다.

한 번도 약자였던 적 없는 나에게, 이호정이 모호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누구한테는 정치를 하는 이유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그냥 위로 올라가는 게 너무 짜릿하거든.

“…….”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봐요. 맨날 오빠 이름 달고 정치했는데, 이제부터는 완전 솔로 플레이 들어가는 거잖아.

녀석이 내게 고백했다.

-잘되면 잘되는 거고. 좆되면 좆되는 거겠지. 근데 나 어렸을 때 생각만 하면 지금 이런 자리에 있단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

-……어우. 술 한잔했더니 살짝 도네. 아무튼 나 이제 잘게요. 일호놈은 오늘도 야근이네. 그냥 남자 하나 데려와 봐?

“에라이, 미친년아.”

-아이, 농담이에요, 농담…….

“힘내라.”

-……그래요. 고마워요.

“…….”

통화가 끝나고.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머리가 참 많이 복잡했다.

한국인 헌터 사냥해서 생체실험하던 놈들도 잡아야 하고. 양판석이 알아서 잘한다던 북한도 걱정되고.

일본 내전 사태도 자꾸 심해지는 것 같고. 러시아 냉전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무섭고. 당장 머리 위에 게이트 열릴 것 같기도 하고.

항상 걱정 속에 전전긍긍 앓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겪으며 내가 배운 건 하나다.

“……여보세요? 어어, 진운 씨.”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한다.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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