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74화 (174/296)

EP 27 - 멋진 신세대 (6)

미국의 영웅주의는 유명하다. 그걸 까는 것마저도 클리셰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아무튼 미국인의 영웅숭배는 유명하다.

그 영향은 소방관, 군인, 의인들에 대한 예우에서 나타나고, 정치인의 공약보다 인물을 더 중요시하는 ‘이미지 정치’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세상에 영웅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느냐만은, 영웅과 국가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은 분명 미국의 국민성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냥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Captain Korea! Han! Han!”

아무리 생각해도 캡틴 코리아는 아닌 것 같다.

* * *

[한국 대표단이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뉴욕 시민들의 격렬한 환영에 다소 놀란 기색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자료화면 보시죠!]

[이들이 바로 유럽 크라이시스 당시 국제군을 이끌었던 드림팀입니다. 아마 소드마스터 소년은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그 외에도 당장 국제랭킹에 편입된다면 TOP 10 안에 들어갈 만한 강력한 헌터들이-]

[특히 한승문 헌터는 노아 뤼미에르의 절친이자 남한의 장관 겸 의원이죠! 중국의 리 총통과도 각별한 사이라고 하는데요? 정치인과 헌터를 겸하고 있는 만큼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런 친구 안 사귀고 뭐 했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나, 참.”

이게 뉴스인지 연예가중계인지.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한국 대표단은 일단 공항에서 빠져나와 호텔에 도착했고, 나는 반쯤 녹초가 된 채로 소파에 앉아 뉴스를 체크하는 중이다.

하지만 몸은 호텔에 있어도 정신은 공항에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을 가득 채운 함성이 귓가에서 가시지 앉는다.

오죽하면 귀가 먹먹하겠는가.

“후우…….”

그러나 나는 그 환대에 그저 히죽거리기보다는, 최대한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뭔가,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묘한 경계심을 가지고 상황을 돌아보던 와중, 여도연이 잔뜩 흥분해서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깨가 으스러질 만한 악력이었다.

“와……. 방금 뭐냐? 대체?”

“글쎄. 환영이 좀 거칠긴 했지.”

“아니, 그냥 거친 정도가 아니라, 손 흔들 때마다 함성이 우와아악-! 막 이래…….”

“…….”

신났군. 신났어.

여도연은 격투기 선수 시절에는 받아보지 못한 함성소리에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였다. 자꾸 힘조절을 못해서 호텔 바닥이 조금씩 깨졌다.

정치인으로서는 ‘이게 한국 대표로 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냉정한 비판을 가할 일이었지만, 가족으로서는 그냥 놔두고 싶어서 놔뒀다.

대신 그나마 무표정을 유지하던 피채원을 찾았다.

“채원아. 아무래도 뭔가 어색한 것 같지 않……. 음?”

“…….”

“채원아?”

“…….”

“얌마. 피채원.”

“아…….! 네?”

정정한다. 무표정한 게 아니라, 그냥 넋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잠시 생각해보니 체질상 그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감정에 휘말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나는 피채원의 업무를 잠시 중단시키고 이불로 돌돌 말아 호텔 침실에 던져 놨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와 일행의 상태를 살폈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 TV를 보고 있다.

[Seol Jin-woon, the Sword master! He is Asian branch commander of SSF, and…….]

“진운아! 방금 니 이름 나온 거 맞지!”

“그, 그렇네요? 우와아…….”

“…….”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헌터들 뿐만 아니라 함께 온 통역사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쩝.”

이쯤 되니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다. 정치를 오래 하니 의심병이 생긴 걸까. 의사가 나보고 신경과민이라 하긴 했는데…….

그러나 내가 찜찜하든 말든, 내가 수행해야 할 일정들은 칼같이 다가왔다.

“장관님. 기자회견 준비하시죠.”

“어어. 그래.”

* * *

입국 기자회견은 안전상 공항이 아니라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그동안 나는 CIA에게서부터 금칙어 몇 가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건 지나치게 장황했다.

[가급적이면 방사능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좀비화된 민간인을 괴수로 볼 것인지 환자로 볼 것인지 또한 상당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는 것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쾌적한 생활 수준을 다소 세밀하게 묘사하시면 국민정서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고, 각종 국제분쟁이나 외교관계에 대한 편향적 입장표명은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하면 안 되는 말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걸 다 외우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대충 감을 잡았다.

그렇게 자신하니 피채원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물어보면 효도가 좋다고 말하면 되지.”

“…….”

“채원아. 명심해라. 애매할 때는 멍청한 척 대충 뭉개면 인터넷에서 욕 좀 먹어도 사실 절반은 먹고 넘어가는 거야.”

중립적인 이야기.

원론적인 이야기.

얕은 이야기.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정답이다.

그래서 그 어떤 민감한 질문을 받아도 교과서적으로 답하겠다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기자회견에 임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뭔가.

이상하다.

[한승문 의원님. 괴수들에게 점령당한 도시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지하철을 통해 1200명의 시민들을 구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러셨습니까?]

[대한민국과 유럽은 대륙의 끝과 끝에 있지요. 그런데 어째서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파리를 구하러 가셨던 거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었습니까?]

[정치인과 헌터를 겸하고 계시는데……. 아무래도 공익에 헌신하는 분이시다보니, 이번 UN 총회에 대한 기대가 크실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총회도 유럽 크라이시스가 성공적으로 진압되었기 때문에 열린 것인데, 당시 국제연합군을 규합하신 분으로서 심정이 어떠신지요?]

* * *

[글쎄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저를 따라와준 분들의 용기가 더 위대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유럽은 돕는 건 제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노아 뤼미에르의 정신은 정말 본받아야 마땅하겠지요.]

[사상 최악의 위기입니다. 그게 바로 이번 UN 총회에서 인류가 뜻을 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치는 연합의 힘으로 이겨냈고, 냉전은 미국과 소련의 화합으로 이겨냈습니다. 이번에도 강력한 연대의 힘이 인류를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놀랍게도, 이게 전부 내가 한 소리들이었다.

물론 실제 답변은

‘아니, 그냥,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유, 당연히 도와야지요. 뤼미에르 경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미는데. 부끄럽습니다.’

‘총회요? 글쎄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죠.’

대충 이랬다.

그런데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사가 저따구로 뽑힌 것이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왔습니다.]

“염병한다, 진짜…….”

그런데 이 새끼들은 번역을 저렇게 해놓고서는, 멋들어진 성우까지 데려와서 목소리까지 입혀놨다.

미치고 팔짝 뛰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안 좋게 왜곡한 게 아니라 좋게 왜곡해서 딱히 항의할 말이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저녁뉴스를 보며 뒷목을 잡고 있으니, 하루 일정을 수행하느라 녹초가 된 피채원이 터덜터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채원아, 저거 봐봐라. 저기 TV에 나오는 아이언맨이 나로 보이냐?”

피채원은 뉴스 속의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소파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글쎄요. 굳이 따지면 장관님은 워머신에 가깝죠.”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정의가 아니라 의무를 따른다는 점에서요,”

“…….”

얘가 미국에 오더니 혓바닥에 버터를 발랐나.

나는 민망해서 살짝 고개를 돌렸고, 녀석은 자기가 한 말이 조금 그렇다는 걸 알았는지, 조금 부끄러운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더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요?”

“뭐?”

“장관님 행적만 떼어놓고 보면 영화보다 더하잖아요.”

“…….”

그…… 렇긴 하다.

솔직히 내 인생은 무슨 소설로 내놔도 개연성 없는 소설이라고 까일 물건이었다.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

나는 묵묵히 TV 속의 나를 보았다.

포토샵을 받아 잘생겨진 나는 멋들어진 대사를 줄줄 읊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지 않겠습니다. 인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으으…….”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손발이 저절로 오그라드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 침묵을 지키던 피채원이 문득 내뱉었다.

“……평소랑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은데요?”

“너는! 그게 무슨 미친 소리니!”

“지, 진짠데…….”

“너 혹시 나한테 콩깍지 비스무리한 거 있으면 최대한 빨리 벗어라. 저 희멀건 양키 새끼랑 내가 뭐가 똑같다고 그래?”

내 격렬한 반응에 피채원은 살짝 뻘쭘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TV 속 나를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하긴, 입 밖으로는 안 내셨죠.”

* * *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박수와 찬사로 가득했던 나날이었고, 낯간지러운 칭찬마저도 이제는 무덤덤해질 정도다.

사실 칭찬에 무덤덤해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정치생명은 감정보다 이해타산에 예민할수록 오래 가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생명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그랬다. 칭찬에 취할수록 사람은 판단력을 잃는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래서 칭찬이 가장 무서운 거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으려 드니까.

“오! 이런 세상에! 한승문 의원님 아니신가요?!”

“아, 네. 처음뵙겠-”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초면에 대뜸 격렬한 악수를 건네오면 아직도 당황을 면치 못하겠다. 그것도 장밋빛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말이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손등을 붙잡았다.

“조세핀 켈수스입니다. PMC 에스파다를 이끌고 있지요.”

“반갑습니다. 한승문입니다. 에스파다면……. 필리핀의 국방을 담당하던 곳이었나요?”

“동남아시아권이 저희 주무대죠. 대한민국은 가장 큰 바이어고요. 그리고 제 입으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미국의 7대 길드 중 하나랍니다.”

이곳은 호텔의 파티장이었다. 그리고 파티장에 나서는 사람들은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데에 면역이 없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사교행사에 익숙해져야 할 터였지만, 내 정치인생은 다소 향냄새 나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덕분에 나는 파티장에서 연신 죽을 쑤는 중이었다.

물론 속으로만 말이다

“조세핀 대표님과는 이런 자리에서 말고 나중에 긴밀히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흠. 데이트 신청인가요?”

“굳이 따지자면 우리 세금 받아가는 사람이 누군가 확인하는 거겠죠. 그리고 저는 초면에 대시하는 남자 아닙니다.”

“전형적인 카사노바의 대사인데요?”

“자꾸 몰아가시면 거래 끊습니다.”

“농담이에요! 그럼 나중에 제가 자리 마련하죠. 반가웠어요! 한!”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했지만, 내심 어색하고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뭐랄까. 한국 분위기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애초에 한국은 이런 파티문화가 없다. 저렇게 휑한 드레스는 직접 보기도 힘들고, 초면에 이런저런 농담을 나누는 게 어렵기도 하다.

물론 이런 어리숙한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남들 눈에는 묵묵하고 진중한 동양 정치인으로 보이겠지.

나는 평소보다 더 영어발음에 신경쓰고, 괜히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똥폼을 잡고, 별 이유도 없이 인상을 쓰고 무게를 잡았다.

그렇게 대부분은 속여 넘겼지만,

속일 수 없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까오를 잡아.”

“댁은 주머니에서 손이나 빼시지.”

일단, 나랑 똑같이 긴장해서, 똑같이 까오를 잡던 여도연.

“장관님……? 어디 불편하세요?”

“너야말로 머리 아픈 것 같은데. 대충 스캔 끝났으면 먼저 올라가서 디비 자라.”

두통에 인상을 찌푸리던 피채원.

“굳으셨네요. 서민은 이런 자리 처음 오시나……?”

“글쎄요. 저는 친목 다질 시간에 세무조사부터 들어가는 스타일이라.”

이 넓은 파티장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천금순.

그리고,

“……장관?”

뤼미에르다.

그녀는 사람 몇 명을 달고서 내게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표정이 살짝 안 좋아 보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하하. 아무래도 이런 자리는 조금 어색한 것 같습니다.”

“저런…… 정치인이 그래도 되는 겁니까.”

“저는 어둠 속의 권력자 컨셉 아닙니까. 뤼미에르는 그저 빛이고요.”

“그러면 빛의 세계로 나오시지요. 제가 사람 몇 명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은 기사회 상임고문단의 대표를 맡고 계신 메르켈 총리님입니다. 그리고 유럽 지부장인 다니엘. 제 오랜 동료이지요.”

나는 TV에서 많이 봤던 익숙한 원로 정치인과, 예전에 살짝 봤던 고무장갑을 낀 헌터와 정겹게 인사를 나누었다.

원로 정치인은 금세 다가온 누군가에게 붙들려 사라졌고, 고무장갑을 낀 헌터는 피채원과 여도연을 아는 모양인지 그쪽 테이블로 합석했다.

덕분에 나는 뤼미에르와 둘이 남아 대화를 나눴다.

그녀가 싱긋 웃었다.

“TV에 나온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캡틴 코리아던데요.”

“저는 쫄쫄이 입는 취미도 없고, 태극무늬 방패도 없습니다.”

“적응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영웅을 좋아하거든요.”

“한국이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군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뤼미에르가 의표를 찔렀다.

“한국은 영웅이 필요할 정도로 각박하지는 않잖습니까.”

그 순간, 나는 그간 나를 괴롭혔던 기묘한 불쾌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요 며칠간 쌓여왔던 찝찝함이 펑 터지는 기분이다.

나는 해답을 말했다.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영웅을 만들고 있군요.”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더 그렇습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언론, 길드가 앞장서 영웅을 만들고 있지요. 잘 팔리니까요.”

히어로 메이킹.

한국이 한참 힘들 때도 했던 짓거리였다. 헌터들에게 영웅적 이미지를 부여하고, 각박한 서민들에게 대리만족이라도 허락하는 정책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상황이 나아지고, 영웅주의의 부작용이 드러나며 폐기한 정책이기도 했다.

그 부작용이란 무엇이냐.

‘헌터의 계급화’.

내가 게거품을 물고 막으려 들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은 이미 그게 이루어진 사회였다.

뤼미에르가 파티장을 눈짓했다. 수많은 헌터들이 정치가와 기업가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 있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미국은 헌터들이 많이 사랑받습니다. 특히 유명한 헌터들에게는 별명도 붙더군요. 우습지만요.”

“저로서는 이해 못할 감성이네요. 그나저나 뤼미에르도 별명 있습니까?”

“저는 항상 유럽의 성녀였습니다.”

“아…… 그런 느낌인가요.”

그렇게 막으려 들었던 게 실제로 이루어진 사회에 오다니.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나에게는 디스토피아일지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며 한층 달라진 눈빛으로 파티장을 훑고 있으니,

상당히 별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

한국 대표단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게 설진운이었다.

우선, 칼레 방어전 당시 촬영된 영상이, 개문 이후 최초로 유튜브 10억 뷰를 찍었다.

어두운 밤. 칼레 방어전이라는 역사적인 전장에서, 푸른 검기를 휘두르며 괴수들 사이를 누비던 그 모습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헌터와 관련된 방송에서는 그 영상의 하이라이트 컷이 2초 정도 필수적으로 들어갈 정도였다.

게다가 국경없는 기사회의 아시아 지부장으로서 수많은 헌터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니, 업계에서의 영향력도 무시할 바가 못 되었다.

게다가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 한국 헌터협회의 부협회장이라는 직위, 육체계 헌터의 전술적 포지션에 ‘나이트’라는 분류를 신설한 공로까지 있었으니,

오히려 한승문에게 묻히는 감이 있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의 위상이 더욱 강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어. 에스파다의 S급 헌터 마이클 리입니다. 저도 한국계인데, 동향 사람끼리 만나서 반갑네요. 설진운 학생.”

그런 설진운에게, 웬 헌터 하나가 따라붙었다.

물론 파티장의 설진운은 항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마이클 리 라는 사람은 도무지 설진운에게서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문제는 그가 툭 툭 내뱉는 발언들이었다.

“아, 그런데 설진운 학생은 헌터랭킹이 몇 위인가요? 아…… 없어요? 그럴 수 있지.”

“칼레 방어전 영상은 잘 봤어요. 장난 아니던데요? 혹시 작정하고 찍은 건 아니야?”

“예전에 동대문에서 생존캠프 차렸었다던데. 생존력이 장난이 아니겠어요?”

발언 하나하나가 설진운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들이었고, 나중에는 동대문 캠프라는 설진운의 역린까지 건드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 침착하기로 유명한 설진운이 한 마디 했다.

“그만하시죠.”

“뭘 그만해요?”

“……쯧. 됐습니다.”

설진운은 가볍게 혀를 차고 그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마이클 리는 설진운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더들썩한 파티장이 일순 조용해질 정도로 말이다.

“뭐야!? 유명하다고 사람 무시해?”

“…….”

“이봐요. 랭킹도 없는 사람이 업계 선배한테 너무 무례한 것 아닙니까? 유명세가 실력이야?”

결국 그거 물어보는 게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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