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7 - 멋진 신세대 (3)
미 중앙정보국(CIA)은 수많은 국가를 감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일상은 그리 녹록치 못했다. 주로 정신적인 의미에서.
“이 빌어처먹을 보고서는 대체 뭐야!?”
제이나 헤스펠 국장은 오늘도 서류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문짝을 향해 삿대질했다.
“나가! 이 씹새끼들아!”
“구, 국장님……!”
“귓구멍에 좆박았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목소리로 요원들을 쫓아낸 국장은, 짙은 탈력감에 머리를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썅…….”
맨날 입에 FUCK을 달고 사니까 아랫입술이 다 까졌다. 정수리에 원형 탈모도 오는 것 같고, 구내염은 어찌나 심한지 밥을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전형적인 스트레스성 몸살이었다.
병의 원흉은 다양했다.
“이, 개 같은…….”
우선, 남아메리카를 점령한 마약 카르텔. 이 개자식들은 골목대장 노릇으로 만족을 못하는지, 지들끼리 줄창 내전을 벌이며 조금씩 조금씩 미국 남부로 진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IS, 이 유서 깊은 씹새끼들은 나쁜 짓도 해본 놈이 더 잘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이다. 코란으로 기름쟁이들 뒤를 닦아주면서 말이다.
물론 중국도 빼놓을 수는 없다. 리충빈 총통은 타이완과 홍콩을 무자비하게 짓밟더니, 이제는 무슨 세계정복이라도 노리는지 중앙아시아로 진격하고 있다.
심지어 바로 그 위에 있는 러시아는 최악의 화약고다. 모스크바 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 군부. 이 동서내전이 터지는 순간 유라시아 대륙은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일 게 분명했다.
그래. 내전 하니까 또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머저리 같은 정부군과, 양아치 같은 야쿠쟈들. 그 틈바구니에서 일어난 시민군까지.
이미 일본 중부는 괴수들이 게이트 속에서 기어 나와 살림을 차린 수준이고, 하필 미군 주력함대가 거기 고립된 바람에 손을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에라이! 썅!”
진짜 또라이들은 따로 있었다.
* * *
“뭐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답니까?!”
국장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이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건장한 노인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나도 민주당 싫어합니다.”
“한국 말입니다! 한국! 그 빌어먹을 반도 놈들!”
“아! 한국! 그쪽도 만만찮은 싸이코들이지!”
대통령의 유쾌한 반응에 국장은 맥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톱을 질겅거리며 집무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우리 쪽에서 지원하던 북한 시민군이 있지 않았습니까?”
“2차 한국전쟁 때 써먹으려고 만들었던 친구들? 계획이 엎어지면서 버린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이 정치적 문제 때문에 장전읍을 덮치니까. 대체 무슨 생각인지 평양을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그게 성공해서 리용수를 죽여 버렸고요.”
“흠. 그거 재밌군.”
“그보다 더 재밌는 건 최초 보고가 들어온 지 20분 만에 남한이 북한에 특수부대를 파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고작 1시간 만에 북한의 전략핵 두 개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게 우연으로 보이십니까?”
“……흠.”
“심지어 그 특수부대는 리용수가 마지막까지 쟁여놨던 핵무기 수십 개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전부 터뜨려 버렸습니다. 이에 리영길 상임위원장이 반발하자 쏴죽이고, 최부일 총정국장에게 통수권을 이양받았습니다.”
“…….”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입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걸 우연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3시간이 뭡니까 대체? 우리가 월마트 가서 장보고 돌아오는 동안 한국 특수부대는 핵무기를 탈취하고, 비밀창고를 폭파시키고, 북한 수뇌부를 암살하고, 집에 오는 길에 인민군 통수권을 받아오는 겁니까? 이게 뭡니까? 예? 씨발! 아아악-!”
“말 좀 순하게 하라니까.”
“그 빌어먹을 트위터나 끊고 그런 말씀을 하십쇼! 각하!”
즉, 중앙정보국 국장은 한국이 모든 사건을 계획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국장은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우리 측에서 제동을 걸려고 하니 중국 국가안전부를 끌어들여서 막아내더군요. 게다가 리영길 상임위원장은 우리 측 내통자였지요. 물론 남한 정부에겐 알리지 않았었지만, 남한 정부가 그를 최우선적으로 제거했다는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국장의 눈은 이미 반쯤 돌아가 있었다. 귀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각하.”
“…….”
“한국이 가장 위험합니다.”
대통령은 침음을 삼키면서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된 국방, 강력한 정부, 체계적인 사회 인프라. 거기에 각성제라는 기적까지.
강력한 적이 무서운 게 아니다. 미국은 그보다 더 강력했으니까. 다만 예측할 수 없는 적이야말로 미국의 진정한 위협이었다.
“우리가 여당, 야당, 대기업에게 치이는 동안, 그들은 각성제를 만들고, 국가에게 호의적인 헌터들을 양성하고, 중국과 유럽을 동맹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흠.”
“사이오닉 엔진, 에너지 배터리, 그리고 헌팅 디바이스. 우리가 작년에 공표한 3대 전략산업을 한국 3대 대기업이 전부 가져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뼈를 찌르는 질문.
이에 미국의 대통령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대기업 PMC들이 S급 헌터 하나 데려오겠다며 온갖 로비를 벌이고, 경쟁사에 불리한 헌터규제법을 입법하고, 기술경쟁에서 승리하려고 사보타주까지 일삼는 동안,
삼성 사이오닉, SK 이노베이션, GS 아이기스가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주 초상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이루어낸 쾌거였다.
반면, 한국 정부가 브레이크도 없이 엑셀을 밟는 동안, 미국 정부는 운전대에 손만 대도 온갖 정치적 공세가 뒤따르는 상황이다.
“……흠.”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판단 내렸다.
정치.
바로 그 차이가 소국이 대국을 이기게 만든 이유였다.
이에 거구의 노인이 피식 웃었다.
“일단 당분간 방치합시다. 나는 이걸 그리 위협적으로 보지만은 않으니. 국장은 평소처럼 남미와 중동에 집중하면 좋겠군요.”
“그러면 한국에 핵폭탄은 안 떨굽니까?”
“나는 가끔 우리 헤스펠 국장이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게 바로 지금입니다. 나 이제 딸이랑 밥 먹으러 가야 하니까 빨리 내 눈 앞에서 사라지세요.”
대통령은 그리 말하고선 정말로 레스토랑에 갈 생각인지 양복을 차려입었고, 국장은 한숨 쉬며 집무실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국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
비단 한 사람만을 겨냥한 소리는 아니었다.
* * *
“장어가 아주 꿀맛이네! 꿀맛이야!”
“장어가 맛있다면서 왜 자꾸 술을 드십니까…….”
“거, 참! 분위기 망칠 거면 그냥 집에 가던가!”
“자기가 데려와 놓고서…….”
가볍게 입술을 삐죽이며 눈을 흘기니, 양판석은 불콰해진 얼굴로 실실 웃었다. 그리고 넘어가는 소주 한 잔.
“자아…… 받어!”
“오늘 너무 달리시는 거 아닙니까?”
“우리 땐 술 받으면서 자꾸 미운 소리 하면 술병으로 맞았어.”
근처에 널린 게 빈 소주병이었으니 얌전히 술을 받았지만, 나는 양판석의 과음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4년 동안 술상무를 했으니 내가 그의 주량을 모르는 게 이상한 거다. 그리고 그런 내가 보기에 지금 양판석은 한참이나 선을 넘었다.
결국 나는 장어를 굽다 말고 양판석의 술병을 뺏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스톱하시죠.”
“거어, 사람 참……!”
“자꾸 이러시면 유재경 총리가 권한대행 합니다. 담배랑 낚시 좋아하시는 분이 술까지 좋아하면 남자로서 삼진이에요.”
“마누라도 죽었는데 뭐 어때!”
“에헤이…….”
지리산 깊숙한 곳의 낚시터.
맑은 호숫가에 장어 굽는 냄새 솔솔 풍겨오는데,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두 취객이 소주병을 부여잡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거 놔! 이 사람아! 자네가 분유 먹는 동안 나는 빠께쓰에 소맥을 말았어!”
“아, 그만 드시라니까요! 제가 보기에 지금 각하 제정신 아니십니다!”
“3시간 동안 수십만 명을 처죽였는데 그럼 제정신이야!?”
“……!”
순간,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건 양판석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순간 당황스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
“…….”
“…….”
“…….못 들은 걸로 하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양판석은 한층 쓰린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이후의 술자리는 그저 침묵이었다.
고요한 호숫가에 서로 술 따라주는 소리만 졸졸 들렸고, 나는 양판석에게 술을 더 주느니 내가 다 마셔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대작에 임했다.
문제는,
“……어어?”
내 주량이 그리 센 편이 아니라는 거였다.
* * *
“으윽……!”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뜬다.
하늘이 어두웠다. 밤이다.
귀뚜라미 소리 들려오는 와중, 차가운 밤바람이 식은땀을 말렸다.
어둑한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아련히 빛난다.
“깼나?”
“……아.”
“깼군.”
양판석은 내게 까스활명수를 건넸다. 그래도 숙취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
하늘이 참 어두웠다. 양판석의 옆모습도 참 어두웠다. 도장 하나로 사람을 짓뭉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생을 살아온 노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나더라.
이런 꼴을 보면서라도 정치를 해야 하는지. 사람이 이렇게 권력을 탐하는 이유가 뭔지. 정치가는 왜 정치를 하는지.
그래서 물었다.
“……양 의원님은 왜 정치를 하셨습니까?”
양 의원. 보좌관 시절 입버릇이 툭 튀어나왔다. 내뱉고서 눈치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의 보좌관으로 남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자기 정치라는 게 너무도 가혹했으니.
내가 질문해 놓고서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동안, 한참이나 침묵하던 양판석이 툭 내뱉었다.
“……글쎄. 삼청교육대 끌려가 죽은 우리 외숙 때문일까. 화병 나서 죽은 우리 어머니 때문일까.”
“…….”
“그렇게 따지면 나는 전두환이 때문에 정치를 시작한 건데, 막상 내가 그 양반이랑 엮인 적은 별로 없거든.”
양판석은 퍽 무덤덤하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니면 너무 오래 고민한 바람에 무덤덤해졌거나.
“화염병 던진 건 박종철이 때문이고. 판사 된 건 강기훈. 김용철. 그리고, 정치판 들어간 건 이회창, 김영삼, 민주당 간 건 유재광, 우상호…….”
양판석은 한참동안 수많은 이름들을 열거했다. 김종필, 노태우, 노무현, 원옥분, 한명숙. 모두가 그의 인생에 조금씩 발을 들인 이들이었다.
그도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지나간 세월에 취했는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흐릿했다.
그러나 결국, 양판석이 단언했다.
“사람 때문에 정치를 했지.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왜죠?”
“너무 빨리 바뀌더라고.”
세상이 바뀌는 건지 사람이 바뀌는 건지.
그리 중얼거린 양판석은 묵묵히 낚싯대를 잡고, 의미 모를 표정으로 호숫가를 응시했다.
“옛날에는 누구 하나 죽으면 내가 죽을 때까지 싸웠는데. 나중에는 누구 하나 죽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더군. 또, 정치는 원래 뒷방에서 하는 거였는데, 갑자기 무슨 SNS니 유튜브니…….”
“…….”
“김대중 때는 뭐 거의 천하만물을 주름잡던 박지원 씨가, 나중에 마리텔인지 뭔지 예능 나와서 재롱떠는 거 보니까 참 웃기대. 나랑 술도 참 많이 먹었었는데…….”
양판석이 자조했다.
“……세월은 빠르고. 사람은 결국 변해. 나부터가 그래. 사람 하나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고 피눈물 흘리면서 싸우던 내가, 이제는 뭐, 눈도 깜짝 안 하고 수십만 명을 그냥 갈아버리잖나. 안 그런가?”
양판석은 나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고, 그 미소에서는 진정 한 치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평소와 똑같이 웃었다.
어째서 그는 평소와 다름이 없을까.
항상 얼굴에 그림자를 달고 살아와서 내가 구분을 못한 건지, 아니면 이제는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한 가지 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리 사셨습니까?”
“사는 데 이유를 재는 건 피곤한 일이지. 자네도 아직 취한 모양이야. 손발 오그라드는 소리 말고 잠이나 더 자게.”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사람은 적응한다. 신문을 보던 이들이 뉴스를 보고, 뉴스를 보던 이들이 SNS를 본다.
고작 1명의 죽음에 슬퍼할 줄 알던 세상은, 수백명이 죽은 다음에야 슬퍼했고, 이제는 수십만의 죽음에도 슬퍼할 줄 모르게 되었다.
“…….”
내 판단이 개성을 멸망시키고 6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사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드물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인 걸까. 아니면 슬픈 일인 걸까.
양판석이 북한을 제압했고, 한국은 이제 초강대국의 반열에 들려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전보다 더 나아진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뇌리에 떠돈다.
그러나 나는 단 하나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뒤로 누웠다.
“…….”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고, 귀뚜라미 소리가 은은하게 머리를 적신다.
어둑한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서서히 치미는 술 향기가 뇌리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눈을 감을 무렵, 어두워만 보이는 밤하늘에도, 아직 별빛은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서서히 눈을 떴다. 눈꺼풀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햇빛은 아니다. 노란 머리카락이 은은하게 빛난다.
끔찍한 두통이 머리에 울리는 동안, 문득 어제 조금 부끄러운 언동을 하지 않았었나- 하는. 그런 뭐냐. 느낌적인 느낌이…….
“어우…….”
아무튼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서서히 정신을 다잡고 있으니.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뤼미에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장관?”
“아, 네. 감사합니다.”
“물 좀 드시죠.”
머리는 까치집에, 아직 눈곱도 못 뗀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나 잠시 목을 축이고,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고 있는 뤼미에르의 싱글벙글한 미소에, 삼키던 물이 역류하는 느낌을 느꼈다.
“커, 커억……! 커어억……!”
“오랜만입니다. 장관.”
그녀는 태연하게 내 등을 두드렸고, 나는 사레들린 채 기침하며 눈물을 쏙 뺐다.
“루, 루미에르 씨?”
“네.”
“하, 한국은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