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70화 (170/296)

EP 27 - 멋진 신세대 (2)

부산 외곽에 한식당 하나가 있다. 맛보다는 분위기를 보고 가는 집이다. 가격대도 쓸데없이 높아서 일반인들은 잘 안 온다.

대신 정치인들이 자주 간다. 대통령도 자주 드나든다고 한다.

적어도 인터넷에는 그렇게 알려졌다.

“어, 어서 오십시오!”

“예약이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한식당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그들은 나를 깊숙한 룸으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혼자서 엘리베이터에 오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 위해서는 한식당 직원의 카드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

쿠웅. 직원이 버튼을 조작하자 무거운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아주 오랫동안 하강했다.

지하 200M를 향해서.

* *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으로 가득한 로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황통제실 연결해! 빨리!”

“여기가 통제실입니다!”

“그러면 현장 연결해!”

“현장은 북한입니다!”

“…….”

코드네임 청와대는 아주 분주했다. 초대형 벙커의 로비에서 군복과 양복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또각. 또각.

지팡이를 짚으며 지하에 발을 들이자, 엘리베이터 옆을 지키던 국정원 요원이 나를 보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장관님!”

“상황은 어떻습니까.”

회의실이야 평소에 자주 오간 탓에 별다른 안내는 필요 없었다. 나는 곧장 성큼성큼 걸어가며 보고를 청취했다.

“평양에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했고, 리용수가 죽었다는 첩보가 보고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상황이 확실하게 파악되지는-”

“그러면 확실한 건요?”

“평양에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국정원 고위 간부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평양을 공격했습니다. 위성관측 결과 도시가 반쯤 불바다가 됐고. 반군이 인민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쿠데타입니까?”

“그건 아직 파악 중에…….”

뭐 죄다 파악 중이래?

마음이 다급해서 인상을 팍 찌푸리자,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서둘러 둘러댔다. 무능하다고 찍히기는 싫었나 보다.

“구,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 아니라, 군대와 초인들이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정보원이 리용수의 사망을 보고했습니다!”

“확실합니까?”

“거대한 폭발이 주석궁을 지하벙커째로 날려 버렸다고 합니다. 현재 인민군 지휘체계가 망가진 것으로 보아, 핵심 인사들이 대다수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고를 듣다 보니 어느새 회의실에 도착했다. 요원은 몇 걸음 뛰어가 회의실 문을 열어주며 다급히 목례하고 물러섰다.

쿵 -

회의실의 두꺼운 철문이 닫히자, 갑자기 적막이 내려앉았다.

“…….”

회의실은 아주 조용했다.

“……계세요?”

아무래도 내가 가장 먼저 온 모양이다.

* * *

어둡고 무게감 있는 조명.

커다란 모니터 앞에 대리석으로 된 원탁이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엄한 회의실이다. 역시 양판석이 멋을 안다.

“…….”

그런데 왜 원탁 위에 먹다 남긴 쌀과자가 놓여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르신 입맛인가 보다.

오도독. 오도독.

쌀과자를 세 개쯤 우물거리고 있으니, 회의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한 장관?”

“아, 원옥분 지사님. 오랜만입니다.”

칼자국 짙은 눈매 사이로 희뿌연 눈빛이 나를 직시했다. 원옥분은 터덜터덜 걸어와 내 건너편에 자리했다.

“그래. 한 장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리용수가 죽었다고?”

“글쎄요. 저도 막 연락받고 온 거라, 잘 모르겠습니다.”

“……양 대통령은 어디 있고?”

“아무래도 어디 가신 것 같은데요. 아니면 아직 안 오셨거나.”

“……그거 하나만 줘봐.”

“이빨 괜찮으십니까?”

“쯧!”

장애인과 노인 하나가 마주앉아 쌀과자를 우물거렸다. 그다지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분위기가 살짝 어색했다.

그렇다고 미운 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얼굴이 찾아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유현종 강원지사였다.

나와는 의정부 후퇴작전 때부터 인연이 있고, 하여튼 후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던 지휘관이다.

그 능력 덕분에 그는 강원도에 고립된 북부군을 총괄했고, 서울사태 당시 경기도 북부의 수백만 국민들을 강원도 속초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그 공적으로 강원지사까지 되었으며, 아직도 강원도의 군권을 실질적으로 쥐고 있었다.

지금 강원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현종에게 목숨을 빚진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아무튼 유현종도 군인이니만큼 나보다는 지금 상황을 더 잘 알겠지.

나는 그에게 질문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아니, 한 장관님! 뭡니까 대체? 빨갱이 대장이 죽었어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몰라요?”

“애초에 지사님이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되죠. 저는 군인도 아닌데.”

"아, 맞다."

"……."

대충 대꾸하고 다음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번에는 유재경 총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아이고. 총리님 오셨군요. 이게 대체-”

“한 장관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게요.”

“예?”

“쌀과자 드시겠습니까?”

“……아뇨. 물 좀.”

유재경에게 삼다수를 건네주고서 자리에 돌아오니, 그제야 믿을 만한 전문가가 찾아왔다.

“먼저들 계셨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오랜만입니다. 사령관님.”

국군의 실질적인 1인자, 김두식 충청군구 사령관이다.

그는 듬직한 군복을 입고 회의실에 성큼성큼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지금 상황을 질문하려 입을 열었다.

“김-”

“한 장관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 *

“형! 아니, 한 대표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러게.”

“예?”

“양 장관은 여기 앉아.”

양일호는 어리둥절한 눈치로 원탁의 말석을 채웠다. 입구 쪽 자리다.

이로써 양판석이 앉을 상석 빼고 모든 자리가 찼으니, 모일 만한 사람은 전부 모인 것 같았다.

“…….”

나는 상석의 바로 옆에서 좌중을 살폈다.

유재경 국무총리,

원옥분 전북지사,

김두식 충청군구 사령관,

유현종 강원도지사,

양일호 초상관리부 장관.

늘 보던 양반들이군. 대충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것 같다.

하도 이런 일로 소집되다 보니 이제는 긴장감도 별로 없었다.

유재경이 어느새 김두식을 빌미로 유현종에게 접근해서 껄떡거릴 정도로 말이다.

"우리 유현종 지사님이 일 처리 잘하신다고 소문이 났던데요?"

"아, 아유……! 아닙니다, 총리님."

"강원도가 사실 헌터산업의 중심지 아닙니까? 헌터들 사이에서도 도지사가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하하하!"

"……크흠!"

슬쩍 시계를 보니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다. 아무래도 양판석은 조금 늦으려는 모양인지라, 잡담만 하느니 차라리 간단한 의논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북한에 내전이 났습니다.”

“…….”

“……아, 네. 그리고요.”

내가 입을 열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살짝 뻘쭘하긴 했지만 나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리용수도 죽은 것 같고…… 이거 쿠데타라고 보십니까? 원옥분 지사님?”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빨갱이들 심리에 조예가 있으시니까요.

물론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면밀한 대북공조를 이뤄내신 분 아니십니까. 워낙 전문성이 있으시니까…….”

“누가 들으면, 내가 뭐, 허구한 날 빨갱이랑 붙어먹은 줄 알겠어?”

“…….”

그 말을 들은 나는 곰곰이 원옥분 전북지사, 아니, 원옥분 전 권한대행의 행적을 돌이켜봤다.

“……흐음.”

우선, 당시 인민무력상이던 리용수의 컨택을 받고, 김정은이 숨어 있는 벙커를 터뜨린 게 원옥분 시절 이야기다.

또, 중국이 동부해안 원전 핑계로 지원군(감지윤) 달라고 배짱부리니까, 일본과 야합하는 대신 북한 시켜서 물어뜯은 것도 원옥분이다.

게다가, 백두혈통에 그쪽 반란군까지 통째로 북송시키고서, 전략핵 두 개 빼고 모든 핵폭탄을 뺏어오는 빅딜을 성사시킨 것도 원옥분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사태 당시 내가 괴수를 싹 북쪽으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개성이 박살 났는데도, 북한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도 원옥분이다.

“…….”

아무래도, 헌정 사상 이렇게 빨갱이랑 붙어먹은 대통령이 없는 것 같은데.

대충 그런 생각으로 묘한 눈빛을 보내고 있으니, 원옥분은 제 발이 저린 모양인지 순순히 속내를 내보였다.

“……장전읍 갈아엎을 때부터 예상해야 했던 문제였어.”

* * *

모든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권력은 결국 ‘니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당연히 근거가 탄탄할수록 주장은 강력해진다.

“그런데 이제 아다리가 안 맞는 거야.”

원옥분은 지금 상황을 이렇게 평했다.

리용수의 근거가 꺾였다고.

국군이 장전읍을 점령하고, 남한 정부가 행정대집행이니 뭐니 하면서 북한의 실효지배권을 위협하자, 독재자의 권위가 땅으로 처박힌 것이다.

“그러니 뭐 특별할 게 있나.”

“…….”

“약해지니까 득달같이 물어뜯는 거지.”

원옥분의 설명이 끝나자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침묵을 깬 건, 어느새 회의실에 들어온 양판석이었다.

“그 말이 맞아.”

“아, 각하 오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빨리 모여줘서 감사하고. 그냥 다들 앉아들 계시오.”

원옥분을 뺀 모두가 엉거주춤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후줄근한 양복 차림의 대통령이 손짓으로 제지했다.

그리고서는 원옥분을 향해 샐쭉 투덜거리며 상석에 자리했다.

“우리 원 지사님은 어째 일어나려는 시늉도 없어?”

“전관예우가 지엄한데.”

“어허, 공사는 구분해야지.”

“여기가 무슨 공석이야. 맨날 보던 얼굴들이구만. 이제는 정들겠어. 안 그렇습니까들? 허, 허…….”

원옥분은 양판석에게 이 정도로 비빌 짬과 친분, 그리고 권력이 있었고, 그걸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과시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제는 원옥분이란 사람의 습성을 다들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아무래도 양일호와 유현종은 조금 흔들리는 모양이다.

그 흐름을 꺾기 위해 유재경 총리가 사뭇 정중하고 사무적으로 입을 열었다.

“……각하. 리용수 국무위원장이 죽은 게 확실합니까?”

“글쎄. 벙커째로 날아갔다던데.”

“그렇다면 미국의 소행이 아닐는지요……? 2차 한국전쟁 무산 이후로 영 다급해 보이지 않았습니까.”

양판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좌중에게 말했다.

“미국은 현 사태와 극구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중이요. 아, 그래. 한 장관. 혹시 짐작 가는 점은 있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중국 국가안전부의 말을 믿어봅시다.”

양판석은 피곤한 표정으로 현 사태에 대해 설명했다.

“평양을 습격한 이들은 시민군이요. 독재에 저항하던 혁명군들이 장전읍 사건을 접하고서는 들고 일어난 거지. 인민의 장기를 해외에 팔아먹었다는 사실이 공론화되자, 지금 혁명을 일으키면 해외에서 호응할 거라는 판단이 뒤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데 북한 정부는 사실 미국과 한국의 절친이었던 것이다.

시민군은 그걸 몰랐다.

다소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튼, 워낙 상황이 애매해서 일단 내가 초동대처만 끝냈습니다.”

“아, 네.”

양판석의 초동대처는 간단했다.

“진돗개 둘 발령하고 충청선 이북에서 활동하던 헌터들을 전부 뒤로 물렸습니다. 강원도 쪽은 속초와 북한 장전읍을 묶어 임시 방어선을 세웠지요. 그리고 미군에게는 대한해협 쪽으로 함대 보내라고 말은 해놨습니다.”

“아, 예. 한숨 돌렸군요. 현명하게 대처하셨-”

“그리고, 경호처 소속 초인들을 파견해서 북한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전략핵 두 개를 회수했습니다. 그런데 여차여차하다 보니까 그놈들이 핵폭탄을 무더기로 숨겨놓은 곳을 찾았는데. 그냥 터뜨리라고 했습니다.”

“예?”

“리용수 정권 2인자가 강력히 항의하길래 대충 처리했고. 3인자에게 그냥저냥 협조를 받아내는 데 성공해서 일단 인민군 통수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혁명군 수뇌부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고……. 대충 이렇습니다.”

“…….”

“그래. 초동대처는 이쯤 마무리하고.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들?”

솔직히, 이제 집에 가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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