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7 - 멋진 신세대 (1)
번뜩.
눈을 뜨니 아침 6시 29분이다.
조금 추워서 재채기를 했다.
6시 30분으로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꺼버린다. 알람이 나를 깨우는 게 아니라, 내가 알람을 끄는 게 일상이다.
그리고 아침 뉴스랑 라디오를 확인하며 간밤에 무슨 지랄 맞은 일은 없었나 체크한다.
[국민당 정유철 의원이 오늘 새벽 검찰에 긴급체포되었습니다. 정 의원은 과거 장기밀매 공급책으로 알려진 PMC 청수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북한이 서울 청와대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장전읍 선제타격과 행정대집행법 승인에 대한 반발로 보입니다. 인민무력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대한 실효지배권을…….]
[시민군을 규합하던 일본 공산당이 나고야 일대에서 코뮌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자위대와 야쿠자 사이의 내전이 본격적인 3파전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도 오늘은 별 이상 없다.
* * *
직업병, 이라는 게 있다.
“야, 채원아. 정책실에서 관리대장 17호 가져와 봐.”
“국회에 정책실이 어디 있나요.”
“아.”
뭔가. 볼펜만 잡으면 공문서에 싸인하고 싶어지고, 전화만 받으면 진행시키라고 말하고 싶고, 책상이 비어 있으면 일거리를 가져다 놓고 싶고.
나는 이제 장관이 아닌데, 내 몸은 아직 장관인가 보다. 그 과로와 스트레스로 가득한 일상을 내 몸이 그리워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의 업무량도 적은 건 아니지만, 의원 업무는 그냥 보좌진에게 오토 돌려놓으면 되니까.
그래서 그냥 모바일 게임 만렙 찍고 습관적으로 오토만 돌리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채원아. 너는 안 그러냐? 이 과도기 사회의 시대적인 흐름에 한 몸 바치고 싶은……! 그런 운명적인 거시기가 안 느껴지냐?”
“네.”
그러나 아무도 내게 공감하지 못한다.
일 좀 더 하고 싶다고 그러니까, 다들 나를 일에 미친 워커홀릭으로 보더라.
“그러니까아,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라 이거야. 나중에는 일하고 싶어도 못한다니까?”
“…….”
“항상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파이팅 있게 임해야지. 그렇게 흐물흐물해서는 못 써요.”
그래서 신임 초상관리부 장관 양일호를 찾아가 주옥같은 조언을 건네주니, 돌아오는 대답이 영 신통치 못하다.
“저 그냥 때려칠게요. 형이 도로 장관 해.”
“어허……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아, 몰라! 안 해!”
“야, 인마. 근성을 가지고 하란 말이야. 하여튼 요즘 애들은…….”
“아! 진짜! 나보다 두 살 많은 양반이 우리 아버지보다 더 꼰대 같으면 어떡해요!”
“너 아빠 없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내가 있던 장관실을 떡하니 차지한 양일호는,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거무죽죽한 낯빛을 자랑했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자연스럽게 탕비실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녀석이 퍽 퉁명스러운 소리를 낸다.
“여기가 카페에요? 맨날 와서 율무차 타 먹게?”
“얘 봐라. 권력 좀 잡았다고 살맛 나지?”
“형이 맨날 그랬잖아요. 꼬우면 권력 잡으라고.”
“어휴…… 오랜만에 퇴근 좀 하라고 서류작업이나 도와줄라 그랬는데. 꼬우면 뭐 어쩔 수 없고…….”
“형. 내 마음 알지?”
“일 도와주면 우리형이고, 안 도와주면 느그형이냐?”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이어가며 한참 서류를 붙잡고 있으니, 녀석이 문득 내게 물었다.
“형.”
“어.”
“……왜 저 장관 시키신 거에요?”
“시키긴 뭘 시켜? 인사권은 각하한테 있었지.”
“각하는 형한테 물어봤을 거 아니에요.”
“……나는 그냥 한마디만 찔러준 거야. 한번 물어보기만 하라고.”
“…….”
“이 정도는 할 만한 애라고.”
양일호는 오묘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거기서 뭐라고 더 말하기는 애매한 모양인지 슬쩍 웃었다.
“형 요새 장관 그만두고 심심한가 봐요? 맨날 오시네.”
“사실 인수인계하려고 온 거야.”
“예? 인수인계할 게 더 남았어요?”
“…….”
양일호는 사실 장관이 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어리고, 경험도 미진하고, 인지도도 부족하다. 적어도 대중이 보기에는 그랬다.
당연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내 부하이자, 이호정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장관을 시키는 게 말이 되냐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녀석은 당당하게 이 장관실을 차지했다.
그러니, 녀석에게 말해줄 것이 있었다.
“……조직적인 인간사냥이 있었어.”
“아, 네. 장기밀매요?”
“아니, 그거 말고.”
“……네?”
나는 양일호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건 내가 녀석에게 그간 많은 것을 숨겨왔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했다.
우선, 지금의 장기밀매 게이트는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부터.
“……제3세력이 개입해 있어. 각성제의 비법을 캐내려고 한국 헌터들을 조직적으로 사냥한 거야. 그리고 장기를 해외로 반출해서 생체실험을 한 거지. 지금은 그걸 비밀리에 수사하는 중이고.”
“…….”
“일단 공식적으로는 북한에서 남한 시민들을 일부 납치했다고 설명했는데. 북한은 아니야. 적어도 북한 정부는 아니야. 걔네가 그럴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이거 밝혀지는 순간, 잘못하면 외국이랑 전쟁 나는 거야.”
나중에는, 3세대 헌터 육성계획까지.
“……나라에서 고아들을 거둘 거야. 그리고 인성과 적성을 파악해서 각성제를 투여할 거고, 어릴 때부터 모범시민으로 기른 다음에, 헌터 아카데미로 교육한 다음 공무원으로 쓸 거야.”
“…….”
“좋게 말하면 복지고, 나쁘게 말하면 세뇌지. 알아. 그런데 나는 선거로 안 뽑힌 사람들이 선거로 뽑힌 사람보다 높아지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헌터든, 재벌이든, 민주정부 아래에서 통제돼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나라가 유지돼.”
그렇게, 모든 계획과 상황을 파악한 양일호의 반응은, 언뜻 어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 군산분리법은 연막이었던, 아니. 이건 당연한 거고. 그, 그, 뭐냐. 추경안이 그러면 그래서…….”
“…….”
“……하, 진짜. 말이 안 나오네.”
녀석은 조금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걸 전부 비밀로 했던 거에요? 나랑 호정이한테는 군산분리법 준비한다 그래 놓고. 뒤에서 추경안 짜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
녀석은 생각을 정리하려는 모양인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원체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던지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게 앞으로 제가 할 일들이겠네요?”
“……그래.”
“……하아.”
양일호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내게 물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못할 놈 같았으면 추천도 안 했어.”
“아, 씨…… 왜 하필 나예요…….”
“나는 여부만 물어보라고 그랬다.”
결국 선택은 녀석이 직접 한 것이었다. 녀석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는지, 한결 정돈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근데요.”
“어.”
“형은 왜 장관 못 하게 된 거예요?”
“나 외국 간다.”
* * *
사건의 발단은 2차 한국전쟁이 취소되면서부터였다.
거기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2차 한국전쟁은 한국, 북한, 미국이 계획한 합작이었으니까.”
일단, 각자의 입장을 보자면,
북한의 독재자 리용수는 북한을 헌납하는 대신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고,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킴과 동시에, 각각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로 했다.
그런데 북한이 인민의 장기를 팔아먹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었다.
당연히 리용수의 처우에도 악영향이 갈 수 있다는 판단이 뒤따른다. 그래서 리용수는 2차 한국전쟁을 무기한 보류했다.
한국은 그로 인한 정치적 손실을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으로 극복했다. 북한에 우회적인 선전포고를 전하며 국내 프로파간다로 써먹은 것이다.
물론 진짜로 국군이 북진할 일은 없다. 어지간하면.
즉, 문제는 미국에서 발생한다.
“원래는 2차 한국전쟁 끝나자마자 성조기 띄우고 퍼포먼스 하면서 대선 레이스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엎어져 버렸잖아.”
“……심각한 건가요?”
“그럼. 심각하지. 국뽕이 얼마나 간절한 상황인데.”
미국 정부는 업적이 절실한 상황이다.
좀비 사태 초동대처에 실패하며 중부 국토와 수천만 국민을 잃었다. 게다가 국가의 심장인 동부 해안지대에 원전이 폭발하며 방사능이 퍼졌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의 자존심을 해외에서 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양당에게 불신임 결의를 맞고 실각했던 트럼프의 재집권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솔직히 말해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한 대통령이다.
“그러니까 뭔가 보여줘야 하는데, 자꾸 실패하니까 마음이 급한 거지.”
“……이번 UN 총회가 그래서 열리는 건가요.”
“그래. 오히려 판을 키워버렸어. 언질 받은 내용에 따르면 조만간 큰 거 하나 터질 거다.”
미국이 새로운 판도를 열려고 한다.
이는 인류에 대한 사명감이나 정의감 따위가 아니라, 차기 대권을 현 부통령에게 양도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대통령의 이해관계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피채원에게 말했다.
“이번 UN 총회에 온갖 실력자들이 모일 거다. 뭘 해야 할지는 알겠지?”
“……지금 대사 진짜 악당 같으셨어요.”
“멋있지 않았냐.”
“그것까진 아니고요.”
우리는 각자 닭꼬치 하나를 오물거리며 국회공원을 어슬렁거렸다. 피채원은 이제 고공단 장관비서관이 아니라 의원실 수석보좌관이다.
“아, 너 이번에 급수 하나 떨어졌나?”
“3급이었는데 4급 됐어요.”
“월급은 얼마나 떨어졌디?”
“글쎄요. 평소 통장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너 아직도 집구석에 생필품만 구비하고 있냐?”
“호화롭게 살기에는 아직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으음. 그럴 수 있지.”
나도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나서 괜히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교통사고 당시의 기억이 순간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나저나 채원이 얘도 우울증약 꽤 오래 먹은 걸로 아는데 말이다. 구조 당시 폐인처럼 지냈던 걸 생각하면 아마 부모님 돌아가시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던 것 같다.
“…….”
나라가 아직 병들어 있었다. 국민적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가장 큰 재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에 관한 통계는 뻔했고, 예능 시청률이 폭등하고 각종 문화산업 판매량도 늘어났다. 주로 사람들의 현실도피를 돕는 쪽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현실도피를 추구한다는 건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것의 증거다. 현실이 국민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건 정치가로서 지극히 나쁜 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복지로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생활을 복구시킬 수 있을까.
당장 일제강점이나 6.25 전쟁 같은 역사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시대가 앞으로의 한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장관님.”
“어, 어?”
직업병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상념에 빠져 있던 것을 피채원이 깨웠다.
그리고 차분히 말했다.
“저,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괜찮아졌어요.”
“…….”
피채원은 내게서 뒤돌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두 가지는 명백했다.
늦가을 하늘은 푸르렀고,
녀석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가끔은 그냥 이렇게-”
그때.
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중요 인물들의 벨소리를 각기 다르게 저장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이게 양판석의 전화라는 것을 알고서 순식간에 핸드폰을 귀에 대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나를 불렀다.
[당장 지하벙커로 내려오게. 북한 국무위원장 리용수가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