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67화 (167/296)

SIDE EP - 국회의원 양일호의 기묘한 하루 (1)

가끔, 이런 꿈을 꾼다.

끔찍한 괴성에 고개를 들면, 자신은 의정부에 와 있다.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고, 비를 맞은 사람들은 검은 핏대를 세우고는 입에서 피를 뚝 뚝 흘리며 사람을 물어뜯는다.

무섭다.

이게 꿈이라는 것도 어느새 잊어버린다. 그렇게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있으면, 옆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D-06. ‘나’ 케이스. 감염형 역병종양.”

생체실험을 지휘했던 국가정보원의 요원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연인산 지하벙커에서 감염형 개체가 두 번인가 나왔었습니다.”

“저게 D-06 나 케이스가 확실하다면…….”

“저거 정신병입니다. 함부로 못 죽입니다.”

요원은 자신과 함께 전장으로 향한다. 좀비와 괴수로 가득한 도심을 뚫고, 군 지휘부에 도착해 감염자들을 사살하지 말라고 전한다.

그리고, 연인산 지하벙커에서 가져온 프로토타입 백신을 군부에 전달하고서, 소리소문없이 한승문의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숨긴다.

그리고, 내게 질문 하나를 남긴다.

“제가 악당으로 보이십니까?”

“한 명을 죽여 열 명을 살릴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누를 겁니까?”

“구체적으로는. 핵전쟁을 일으키려는 미치광이를 죽이기 위해, 버섯 캐던 북한 꼬맹이를 총으로 쏠 수 있느냐- 정도의 예시가 있겠군요.”

자신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저 어정쩡하게 굳어버린 채, 계단을 올라가는 요원의 뒷모습을 바라볼 따름이다.

아직도 그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가 올라간 계단이. 핏물로 찍은 발자국이.

그 붉은 발자국은 몇 년이 지나도 가슴에 남아 있다.

이에, 나는 늦게나마 그 질문에 답하려 입을 연다.

그리고.

“……흐아악! 흐으……! 흐으으…….”

항상 말하기 직전에 꿈에서 깬다.

* * *

양일호는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창문 색을 보니 아직 새벽인가 보다.

“…….”

식은땀을 닦으며 거칠게 숨을 고르고 있으니, 옆에서 누군가 뒤척인다.

“으음…… 뭐야……?”

이호정이다.

“……아, 미안. 깼어?”

“으응…… 또 악몽이야……?”

반쯤 잠에서 깨어난 이호정이 꿈틀거리며 몸을 얽어 왔다. 평소와 달리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이다. 턱에는 작은 흉터가 하나 있었다.

듣기로는 친아버지에게 깨진 소주병으로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하던데. 평생을 가리고 살다가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흉터라고 했다.

못된 생각이지만, 그게 너무 좋아서 흉터에 작게 입을 맞춘다.

“아……! 양일호 이 변태새끼 진짜…….”

오늘의 아침도 까칠한 욕설과 함께 시작이다.

* * *

양일호의 인생은 썩 쉬웠다. 적어도 본인은 그리 생각했다.

비록 고아원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삶이라는 게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어유…… 우리 일호는 어쩜 이리 똑똑할까?”

“우리 일호가 한국대에 붙었어요! 글쎄……!”

“법대야! 법대! 아하하하……!”

양일호는 초등학교를 순식간에 월반하며 고아원 원장의 끔찍한 총애를 받았다.

워낙 잘나가다 보니 다른 원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는 했지만, 고아원장은 벨트를 풀어 그들을 응징해 줬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남들보다 몇 년이나 일찍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스무 살에 사법고시에 붙었다. 그렇게 변호사가 됐다.

양일호의 인생은 찬사와 박수의 연속이었다. 칭찬도 오래 들으면 질린다곤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아니었다. 주변의 인정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사랑이나 사람은…….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얼굴도 꽤 잘생긴 편이라 이런저런 여자도 참 많이 만났고, 변호사가 되니 뒤늦게 찾아와 용서해달라고 빌던 부모님도 매몰차게 쫓아버렸다.

인생 별거 없더라.

사랑이라는 것도 짧은 유흥이고, 잘나가면 사람이야 저절로 꼬인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곱씹게 된 계기는, 사귀던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부모 없이 자란 놈은 안 된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위로했었다.

저보다 나은 거라고는 집안이 좋을 뿐이었던 그녀가, ‘감히’ 자신을 아랫사람으로 보고 ‘위로’했던 것이다.

고작 고아라는 이유로 말이다.

“오빠. 괜찮아? 우리 부모님이 조금 그래…… 내가 미안해. 으응? 같이 카페나 갈까? 조금 쉬다 들어가자.”

“아니. 그냥 헤어지자.”

“뭐?”

“그동안 고마웠어.”

양일호는 어째서 고아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는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고아는 사랑을 모른다? 사람 챙길 줄을 모른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놈들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

아니. 아직 사회적 지위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

어디 대학교수랍시고 사람 무시 못 할 정도로. 그 정도로 높아지면 해결되는 문제다. 아마 금배지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양일호는 주변의 반발을 만류하고 정계에 투신했다.

금배지를 달면 인생이 더 나아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사람들은, 금배지를 달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을 낫게 만들어줬다.

양일호는 세 명의 사람을 만났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이리 주십쇼. 제가 하겠습니다.”

혼자서 네 명의 동생들을 책임지던 듬직한 청년가장, 강석호.

자기 같은 빈민들이 더 나은 대접을 받게 하겠다며 정치인을 꿈꾸던 녀석이었다.

“아니, 그 또라이는 왜 애꿎은 사람한테 화풀이래? 참 나…… 재떨이 던진 거 맞았다면서요? 상처 대 봐요. 피 안 나나 보게.”

가정폭력으로 생긴 상처를 화장으로 숨기고 살던 이호정.

진보당 의원의 밑에서 일하며 가정폭력 근절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어어. 일호야. 형이다. 한우 사준다. 굴다리 밑으로 튀어와라.”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와 부모님을 잃은 한승문.

도로교통법을 바꿔 세상 모든 음주운전자와 무단횡단자를 조져서,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던 또라이였다.

“…….”

빈민, 장애인, 고아, 가정폭력 피해자.

하여튼 끼리끼리 모인다고 병신들만 모였다. 맨날 실없이 웃으며 주차장에서 컵라면이나 끓여 먹었지.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서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참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어느새 출세해야겠다는 야망이 눈 녹듯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그러다 장애인 형이 금배지를 달았다. 자신과 친구들은 그 밑으로 들어갔고 말이다.

세상이 참 쉬웠다. 그게 참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런데,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 * *

양일호는 항상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누가 그더러 무능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그는 한없이 무기력한 자신을 만났다.

“솔직히, 법을 알면 뭐해요. 법이 무너져 버렸는데.”

“…….”

“한국법대 출신 변호사 타이틀만 떼고 보니까.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양일호는 처음으로 자신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몰라 헛돌고.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을 탓하는 쪽의 인간이었다.

물론 이게 무능한 건 아니다. 세상 모두가 그랬으니까. 그러니 이건 평범하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정말 특별한 사람은 따로 있다.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꾸고. 백마를 타고 나타나 세상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초인(超人)이었다.

사실은, 정말로 모든 초인들의 위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승문이 형.”

“…….”

“저 다음 총선 안 나갈게요.”

그래서 양일호는 금배지를 내려놓기로 했다. 초상관리위원장이니 뭐니.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한 위치다.

물론 이호정이야 워낙 야망이 있는 여자였으니 원내대표도 하고. 누구랑 머리채 붙잡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지만.

“저는 권력이랑 좀 안 맞는 것 같네요…… 하하.”

“…….”

“……그냥. 그렇다구요.”

양일호는 이제 권력이 무서웠다.

비록 그가 쓴 권력이라고 해봐야 한승문이 시켜서 휘두른 게 전부였지만, 고작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들썩거렸다.

그게 정말, 무거웠다.

“……좀, 부담스럽네요.”

한승문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니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사실 도망치는 것 아닌가. 그에게 모든 부담을 던져주고 말이다.

그러나, 한참 동안 진지하게 침묵을 지키던 한승문은, 퀭한 눈매로 생긋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율무차나 한잔할까?”

“아, 네…….”

한승문은 의원실 구석에서 익숙하게 율무차를 내왔다. 분명, 차재균 국방차관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던가.

무언가. 오묘했다.

그렇게 율무차의 향을 음미하던 때였다.

“그래. 국회의원 그만두면. 무슨 일 하려고?”

“어…… 일이요?”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네가 앞으로 뭐 할건지 궁금해서.”

“……글쎄요.”

이호정은 원내대표 일로 바쁘고.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바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집에서 내조할 사람도 필요하겠지. 요즘같이 위험한 시대에 함부로 가정부를 쓸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강시호.

석호가 놔두고 간 넷째 동생도 챙겨줘야 한다. 그게 석호를 서울에 두고 온 친구로서의 도리다.

아버지라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린아이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튀어나온 대답이 이거다.

“아마…… 집안일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으음. 그래.”

“……그리고 일단은 청송 교도소를 갔다 오려고요.”

* * *

청송 교도소는 현대사의 그림자 속에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최악의 범죄자들을 수용하던 경상북도의 감옥.

한때는, 생체실험 피험자들을 조달하던 곳.

“오랜만입니다. 양일호 의원님.”

“아하하…… 오랜만이네요. 장 요원님.”

“장 소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연구소장인지 교도소장인지는 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장 소장과 도 박사가 온갖 괴수들을 연구하는, 초상관리부 산하의 극비리 연구시설이었다.

그리고 양일호는 이 시설의 존재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자, 이 시설을 가끔이나마 방문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장 소장은 반갑게 양일호를 맞이했다.

“양 의원님께서 두 달 만에 오신 거였던가요?”

“지지난 주에 치킨 사다 드렸는데…….”

“아. 그랬지요. 갇혀 살다 보니 시간 감각이 없습니다. 그때 도 박사가 목에 뼈가 걸리는 바람에 메스로 목울대를 쨌었는데 말이죠. 하하.”

“……하, 하.”

양일호가 청송 연구소를 방문하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청송연구소는 (비공식적이지만) 초상관리부의 산하기관이었고, 국회 초상관리위원회는 초상관리부를 감찰하는 위치였으며, 양일호는 초상관리위원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양일호가 청송을 방문하는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저어, 장 소장님?”

“네?”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다.

장 소장에게 묻고 싶은 질문 하나가 있다.

그때, 의정부에서의 질문. 피로 찍은 발자국. 그것이 양일호의 마음에 남아 있던 것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매번 청송을 찾아왔다. 그러나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매번 헛걸음했다.

하나,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지금에서야. 양일호는 처음으로 그에게 묻는다.

“……대체 왜 그러셨던-”

“아아-! 이게 누구야!”

“으앗……!”

양일호의 뒤편에서 괴물 하나가 나타났다.

도화지처럼 새하얀 피부.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 염색한 것처럼 기이한 머리카락.

“이번에는 치킨 안 사왔나!?”

괴물은 하얀 과학자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 말을 했다.

“도, 도 박사님……!?”

“그래! 나야!”

“그, 그 모습은, 대체, 뭔……!”

양일호는 도 박사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분명, 지난번까지만 해도 사람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었던 터이다.

비록, 커다란 입이 목과 어깨에 걸쳐 있고, 피부가 시체보다 더 창백하고, 혈관이 시퍼렇게 돋아 꿈틀대고 있어도.

그래도 성인 남성 정도로는 보이는 몰골이었던 것이다.

“이, 이게 뭔……!”

“너무 놀라지 말고 진정하시죠. 양 의원님.”

장 소장은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양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가볍게 엄지손가락으로 도 박사를 삿대질했다.

“이 친구가 요즘은 살짝 오락가락합니다.”

“뭐, 뭐가 오락가락하는데요……?”

“성별이요.”

도 박사는 멀쩡한 성인 여성이 되어 있었다.

피부색, 머리색, 내장구조, 혈관, 이빨, 시력, 근력, DNA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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