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66화 (166/296)

EP 26 - 필연적 존재 (8)

잘그락.

반짝거리는 차키가 손아귀에 잡혔다. 천 사장이 타던 중고차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한 것이다.

제조사에서 측정한 정가에 가까웠으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때보다 물가가 7배 정도 올랐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흠. 흠.”

살면서 이런 차를 몰아볼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오죽 좋았으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보다 못한 천 사장이 툭 내뱉었다.

“……그거 가지고 이렇게 좋아하시니 조금 뻘쭘하네요.”

“재벌이 서민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두운 밤.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천 사장의 집에 와 있었다.

아파트 꼭대기의 펜트하우스였다.

“…….”

남향南向 창문 너머로 부산 밤바다가 출렁였지만, 나는 정 반대편의 풍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찬란한 도시의 야경.

거기에 쓰이는 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와 빛을 보고 달려드는 괴수들을 막아낼 수 있는 철저한 방공망.

수많은 도로에 흘러가는 빛의 물결과, 그를 이루며 제각각 빛나는 수많은 차량들.

이는 사람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그리 헤벌쭉 웃어요?”

“재벌집에서 먹는 저녁밥은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 중입니다.”

“짜파게티 맛이야 거기서 거기일 텐데…….”

천 사장은 실없는 사람을 본다는 둥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여상하게 중얼거렸다.

“하여튼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네?”

“홍 헌터 입원한 거 들으셨죠?”

“아, 예. 영양실조라면서요. 퇴원은 언제 하신답니까?”

“포션 하나 먹고 벌써 퇴원했어요. 당분간 여행이나 하겠다는데요. 어차피 순간이동도 쓸 줄 아니까…….”

“아, 저번에 추가각성했던가요? 아니, 이걸 추가각성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아무튼. 외국만 나가지 말라 그러십쇼. 어차피 나라에서 통제야 못 합니다만은…….”

초상능력도 보면 참 적응 안 된다. 육체강화 능력자가 체내마력을 조작해서 검기를 뿜어대지를 않나. 화염술사가 몸을 화염으로 바꿔서 축지법을 쓰지를 않나.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한 사람이 극악한 확률로 괴수화하고. 하필 그 괴수가 감염형 개체라 도시 하나가 쑥대밭이 되는 일도 있었다.

홍콩이 그랬다.

가족을 잃은 시위대가 각성해서 감염폭발이 일어났다. 워낙 원망을 품은 사람이 각성해서 그렇다는 논문도 있지만. 이 사회는 언제든지 멸망할 수 있는 사회였다.

아무튼 나는 마력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망가뜨린다.

어제 나온 논문이 오늘 엎어지고, 이름조차 규정되지 않은 수많은 현상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걱정뿐이었다.

권력을 아무리 가져도, 사람은 특별해지지 않더라.

나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게 평범하게 한탄했다.

“하여튼…… 홍선아 씨도 금방 회복되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조만간 랭킹 시스템 적용될 텐데 아마 2위가 유력해요. 체내마력을 깡으로 재는 방식인지라…….”

남들이 하나하나 때려잡을 시간에 홍선아는 숲 하나를 태워버린다. 덕분에 다른 헌터들보다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다.

이는 감지윤도 마찬가지다. 중형 길드 하나가 단체로 달라붙어 잡아야 할 괴수를, 혼자 덜컥 잡아서 그 커다란 마석을 흡수해 버리니, 성장속도가 비교가 될 리 있나.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다. 그리고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건 다른 말로 ‘불안정한 세상’이라는 뜻도 된다.

강해질 헌터는 끝도 없이 강해져서 국가에 위협이 되고, 약한 헌터는 강해지려고 들지를 않아서 국가의 기생충이 된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을 쫓은 결과다. 그리고 나는 내 이익을 위해 그들을 규제하려고 한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초상사회니 뭐니. 초인들의 세상이라고 말만 했지, 그 어디에 초인이 있단 말인가?

초인들의 세상에는 초인이 없다.

모두가 각자의 이익을 쫓는 범인凡人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누구를 부르는가?

백마 탄 초인은 찾아올 수 있는가?

그리 생각하며 넋 놓고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다가온 천 사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나는 곧장 답했다.

“짜파게티 언제 나옵니까?”

“……하아.”

천 사장은 시무룩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가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힘없이 툭 툭 의자를 건드렸다.

“와서 밥이나 드세요…….”

“넵.”

식탁으로 가보니 냄비 하나만 턱 하니 올려져 있다. 고슬고슬한 짜파게티다. 평범한 짜파게티였다.

혹시 면발 밑에 꽃등심을 넣어놨나 싶어 들춰보니 아무것도 없다.

“……지금 뭐 하세요?”

“혹시 트러플 같은 거 안 넣으셨나 싶어서…….”

“짜파게티에 송로버섯을 왜 넣어요……?”

“재벌이니까……?”

“글쎄요…….”

천 사장은 모처럼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바깥이 아니라 집에서 봐서 그런가,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사람들이 늘 이상한 오해를 하더라구요. 돈 많은 사람들은 라면에도 금가루 뿌려먹는 줄 아는데. 우리도 별 거 없어요. 귀찮으면 라면 끓이고. 입맛 돌면 치킨 시키고, 아니면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먹고…….”

니네 집 냉장고에 들어있는 게 치킨너겟이 아니라 안심 스테이크 아니냐고 묻기에는 너무 진지한 분위기였다.

천 사장은 이미 와인 한 사발 걸친 모양인지, 살짝 몽롱한 분위기로 투덜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돈이 많든 적든…… 결국 뚜껑 열면 평범한 사람이에요. 게다가 요즘은 다 물려받아서 재벌 된 사람들뿐이지. 정주영이나 이건희 같은 사람은 우리 세대에 얼마 없잖아요……?”

“으음. 부자라고 특별한 건 아니라는 겁니까?”

“부자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그래요.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쁘고, 돈 보면 흔들리고, 맛있는 거 좋아하고…….”

그녀는 얼핏 짜증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진 다 그랬단 말이죠. 조금 유치한 소리긴 한데. 아무튼.”

사람이란 게 전부 거기서 거기라.

퍽 일리 있는 소리였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재벌도 집에서는 편한 박스티를 입고 있었으니까.

물론 저것도 알고 보면 몇백만 원짜리겠지만, 원래 박스티란 게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다만 명품 티셔츠는 동대문 티셔츠보다 수천 배는 비싸겠지만, 달리 말하면 가격 빼고는 그닥 다를 게 없다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살짝 재벌가 아가씨의 잔투정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는 생각이었다.

다만, 그 재벌이 또라이 경제사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때문에 나는 천 사장의 말을 경청했다.

그녀가 내게 묻는다.

“……자기는 내일 뭐할 거예요?”

“글쎄요. 오랜만에 국회도 나가 보고. 의정활동이나 좀 하고. 악플 보면서 스트레스도 살짝 받을 예정입니다만.”

“그러면 앞으로는 뭐할 건데요?”

“…….”

앞으로의 일정이라.

글쎄다.

한국인 헌터 장기 털어서 각성제 비법 얻으려고 한 개새끼들 잡아 조지고. 다시 세계정복 노리는 미국의 야망도 좀 브레이크를 걸고.

야쿠자와 정부군, 그리고 내전 때문에 죽어나는 시민군들까지. 삼국지 찍고 있는 일본 정국에도 조금씩 개입을 시작할 때도 됐고.

마석경제권과 석유경제권으로 나뉘어 대립하려는 국제정세와, 원옥분과 유재경으로 대립하는 국내정세를 보며 줄타기도 하고.

이 복잡한 세상을 풀어나가는 게 정치인의 역할 아니겠는가.

때문에 나는 사람 좋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앞으로도 정치해야죠. 조금씩 조금씩……. 세상 고쳐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소년병은 조금 아스트랄한 아이디어 같은데.”

쨍그랑.

들고 있던 젓가락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식탁에 떨어졌다.

나는 사람 좋게 웃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고, 천 사장은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치켜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상스럽게.

“뭘 그리 놀라세요? 추경안 보니까 대충 알겠던데요. 정부에 꽂아놓은 빨대도 있고.”

“……그걸 대충 알아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휴, 깜짝 놀랐네요.”

“아핫……! 나는 자기 이렇게 깜짝 깜짝 놀래킬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

“술 드셨습니까?”

“아까 조금……?”

그녀는 비척비척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와인잔에 복분자를 두 잔 따랐다.

“약주 하실래요……?”

“……공적인 자리에서 술은 삼가는 편이라.”

“공적인 자리 아니니까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그녀는 희멀거니 미소 지으며 내게 술잔을 건넸다.

하여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 사람인지. 도무지 속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리 생각하며 그녀가 건넨 술잔을 받을 무렵, 천 사장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하여튼. 속을 알 수가 없어…….”

“…….”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

내가 한 생각이 천 사장의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그녀를 관찰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녀가 내 생각을 읽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초능력으로는 말이다.

즉,

“자기야. 머리 한 번만 열어주면 안 돼요?”

“…….”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관님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고아들한테 각성제 주사하고.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서. 공무원으로 써먹겠다는 거요.”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주류 헌터들이야 장관님 친구들 아닌가? 국회에 퇴역헌터들 데려다 앉힌 사람이 누군데. 그냥 유착해서 좋게좋게 하면 안 되나……?”

“…….”

“이번에 갈아엎은 것 때문에 아이기스 주가가 반 토막이 났어요. 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야. 다른 데는 아예 누구 잡혀 들어가고 막 그랬잖아. 헌터 업계에서 지금 반쯤 원수가 되셨다니까요……?”

그녀는 나를 보며 한탄했다.

“정치인이 이권을 따먹을 줄 알아야지. 왜 자꾸 적을 만들고 다니시냐고요……. 저야 성격이 너무 좋아서 일단 만나는 주는데…….”

“예?”

“아무튼. 자기 하는 거 보면…….”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누군가를 비웃는 듯했다.

나를 비웃는 건지 자신을 비웃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였으면 그렇게 안 살아.”

침묵이 이어졌고. 그녀는 와인잔을 소주잔처럼 기울이고서는, 다분히 몽롱해보이는 미소로 단호히 선포했다.

“그러니까- 이거 하나만 딱 물어볼게요. 이것만 솔직히 답해주면, 앞으로 계획에 적극 협조할 의향도 있어. 이거 완전 호구 같은 딜 아닌가?”

“……뭔데 이렇게 사람을 물고 늘어집니까?”

“왜 그러고 살아요?”

“…….”

앞 뒤 맥락이 생략된 질문이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 질문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한쪽 창문에 보이는 찬란한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야경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과, 복잡미묘한 사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대쪽 창문에 보이는 어두운 바다를 보며, 그 속에 꿈틀대고 있을 거대한 괴물들과, 무궁무진한 위협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양쪽 창문이 모두 들여다보였다.

즉, 나는 그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선을 그었다.

야만과 문명을 분리시켰다.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지켰다. 다만, 아직도 두 세계 사이에서 헛돌고 있다. 결국은 얇은 선 하나로 나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뭐 딱히 대단한 신념을 가진 건 아닙니다.”

그냥.

“……정치인들 하는 짓이 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EP 26

필연적 존재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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