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 - 필연적 존재 (6)
검은 에쿠스가 부드럽게 도로를 가로질렀다.
차를 몰던 유재경은 문득 생각했다.
출근길이 낯설다고.
“…….”
물론 가로수는 어제와 다르지 않고, 도시는 어제와 같이 삭막하다. 그저 매일 지나오던 출근길일 따름이다.
그런데 왜 출근길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정부청사 주차장 입구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똑- 똑-
총화기로 무장한 경비원이 운전석 유리창에 노크했다.
“검은 에쿠스 차량, 방문 요건 말씀해 주십쇼.”
“어어…… 출근했습니다.”
갑작스레 일그러지는 경비원의 얼굴.
“……하하. 직급을 말씀하시던가 공무원증을 주셔야죠. 뭔 출근입니까. 출근 처음 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공무원증 주십쇼.”
“어, 음. 아무래도 놓고 온 것 같은데.”
“거, 참…….”
경비원의 말투가 불량스럽게 변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오해를 산 모양이다. 경비원은 주차공간 훔치러 온 주민을 타이르듯 훈계를 시작했다.
“아저씨. 요즘 공무원 사칭하시면 큰-일 납니다. 여기 고위공무원들 전용 주차장이에요. 주차공간 없는 건 이해하는데, 자꾸 이러시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까요?”
옛날처럼 공무원들 주차장에 은근슬쩍 갖다대도 되는 시절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귀찮은 듯 중얼거린 경비원이 수첩을 꺼내들었다.
“쯧. 원래는 체포해야 하는데. 일단 이름만 적어 놓겠습니다. 민증이나 면허증 주시고…….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유재경 국무총리입니다.”
“유…… 재…… 뭐요?”
“경이요.”
* * *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국무총리가 공무원 주차장 들어가는 법을 모르다니…….’
정부청사 로비를 걷던 유재경의 입에서 작은 실소가 새어 나왔다. 매번 운전기사에게 주차를 맡기니 발생한 희극이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운전대를 직접 잡아본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아.”
그제서야 유재경은 출근길이 낯설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출근길에는 보통 관용차 뒷좌석에 앉아 괜히 가오나 잡았지, 직접 운전해서 출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잠들기 직전 시계 소리에 귀가 트이듯, 사방에서 들려오는 백색 소음이 뇌리에 와 닿았다.
“과장님! 서킷브레이크 터졌습니다! GS가 또 흔들면서 풋질하는 것 같은데……!”
“어, 자기야. 오늘도 야근일 것 같아서…… 으, 으응. 막 출근할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데. 아무리 봐도 오늘 끝낼 양이 아니야…….”
“네, 엠바고 풀리자마자 기사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단 디도스로 서버 닫아버리는 중이고, 알바 풀어서 지워야 할 것 같은 사안이 몇 개…….”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각자의 삶을 불태우고 있었으며, 각자의 책임을 치열하게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하가 아니었다. 사회의 부품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일 뿐이다.
젊은 날의 자신처럼 말이다.
“…….”
참으로 당연한 것을 낯설게 느끼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문득, 유재경 총리는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펜대 자국을 따라 생긴 굳은살이 울긋불긋 지워지지 않고 있다.
“…….”
그래.
운전대를 잡은 것이 대체 얼마 만이었던가.
출근길이 새로웠던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바뀐 탓일 터이다.
* * *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되었다. 사실상 숙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회지도층의 상당수를 믹서기에 갈아버리는 짓이었으니까.
국군이 장전읍을 점령함에 따라 수많은 증거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대법원 문짝이 활짝 열리자 ‘4대 권력기관’이라 불리는 막강한 사정기관들이 칼을 뽑았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재계의 심장에 비수가 박힐수록 언론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대통령의 연설에 고양된 여론은 모든 기득권층의 파멸을 요구했다.
남한의 대격변이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해지자 코스피는 곤두박질쳤고, 눈 뒤집힌 권력자들의 진흙탕 싸움이 연일 이어졌다.
그 시점에서 유재경 총리가 개입했다.
그는 국정의 운전대를 잡았고, 여론에 역행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망나니의 칼자루를 내려놓고, 수술용 메스를 들었다.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인사혁신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국무조정실의 주도 하에 날카로운 수술이 시작되었다.
배상권고, 전속고발, 행정심판, 인사발령.
고삐 풀린 국무총리의 권능이 깔끔하게 재계와 공직사회를 제압했다. 사회 전반을 들어내는 대수술이었지만 반작용은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유재경이라는 사람이 이 바닥의 생리에 능통했기 때문이었다.
공무원이 귀한 세상이라곤 하나,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많다. 덕분에 경징계만 떨어져도 주변에서 그에게 사표를 받아냈다.
재벌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어차피 손익에 따라 움직인다. 덕분에 가벼운 배상권고만 떨어져도 개떼처럼 달려들어 서로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유재경은 그렇게 ’가볍고’ ‘상대적인’ 처벌을 통해 적들의 내분을 유도하고서는, 금리와 주식시장을 조작하며 내분을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벌어진 틈으로 검찰을 쑤셔 넣으며 몸통을 끄집어냈다. 그 결과, 재벌 총수급도 수사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일부 현명한 이들은 내분을 멈추고 뭉쳐야 한다 외쳤지만, 한승문의 사주를 받은 GS 그룹이 폭락한 주식을 게걸스럽게 핥아먹고 있었으니, 대기업들은 강제적인 치킨게임을 시작했다.
그렇게.
광풍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수면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폭풍이 바다를 뒤엎었다. 모든 권력자의 치부가 세상에 밝혀졌고, 수면 아래서 움직이던 이들 또한 치열한 싸움에 휘말렸다.
그러나.
수면 밑. 그보다 더 아래.
가장 깊은 진흙 속에서 움직이는 잠어潛魚도 있는 법이다.
* * *
“한승문은 안 온대?”
“몰라요. 벌써 몇 주째 잠수를 타는지…….”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국회의사당을 가득 채웠다.
개문開門 이후. 국회에 기자들의 출입은 그간 강력히 통제되었지만, 오늘은 모처럼 예전과 같이 시끌벅적한 모습을 되찾았다.
대통령이 국회에 왔기 때문이다.
“KBS 한석규입니다! 양판석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논평을 내셨는데. 의견 철회할 생각 있으십니까!?”
“어허, 제가 언제 각하의 명령이 부적절하다고 표현을 했습니까? 다소 조심스럽다는 거지요. 의원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일단 반대가 아니라 우려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양판석은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기로 했다.
오늘 국회에서 ‘행정대집행 긴급명령’에 대한 승인투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긴급명령’은 북한에 대한 간접적인 선전포고였다.
결국, 국회에서 이를 취소시켜버린다면 그만큼 국격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행여 반대표가 1표라도 나온다면 정말로 모양 빠지는 일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찬성이 나오기를 원했고, 그를 유도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을 끌고 왔다.
문제는, 오늘 처리되는 사안이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대한 사후승인’ 하나가 아니라는 거였다.
강력한 정부의 기세를 타고 온갖 법안이 물밀듯 밀려들었고, 그중엔 ‘군산분리법‘이라는 최악의 폭탄이 섞여 있었다.
이에,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전회의라도 하는 것처럼 쑥덕거렸다.
“……일단 행정대집행은 무조건 승인해야 돼. 여론을 봐서라도 말이야. 으응? 근데 군산분리법은 절대 안 된다고!”
“그게 말처럼 됩니까? 신수광이 쪽이 이미 손 털었어요. 박 의원님도 이만 하세요!”
“허! 자네 지금 고작 사위가 검찰 잡혀들어갔다고 줏대없이 구는 건가? 정치 그렇게 하면 못 쓰는 거야 이 사람아……! 크게 보자고 좀!”
수많은 정치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그건 이호정과 양일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까드득-
이호정이 이를 갈았다. 그리고 음습하게 중얼거렸다.
“……이번에 개겼던 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에헤이. 진정하라니까…….”
“공천학살이 뭔지 보여주지. 싹 다 컷오프야. 다 뒤졌어. 어디 시발 우리를 건드리고서 입을 닦으려 그래?”
“공천학살 잘못하면 이미지 망쳐……. 신수광 쪽 아예 분당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그냥 적당히 받아먹고 끝내지 그래……?”
“……모기보다 기생충이 무서운 법이다.”
머리를 맞댄 양일호와 이호정이 쑥덕거리며 작전회의를 계속하고, 그걸 찍는 YTN 카메라는 유튜브에 ‘다정한 의원커플 시리즈’를 올릴 생각에 희희낙락하는 와중.
“아이고! 원내대표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신수광이 천연덕스레 웃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호정도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사근사근하게 대꾸했다.
“어머……! 오랜만이네요? 비대위원장님도 잘 지내셨지요?”
“하하! 못 지낼 거야 없지요!”
이호정과 신수광은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려 들던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객관적으로 이 상황의 승자는 이호정이었지만, 신수광의 표정에는 전혀 낙담한 기색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수광은 항상 수도권 난민들의 대변자였고, 난민들은 대부분 땅값이 싼 국경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번에 전쟁이 난다면 가장 위험한 곳이 국경 인근이기 때문이었다.
즉, 전체적인 여론은 양판석을 위시한 한승문 계열을 지지하고 있었으나, 신수광은 코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
“…….”
덕분에 이 불편한 인연은 아직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고, 두 사람의 회동에 원내의 모든 카메라들이 국민당의 두 머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먼저, 신수광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문을 텄다.
“아이고. 요전에 우리 사무총장님이 원내대표실에서 사고 치셨다면서요? 제가 사과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말인즉슨, 사람 보내서 원내대표실 대판 엎어놓긴 했는데. 자기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하! 당론이 엇갈리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뭐.”
이에 이호정은 ‘무슨 그 따위 말씀을 하세요?’라고 답했으나, 신수광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우리 원내대표님 말씀처럼 당론이 잘 합쳐지면 걱정이 없을 텐데요. 다방면으로 지혜를 잘 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죠. 당연히.”
“피차 유감스러울만한 일은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수틀리면 당이고 나발이고 집단으로 탈당하겠다는 뜻이었다.
“……!”
이호정이 흠칫 몸을 떨었다.
대규모 탈당이 성사되면 당연히 이호정에게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한승문한테 물려받은 것도 똑바로 못 지키는 정치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는 이호정이 가진 자격지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
이에 그녀의 낯빛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고, 결국, 참다 못한 양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바로 그때였다.
[……!]
멀리서부터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상당히 커다란 소음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는 우습게도 담임선생님이 온다는 소리를 들은 학생처럼 자리에 돌아가 앉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호정과 양일호, 두 사람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서로를 바라볼 따름이다.
그것은 아마, 이 요란한 소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
아우성은 잦아들지 않고 점점 거세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기자들을 몰고 이곳으로 걸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국회는 무엇인지 모를 긴장감에 빠져들었고, 신수광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자리로 돌아갔다.
비단 신수광뿐만이 아니었다. 국회를 차지한 태반이 초상관리부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이들이었으니, 수많은 의원들은 반쯤 겁에 질려 자리로 돌아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결국, 국회의사당의 맨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국회는 침묵으로 그를 맞이했다.
“…….”
툭.
툭.
투욱.
지팡이 찍으며 계단 내려오는 소리.
이호정과 양일호. 두 사람 뒤에 멈췄다.
* * *
그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대통령 긴급명령’에 대한 승인이 의결되었고,
‘한승문법’이라고 불리던 ‘군산분리법’이 격렬한 반대 끝에 무산되었다.
그 대신,
‘아동노동법 연령제한 완화 개정안’
‘공립보육원 확대와 운영구조 개편안’
‘3세대 헌터 육성지원에 관한 추가경정예산안’
등이 통과되었는데,
함께 통과된 법안이 수백 개가 넘었던지라 국민적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이후 정계, 언론, 재계는 군산분리법을 저지했다는 사실 하나에 기뻐하며 한승문을 조롱했고,
일주일 후. 한승문이 장관에서 사퇴하며 크나큰 역풍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