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61화 (161/296)

EP 26 - 필연적 존재 (3)

초상관리부의 한승문 장관은 기습적으로 ‘군산분리법’을 발의했다. 군사기업과 산업자본의 유착을 막아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모든 길드들에 대한 감찰권을 정부가 가져가겠다는 것이었고, 이는 곧 헌터업계 전반에 대한 정부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

기업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 * *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참담한 행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이에 ‘한승문법’의 즉각적인 철회와 더불어, 한승문 장관의 사죄를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재벌들의 위상이 옛날만 못하다곤 하지만 재벌은 재벌이었다. 여전히 언론을 지배하는 건 광고료를 대주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군산분리법에 ‘한승문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한승문 장관과 한승문법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기관이 일제히 포문을 열자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움직이기 시작한 민심을 따라 정치인들이 움직였다.

“시장경제에 정부가 다소 지나치게 개입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침체될 수도 있고-”

“사실 모든 민간군사기업에 대한 감사권을 정부가 가지겠다는 게, 조금 현실성 없는 정책인 건 맞습니다. 상법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건 한승문 장관이 명분 없는 규제를 시도한다는 거죠. PMC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규제를 당해야 하는지-”

물론 노련한 정치인들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지만, 아직 존재감 없는 정치인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원래 덩치 큰 사람과 싸울수록 본인의 체급 또한 올라가는 것이 이 바닥 생리였으니까.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주목이라는 걸 받아본 정치신인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한승문 장관이 뭐 대통령이라도 됩니까? 대체 무슨 자격으로 기업들의 정당한 경제활동을 방해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합리적이지, 못한, 정책이죠. 개인적으로는 한승문 장관이 전쟁 후유증 때문에 조금 예민해진 게 아닌가…….”

“치안관이라는 사병조직을 보유하지를 않나! 여고생을 개인비서로 두지를 않나! 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들을 손아귀에 쥐려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동지 여러분. 독재자가 되려 하는 전쟁영웅의 행패를 저는 더 이상 용납할 수가-”

그렇게, 수많은 정치인들이 ‘내가 한승문의 라이벌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진정한 라이벌로 인정받기 위한 잔챙이들의 경쟁이 심해질수록, 한승문에 대한 비판수위는 점점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가장 심한 여파를 받고 있는 건, 한승문의 이름을 달고 정치를 하던 이호정 국민당 원내대표였다.

“당장 해명하세요!”

“…….”

이호정은 엉망이 된 원내대표실에서 수십 명의 기자와 국회의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허나,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표독스런 눈빛은 여전히 예기를 잃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중년의 국회의원이 격렬히 항의했다.

“한승문 장관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을 올려놓은 겁니까!? 예!? 그리고! 그-런 법안을 냈으면 국회에 나오던가 해야지! 이게 뭔 코빼기도 안 보이고! 뭐하는 짓이에요 이게!”

“그렇다고 자당 원내대표실 문짝을 때려 부숴요? 당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아니!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고! 사과를 못 하겠으면 사퇴를 해야지!”

“사퇴요? 하……! 나, 참. 해당행위도 정도가 있지. 적당히 좀 하시죠? 당장 안 나가면 제명당해도 상관없다는 걸로 알겠습니다.”

“제, 제명……?! 허! 갈 때까지 가보자는 거야 뭐야!? 한승문 장관 믿고 그렇게 막 나가도 되는 겁니까!?”

“자신이고 뭐고, 원내대표실에서 몽니 부리지 말고 좀 나가란 말입니다! 금뱃지 달고 안 창피해요? 이게 동네 깡패도 아니고 뭐하는 짓들이야 대체…….”

이호정 원내대표는 강경한 태도와 소소한 망언, 그리고 조금의 싸가지를 섞어가며 비난여론을 고조시켰고, 이는 정계가 재계의 통제를 벗어나 필요 이상의 공세를 가하도록 유도했다.

그 와중, 양일호 초관위원장은 한승문의 충성세력을 규합하며 차근차근 ‘군산분리법’의 입법 절차를 밟아나갔다. 여야를 막론하고 우호지분이 적지 않았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사태는 그렇게 누군가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걷잡을 수 없는 해일이 정계를 휩쓸었다.

[유럽 헌터에겐 자유를, 한국 헌터에겐 족쇄를. 韓 장관의 이중잣대.]

[한승문 장관과 미성년자 여비서의 ‘부적절한 관계’. 사실인가?]

[정부 지지율 40%대까지 추락!]

[추악한 전쟁영웅의 실체. 과장된 업적의 역사.]

[헌터 협회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나? 초상사회의 어두운 민낯.]

그리고,

한승문에 대한 반발이 한계까지 다다랐을 무렵.

[……오늘 아침 7시 경. 검찰이 지난 5월 체포된 민정기 헌터에 대한 재수사에 나섰습니다. 담당검사인 대검 이능수사부 박윤선 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옥분이 검찰을 움직였다.

* * *

헌터 하나가 북한 아동 7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대놓고 언론에다 자신이 쾌락 살인마라 주장하던 인물이었고, 국민의 공분을 산 끝에 빠르게 총살되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재벌의 의뢰를 받은 인간사냥꾼. 소속 PMC의 소유주에게 의뢰를 받은 살인 청부업자였다.

즉, 그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한승문이 장기밀매 커넥션을 건드릴 거라는 신호였고, 그건 정재계를 비롯한 비난세력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한 장관님!”

제주도지사 청중엽이 한승문을 찾아온 게 그 증거다.

청중엽은 늘 그렇듯 호탕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지만, 거무죽죽하게 물든 낯빛에서 그가 감당하고 있는 스트레스가 짐작되었다.

장기밀매는 거진 특권층이 연루된 일이었고, 특권층은 대부분 제주도에 거주했으며,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은 제주도지사의 책임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제주도지사가 반쯤 로비스트 노릇을 하든지 말든지, 절름발이 정치인은 지팡이를 잠시 내려놓고 환히 웃으며 그의 악수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만나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청 지사님.”

“하하하! 괜찮습니다! 대화를 하게 된 것 자체가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서요. 이번 기회에 충분히 서로 이해를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 네. 앉으실까요?”

외딴 산골의 한정식집.

손님은 고작 두 명의 정치인과, 그들을 따라온 십수 명의 경호원뿐이다.

청중엽은 웃는 얼굴로 한승문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사를 더했다.

“아, 여도연 치안관님 아니십니까? 말씀은 익히 들었습니다. 유럽의 영웅이시라고요. 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제주도지사, 청중엽입니다.”

“…….”

제주도지사가 재벌의 이권을 위해 고개를 넙죽 숙인다는 점에서 여도연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를 이토록 비참하게 몰아세운 게 자신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여도연은 무거운 압박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인상을 찌푸렸지만, 청중엽 지사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미소지으며 말문을 텄다.

“이야…… 이거.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만. 뭣 모르는 친구들이 조금 선을 넘어버린 모양이라서요. 하하!”

“선이라……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군요.”

“이 바닥 사람들이 항상 유념하는 말이죠.”

선을 넘었다는 게 장기밀매를 한 사람들인지, 혹은 한승문에게 과도한 공세를 가한 정치꾼들인지, 그도 아니면 장기밀매를 파헤치기 시작한 한승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각자에겐 각자의 선이 있었고, 지금은 서로의 선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순간이었으니까.

이에 청중엽이 조심스레 말문을 텄다.

“우선…… 이번 정책에 조금 과도하게 반응했던 점은, 재계에서도 조금씩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슬슬 쫄린다고 한다.

“……하긴, 섭섭해하실 만도 했지요.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친구들도 좋아하겠군요.”

청중엽은 매끄러운 언변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듣기 좋은 중저음이 부드럽게 내리깔린다.

“이런 양상의…… 예기치 못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재계에서 먼저 크게 양보할 의향을 밝혔습니다.”

“그거 참 감사한 말씀이군요.”

“하하하! 국익을 위하는 건 모두가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단지 그 방향이 다를 뿐이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 바닥이 얼마나 추악한지 아는 사람들의 대화였지만, 개소리도 좋게좋게 말하니 언뜻 좋게 들렸다.

여도연은 원인 모를 이질감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긁적이며, 이런 대화에 자연스레 어울리는 동생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참,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장관님의 정책적인 방향을 허심탄회하게 제시해 주신다면, 상호간의 대화와 의논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게 현 재계의 의견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타협을 하자는 거군요?”

청중엽이 싱긋 웃었다.

“피를 보기에는 서로가 잃을 게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좋습니다!”

그가 슬며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수많은 재벌들의 서명이 담긴 각서였다.

“모든 대기업 PMC가 군산분리법에 동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건은요?”

“몇 가지 선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들이 제시한 선은 충분히 노골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책임경영, 시장균형, 경영유동성.

즉, 족벌경영체제를 유지하고, 포션 가격과 헌터연봉을 비롯한 각종 담합, 그리고 계열사 간 불공정거래를 어느 정도 용인한다면 정부규제를 수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진짜 중요한 밥그릇만 안 건드리면 정부 자존심을 한껏 채워주고, 동시에 세금도 얼마든지 내주겠다는 뜻이었으니, 나름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 이 각서에 명시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장기밀매도. 여기까지만 하자. 이겁니까?”

“이런 말 하긴 조금 민망하지만…… 생계형 아닙니까?”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장기밀매 암시장을 형성한 건 북한 정권이었고, 남한 재벌은 그 시장에 진출한 것이었으니까.

가족을 위해 사람은 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하나, 그를 용인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이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판단하는 문제다. 가족을 위해 다른 이를 해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를 용납할 수 있는가.

청중엽이 건넨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장관님도 아시다시피 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다친 사람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물론 장기밀매야 끔찍한 짓이지요. 그런데 죽어가는 가족을 방치하는 건 그보다 더 끔찍할 겁니다.”

“…….”

“필요에 의한 악이라는 겁니다. 장관님. 필요악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마냥 나쁜놈이 아니라는 걸 아시는 분 아닙니까? 그 사람들도 나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겁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차선책이다. 그러나 차선책이란 것은 대개 시궁창 속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리낌 없이 시궁창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장관님.”

“…….”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선이 있는 법입니다. 여기서 더 선을 넘으면, 그건 도덕적인 자기위로 이상이 못 됩니다.”

그러니.

참된 정치인의 덕목이란 두 가지였다.

거리낌 없이 시궁창에 들어갈 줄 알거나,

“……글쎄요.”

혹은, 시궁창 속에 들어가 싸울 각오를 하거나.

“나는 선을 긋는 사람입니다.”

* * *

새벽 2시의 고가도로.

혜성처럼 스쳐가는 노란 가로등 불빛이 선을 그리고, 휘영청 밝은 달빛이 낙동강 수면 위로 넘실거리는데, 여도연의 시선은 운전석에 앉은 동생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빠꾸 없이 들이박은 건 좋은데. 대책은 있냐?”

“드래곤볼을 모으는 건 어떨까.”

“미친 새낀가…….”

여도연은 불안한 심정을 가벼운 미소로 숨겼다.

“…….”

더러운 현실에 맞서는 건 옳다. 모순과 병폐는 마땅히 깨져야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간다면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개인은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악인은 만화 속 악역처럼 멍청하지 않다.

직접 해봐서 안다. 여도연의 인생은 대부분이 무언가에 대한 반항이었고, 반항을 포기한 지금에서야 알게 된 무언가가 있었다.

혼자선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혼자서 바꾸는 세상이 모두를 위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한승문은 그걸 해내는 중이다.

‘이걸 기특해해야 하나 걱정해야 하나…….’

그렇기에 여도연이 한승문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여보세요? 아, 네! 총리님. 무슨 일이십니까?”

-……한 장관. 잠깐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어유, 그럼요! 예. 어디서 뵐까요?”

악랄한 도미노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