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 사상 최강의 감찰관 (2)
-……한승문 장관님.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국가정보원 4차장. 김현미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 국가정보원.
한때는 중정과 안기부라는 이름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댓글알바, 코렁탕, 마티즈 읍읍 어쩌니 하며 전 국민의 총애를 받는 곳이다.
물론 국정원이 정계에 자꾸 줄을 대려고 하는 이유는 그쪽 업계의 열악한 후생복리와 업무환경에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아무튼 국정원은 참 오만한 조직이었다.
“아, 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원래 조직이라는 게 하는 일이 특수하면 폐쇄적으로 변하고, 폐쇄적인 조직은 배타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게 조직이 전투적으로 변하는 이유다.
그리고 국정원은 극도로 특수하고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전투를 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그런 이유로 보통 국정원 쪽의 연락은 인사치레 같은 건 싹 생략하고. 용건만 간략히 보고하고서 요구사항을 대뜸 들이미는 식이었다.
즉,
자존심 빼면 시체인 놈들이 어수룩하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그…….
나는 이번 사안이 꽤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북한에서 사람 하나가 죽었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만난 국정원 차장은 대뜸 이력서 한 장을 내밀었다.
“오명훈. 32세. 백호 작전을 준비하던 우리 측 요원이고, 지난밤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흐음…….”
애석하게도, 국정원 요원 죽어나가는 거야 예삿일이지만, 북한에서 죽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한과의 관계는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대북관계의 변화만으로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줄기를 짚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북한과 가장 친근한 시점이었다. 우리가 북한을 반쯤 먹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획된 게 올해 하반기에 개시될 ‘백호 작전’.
즉, 2차 한국전쟁이다.
“…….”
전쟁은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
인민군의 백령도 무단점거, 속초 잠수정 침투, 파주 비무장지대 미사일 투하까지. 이게 모두 그 포석이었다.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거다.
그리고 전쟁이 터진다면 국군이 순식간에 북한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북한을 다스리던 리용수 국무위원장은 눈 깜짝할 새 체포되어 국제재판소로 이송될 것이다.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사형당한 뒤 알레스카의 호화저택에서 여생을 보내겠지. 독재자는 은퇴 후 안전을 보장받는 것을 대가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다.
자기도 북한이 오래 유지되지 못할 국가라는 것을 알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
그리고 종전 시점에서 나는 장관 직무를 마치고 의원으로 돌아가 다음 선거를 준비할 것이며,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물러나고 펜스 부통령이 다음 대권을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니 2차 한국전쟁이란 무엇인가?
짜고 치는 전쟁이다.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전쟁.
북한의 알짜배기만을 가져오는 전쟁.
독재자에게는 평안한 노후를 제공하는 전쟁.
총알 대신 정치공학과 이해타산이 오가는 무혈전쟁.
대충 그런 전쟁이었다.
우리는 그런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도 대략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오명훈 요원은 평범한 헌터로 가장해 야산에서 길을 잃었다가 인민군에게 사흘 정도 억류된 뒤 풀려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시체로 발견된 겁니까?”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순조롭게 억류된 것으로 알고 있었건만, 그쪽에서는 오명훈 헌터를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수색 결과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요?”
“시체 훼손이 심각해서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안타깝지만 뻔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괴수한테 죽은 거 아닙니까?”
한 사람의 죽음은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것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던 사람의 비극은 정말 유감스러운 소식이지만,
그게 내 귀에 전달될 정도로 중요한 소식은 아니었다. 사람이 괴수에게 죽었다는 건 이제 흔한 이야기일 뿐이었으니까.
이에 차장이 말을 이었다.
“……오명훈 요원은 8급 헌터였습니다. A랭크 가속계 초인이였지요.”
이제 중요해졌다.
* * *
평범한 각성자는 1급에서 시작한다. 돈 모아서 각성제를 복용하거나, 평소처럼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각성한 사람들 말이다.
2급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제주 헌터 아카데미를 수료하거나, 서포터 따위의 경력이 있거나, 이능검정에서 아주 희귀한 능력을 판정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3급은 어떤 경우에 받느냐.
가끔 튀어나오는 미친 재능의 소유자가 3급. 헌터 아카데미 수석도 3급. 대기업에서 각 잡고 육성한 루키도 3급. 협회와 국가의 재정에 도움이 될법한 인재(재벌 2세)도 3급이다.
그러니 3급까지를 하위 헌터. 혹은 초보 헌터라고 부른다.
당연히 4급, 5급, 6급은 중위 헌터다.
중위 헌터는 별도의 심사 없이 정해진 마일리지만 쌓으면 올라가는 단계다. 그러니 힐러는 몇 급에서 시작했든 동네 보건소에서 반년 정도 빡세게 일하면 4급은 그냥 단다.
그러나,
고위 헌터로 인정되는 7급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한명 한명이 협회의 철저한 심사를 거쳐 임명되는 수준의 단계였다.
그러니 고위 헌터는 대한민국 상위 4%를 조금 웃도는 정도였고, 7급만 되어도 어지간한 PMC 메인 공격대 팀장 정도는 맡았다. 아니면 치안관에 지원하던가.
그리고 8급은 대한민국에서 72명뿐이었고,
9급은 고작 3명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 8급짜리 인재가 북한에서 죽은 거고요. 심지어 국정원 요원이 말입니다. 맞습니까?”
“……네.”
툭.
툭.
툭.
요즘 손톱을 안 깎아서 그런가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선명하다. 물론 내 앞에 서있는 국정원 차장이 숨소리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문을 텄다.
“사태 초기에. 제가 압구정에서 헌터들을 구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 신분당선 탈출 작전 말씀이십니까.”
“예.”
잠시 눈을 감고 조심스레 기억을 더듬는다.
어두운 지하철을 가득 채운 매연, 어둠 속에서 시시각각 접근하던 붉은 안광. 그리고 죽을 각오로 버텨내던 초인들.
“……그때 헌터들의 대략적인 수준이 대충 미국식으로 따지면 C급 정도 됩니다. 김춘식 대장이나 홍선아 공격조장의 경우는 B급 언저리였죠.”
“…….”
“그런 헌터들조차도 자기들끼리는 서울 탈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보호하느라고 못 빠져나갔던 거지.”
“…….”
“그러니까, 어지간한 헌터들이 작정하고 숨거나 도망치면 서울 한복판을 꽤 다채롭게 누빌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압구정 쪽 사람들이 나중에는 서울 외곽에서 괴수를 학살하고 다녔어요.”
물론 김춘식이라는 사람이 조직을 단단히 뭉쳐놓은 덕도 있지만. 헌터와 괴수의 능력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괴수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여왕을 작살내지 않는 한 무한대로 생성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끔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괴수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8급이나 되는 베테랑이 북한을 돌아다니다 죽었다는 건 아주 재수 없게도 무지막지한 괴수를 마주쳤거나…….”
“…….”
“……총이라도 맞았다는 건데.”
* * *
8급 헌터. 그것도 A랭크 가속계 헌터가 금강산에서 죽었다.
국정원 쪽에선 괴수에게 죽었는지, 사람에게 죽었는지, 길가다 돌부리 밟고 넘어져 죽었는지도 모르겠댄다.
첨단과학수사가 가능한 시대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었건만, 당시 현장 사진을 받아보니 조금 납득이 됐다.
누가 저걸 보고 사람 시체라고 생각하겠나. 동물원 사육사가 잘 으깬 고깃덩이 하나 던져줬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쯧…….”
국정원 차장이 떠나간 뒤에도. 나는 한참동안 사무실에서 현장사진 몇 장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비위가 상할법한 사진이었지만 실제 시체보다는 훨씬 건전했다. 애초에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모양이기도 했고.
“…….”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던 찰나. 갑작스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예. 들어오세요.”
“아이고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감기자. 아니, 감감찰관이었다.
살포시 문이 열리자, 그는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세우며 순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아니, 이게 어쩐 일이십니까?”
“저번에 말씀하셨던 GS 아이기스 감사 결과 보고드리러 온 것도 있고. 지윤이 아버지로서 애 야근 좀 그만 시키시라고 지청구 좀 남기려고 온 것도 있고…….”
“그래요. GS는 어떱니까? 장부에 빵꾸났다면서요.”
“그냥 평범한 분식회계던데요. 해외투자 땡기려고 분칠 좀 한 모양입니다.”
“아유. 천 사장이 요즘은 얌전하네. 다행입니다.”
“보통 그걸 얌전하다고 하나……?”
그는 능글맞게 사무실 구석에서 홍삼캔디 한 움큼을 주머니에 넣고서 내게 건들건들 다가왔다.
“……어, 그거 뭡니까?”
“아.”
그러고 보니 사진을 못 치웠다. 딱히 누구한테 보여줄 만한 물건도 아니었으니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 헌터 하나가 죽었답니다.”
“아이고, 쯧쯔……. 누구한테 죽었대요?”
“글쎄요. 사람한테 죽었나, 괴수한테 죽었나.”
그렇게 얼버무리며 사진을 집어넣으려던 그때였다.
“사람한테 죽었는데요?”
“예?”
“사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냉큼 사진을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딱히 혐오스러워하는 눈치는 아니고, 그냥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보통 3세계 정치깡패들이 사람 죽이고 야생동물한테 죽은 척 옷가지를 막 찢어두고 주변에 피를 뿌려두고 그러거든요.”
“…….”
“근데 진짜 야생동물한테 죽으면 순식간에 절명해서 쓰러지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사방팔방에 피를 튀기지는 않는단 말이에요. 제대로 저항을 했으면 좀 핏자국이 길쭉하게 이어지거나 그러지. 이게 뭡니까. 물폭탄 터진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까?”
그는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추측을 이어갔다.
“괴수한테 밟히거나 맞아서 터졌다기에는 시체가 너무 멀쩡하고. 그렇다고 괴수랑 싸웠다기에는 현장이 너무 더럽고. 그러니까 이미 죽은 시체를 야산에 던져놓고 위장한 게 아닌가 싶네요.”
“…….”
“안 그렇습니까? 장관님?”
* * *
“……그러니까.”
감기자는 이게 말이 되냐는 표정이었다.
“죽은 사람이 대북공작하려던 요원, 거기에 8급짜리 헌터였고. 인민군에게 자발적으로 억류되러 가는 길에 실종됐다가 시체로 발견됐다는 거죠?”
“예.”
“이름은 오명훈. 헌터랭크 8급. 이능랭크 A 마이너스. 가속계. 사인은 불명. 발견지는 금강산 중턱……. 맞습니까?”
“예.”
“그런데 저보고 이걸 조사하라고요?”
“예.”
“…….”
나는 그의 탐탁찮은 눈빛을 못 이기고,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아하하……. 아무래도 우리 측 수사기관에서 직접 나서기가 껄끄럽습니다. 북한 땅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행정력을 쓰기가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요.”
북한에 자꾸 행정력을 발휘할수록 북한 국민들에 대한 책임이 넘어온다. 당장 4천만 먹여 살리기도 빠듯한데 북한 인민들까지 떠맡으면 허리 부러지는 건 당연지사다.
“그리고, 또…… 백호작전 준비하는 와중에 불안요소를 남겨두기도 조금 그렇고요.”
“……아. 백호.”
짜고 치는 전쟁이라지만 전쟁은 전쟁이다. 그리고 그 사전작업에서 트러블이 생겼는데 어떻게 그걸 그냥 넘기겠는가.
“이게 따지고 보면 국정원 일이기는 한데. 그건 비밀이잖습니까. 명목상으론 대한민국의 평범한 헌터가 북한에서 길 잃어버렸다가 죽은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겉으로는 완전히 초상관리부 소관이었다.
“…….일단 헌터 하나가 북한에서 실족사 한 걸로 해놨는데. 사람한테 죽었는지 괴수한테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지라-”
감기자가 심드렁하게 내 말을 받았다.
“비밀스러운 동시에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시다는 겁니까?”
“네…….”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예를 들면 정기감사나 불시검문 핑계를 댄다던지?”
“바로 그겁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었지만, 감기자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그는 노발대발하며 내게 따져 물었다.
“……아니! 그래서 8급 헌터도 죽어 나자빠진 사건에 저를 들이미시겠다는 겁니까!? 국정원도 이미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데!?”
“그, 글쎄요. 국정원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까짓것 한번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