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4 - 아귀다툼 (2)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유래 없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비단 원옥분의 돌발행동 때문이 아니다. 단지 대한민국의 정치구도가 너무도 복잡했을 뿐이다.
공화-민주 구도가 무너지고, 평행선을 달리던 영호남 갈등이 미묘한 곡선을 그렸다. 게다가 합당에 창당에 국방당이니 국민당이니, 이제 와선 연립정권까지.
기존의 모든 정치적 질서가 무너졌다.
유일하게 예전과 같은 건 오직 지역색뿐이다.
그러니.
[……저, 원옥분. 전북지사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뇌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경상도의 맹주인 원옥분이 호남에 진출하려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재빨리 회식을 파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 조수석을 지키던 피채원은 내게 의문을 표했다.
“……저어, 장관님? 대체 왜 원옥분 전 권한대행이 자기 텃밭을 버린 거죠?”
“성주가 성에서 나왔다는 게 무슨 뜻이겠냐.”
“……다른 성을, 먹겠다?”
“그렇지.”
대한민국 정계가 혼란에 빠질수록, 사람들의 지역주의는 점점 짙어져 갔다. 그리고 정계는 사회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바닥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현 체제에서 가장 공고한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은 세 명이라고 봐야 했다.
10년간 광주를 지킨 호남의 거두.
양판석.
살아있는 대한민국 보수의 역사.
원옥분.
가장 빛나는 도시. 제주도의 성주.
청중엽.
“물론 나 빼고 계산한 거지만, 내가 지역적 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 양반들이 나보다 파워가 센 것일 수도 있겠지.”
“……충청도랑, 강원도는요?”
“거기는 대충 국경선으로 묶자고.”
충청 방어선 인근은 군부대의 구호-방위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인지라, 대부분 김두식 사령관에 대한 열성 지지층이었다.
그러나 김두식 사령관은 정치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강원도 속초 일대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유현종 사령관도 정치적인 힘은 약하다. 출마를 하면 또 모를까.
“그러니까……! 대부분의 피난민이 거주하는 충청도 쪽은, 아무래도 난민캠프 회장 출신인 신수광이를 지지하겠지. 물론 그 양반은 워낙 초짜라 청중엽이처럼 지역을 장악하지는 못했어.”
“……그리고, 충청도는 한 장관님도 엄청 좋아하지 않나요?”
“나는 지지율이 얇고 넓잖아. 아무튼, 북부는 이렇다 할 게 없어. 문제는 남부야.”
지금의 대한민국을 둘로 나누라면 당연히 북부와 남부였다.
북부는 파괴된 도시와 수많은 난민들로 인해 열악하게 변한 사회였고, 남부는 게이트 이전 모습이 유지되는 중산층들의 사회였다.
주로 북부가 국민당을 지지했고, 남부가 국방당을 지지했다.
제주도 금수저들은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국민당을 지지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결국 국민당은 극빈층과 부유층의 지지를, 국방당은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당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이미 경상도를 손에 쥔 원옥분이가, 전라도까지 손에 넣게 되면.”
“…….”
“대한민국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거야.”
이 시점에서 차량이 숙소 앞에 멈췄다. 나는 지팡이를 챙겨 차에서 내렸고, 채원이가 서류가방을 들고 나를 따랐다.
나는 호텔방을 향해 걸어가는 와중에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당장 원옥분 캠프에 만나자고 연락 넣어. 원 대행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대한민국 절반을 삼키려는 의도가 뭔지. 각하와는 합의가 된 행동인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조져야 할지. 지금부터 빠르게-”
“천천히 좀 하지 그래. 젊은 친구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상당히 오랜만이었지만, 워낙 특이한 탓에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살짝 뭉개진 발음. 다 갈라진 음성. 그럼에도 묻어 나오는 절도節度.
“오랜만이야. 한 장관.”
“……이게 얼마만입니까! 대행님!”
“꽤, 징그럽게 웃는군.”
객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주름진 손이, 내 손을 붙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원옥분 전 권한대행은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직시했고, 이내 반쯤 굳어버린 얼굴로 미묘한 웃음을 건네왔다.
“많이, 늘었어.”
* * *
[……게이트가 열리고. 1년 동안 국정을 총괄하며 느꼈던 것은, 어려움이나 부담감 따위가 아니라, 바로 국민들의 고통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나 크게 도약했습니다. 이러한 기적적 역사의 주체는 바로 국민이었고, 이제는 새로운 기로가 다가왔습니다.]
TV 속 그녀는 꽤나 달변이었다. 조금 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지만, 호감을 가진 이들이 본다면 강단 있게 느껴질 법 했다.
늙은 정치가는 무기력하게 소파에 기대어 화면 속의 자신을 평가했다.
“임플란트를 좀 박으니까. 이, 발음이 좀 나아진 것 같아.”
“예전에도 무탈하셨던걸요, 뭘.”
“그래, 별로 안 나아졌지? 틀니 좀 박는다고 상판에 근육 굳은 게 풀리나.”
“……하하.”
“그래도 무얼 어쩌겠어. 가진 걸로 열심히, 해 봐야지.”
그녀는 사뭇 긴장감 없는 태도로 박하사탕을 질겅거리며 TV 채널을 돌렸다. 그녀가 내 목을 치려 검찰을 움직일 때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마주 앉을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한 장관, 자네도 보면 맨손으로 참, 멀리 왔다 싶어. 조금 흔들릴 만한데도. 어째 꿋꿋이 발악하더구만.”
“발악이라…… 적당한 표현이군요.”
“사내놈이 그런 곤조가 있어야지. 얌생이처럼 빌빌대지 말고. 뒤통수를 까도 좀 우직하게. 어?”
자기가 말해놓고 웃긴 모양인지, 노인은 바람 빠진 목소리로 낄낄거렸다.
웃음 뒤에 이어진 건 직설이었다.
“지들끼리 해먹는다고 기득권 까부숴 놓고. 이제 와서 자네도 지들끼리 해먹는 거 보면, 조금 억울하다니까.”
“저희는 그래도 선거로 뽑히지 않았습니까. 예전에는 오히려 선거를 뒤로 미뤘-”
“변명은 필요 없어.”
그녀가 사뭇 엄격한 표정을 만들었다.
“정치인은, 성과로 말하는 거니까.”
이어지는 냉소.
“그러니 내가 할 말이 없지.”
끄으응. 그녀가 침음성을 흘리며 지친 몸을 일으켰다. 무기력한 발걸음이 향한 곳은 호텔의 창가. 어두운 밤하늘 아래로 찬란한 도시가 빛나고 있었다.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를 찾아온 그녀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뒷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무감정한 회한을 담아, 한때나마 이 나라를 이끌었던 이가 말한다.
“내가, 참, 많이 죽였는데.”
“…….”
“이리 밝은 걸 보면 욕은 못 하겠고.”
그녀는 반쯤 뒤돌아 나를 슬쩍 쳐다보고서는, 피식- 하고 웃었다. 어쩌면 그녀 나름의 감사인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은 여기까지였는지, 그녀는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하. 대행님께서 아직 정치에 뜻이 있으실-”
“헌터들 조진담서?”
“누가 그럽니까?”
“알 사람들은 다 알지.”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오는 건 늙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수법인 모양이다.
하여튼 정신건강에 영 해롭다.
나는 접대용 미소로 대응했다.
“3세대 헌터로 넘어가는 과도기인지라, 아무래도 이런 저런 조정이 있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조금 오해를 하시는 것 같더군요.”
“알 사람들끼리 인사는 넘기고.”
“예.”
“내가 이번에 전북지사 좀 해먹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협조 좀 안 해주겠어?”
“아, 예. 응원하겠습니다.”
“하여튼 주댕이는…….”
그리고 심드렁하게 툭 내뱉는 말.
“한 장관. 좀…… 크게 보자고.”
“뭘 말입니까.”
“헌터들을 조질 거면 제대로 조지라. 이 말이야. 중소기업이야 자네 깜냥으로 해결 가능하더라도. 대기업 혼자 잡다가 기스 나면 독 옮아 죽어.”
심드렁하던 그녀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사근사근하던 내 목소리도 어느새 점점 건조하게 변한다. 아마 표정도 마찬가지겠지.
“……대기업 PMC 규제를 도와주시겠다는 겁니까?”
“삼성이나 LG 쪽은 그렇다 치고. GS는 자네 패거리 아니었던가?”
확실히, 내가 천 사장 쪽을 건드리려면 다소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어중간한 규제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다. 그 얄미운 토끼는 눈치 빠르게 도망칠 게 뻔했으니까.
그렇다면, 내 선택지는 두 개다.
GS 방위대행사의 업계 독과점적 지위를 방치하던지, 아니면 한 칼에-
죽여 버리던지.
“…….”
다소 극단적인 ‘조정’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건만.
“대신 칼을 잡아주시겠다는 겁니까.”
“요점은 그렇지.”
“검찰이라…….”
노태우 정권. 범죄와의 전쟁. 얼굴에 칼자국이 나고도 깡패를 때려잡은 강력통 검사.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강력한 커리어.
원옥분이 검찰조직을 수족처럼 다뤘던 건, 그저 기수가 높아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자체로 전설적인 검사였고, 검사 출신 대통령이라는 모든 검사들의 숙원을 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검찰이 원옥분에게 충성할 만한 충분한 이유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 검찰조직의 적극적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헌터 규제에 대한 반발을 조금이나마 분산시킬 수 있다면.
업계를 지배하며 필요 이상의 무력을 획득한 대기업을 손쉽게 견제할 수 있다면.
“……원 대행님.”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에는 충분한 장사가 아니겠는가.
“성의는 어떻게 표시하면 되겠습니까?”
“됐어. 아직 누가 떠먹여 줄 정도로 늙진 않았으니까.”
안 늙었다고 하기에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후들거리는 그 모습이 너무 초라했고,
늙었다고 하기에는 그 흐린 눈빛 속에 담긴 야망이 너무도 선명했다.
“나도…… 내 밥그릇은 스스로 챙기는 성격이란 말이지.”
정치인 원옥분이 히죽 웃었다.
안면 장애인의 일그러진 웃음이었으나-
“정 그러면 악수 한 번만 해주던가.”
-어쩌면 이게 가장 그녀다운 웃음일지도 모르겠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세종 시로 돌아와 맞이한 산뜻한 아침. 제주도 출장을 다녀오니 공무원들이 내 전용 숙직실을 만들어줬다.
덕분에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원옥분과 내가 악수하며 찍은 사진이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입말로 조용히 기사를 읊는다.
“과거 서로의 오해 때문에 갈등이 있었으나, 한 장관과 오해를 풀었다. 이제 국정을 위해 미래로 나아갈 때다…….”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엎어놓는다.
“하아…….”
마음이 복잡하다. 잠시 마른 세수를 하고 있으니, 어깨 뒤에서 피채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각하께선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진즉에 쇼당 붙였다네.”
“……합의된 행동이라고요?”
대답은 가볍게 고개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끝. 무언가를 입 밖으로 내기에는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대체 수면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채원아. TV 좀.”
“기가지니. TV 켜줘.”
“……!”
TV가 켜졌다.
내가 피채원에게 TV를 켜달라고 하자, 녀석이 TV에게 말을 걸었는데, TV가 켜졌다.
무려 두 번에 걸친 명령체계다.
나는 휘둥그레 떠진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젠 TV 키는 것도 하청을 주냐……? 헬조선이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주시죠.”
피채원은 살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가지니. 24번 틀어줘.”
“…….”
“지니야. 24번.”
“…….”
“…….”
“…….”
인공지능이 대답하지 않자, 피채원은 머쓱하게 걸어가 리모콘으로 24번을 틀었다.
곧장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새벽 다섯 시. 강릉 주거단지 한복판에서 난데없는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차량 스물 네 대가 파괴되었고, 각종 건물이 손상됨에 따라, 약 116억 원 가량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다행히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으나, 치안관들의 과격진압으로 인한 피해가 몇 주간 연달아 발생했다는 점에서-]
말없이 스윽 손을 뻗자, 피채원이 내 손바닥에 핸드폰을 착 올려놨다.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어, 어어! 사, 사랑하는 동생아! 목소리 오랜만-]
“난데없는 고백은 때려 치고. 이거 뭐야.”
[뭐, 뭐가?]
“116억짜리 고지서를 뉴스로 확인하는 건 어느 나라 풍습이냐고.”
[……대한민국?]
“이-”
순간 정신줄이 끊어진 나머지, 입에 게거품이 솟아나려던 찰나.
콕. 콕.
피채원의 손가락이 내 등허리를 찔렀다.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나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됐다. 나머지는 만나서 얘기해.”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냐?]
“끊는다.”
[야. 야. 잠깐만. 끊지-]
뚝 - !
“그래. 뭔 일이야?”
“그…… TV 좀…….”
뭔가 석연찮은 표정의 피채원은 손가락으로 TV 화면을 가리켰다.
[……원옥분 전 권한대행과 한승문 초상관리부 장관의 회동 이후. 원옥분 전북지사 후보의 지지율이 최소 7%에서 최대 16%가량 상승했다는 분석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이 중론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승문 효과라고 명명하는-]
[……에- 그, 뭐냐. 정치권에서 파악하지 못한 국민들의 선호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사실 지역주의적 구도에서 유일하게 전국구 지지층을 가진-]
이번 선거판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구도로 흘러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