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48화 (148/296)

EP 23 - 그 멋진 헌터들의 세상 (5)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자 고질병은 계파갈등이었고, 그건 아직도 여전했다.

특히 국민당이 그랬다.

오히려 진즉 사달이 날 줄 알았던 국방당이 비교적 화목하다. 철천지원수였던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당했으나. 전라도와 경상도가 대한민국 남부지방이라는 특성으로 묶이게 되며 갈등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반면 국민당은 어떠냐.

“오빠는 잘 모를 수도 있겠는데. 요즘 우리 당 돌아가는 거 보면 거의 삼국지에요.”

“그래……?”

“중압감 있는 인사가 거의 없으니까. 개떼처럼 싸운다니까.”

치열한 삼파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 * *

국민당 내 계파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청중엽계

제주도지사 청중엽을 중심으로 모인 곳이다. 확장성(공격력)은 적지만 방어력이 강했다. 어차피 제주도는 도지사가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가장 강력한 곳이기도 했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재벌들이 모인 곳이었으니까.

국내 재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중국재벌은 바로 옆이라 그런지 그쪽 정부 눈치 보여서 좀 적고, 아랍 쪽 재벌들이 엄청 많이 산다. 오죽하면 국내 외화벌이는 제주도 땅문서로 충당한다는 소리가 있을까. 문제는 그게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라는 거다.

그 덕에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재벌한테 장학금을 받는 로비스트 스타일이었다. 숫자는 가장 적었지만, 폐쇄적이고 은밀한 탓에 아주 끈끈한 조직력을 유지했다.

2) 신수광계

수도권 난민캠프의 대표자. 신수광을 추종하는 모임이다. 애초에 그쪽 조직을 그대로 국회에 가져와서 지도부가 끈끈하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강성 운동권 비슷한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공격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이 있었다. 물론 이는 현재 수도권 난민들의 각박한 상황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대략 15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유권자)들의 영향력은 과장 안 보태고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정도였기에, 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충청도와 강원도(북부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신수광계와 이해관계를 같이하게 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게다가, 남부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들의 유가족이다.

3) 마지막으로 한승문계.

세력은 아주 컸지만 단결이 잘 안 됐다. 내가 국회가 아니라 정부에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무엇보다 출신성분이 제각각이었으니까.

내가 데려온 퇴역 헌터들, 수도권 상실지역구 비례대표들, 내 인기에 편승한 지역정치인들, 거기에 나름 마이웨이 걷는 소장파까지.

이호정이 원내대표로서 신수광을 가열차게 견제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금뱃지들이 시시각각 다른 계파로 넘어가려 간을 보고 있는 와중이다.

물론 이호정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정치경력이 모자라서 그렇다.

정확히는 총선때 내가 인재풀이 없었다.

만약 양판석이었다면 자기한테 충성하는 사람들로 국회를 채우고도 사람이 남아돌았겠지만, 나는 사정이 급해서 아무 사람이나 막 갖다 쓴 경향이 있던 것이다.

물론 정 아쉬웠으면 내가 그 사람들을 챙겨주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면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나는 내 계파를 챙기기보다는 양판석을 위해 국정에 충실했다.

그러니까 내 밑에 붙어있고 싶겠나.

특히 북부 쪽에 지역구 둔 양반들은 반강제로 신수광이랑 친하게 지내야 했다. 안 그러면 지역구에 사는 난민들에게 계란 맞는다.

그러니 이건 원내대표까지 올라간 이호정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문제였으나, 거꾸로 말하면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당연히 내 질문에 답하는 이호정의 표정은 밝을 리 만무했다.

“신수광이 쪽으로 얼마나 넘어갔디?”

“……글쎄요. 일단 지역구에 피난민 많이 사는 사람들은 죄다 그쪽으로 갔죠. 안 그러면 관리 자체가 안 되니까.”

“신수광 그 아저씨도 참 신났겠네. 난민캠프 오야붕이 꽤 성공했어.”

“……가끔은 좀 무섭기도 해요. 난민들 비위 맞춰주려고 삭발식까지 하는 거 보면.”

하나, 신수광이가 제아무리 국민당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한들,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게 하나 있었다.

그는 엄연히 정치판 엑스트라였고, 그를 대선정국 당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바로 그 양판석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양판석은, 사람을 쓸 때 기본적으로 심장에 폭탄 한두개 정도는 박아넣고 쓰는 양반이었다.

“…….”

그래서 내가 국민당 내부를 관리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신수광이라는 양반이 도를 넘으면 양판석이 어떻게든 조질 수 있을 터인데, 내가 쓸데없이 신수광을 포섭해 세를 불리면, 오히려 양판석이 나를 견제하려 들 수도 있었으니까.

나와 양판석이 얼마나 친밀하든 간에, 정치인은 위협을 두고보지 않는 인종이다.

권력이라는 게 그랬다.

아무리 권력자와 친하더라도 내가 그에게 숙여주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판단은,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중이었다.

“야, 지윤이 이번에 히트 쳤잖아. 내년 초에 2차 아카데미인데. 그냥 여세를 밀어서 큰 거 하나 조지는 건 어떠냐?”

“이번엔 또 뭔 사악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요?”

“아니, 요새 국내외로 좀 분위기가 뒤숭숭하잖아. 헌터랑 민간인이랑, 뭐. 알지? 서로 좀 멀어지고…….”

“그렇긴 하죠.”

“……혹시 헌터들한테 랭킹을 매겨보는 건 어떻게 생각-”

똑-! 똑-!

묵직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게다가 허락도 없이 문고리가 돌아간다.

“……?”

유력 국회의원이 세 명이나 모여 있는 방에 누가 이렇게 거침없이 들어오나 싶었는데,

“……으음? 어어. 다들 오랜만이네. 한 장관 생일잔치 이후로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가?”

대통령이었다.

* * *

언제나 그렇듯 후줄근한 양복 차림의 양판석은, 국민당 원내대표와 초상위원회 상임위원장의 90도 인사를 받으며 터덜터덜 걸어 들어와, 옆에 홍삼정 하나 툭 올려놓고는 내 보호자석을 차지했다.

그렇게 가벼운 인사치레 후, 양판석의 정중하고 완곡한 축객령에 양일호와 이호정이 병실에서 떠나가고,

양판석은 그제서야 넥타이를 풀고 침대맡에 툭 걸어 놨다.

나는 은은하게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진즉 비서실장님이랑 정무비서관님이 왔다 가셨는데요. 대통령님이 이리 가볍게 발걸음하셔도 되는 겁니까?”

“자네랑 나는 병문안 안 가면 불화설부터 나도는 사이야. 그러니까 나 병석에 엎어지면 재깍재깍 찾아오게.”

“뭘 그런 말씀을…….”

“요즘 노났겠어?”

“예?”

“헌터랭크 개편. 역풍인 줄 알았는데 순풍이잖나.”

그는 병실 구석에서 믹스커피 한 잔을 타며 슬쩍 미소 지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드러누우면 곤란하지.”

“하하, 면목 없습니다.”

“뭐어, 평소 걱정이 많나?”

“나라 걱정이야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거니까요.”

“어허. 이 사람 참.”

후룹. 양판석이 믹스커피 한 잔으로 입을 축이고, 대뜸 웃으며 훅 치고 들어왔다.

“무리해서 치안관 도입하고. 무리해서 마력측정제 도입해서 헌터들 상태 검사하고. 무리해서 병석에 드러눕고.”

“…….”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더구만.”

그는 담담하게 내 모든 정책의 핵심을 짚어냈다.

“…….”

사람 빈틈을 이렇게 파고드는 것도 어찌 보면 재능이다.

그의 정치적 경륜에 휘말리지 않으려,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있으니, 그가 가볍게 히죽이며 말을 잇는다.

“나야 뭐, 그러면 편하긴 한데.”

“…….”

“규제나 단속이라는 게 원래 국민들이 하라고- 하라고- 맨날 그래도. 막상 하면 결국 평판 깎아먹는 짓이라…….”

그가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을 땐, 그 의미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 걱정이 좀 많은 모양이지?”

“…….”

“슬슬 판 짜는 게 눈에 보이는데. 뭐 때문에 그러는 겐가?”

* * *

대한민국 초인협회 협회장.

홍선아를 표현하는 말이 세 가지 있다.

“아하핫……! 이거 엄청 웃기네요……!”

“저, 그, 협회장님? 혹시 시체가 웃기다는 말씀이십니까?”

“딱 봐도 염동술로 심장 짜부시켜 놓고 괴수한테 죽은 척 위장한 거잖아요. 진짜로 괴수한테 죽었으면 이 주변 땅은 전부 빨간색이었어야 해요. 이거 웃기는 놈들이네. 사람 별로 안 죽여봤나 봐. 신고한 사람들 중에 염동술사 있었죠? 뭐해요? 안 잡아오고.”

웃음.

“으음. 그러니까? 도망친 그놈들이 금강산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이거죠?”

“예 협회장님. 수색 범위가 너무 넓어진 상황이라. 시간이 좀-”

“얍.”

“부, 부, 불이야-!”

불꽃.

“범인들 다 잡았나요?”

“허억……! 헉……! 네, 전원 체포 완료했-”

“풀어주세요.”

괴짜.

종합해보면 맨날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미친 방화광이라는 평판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있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지나치게 과단성 있는 면도 있었으나 우유부단하지는 않았고, 때로는 남들이 이해 못 할 결정도 곧잘 내렸지만, 결국 헌터들의 생리와 인간의 욕망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일각에선 허수아비 소리를 듣긴 했으나 GS와 밀접했으니 자금력도 뛰어났으며, 한승문과 친했으니 정치권에서 딱히 건드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방송계 쪽에서 그녀의 화려한 외모를 보고 접근하는 경향이 짙었다. 실제로 사태 초기엔 준 연예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전적이 있다.

하나, 김춘식 길드장의 사망 이후, 그녀는 쉽사리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예쁘고 권력있는 여자의 행동이었으니 이는 신비주의로 포장되었으며, 그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헌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조울증 중기라는 걸 아는 사람은 지극히 적었다.

물론 조울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복합적인 증세다. 조증과 우울증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 같기도 했고, 슬프면 웃게 되고, 죽은 사람이 보이고, 항상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복잡해도, 사람의 책임은 지극히 단순했다.

김춘식의 유언을 이행하는 것.

사람을 구하는 것.

그것이 홍선아라는 인간의 선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그녀가 추종하는 유일한 선이었고,

김춘식이라는 사람과 그녀를 연결하는 선이었으며,

진즉 망가져버린 그녀를 유지하는 실낱같은 선이었다.

때문에, 그날의 만남은, 그녀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 홍선아 협회장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어머- 우리 장관님두 신수가 너무 험하시다…….”

신수身手는 얼굴빛을 의미했고, ‘훤하다’는 보통 밝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 신수가 훤하다는 표현은 건강해 보인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본 한승문은 신수가 험해보였다.

깡마른 모습과 초췌한 볼살은 예민한 정치인에게서 보이는 그것이었고, 다크써클과 피로에 찌든 눈빛은 유독 사나워 보였다.

그리고 그런 양반이 사람 좋게 웃고 있으니 무서워 보였다.

“어쩐 일로 부르셨대요?”

“아아, 다름이 아니라-”

“…….”

어차피 정무적 분야에서 홍선아 자신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협회 사정이 그랬다. GS 그룹과 초상관리부가 밀실협의로 굴리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는 천금순의 야망과 한승문의 편집증, 그리고 홍선아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상황이었다. 이것도 나름대로 합의를 거친 상황이라는 뜻이다.

홍선아는 정무적이고 행정적인 분야에서 한발 물러나 현장에서 전술적이고 동물적인 역량을 한껏 활용했다. 능력이 능력인 덕에 괴수를 대량학살하며 마석을 무한정 섭취하기도 했고 말이다.

때문에, 홍선아는 한승문이 정무적 상황에서 자신을 호출한 게 아주 꺼림칙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헌터 랭킹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랭킹이요?”

한승문은 대뜸 헌터들에게 등수를 매기자는 제안을 건네왔다.

“으음. 홍 협회장님도 익히 아시겠지만. 요새 헌터들과 민간인들 사이에 조금 거리감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뭐 죽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일반 시민들은 헌터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렇죠. 조금 괴리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헌터 분들이 초상개혁의 선두주자이시고, 우리 사회의 소금같은 분들이다 보니까- 이, 윗선에서도 이게 상당히 우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헌터사회와 일반사회의 분리가 말이죠.”

헌터사회와 일반사회의 분리라. 홍선아 입장에서는 퍽 당연한 현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민간인과 도살자가 어떻게 섞여 지낸단 말인가. 비일상이 일상을 파괴하는 세상에서, 헌터들은 비일상에 몸을 던진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주관이야 어떻든, 그녀는 가급적이면 한승문에게 협조하는 게 헌터들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다.

못 이길 적은 안 만드는 거다. 원래.

그러니 입 다물고 그의 설명을 청취했다.

“이, 랭킹제라는 게 어떤 식으로 작용할 거냐면…….”

랭킹제는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을 거다. 하나, 민간 사회에서 헌터의 강함을 재는 척도로 사용될 수는 있다. 사실상 그렇게 되도록 유도할 거다.

당연히 대중들이 헌터들에게 보다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다. 헌터들은 대중을 팬으로 만들기 쉬워질 것이다.

거기에 헌터들 간의 향상심을 고취시킨다. 기존처럼 안전한 사냥터만 돌아다니며 하루 벌어 유흥을 즐기기보다는, 보다 더 강해져 랭킹을 올리고 고위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랭킹제의 첫 번째 목적은 일반사회와의 융합. 두 번째 목적은 헌터들의 향상심 고취.”

“……흐음.”

분열된 사회는 쉽게 멸망하고, 정체된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한승문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헌터라는 계층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스스로 정체되어 썩어버리기 전에, 새로운 자극을 통해 융화시키고 발전시키자-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협회장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평소였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나, 홍선아는 하나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고위 헌터들이 꽤 좋아하겠네요! 돈도 잘 버는 친구들이 아이돌 노릇까지 하겠네?”

“틀린 표현은 아니군요.”

“그런데 하위 헌터들은 조금 팍팍해지겠는걸요? 지금까진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이제 경쟁까지 해야 하니까.”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당연한 일이죠. 사람이 앞으로 움직여야 나라가 삽니다.”

“근데 좀 억울한 사람들도 있겠다.”

홍선아는 맹점을 짚어냈다.

“태어난 걸 C급으로 태어났는데. 노력해서 S급을 이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헌터 업계의 양극화는 극단적이었다.

강한 헌터는 더 강한 괴수를 잡아서 더 빨리 강해진다. 그러나 약한 헌터는 약한 괴수만 잡으니 성장속도가 더디다.

게다가 재능의 차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누군가는 같은 마석을 먹어도 더 많이 강해지고, 누군가는 별로 강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헌터의 재능을 구분하고, 순위까지 매긴다고 한다.

“…….”

명백히, 정부가 헌터의 양극화를 촉진시키고 있었다.

이에 헌터협회 협회장이 묻는다.

“왜죠?”

초상관리부 장관이 답했다.

“사회가 너무 헌터 위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를 만든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돈 열심히 벌어서 각성제를 먹으려 하고 있어요. 마석경제가 채택된 이상 초상사회는 헌터 위주일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헌터가 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멸망의 위기 앞, 차선책과 필요악의 사선을 넘나들며 걸어온 길. 이제는 그 대가가 그들 앞에 찾아왔다.

“EU와의 합동 연구 덕분에 각성제는 더 이상 수명을 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각성제를 먹으면 수명이 대폭 사라진다고 주장하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헌터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헌터라는 직종이 이 사회의 제 1계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위기에서 벗어난 지금, 헌터는 더 이상 고귀할 필요가 없다.

강해질 필요도 없이 수준에 맞는 사냥터에서 안전하게 사냥을 하고, 마석을 채집해 돌아오면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다.

게다가 돌연변이 인간 취급을 받던 헌터들은 정부와 대기업의 꾸준한 이미지 관리로 히어로의 이미지까지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에 헌터가 비로소 ‘멋지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는 뻔했다.

“각성제 가격을 아무리 높여도, 사람들은 정부를 원망할지언정 헌터가 되려는 걸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돈 많은 이들만 헌터가 되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

“충청 방어선에 괴수가 도달하지 않은 지 몇 달이나 되신 지 아십니까?”

헌터 과잉.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터를 찍어낼 수 있는 나라만 느낄 수 있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역설적인 사회 문제였다.

홍선아가 해법을 제시했다.

“……해외로 보내는 방안이나, 국내 건설현장에 투입하는 건 어떨까요?”

“본인들이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초인과 헌터는 다르다. 초능력자가 괴수를 잡으면 헌터가 된다. 예전에는 그게 아주 커다란 용기와 선의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헌터로서의 역량이 부족하고, 헌터로서 마음가짐이 못되먹었고, 헌터로서 향상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헌터를 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한승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는 멋진 헌터들의 세상을 만들었으나, 헌터들이 더 이상 멋지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헌터 사회라는 걸, 조금 더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선택지는 두 가지다.

헌터들을 다시 멋지게 만들거나.

안 멋진 헌터들을 쳐내거나.

“헌터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보통 뭘 만드는 것보다는 쳐내는 게 더 싸게 먹힌다.

EP 23

그 멋진 헌터들의 세상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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