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3 - 그 멋진 헌터들의 세상 (1)
선군조선의 백두령장을 따라 강성대국에로.
이 따위 문구가 적힌 간판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북한은 북한이구나 싶다.
“…….”
찌그러진 붉은 간판은 잔뜩 기울어져 떨어질락 말락 하고, 그 아래에는 이미 썩어버려 백골이 된 시체만 널브러져 있다.
조심스레 걸어가 시체를 내려다본다.
물론 시체가 익숙지 않은 건 아니다. 모든 사냥터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던 곳이고, 그 사람들이 전부 죽었기 때문에 그곳이 사냥터가 된 것이니.
시체는 익숙하다.
“…….”
다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백골을 껴안고 죽은 백골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 어딘가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
“…….”
그렇게, 사람이었던 것 두 개 앞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나의 시간을 건네고 있으면.
“이봐요! 빨리 안 옵니까!?”
“……아! 죄, 죄송합니다!”
헌터 놈들은 돈 벌 시간도 부족한지 나를 한참 재촉을 하고는 하는 것이다.
* * *
나는 쥐새끼다.
시체 파먹는 일을 한다.
물론 사람 시체는 아니고, 시체를 진짜로 파먹는 것도 아니지만, 온종일 시체 파먹으면서 입에 풀칠한다는 점은 쥐새끼랑 똑같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뭐냐.
헌터가 괴수를 잡아놓으면, 시체를 헤집어 마석을 꺼낸다. 그리고 그 마석을 가방에 넣고, 헌터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게 다 헌터가 마석을 만지면 흡수해 버려서 그렇다.
즉, 나는 헌터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이런 소리를 듣지.
“이봐요. 일 똑바로 안 합니까?”
“네, 네?”
“마석 하나가 비잖습니까.”
새파랗게 어린 헌터 놈이 마석을 늘어놓고 내게 면박을 준다.
“금강산 초입에서 여덟 놈. 통천군 논밭에서 열다섯 놈. 귀환루트에서 두 놈. 그렇게 스물다섯 놈 잡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요? 예?”
“저, 저는 잘…….”
“스물다섯 놈을 잡았으면 마석이 스물다섯 개가 있어야지. 왜 스물네 개밖에 없냐고 묻지 않습니까?”
강원도 초인지원청 마석교환소 인근은 사람으로 북적북적한 곳이다.
마석 파는 사람, 마석 사는 사람, 포션팔이, 쥐새끼. PMC 스카우터. 등등. 온갖 사람이 우글거린다.
그런 곳 흙바닥에 마석을 뿌려놓고는, 나더러 삿대질하며 면박을 주고 있으니, 온갖 사람들이 죄 나만 쳐다보며 지나가는 것이다.
“저…… 저…… 그게…….”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진땀을 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이 헌터 놈은 눈깔을 부릅뜨고 나를 째리고 있는 판국이다.
“……참, 나.”
“자기야. 그만해. 불쌍하다, 야…….”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죠. 마석 하나가 얼만데.”
내게 면박을 주는 놈 뒤에서 나를 비웃고 있는 헌터 세 놈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는 차마 서 있기도 힘들어 말문이 새어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거다.
“저, 저는 잘 모르겠-”
“아니, 아저씨! 마석이 왜 하나가 비냐고요!”
“저는 그냥 따라다니면서 꼬박꼬박 파내기만 했을 뿐입니다……!”
“근데 왜 하나가 비냐니까요?”
“그건……!”
니들이 괴수를 한 놈 덜 잡은 거겠지요-
목울대까지 올라온 말이었지만, 차마 보복이 두려워 말할 수가 없다. 마른 침과 함께 말을 도로 삼킨다.
대한민국에 헌터가 많다지만 그래봤자 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바닥이다. 그런 놈들 사이에서 마석이나 훔쳐대는 쥐새끼로 소문나면 밥줄 끊기는 건 시간문제다.
“…….”
나도, 이 나이 먹으면서 회사생활 독하게 한 놈이다.
결국, 내가 해야 할 말이 뭔지 정도는 잘 안다.
“……죄송합니다.”
집구석에서 기다리는 딸내미라도 먹여 살리려면, 스무 살은 어린 개놈들에게 머리 정도는 숙여줄 수 있다.
아니. 머리 정도가 뭔가.
무릎까지 꿇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한 모양-”
“와아. 이거 웃기는 아저씨네. 내가 나쁜 사람인가?”
“……아닙니다. 제가 실수를-”
“됐고. 마석이나 내놓으시라니까?”
헌터 녀석의 언성이 점점 높아진다.
“마석 하나에 얼만지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아저씨 사망보험금보다 비쌀걸?”
“…….”
“법대로 해봐? 한 번?”
힘으로 해도 녀석이 이기고, 법대로 해도 녀석이 이긴다. 현실이 그렇다. 그러니 나는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하!”
결국 녀석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됐고. 오늘 일당은 없는걸로 합시다.”
“네……?!”
“아, 씨발. 진짜. 그냥 가시라고! 법대로 안 하는 걸 다행인 줄 아세요!”
일당이라 봐야 생명수당 포함해서 150만원 언저리다. 이 정도면 두 명이서 하루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푼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꼭 필요한 인생이었다.
“저, 저……! 그거라도 없으면 딸애가 굶습니다……!”
“아! 그럼! 마석 하나 내놓으시던가!”
“사장님! 제발……!”
녀석의 옷소매를 붙잡으니, 헌터 놈이 나를 뿌리친다.
“어어……!”
압도적인 힘.
나는 어른에게 맞은 어린애처럼 뒤로 밀려났다.
“으악……!”
온몸이 아려온다.
흙바닥에 내팽개쳐진 나에게, 싸늘한 시선이 날아든다.
헌터가 내게 말한다.
“……죽을라고. 진짜.”
“……!”
그 말에 진정 공포를 느끼게 된 건, 아마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린 까닭일 터이다.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헌터들은 나를 버려두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게.
파르르 떨려오는 온몸을 추스르고 있던 때였다.
“거기, 동작 그만.”
누군가의 목소리에 몸이 굳어버리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헌터랑 서포터. 둘 다 정지합니다.”
교복 입은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피가 말라붙은 교복이다. 허리에는 단검을 차고 있다.
헌터가 헌터에게 말했다.
“다, 당신 누구야?”
“즉시 무장해제합니다. 야구 빠따랑 사시미 바닥에 내려놓고, 손 머리 위로.”
“뭐, 뭐야? 당신이 경찰이라도 돼!?”
“경찰은 아니고…….”
교복 입은 헌터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파란색 신분증이다.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 치안관 조정식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신변사항은 제가 통제하고, 혐의가 확인될 시 체포되실 수 있으며, 만약 교전을 시도하실 시 사살되실 수 있습니다.”
“…….”
“처음하는 거라 멘트가 좀 어색하긴 한데. 아무튼 경찰 비스무리한 거라고 알아두시면 될 것 같고…….”
치안관 조정식이 검지손가락으로 수갑을 빙빙 돌렸다.
“진실의 방으로 좀 갑시다.”
* * *
“괜히 마석 하나 없다고 트집 잡아서 서포터 임금을 삥땅치지를 않나. 서포터가 마석 무서운 줄도 모르고 위장에다 마석을 숨기지를 않나.”
팔락팔락.
나는 푹신한 중역의자에 반쯤 누워서, 굵직한 서류더미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포션에 물 타서 팔아먹고. 엄한 헌터 꼬셔서 노예계약하고. 지들 멋대로 북한까지 넘어가서 사냥하다 오고…….”
타악-!
책상에 서류더미를 던져놓고, 내 앞에 있는 3급 공무원에게 말한다.
“내가 요즘 이거 읽느라 넷플릭스를 안 봐요! 사기, 횡령, 폭력, 마약, 살인, 밀수, 등등. 아주그냥 별별 꼬라지가 죄다 일어나! 이러다 좀비까지 나오면 시청률 잘 뽑히겠어?”
“…….”
“강원도가 무법랜드야? 어!?”
나는 책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내 앞에 있는 3급 공무원에게 삿대질했다.
“똑바로 좀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뚱한 표정으로 짝다리를 짚던 3급 공무원이, 내게 말했다.
“아니 시-발 나더러 뭘 어쩌라고요.”
“…….아니, 단속을 좀 더 열심히 하라 이거지.”
“니가 법을 잘 만들던가. 아니면 사람을 더 뽑던가. 이게 뭔 녹색 어머니회도 아니고 열심히 하면 치안이 잡히는 줄 알아.”
“나도 답답하니까 하는 소리지. 뭐…….”
쩝. 나는 입맛을 다시며 3급 공무원에게 말했다.
“누나. 거기 커피 좀 갖다줘.”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맨날 이러면서 갖다주는 거 보면-”
“옛다.”
여도연은 내 책상에 커피 믹스를 툭 올려놨다.
“…….”
“뭐.”
“……아니. 보통 커피를 달라 그러면 봉지째로 주는 건 어느 나라 스타일인가-”
“내가 니 비서냐? 치안관이지?”
확실히. 여도연이 치안관이긴 했다.
그녀도 이제 3급 공무원이다.
아무튼 여도연은 커피 적당히 좀 먹으라며 율무차를 한 잔 타왔고, 나는 그녀와 소파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치안관 노릇은 어떠신가?”
“빡센데요.”
“왜 빡세신가?”
“스물 남짓한 인원으로 속초 인근 사냥터를 죄다 단속하고 있으면. 빡셀까 안 빡셀까?”
“인력 부족이라…….”
치안관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인력부족은 충분히 예상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건 해결이 안 되는 종류의 문제다.
“치안관이라는 걸 만든 것부터가 좀 무리한 거라. 인력 확충은 안될 것 같은데.”
치안관은 헌터들을 상대로 아주 강력한 공권력을 가진 경찰이었다.
일반경찰이 헌터를 단속할 수가 없어서 만든 직종이다.
도심 한가운데면 모를까, 저어 멀리 외딴 사냥터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어떻게 비각성자 경찰이 담당한다는 말인가.
물론 경찰특공대의 초인화, 대검찰청 이능수사부의 전문화도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부족한 건 힘의 논리였다.
강한 헌터를 체포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강한 헌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치안관을 만들었다.
다만.
“이게……. 헌터 하나 체포하다가 경찰 스물세 명 죽어나간 사건 이후로 만든 건데.”
“…….”
“경찰이 밥그릇 뺏길까 봐 전전긍긍 하더라고?”
애초에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놓고 쌈박질하는 게 대한민국 일상이었다. 이 와중에 수사기관 하나 더 들어온다고 해봐라. 눈깔 안 뒤집어지나.
“그나마 지금 초인지원청장이 예전에 서울지방경찰청장까지 해봤던 치안정감이라, 경찰 쪽은 적당히 뭉개고 넘어갔는데…….”
“…….”
“치안관 더 늘린다고 하면 뭔 반응이 나올지 뻔하단 말이지…….”
그러니 치안관의 숫자를 더 늘릴 수는 없다. 그리고 늘리기도 힘들다.
법률상 치안관이 되려면 7급 헌터 이상이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 7급 이상 가는 고위헌터는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7급이 뭐야. 5급만 해도 어지간한 PMC 가면 사장이 버선발로 튀어나와서 어서옵쇼 그러는데. 왜 쓸데없이 스트레스만 받는 공무헌터를 해먹겠냐고.”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했던 게 검찰 스타일 운영이다. 검찰이 검찰 수사관을 데리고 다니듯이, 치안관이 치안관보를 데리고 다니는 것.
게다가 그 치안관보는 무려 현직 검사, 변호사, 경찰이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헌터 밑에서 일을 할까 걱정이었지만, 초상관리부에서 일했던 스펙이 S급으로 취급받는 세상인지라, 인력 수급은 아주 쉬웠다.
검사가 대검찰청 이능수사부 가려면 치안관보 이력이 필수라고 그러더라.
아무튼.
나는 여도연에게 물었다.
“치안관보랑 일하는 건 어때? 예전보다 편해?”
“행정은 아주 괜찮은데. 현장은 여전히 빡세다.”
“……쯧.”
역시. 이런 자구책으로는 안 되려나보다.
결국 내 입에서 정론이 나왔다.
“범죄자를 잡아 조지는 게 아니라. 범죄의 근본 원인을 조지는 게 낫겠어.”
“어떻게?”
“그건 범죄자한테 물어봐야지.”
* * *
“……그래서 저를 보러 오셨다는 거죠?”
“네.”
“……아, 저, 지금, 살짝 상처받은 것 같은데…….”
천금순의 어깨가 시무룩하게 추욱 늘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초대형 경제사범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우리 사장님이 보기에는 초인범죄 증가율 136%의 이 참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까?”
“……글쎄요. 저는 범죄자라서 잘 모르겠는데-”
“GS 소속 애들이 지랄 놓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도 굳이 뽑자면 2세대 헌터들의 기본적인 배경 때문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조금 있네요…….”
2세대 헌터들의 배경이라.
그녀의 말인즉슨,
괴수들 쳐들어왔을 때 각성한 1세대 헌터들보다는, 가족이고 재산이고 죄다 잃어버리고,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수명 깎아서 각성제 원샷한 놈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다.
물론 지금이야 각성제가 좀 비싸지고, 시중에 풀리는 수량도 정부에서 통제하다보니 2세대 헌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각성제가 무제한 공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 망하기 직전이라 헌터가 필요하다며, 각성제를 마구잡이로 풀어버리던 시절 말이다.
그리고 그때 각성제 풀어버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러니 천사장의 말은,
“……이게 다 한승문 때문이다. 이거죠?”
“아니, 뭐어. 꼭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고…….”
그녀는 여느 때처럼 처진 눈매를 살포시 기울였다. 아무래도 조만간 세무조사를 들어가든 해야 되겠다.
내 눈빛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천사장은 빠릿하게 제대로 된 대답을 내어놓았다.
하여튼 눈치는.
“사실 제가 보기에는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에, 뭔가 계급적인 구도가 만들어져서 그런 것 같네요…….”
“……계급이요?”
“헌터들 사이에 선민사상이 조금 있단 말이죠?”
“……그렇긴 한 것 같은데.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니겠습니까?”
“아뇨, 아뇨. 이건 시장이 증명해요. 사노피보다 후달리는 GS 포션에다 명품딱지 붙이니까 지금 매출로 비비고 있잖아요…….”
“……그건 규제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무튼-!”
그녀는 필사적으로 내 말을 끊고서, 새로운 화두를 던져놓았다.
“이런 현상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그, 북한 금강산 일대에, 장전읍이라고, 강원도 삼팔선 바로 위쪽에 형성된, 그…… 뭐랄까요, 대규모의…… 섹슈얼? 산업단지라고 해야 하나…… 아!”
“…….”
“빡-”
“호, 홍등가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네!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