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EP - 첫사랑, 동창회, 그리고 권력 (3)
갑자기 선거철을 운운하니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주변인의 필사적인 만류가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아, 아하하! 그래. 그래. 승문이가 너무 오랜만에 오긴 했다. 야.”
“그래도 큰 사람 돼서 왔으니까 얼마나 좋아?”
“자, 자, 마셔, 마셔.”
그러나 그 선배는 이미 마실만큼 마신 모양인지,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히죽거렸다.
“성공해서 왔지. 그래. 성공했어…….”
“…….”
“성공했으니까 왔지. 그래.”
* * *
이제 보니 그의 옆에는 벌써 맥주캔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온 지 얼마나 됐다고 말이다.
말하는 걸 보니 혀까지 풀려 있었다,
그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정치한다는 놈이, 사람을 잘 챙겨야지……! 새키…….”
“…….”
“앞으로도 좀 자주 오고 그래라!”
그는 나를 흘끔대며 웃었다.
“TV에서만 보이고 말이야. 쓰에끼가…….”
그리고는 휙 돌아앉아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이제는 수습하지 못할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
“…….”
결국 나를 데려온 누나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연다.
“우리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애가 어떻게 먼저 찾아오니.”
“…….”
“아까 우연히 만나서 오늘 겨우 알았고, 알자마자 우리 생각해서 와준 거야.”
차분한 설명에, 사람들이 말을 덧붙였다.
“아아, 그랬던 거야? 생각해 줘서 고맙다 야.”
“오랜만에 봤으면 됐지 뭐…….”
“그래. 그래. 야, 콜라 어딨냐? 애들 콜라 적당히 맥여라. 밤에 잠 못 잔다.”
그러나 저 선배는 아직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아니, 그러면 원래는 올 생각도 없었다는 거네?”
“…….”
“이-런! 괘씸한 후배 놈을 봤나!”
그가 나를 바라보며 히죽했다.
“야, 와서 벌주나 좀 따라봐라.”
그렇게, 결국.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 씨, 깜짝이야.”
그녀는 선배의 앞으로 걸어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우리 생각해서 와준 애한테,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 하니?”
“어, 씨, 갑자기 왜 그래? 유권자가 정치인한테, 요 정도 쓴소리는! 어? 할 수도 있는 거지?”
“니가 쟤 인생에 보태준 게 뭐가 있다고 훈장질이야?”
“에헤이……. 내가 그래도 선거는 승문이 꼬박꼬박 찍어줬지!”
“쟤 선거 통영에서 딱 한번 했어! 너 통영 사니? 아니잖아?”
“아, 그럼! 앞으로는 찍어주면 되는 거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말고. 그딴 소리 할 거면 그냥 나가서 술이나 먹어.”
“…….”
“나랏일 잘하고 있는 애한테 할 소리야 지금…….”
그녀는 가볍게 혀를 차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 뒤돌았다.
그러나,
결국 저놈이 일을 쳤다.
“참, 나. 애까지 있는데 아직도 첫사랑을 못 잊었어?”
“……너, 지금, 뭐라 그랬니?”
“아니면 뭐, 이제 남편도 없는데 갈아타려고 작업치는-”
그리고 이 시점에서,
“저기요.”
내가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혹시 불만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면 될 것 같은데.”
“…….”
“한 번 말씀해 보세요. 마침 여기 널린 게 공무원이니까.”
친절한 공무원의 말투는 아니었다.
녀석은 이쪽을 주시하던 내 경호원들을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붙이며 말을 이었다.
“아, 아니 뭐, 불만까지는 아니고! 불편이야 많지. 그래. 나라가 말이야? 버스도 잘 안 다니고. 요금도 더럽게 비싸고…….”
“예. 이제 마석에너지로 교체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버스요금 내릴 거예요. 그리고?”
“그, 그, 대피소도 말이야. 어디 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사람 몰아놓고서는, 어? 사람들 살 데가-”
“4기 신도시 짓는 중이고요. 새만금 간척도 이제 끝나 가고요. 그리고?”
“아, 아니. 집값도 또 문제야! 부산 광주는 서민들이 못 산다니까? 나라 꼬라지가-”
“그래서 집 짓고 있잖습니까. 여러분한테 헐값으로 분양할 집.”
“……그, 그, 뭐냐. 나, 참!”
결국 그가 내민 건, 불안하게 흔들리는 손가락 하나였다.
그는 나를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였다.
“지금 사람 겁박하는 거야! 뭐야?!”
“…….”
“이, 이, 씨발놈에 피자는 뭔, 이십만 원이나 해가지고……!”
철썩-!
결국 그가 들고 있던 피자를 벽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시뻘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옆으로 크게 휘청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
나는 그제서야 그가 의족을 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보건복지부에서 나눠준 보급형 의족이었다.
그는 불안하게 욕지거리를 짓씹으며, 벽을 붙잡고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참! 나! 자기는 장애지원금 다 받아 처먹으면서 살아 놓고는, 이제 와서 그걸 없애 버리면 뭐 어쩌자는 거야……?”
“…….”
그는 나라에서 나눠준 181만 원짜리 의족을 달고 있었고, 만약 그 상처가 괴수 때문이었다면 아마 무료로 치료받았을 터였다. 앞으로도 무료로 관리받을 거고 말이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굳이 그에게 그걸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 결국 원망이었다.
“나라꼴이 이 따윈데……! 뭔 나랏일 하는 놈을 대접해 줘……?”
그는 내 옆에 앉아 있는 후배 두 명에게도 삿대질을 일삼았다.
“니들도 인마! 거머리처럼 살지 마!”
“…….”
“이……! 이이……! 무식한 새끼들이 정말……!”
녀석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려다, 결국 의족을 단 방향으로 철퍼덕 넘어져 버렸다.
망가진 사람이었다.
“…….”
어느새, 우리 모두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
그도 우리를 힐끔 돌아보았다.
겁먹은 표정이었다.
술에 취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고, 결국 의자를 붙잡고 낑낑대며 힘을 썼지만, 애꿎은 의족만 벗겨지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이……! 썅……!”
그는 의족을 다리에 끼우려 안간힘을 썼지만, 실리콘 라이너가 말려 내려갔으니 의족이 제대로 끼워질 리가 없었다.
“…….”
나는 익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의족을 끼워 주었다.
“……발목의족이네.”
“…….”
“몇 년만 고생하면 예전처럼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좀 답답하긴 한데, 이거 봐봐. 혼자서도 일어났다 앉았다 하잖아.”
물론 이모가 맞춰준 2,300만 원짜리 기계의족 덕분에 회복이 빨라진 거였지만, 거기까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힘내요.”
정치인이 국민에게 해도 되는 말은, 오직 듣기 좋은 소리뿐이었으니까.
그게 거짓말인지는 상관없었다.
“…….”
“…….”
나는 그의 다리에 의족을 다 끼워주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이름 모를 선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체육교육과에서도 드문 스포츠선수 지망이라고 들었었는데. 사람이 참 망가진 흔적이 역력했다.
물론 이름은 모른다.
평생을 트라우마와 싸워온 나는,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는 것에 굉장히 능했고, 덕분에 나는 내 인생과 상관없는 이들의 이름을 금방 잊어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굉장히 친절하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에게 그는 일개 국민일 뿐이었으니까.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
그가 내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숙이던 그때였다.
“서, 선배!”
뒤쪽에서 후배가 나를 불렀다.
녀석은 내가 자리에 두고 온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저, 전화가, 왔는데요.”
“어어, 그래. 고마워. 이리 줘.”
웬일인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다.
녀석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호, 혹시, 지금 전화 온 양판석이…….”
“……아.”
“제가 아는 그 양판석 맞나요……?”
나는 잽싸게 녀석에게 핸드폰을 받아 들고서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어어, 승문이. 통화 되나?
“예, 각하. 말씀하십쇼.”
사실, 나가는 길에, 바닥에 쓰러진 아까 그놈의 앞을 지나갈 때, 일부러 ‘각하’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긴 했다.
* * *
“……예. 아마 중국도 가급적이면 빨리 아카데미 재개를 원할 겁니다. 내년 초로 일정 잡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어. 그래. 아카데미 일정은 그렇다 치고. 자네 주말 일정은 어떤가?
“……예?”
-동창회 갔다면서?
하여튼. 이놈의 경호원들이 벌써 보고를 마친 모양이다. 국정원이 절반이고 대통령경호처 파견인력이 절반이었으니까.
“아, 네. 우연히 연이 닿아서…….”
-……영 아니지?
“네?”
-보통 골치만 아프더라고. 나는.
“…….”
-다음 주에는 나랑 부산에서 장어나 좀 굽지.
하여튼. 참. 귀신같은 노인네였다.
하기는, 내 삶의 대부분을 아마 겪어본 사람일 테니까. 정치인들 생활이 거기서 거기지 뭐.
결국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만 자네.
“안녕히 주무십쇼.”
뚝 -
통화가 끝나고,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여기는 아무래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
그리고 그 생각은 한참동안 머리에서 가시지 않았다.
그게 내가 소극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바깥에서 담배를 물고 있던 이유였다.
“……콜록!”
여전히 담배연기가 따가웠지만, 예전처럼 눈물까지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소극장 입구 옆 전봇대에 기대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교회의 빨간 네온 십자가 아래로 취객이 비틀거리며 골목을 지나갔다. 자동차는 취객을 피해 살짝 옆으로 방향을 튼다.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에게 아이가 구겨진 천원을 건넸고, 상인은 쓰게 웃으며 아이에게 붕어빵을 하나 건넸다. 돈은 받지 않았다.
등에 찌그러진 야구몽둥이를 매단 헌터가 여자 두 명을 양쪽에 끼고 모텔로 들어갔고, 지나가던 환경 미화원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전기세를 아끼는 모양인지 주거단지의 야경은 예전처럼 환하지 않았지만, 저어 멀리 도심에는 아직도 불이 켜진 빌딩들이 보였다.
호프집은 사람이 텅텅 비었으나 헌터 하나가 모든 매상을 해결해주는 모양이었고, 오히려 편의점에 사람이 꽉 꽉 들어차서 폐기도시락을 할인해 달라 요구했다.
이제는 오히려 편의점에서 저녁세일을 세일즈포인트로 내세우는 모양이다.
팍팍하고, 싸늘하다.
밤바람이 차갑다.
“…….”
그래도 분명히, 세상은 아직 굴러가고 있었다.
어딘가 망가지긴 했지만, 그건 차차 고쳐나가면 되는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승문아……?”
“……아, 누나.”
가디건을 걸친 그녀가 소극장 입구에서 걸어 올라왔다.
“……먼저 가버린 줄 알았잖아.”
그녀가 쓰게 웃었다.
익숙한 웃음이었다.
“……얘 좀 봐. 담배는 또 언제 배웠어?”
“하하…….”
“마음 상하진 않았고?”
“……인성은 정치인들이 더해요.”
“하하! 그렇긴 하겠다.”
그녀는 서슴없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는 경호원들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그녀가 담담하게 말문을 텄다.
“이럴 거면 너 데려오지 말걸 그랬다. 미안해.”
“……미안하긴요. 뭘.”
“사실, 우리 우연히 만난 게 아니다?”
“……네?”
그녀가 쓰게 웃었다.
“계속 너 찾아다녔거든.”
“…….”
“작년에 부산 워커힐에서 동창회 했을 때도 멀리서 너 봤었는데, 나같이 쫄딱 망한 사업가는 VIP 홀에 출입도 안 시켜주더라고. 하하…….”
“…….”
“그때 옆에 있던 게 GS 천 사장이었나? 실제로 보니까 덩치 엄청 쪼그맣더라? 귀엽게 생기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는데요?”
“……아까 철민 선배가 말했잖아. 내 남편 죽었다고. 들었지?”
“……네.”
“아직 실종 상태야.”
“…….”
“사망자 확인 서비스 신청해 놓고, 이산가족 상봉시켜준다는 흥신소에다가도 의뢰 맡겨놓긴 했는데…….”
그녀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하는 듯 했으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어째, 1년 넘게 소식이 없네…….”
조금씩 울먹이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말인데. 승문아?”
“…….”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되겠니?”
“……말씀해 보세요.”
한참동안 눈가를 닦아낸 그녀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읊조렸다.
“……우리, 은영이 아빠.”
“…….”
“살아 있는지만. 어떻게. 좀-”
그녀는 결국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나는 한참동안 오열하는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녀가 1년 동안 품어왔던 고민을 해결해주는 데에는, 고작 26분짜리 전화 한 통이면 충분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마 걸어갈 기운이 없어 운전비서를 불렀다. 예전에 어디서 정치학 교수 했다던 양반이다.
원옥분 사주 받고 스파이 짓하러 온 주제에, 평소에 온갖 견해들을 갖다 밀며 나를 은근히 교육시키려는 양반이기도 했다.
아주 교묘하고 은근한 술수를 보고 있으면, 나를 휘두르는 비선실세 포지션을 노리는 건가 싶다.
맘같아서야 모가지를 쳐내고 싶지만, 언젠가 약점으로 잡아 돌려줄 심산으로 데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오늘 내 표정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운전하는 양반에, 조수석에서 역장 치고 있는 경호원, 내 옆에서 뭔일나면 총알받이해줄 경호원까지.
나 말고도 차에 세 명이나 있는데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건 내 권력이었고, 그로 인해 느끼는 부담도 내가 감내해야 할 것이었다.
“…….”
이들이 겁먹을까 봐 한숨소리 하나 내지 못한다.
이게 내 일상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바라고 또 탐냈건만, 이제는 딱히 즐겁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낚시라도 할까…….”
“네? 장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뇨, 아닙니다.”
가벼운 중얼거림에 인위적 과민반응이 이어지는 와중, 나는 심드렁하게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휙 휙 지나가는 도심을 바라보았다.
어둑한 주택가와는 다르게, 아직도 환히 빛나고 있었다.
“…….”
저 창가 하나하나를 빛내는 건 누군가의 삶이었고, 이 도시를 환하게 빛내는 건 정치인의 책무였다.
그러니, 나는 짐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죽어나간 사람들을 위해 말이다.
그리 생각하며 조금 눈을 붙이려던 때였다.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야. 어디야.
“……누나?”
-나는 지금 니네 집인데, 왜 너는 니네 집에 없냐?
“어, 음. 왜 누나가 내 집에-”
-어디야.
“가는 길.”
전화기 너머로 여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금 온다는데요.
-빨리 오라 그래요! 다 녹겠다!
-녹기 전에 먹으면 되는 거 아냐?
-쉿……! 쉿……!
감씨네 가족 목소리다.
나는 기겁해서 물었다.
“아니, 왜 지윤이가 내 집에 들어가 있어?”
-지금 니 깜짝파티 준비하고 있으니까. 빨리 오라고.
전화기 너머에서 ‘아 그걸 왜 말합니까-’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기만 했다.
“뭐?”
-유럽에 있는 동안 니 생일 지났잖아. 헌터들 무사귀환도 기념해서 여기 다들 모여 있어. 천 사장님은 야근 끝내고 오는 길이래. 양 의원님도 계시고. 아니, 이젠 각하였나…….
“…….”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가 툴툴거린다.
-근데 도어락 비밀번호 왜 바꿔놨냐.
“……우리 집 도어락이니까 내 맘. 아니, 잠깐, 바꿨는데 어떻게 뚫었어? 문짝 부쉈냐? 설마!?”
-아니 왜 징그럽게 내 생일로 해놓냐고. 빡치게.
“…….”
-아무튼 케익은 지윤이가 한 입 먹었으니까. 알아서 하고.
“……민트초코지?”
-그냥 초코. 수고.
뚝-
녀석은 그러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넋을 놓았던 것 같다.
기사님이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금만 더 빨리 가주실래요?”
“예?”
“케익이 녹는다네.”
모든 권력자의 명령이 그러하듯,
이유는 딱히 중요치 않았다.
운전비서는 엑셀을 밟았고,
검은 에쿠스 하나가 찬란한 빛의 도시를 가로질렀다.
SIDE EP
첫사랑, 동창회, 그리고 권력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