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EP - 첫사랑, 동창회, 그리고 권력 (2)
그녀를 따라 찾아간 소극장은 참 오묘한 모습이었다.
어둑한 실내, 영화관 의자, 거기에 무대조명.
분명 어엿한 소극장이었지만 곳곳에 널린 옷가지 따위가 이곳이 생활공간임을 알려줬다.
무대 구석에 있는 소형 냉장고라던가, 벽에 늘어선 가방들이라던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모두 애들이었다.
“…….”
“…….”
“…….”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녀석이나, 후줄근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둘러싸고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동기네 자식들을 만난 내 심정이나, 갑자기 웬 정치인이 경호원들을 끌고 집에 쳐들어온 마당인 녀석들 심정이나,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아, 안녕?”
나는 뭐라고 인사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수상한 아저씨의 단골멘트를 입에 담았다.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줄까?”
* * *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몇 가지 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치즈라던가, 양손에 음식을 한가득 들고 온 배달원이라던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라던가.
“히이익……!”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쪼르르 달려가, 배달원에게 큼지막한 피자박스를 받더니, 상자를 열며 깊은 탄성을 자아냈다.
“우와아아……!”
하얀 치즈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소년의 눈빛에는 빛이 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식사를 앞둔 아이들이 목청 높여 내게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어어, 많이들 먹어.”
오랜만에 먹는 피자였는지, 다들 복스럽게도 먹는다.
한편, 영수증을 확인하고 안색이 하얘진 누나가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야!”
“아, 왜.”
“어머, 얘, 미쳤어. 미쳤어! 대체 얼마를……!”
“아이, 괜찮다니까…….”
“그래도 그렇지! 뭔 피자를 수백-”
“미안해서 그러지. 내 쪽에서 연락 끊고 살았잖아.”
“…….”
“애들 맛있게 먹으면 됐지. 뭘. 어차피 나도 국민들 세금으로 월급 받는데. 그냥 돌려주는 거야.”
결국 그녀가 쓰게 웃으며 백기를 들었다.
“……그래. 고맙다. 맛있게 먹을게.”
“……뭘.”
그녀의 딸이 엄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군침이 돈 모양이다.
“엄마……! 나 치킨!”
“어어, 그래. 살 발라줄게.”
그녀가 딸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대기업 치킨 프렌차이즈의 마케팅을 프레젠테이션하던 그 손은, 이제 사랑스런 딸을 위해 치킨 껍데기를 까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모양이다.
나는 문득 손아귀를 만지작거렸다. 연필 때문에 생긴 굳은살은, 고등학교 때 생겨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
나는 왜 애들만 있냐는 질문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안부인사 함부로 묻다가 부고 전해 듣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건 그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 모양이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왜 너희들만 있니? 다들 어디 갔어?”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녀가 툭 대답했다.
“……다들 장보러 나가셨어요.”
“뭐? 몇 시에 나갔는데 아직도 안 돌아와?”
“천안에 GS 배급차 떴다던데요. 민증 하나에 박스 하나 주니까. 다들 갔죠 뭐.”
“천안? 참, 나. 기름값이 더 들겠다.”
“그러니까 걸어갔죠.”
“…….”
그녀가 말을 잃었고, 까칠한 소녀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박스 하나 받겠다고 20㎞ 걸어가는 거 보면 웃기다니까.”
“…….”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소녀는 무심히 피자를 한 입 베어물었고, 호랑이는 제 말 듣고 온 모양인지, 계단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뭔 냄새야?”
“설마 애들 지금 뭐 시켜먹은 거예요?”
“이놈의 기집애가……! 야! 강예솔! 너 또 이모 카드 훔쳐서-”
가장 먼저 문으로 뛰어 들어온 건 동아리 후배였고,
“……어?”
그 뒤에 들어온 건 동아리방에 박혀 살던 재수생 동기였으며,
“누, 누구야……?”
그들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건 술을 참 좋아하던 선배였다.
“어, 자, 잠깐만. 저 사람-”
그리고 대여섯 명의 동기들이 시시각각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노인들도 한둘 섞여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들은 모두 손에 박스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말문을 잃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
오랜만이라고 인사해야 할까, 안녕하냐고 인사해야 할까.
오랜만이긴 해도 안녕하지는 못해 보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거다.
“……오랜만이네요. 다들.”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반갑긴 했다는 거였다.
아직까지는.
* * *
소극장 무대 위에 피자와 치킨이 깔렸고,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했다.
나는 종이컵에 콜라를 따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하나 하나 인사를 나눴다.
“아야아-! 이게 얼마만이냐……. 잘 먹을게요?”
“아, 예. 맛있게 드십쇼.”
누군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악수를 청했고.
“아이고……! 장관니임……! 참말로-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나랏일하시는 분이- 이걸 어째……!”
“하하, 네. 반갑습니다, 어르신.”
"우리 정연이 친구예요?"
누군가는 굳은살 박힌 손으로 내 손을 꽉 부여잡았으며,
“어, 음. 오랜만에 봐서 반갑네! 우리 같이 스터디했던 거, 기억하나……? …….요?”
“아하하. 그럼!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요…….”
조별과제 도망치고 뻔뻔하게 대꾸하던 놈은 괜시리 내 옆에 앉아 함께 콜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찰칵-!
“의원님, 이거 페이스북에 올릴까요?”
셔터 소리에 곧장 대꾸했다.
“야, 채원아. 내가 지금 선거운동하러-”
“보좌관 이름이 채원이구나?”
“……!”
생각해 보니 피채원은 여기에 없다. 나는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어!”
“오랜만이에요 선배!”
“야! 너……!”
“이쪽은 내 남편!”
꽤 친하게 지냈던 후배가 웬 수염 난 남자를 들이밀며 내게 소개시켰다.
수염쟁이는 진지하게 내리깐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그러나 내가 녀석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야, 어디서 약을 팔아?”
“들켰네.”
“수염은 왜 길렀어, 이놈아!”
“얘가 좋아해서요.”
내가 아끼던 후배 두 놈이 부부가 되어 나타났다. 나는 금세 녀석들과 피자 한 판을 두고 둘러앉았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안부를 물으려던 그때였다.
달칵 -
누군가 TV를 틀었고.
[……속보입니다.]
속보가 튀어나왔다.
[중국 리충빈 총통이 대만, 홍콩, 티베트를 비롯한 7개 행정구에 대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 * *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습적인 중국 방문과 연관이 없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 뭐냐. 사실상 미국측에서 협상을 주도했다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자기가 대만을 해방시켰다 이거죠. 아마, 국제사회에 대고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을-]
속보를 듣고 충격받은 후배가 내게 물었다.
“……선배, 지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으응?”
확실히 아나운서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오늘 새벽에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중국을 찾아간 것도 수상한데, 왜 하필 회담 끝나는 타이밍에 중국 총통이 티베트와 대만을 해방시키느냐고 말이다.
종편 패널로 앉아 있던 어디 교수는 중국과 미국이 연합해서 새로운 국제기구를 세울 수도 있다는 개소리까지 늘어놨다.
“이거 심각한 일 같은데…….”
그러나 나는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했다.
“글쎄다…….”
“비상회의 같은 거 안 열려요?”
“그야 각하가 전문가들 몇 명 불러서 회의하시겠지. 거기서 뭐 결정 나면 나는 따르기만 하는 거고.”
“이거 단순히 외국 일은 아니지 않나?”
“에이……. 뭐 그거 가지고 우리까지 뒤집어지나. 우리 외교부에서 알아서 할 거야. 능력이 워낙 출중하신 분들이라서.”
“…….”
“아직 잘 모르긴 해도,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야.”
모른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실은 앞으로 이어질 시나리오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중국은 티베트, 대만, 홍콩을 비롯한 모든 반정부 세력권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괴수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우리나라면 또 모를까, 어지간한 국가에서 아직 정규군 없이 헌터만으로 괴수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미국이 그들을 도와주지도 않을 거였다.
“…….”
그렇다면 이어질 일이야 뻔하다.
티베트, 대만, 홍콩은 중국 정부에 자발적으로 보호를 요청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중화연방이라는 새로운 연맹체가 탄생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리충빈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부 반정부세력의 명분을 꺾어버리는 동시에, 지방군을 축소시키고 중앙군을 확장시킨다.
게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연방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공직이 리충빈의 세력으로 물갈이될 것은 뻔했다.
또한, 미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을 끌어내리려 드는 공화당과 민주당에게, 자신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말이다.
탄핵소추에 불신임결의까지 당하고서, 내각 총사퇴를 감내해야 했던 미 대통령이, 초법적인 수단으로 재집권하고서는 어느새 자리를 견고히 다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게다가 독립은 좋은 일인데 뭐.”
그러니 결국, 대만, 홍콩, 티베트의 독립은, 미국과 중국의 두 지도자가,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이는 정치쇼였다.
“갑작스럽긴 해도 희소식은 희소식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묵인하는 대가로 북한의 주권을 인정받았으니, 내가 오늘 이게 터질 거라는 걸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잘 모르긴 하는데.”
그러니까, 이런 복잡한 상황 속, 내가 국민들에게 전할 말은 딱 하나다.
“각하께서 현명하게 대처하실 거야. 아마.”
“…….”
“안심해.”
그리고 국민들의 반응은 간단했다.
치킨을 뜯어먹던 수염쟁이 놈이 씨익 웃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죠?”
“야. 내가 저걸 알면 돗자리를 깔았지.”
“와아. 선배 연기력 그대로네?”
옆에서 맥주캔을 홀짝이던 후배가 덧붙였다.
“한 선배 정도 되는 사람이 저걸 모르고 있는 게 말이 안 되죠. 우리나라가 진짜로 저걸 몰랐으면 능력이 없는 거고.”
“야, 내가 외교부 장관도 아니고. 저걸 어떻게 아냐?”
“나무위키만 봐도 선배 행적이 다 나오는데. 내가 선배가 어떤 스타일로 정치하는지 모를 것 같아요? 남도 아닌데?”
후배는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으로 쪼그려 앉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초상관리부 국제 1차관이 문통 때 외교부 장관이었잖아요. 근데 어떻게 선배가 외교부랑 상관이 없어. 마석경제 운영하는 책임자인데.”
“……아, 씨, 모른다니까?!”
“아하핫……! 청문회 아니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 저거 알고 있었죠?”
“……아는 바 없습니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까 선배도 곧 청문회 나가야 하네. 이제 국정감사 시즌 아닌가?”
후배 두 놈이 번갈아가며 정치권 이야기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배울 만큼 배운 놈들이라 그런지 시야가 트여 있었다.
“근데 초상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양일호 의원 아니었나? 안 그래도 뱃지장관은 거의 안 건드리는데. 연립정부에서 누가 우리 선배님을 건드려?”
“어허, 자기야. 선배님이 아니라 장관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러니까 우리 장관님을 막을 사람이 대한민국에 없다 이거야! 당정청을 쓸어 담은 선출직 공무원을 누가 막냐고!”
“어! 야! 야! 이거 봐라! 장관님 귓볼 빨개졌다!”
괜시리 손을 내저으며 화끈해진 얼굴을 삭히던 그때였다.
“근데 지금이 선거철인가?”
뒤쪽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닭다리를 뜯어먹던 웬 선배가, 큰 목소리로 혼잣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옛날에 장애인 전형으로 들어왔다고 눈치 주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아- 안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니까.”
“…….”
“선거철인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