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EP - 첫사랑, 동창회, 그리고 권력 (1)
실내용 의족의 뻐근함은 10년이 넘게 지나도 익숙해지지를 않는 모양이다.
절뚝. 절뚝.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창문 너머의 하늘은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슬슬 차가워지기 시작한 공기가 유리창에 스며든다.
어느새 가을인가 보다.
호로록.
따스한 커피를 입에 머금고, 늘상 그렇듯 라디오 버튼을 누른다.
달칵-
[……유럽을 뒤흔든 대재앙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지 3개월. 어제 저녁, 설진운 부협회장을 비롯한 헌터들이 대거 귀국했습니다. 설 부협회장은 국경없는 기사회의 아시아 지부장으로 선출된 소감에 대해-]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총리가 각 쉘터에 대한 ‘행정적 자치권’을 인정했습니다. 기사회의 노아 뤼미에르 총본부장은 어려운 결정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는 뜻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을 기습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리충빈 전 부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총통으로 선출된 지 불과 이틀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문은 상당한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집-]
달칵-
라디오를 껐다.
“……후우.”
보좌관 시절부터 매일 아침 뉴스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요즘은 다 알고 있던 소식만 들려오니 영 감흥이 없다.
뉴스에서 나오는 일들에 내가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관여하고 있거나, 뉴스에 나오기 전에 국정원을 통해서 듣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 오랜 습관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라디오를 끄고, 인터넷 뉴스도 꺼버린다. 그리고 베란다에 비치된 소파에 앉아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다.
“하아…….”
내가 사는 관저는 세종시 정부청사 인근의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재벌이 별장으로 쓰던 곳을 개조했다던데 여러모로 불편이 많다.
우선 1층은 국정원 요원들과 대통령 경호처 파견인력이 상주하는 곳인지라, 집이라기보다는 로비에 가까웠다. 나도 1층은 구두 신고 방문한다. 가끔 먹을 거 챙겨주러.
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직장이 있으니 지각해도 핑계를 못 댄다. 그래서 아예 퇴근을 안 하게 되더라.
거기에, 방탄유리 겹쳐놓은 바람에 창문을 못 열어서 환기가 안 되고, 에어컨이나 히터로만 온도조절하는데, 공기청정기 하루종일 틀어놔도 뭔가 꾸릿꾸릿한 느낌이다.
물론 내가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2층 일부만 따져도,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집을 합친 것보다 넓으니, 사소한 불편은 감수하고 사는 중이다.
애초에 지금 집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인데, 이런 집 살면서 불평하는 건 사치스러운 짓거리였기도 하고 말이다.
호로록.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
새벽안개에 감싸인 거대한 정부청사.
마알간 가을 하늘에 퍼져나가는 주홍빛.
시시각각 출근하기 시작한 공무원들.
그리고,
산골짜기 너머를 은은하게 적시기 시작한 새벽녘.
“……흐음.”
2층이라 그런가, 경치는 참 좋았다.
* * *
미쳐 돌아가는 나라에서 미친놈처럼 정치를 하니 유명인사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외출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내게 이런 건 아주 익숙한 일이다.
다리 한 짝이 없지 않은가.
버스만 타면 모든 사람이 쳐다본다. 그리고 굉장히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곤 한다. 어린 내게는 그게 참 불편한 일이었다.
즉, 나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법을 아주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것이다.
옷차림만 조금 바꾸면 된다.
그러면 별 무리없이 외출이 가능하다.
“…….”
등산용 벙거지 모자.
등산용 고글.
등산용 마스크.
혹은 미세먼지 마스크.
이거면 일단 얼굴은 가린다.
거기에 등산복까지 입으면 금상첨화.
물론 등산복 입고 도심을 돌아다니는 게 어색할 순 있지만, 집회 나가는 아저씨들도 다 등산복 입고 다니는 덕분에 썩 괜찮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등산용 ‘지팡이’를 자연스럽게 소지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덕에 나는 요즘도 등산복 차림으로 외출을 즐길 수 있었다.
휴일에 짬내서 산책 다니는 건 내 오랜 취미였으니 말이다. 사실 재활활동차 의사가 시킨 건데 하다 보니 재미를 붙였다.
문제는,
“……요원님, 아니. 과장님. 안 덥습니까?”
“괘, 괜찮습니다.”
“더우시면 말씀하세요. 카페라도 좀 들리게.”
“아닙니다, 사장님!”
경호원들이 나를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 또한 정체를 숨기기 위해 등산복을 입어야 했으며,
무시무시한 국정원 정예요원들이 등산가는 아저씨 아줌마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으면 뭔가 느낌이 요상했다.
그래서 그런가 나랑 사적으로 만나는 걸 관계자들이 ‘등산간다’고 표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나도 등산가자는 표현을 종종 쓴다. 왠지 멋있어서.
물론, 가끔은 진짜로 등산을 가곤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도 그렇게 등산을 나왔다.
점심밥을 뚝딱 해결하고 찾아간 목적지는 CGV. 거의 2주 만에 생긴 휴일인만큼 문화생활과 취침을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곳을 고른 것이다.
영화표를 대충 일곱 개 정도 끊어야 하긴 했지만, 애초에 천 사장 카드로 긁는거라 부담이 없을뿐더러, 영화표 일곱 개 합쳐봐야 5천 원도 안 된다.
나라에서 영화관을 인수하고는 거의 공짜로 국민들에게 영화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국민들에게 ‘명백히 옛날보다 좋아진 것’을 제공하는 복지라고 했다.
“이걸, 그, 뭐라고 하더라…….”
그래. 예전에 국무회의 때 교문부 장관한테 들은 적 있다.
전략적 문화제공.
국민정서 안정을 위해 문화생활을 돕는 것이다.
사람은 일상이 깨지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 우리는 시민의 안정을 위해 그들의 일상을 최대한 유지시키려 노력한다.
가장 적절한 예시가 바로 유튜브다.
금융권과 경영진이 물리적으로 붕괴하고, 온갖 재정난에 회사가 대여섯 번 박살나도 이상하지 않을 판국에, 미국 정부의 빠방한 지원을 받으며 정상운영 중이지 않았던가.
만약 유튜브가 망했다면 사람들은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는 걸 섬뜩하게 체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튜브를 보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유일하게 바뀐 건 화장품 광고 대신 각국의 공익광고가 나온다는 거다. 우리도 출산장려 광고 박아넣느라 돈 꽤나 깨지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
이건 조만간 미국 약점 잡은 거 몇 개 풀어서 해결하도록 하고. 아무튼 오늘 볼 영화나 고르도록 하자.
명량. 국제시장. 그리고 UBD.
2010 스타일 국뽕 고전.
교문부 공무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엄선한 라인업이다.
나온 지 10년 넘은 것도 있어서 신파가 좀 세긴 한데, 요즘 가장 잘 팔리는 감성들만 모아놨다.
당장 무심코 팝콘 사려다가 줄 서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보고서, 나조차 살짝 섬뜩할 정도였으니, 영화라도 국뽕을 보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다.
씁쓸한 기분으로 상영관에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한승문?”
어디선가 들려온 내 이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경호원들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등산복을 빼입은 일곱 명이 동시에 자신을 쳐다보는 게 당황스러운 모양인지, 나를 부른 여자는 살짝 움츠러드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게 그녀가 나를 알아볼 계기가 되었는지, 그녀는 피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 아직도 등산복 입고 다니니?”
조금 변했지만, 아직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바짝 얼어붙었다.
“아.”
기다란 생머리는 어느새 단발머리가 되어 있었고, 유쾌하고 해맑던 얼굴엔 다크써클이 조금 생겼지만,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오랜, 만이네.”
“그러게.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는데. 반가워.”
“……그러게.”
“참. 이게 얼마만이니…….”
그녀가 서슴없이 내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지만, 경호원은 움찔거리며 나와 그녀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는지, 경호원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와 그녀는 동시에 쓰게 웃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나는 내 첫사랑과 만났다.
“……엄마, 누구야?”
그녀는 그녀를 똑 닮은 딸의 손을 잡고 있었다.
* * *
5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난다는 건 지극히 어색한 일이었다. 그것도 자식 동반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유쾌하고 자상한 연상이었고, 그녀와의 관계는 애인이라기보다는 친구에 가까웠을뿐더러, 마무리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끝났었기에,
우리는 비교적 덜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요즘 등산복 입은 사람이 한둘인가. 이불로도 쓰니까 다들 등산복만 입잖아.”
“……그런데 어떻게 알아본 거야?”
“등에 내가 꿰매줬던 자수가 있더라.”
영화관 인근의 공원. 피난민들의 텐트가 곳곳에 보이는 와중, 우리는 가장 구석의 벤치에서 회포를 풀었다.
경호원들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감싼 가운데, 그녀가 웃었다. 익숙한 미소다.
“그리고, 그 고글. 내가 사준 거 아니야?”
“……내가 두 개 사서 하나씩 가졌었는데.”
“그럼 말구…….”
그녀는 입을 삐죽이고서 그녀의 딸을 품에 안았다.
아이는 이제 말문이 튼 모양인지, 엄마에게 안겨 옹알댔다.
“저 아저씨 누구야……?”
“으응. 엄마 친구. 대학교 때.”
“대학교가 뭐야……?”
“은영이 크면 가는 데. 아마도?”
그녀가 문득 눈빛을 빛냈다.
“……아!”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는다.
“승문아. 나중에 우리 은영이 제주대학교 입학시켜주면 안 돼? 나 닮아서 전국 1등은 확정일 것 같은데!”
“……애가 몇 살인데 벌써부터 청탁이야?”
“에헤이. 알만큼 아는 사람이 왜 이래? 척하면 척이지. 정치 하루이틀 해?”
하여튼 이놈의 주둥아리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허나 이래봬도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격자였으니, 기분 좋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에 나는 그녀의 부정청탁에 답했다.
“……10년 후에 데려오던가. 그럼.”
“이거 녹취해서 방송국에 보내면 얼마나 받을까?”
“그거 방송 안 나올걸?”
“이야…… 성공했네?”
그녀가 무릎에 앉혀놓은 딸의 말캉말캉한 볼을 주물럭대며 말을 이어갔다.
“정치 배우는 애가 연극동아리 찾아와서 대뜸 미메시스 알려달라길래 이상한 앤가 싶었는데. 한국대 최고 아웃풋 될 줄 알았으면, 이거, 연계전공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한국대 출신 대통령이 몇 명인데, 무슨.”
“YS 하나밖에 없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우리 학교에 연영과 없는 걸 몰라?”
“들켰네?”
“……참, 나.”
연극동아리.
사실 내 인생에서 좋은 추억은 거진 여기에 담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 인격 정화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장애인으로 고등학교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내 휠체어 끌어주는 걸 전담하는 당번이 생기고, 그거 하기 싫어서 애들끼리 가위바위보하는 걸 보면 기분이 참.
그래.
부모 잃고 다리까지 잃었는데 성격이 남아나겠나.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그거 때문에 열등감이 생겨서 골방에서 공부만 팠다.
예민하고 까칠한 장애인에, 담배피고 가출하는 반항아까지 키운 부모입장에선 생지옥이었겠지.
그나마 남매 사이가 좋고, 내가 공부를 잘하고, 여도연이 일진이 아니라, 부모가 싫어서 뛰어나간 격투기 꿈나무에 가까워서 망정이지. 막장으로 가자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내 성격은 영 예민하고 까칠하고 아무튼.
조금 그랬다. 사실 지금도 조금 그런 낌새는 있다.
오죽 사람이랑 못 어울렸으면 사람 사귀려고 연극동아리 들어가서 생활연기를 배우겠다는 유치한 생각까지 했겠는가. 내 입장에서 사람 사귀는 건 연기력이 필요한 행동이었다.
물론, 연극 동아리에서 진짜로 사람 사귀는 법을 배우긴 했다. 다들 대체로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사는게 워낙 바빠서 내 쪽에서 연락을 끊은 케이스에 가까웠으니, 아주 가끔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나저나, 누나도 이 근처 살아?”
“피난민이 뭐 광주를 가겠니, 부산을 가겠니. 세종시면 감지덕지하지 뭐.”
“…….”
“그래도 우리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야. 그, 경환이 선배 졸업하고 연극하다가 드라마 좀 했었잖아? 그래서 이 근처에 소극장을 하나 가지고 있더라고.”
“……그런데?”
“지금 그때 동아리 식구들이랑 가족들이랑 거기 모여서 살고 있어. 정확히는 집 없는 사람들만.”
“…….”
“대피소는 좀, 치안이나, 애들 교육이나. 그래 가지고. 으음-”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충동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나 한번 가봐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