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39화 (139/296)

EP 22 - Make world great again (5)

우리 외교부 측에서 미국과의 치열한 재협상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이미 국경없는 기사회가 유럽을 장악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르마다의 나탈리아 클랜장은 인류의 위기에 맞서-]

[사노피 포션이 6조 7,200억에 달하는 복구기금을-]

[PMC G&K에서 404 부대를 유럽에 파견한 것으로-]

내 예상대로,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세상이 대재앙_Grand Catastrophe_이라고 명명한 이번 사태가 인류의 승리로 끝날 조짐이 보이자, 온갖 PMC들이 이름을 드높이려 최전선에 섰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모두 후발주자였고, 그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설진운 헌터에 대한 레지옹 도네르, 그랑크루아의 서훈이 결정되었습니다. 프랑스 최고 등급 훈장입니다. 한국 초인협회의 부협회장으로 알려진 설 헌터는, 칼레 방어전에서-]

[저희 방송국에서 칼레 방어전을 생중계했던 바, 한승문 장관의 정무적 협상력에 대해 논하기 전에, 본인의 초능력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본인부터가 상당히 유례없을 정도의-]

물론 이 모든 현상이 ‘칼레 방어전’의 성공에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번 전쟁의 최고 공훈자가 누구인지도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주된 무대는, 전선이 아니라 정치판이었다.

가끔 지윤이 녀석과 함께 전장을 쓸어버리는 걸 제외하고는, 나는 한국 헌터들을 은근히 안전한 곳으로 보내거나, 여타 정부들과 협상하며 차후 국경없는 기사회의 영향력을 조정하고는 했던 것이다.

나는 피채원을 데리고 유럽의 실력자들과 접선해, 그들을 국경없는 기사회로 끌어들였다.

스페인의 초대형 길드 아르마다, 독일 기민당의 정치원로 앙겔라 메르켈, 심지어 모스크바 정권 산하의 유력 PMC들까지.

물론 그들이 대부분 파리를 방문한 상태고, 애초에 뤼미에르에게 아주 호의적인 세력들이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팔아 영업을 뛰는 형태에 가까웠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안다면, 이 유럽을 감싼 운명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지 정도는, 진즉 알아채고서 우리 쪽에 줄을 대려 안달이 난 상태이니 말이다.

“…….”

내 도박수는 훌륭하게 성공했고, 시대는 내 예측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그은 선은 분명히 유럽의 미래를 결정지었다.

단 하나, 내가 예상치 못했던 건.

[……에어포스 원이 샤를 드 골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나를 만나러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다.

* * *

미국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나는 여의도 물 먹고 산 사람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인물에 대해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탄핵이었다.

물론 진짜로 탄핵당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역대 최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후 러시아 선거개입과 선거자금법 위반 의혹으로 탄핵 위기에 몰리게 되자, 스스로 사임한 것뿐이다.

온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소식일뿐더러, 당장 그것 때문에 열린 미국 조기대선 와중에 게이트가 열렸으니, 그리 옛날 일도 아니었다.

“…….”

그래. 이 사람을 TV에서 자주 봤던 게 그리 옛날 일도 아닌데.

미국 대통령 전용기에서 만난 그는 머리가 참 하얘져 있었다.

자신만만한 태도는 여전하다.

“……그러니까, 당장 미국 중부에 좀비들이 들끓는데, 좀비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후보 두 명이서 온갖 멍청한 난리를 치고 있으니 내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표 좀 받겠답시고 국정을 마비시키는 꼬라지 하고는.”

“아아, 네. 네…….”

“당시 나는 명백히 권한이 정지된 상태였지만, 내가 저지른 아주 사소한 월권에 전국민이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나는 과감하게 중부를 포기하고, 대장벽을 세웠지요. 물론 의회가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내가 알 게 뭡니까. 가족이 좀비인 사람들과, 좀비가 무서운 사람들을 둘 다 만족시켰는데요.”

그는 자신있게 웃었다.

“사실 좀비와 이민자는 여러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국을 좀먹고, 국민인지 아닌지 애매하고, 자꾸 몰래 들어오는데다,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고, 그들을 좋아하는 국민이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이 문제의 최고 전문가를 대통령으로 둔 점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겁니다.”

굉장히 위험한 수위의 농담이었지만,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하하…….”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애매했다. 그냥 잠깐 머리가 하얘진 것 같다.

물론 내가 영어를 못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 또한 나를 위해 쉽고 직관적인 영어를 사용하는 중이다.

다만, 나는 하루종일 이어진 업무를 마치고서도, 갑자기 무슨 고민이 생겼는지 나를 찾아온 뤼미에르와 새벽 4시까지 술 한잔 걸치다 겨우 호텔 침대에 누운 상태였고.

미 대통령이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들려온 건 새벽 5시였으며, 그 뉴스를 보고 있을 때는 이미 나를 모시러 온 CIA 요원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내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챘는지 눈썹을 씰룩였다.

“오, 이런, 내가 다소 갑작스럽게 방문했나 봅니다. 서프라이즈를 기대했건만 실례가 된 모양이군요.”

“아, 아하하, 아닙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나도 젊었을 때는 한 장관처럼 낮밤없이 일했죠. 사실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정치적 비즈니스가 사람 수명 깎아먹는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압니다.”

그가 갑자기 리모콘을 들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한 장관의 스케줄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타이밍이 있어서 말이죠.”

“…….”

“알다시피. 정치나 비즈니스나 타이밍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한 장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꾸욱 -

그는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

그가 누른 버튼 하나에 TV가 켜졌고,

세계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나 리충빈은, 인민의 뜻을 대표하여, 공산당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는 바이다.]

* * *

[……중국을 영도하는 당의 추악한 실체는 천하가 알고 만민이 아는 바이다. 중화의 종주는 인민이어야 마땅하나, 당이 인민을 쏘아 죽인 순간부터 대의는 당에게서 떠나갔다.]

“흐음. 사실 주석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미 리충빈 상장은 공산당 수뇌부를 장악한 상태죠. 총과 혀로 말입니다.”

[…수십 년 전, 수많은 인민의 목소리가 천안문 광장에 울려퍼졌을 때, 공산당은 인민을 학살했고, 인민을 보호하던 선양군구의 군인들마저 죽였다. 이는 당시 선양군구 대사령이었던 본인이 증거한다.]

“듣기로는 그때 그의 사생아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도덕적 흠결인지라 당에게서 숨긴 것뿐이지, 사실상 아들이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퍽 감명 깊은 이야기죠. 수십년에 걸친 복수라니.”

[……이에, 나는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이자,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개 군인으로서, 인민해방군이 더 이상 당군이 아닌 국군으로 거듭났음을 천명하는 바이다.]

“아! 여기에 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죠.”

[……인민해방군은 진정 인민을 족쇄에서 해방시키고-]

대통령 전용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밀실이 되어주었고, 우리는 밀실 안에서 어떠한 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그는 영화의 제작비화를 이야기하듯, 상당히 고조된 목소리로, 내게 온갖 사실을 술술 풀어놓았다.

“원래 북한을 둘러싼 무력충돌이 몇 차례 발생했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7함대가 서해와 남중국해에 진입하고, 인민해방군의 대다수 전력이 선양을 기점으로 밀집해야 했지요. 괴수를 막는 게 아니라 미국을 위협할 용도로 말입니다.”

“…….”

“물론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대치가 길어질수록 중국 내부의 혼란은 극심해졌을 것이고, 주석의 정치적 부담은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치달았겠지요. 그리고 선양은 리 상장의 본거지입니다.”

이건, 분명, 실현 직전까지 갔던 계획이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 때문에 뭔가 바뀐 것이다.

“선양에서 리 장군은 전군을 회군시켜 베이징을 점거하고, 주석이 머물던 지하벙커를 폐쇄시켜 버렸을 겁니다. 그동안 7함대가 중국의 모든 핵시설을 무력화시키고 말입니다.”

“…….”

“주석은 천안문 광장으로 끌려나와 인민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고, 여론을 등에 업은 리충빈 상장은 쿠데타 군정의 지도자가 아니라, 진정한 혁명의 아버지가 되었겠지요.”

즉,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소리였다.

“리충빈 상장은 계획이 틀어지자, 자신의 특수부대를 이끌고 지하벙커를 점령했습니다. 지극히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그는 미국의 도움 없이 쿠데타에 성공한 겁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원래 계획은 뭐였습니까?”

대통령은 원래 진행되었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했다.

“UN 평화유지군이 중국에 발을 들이고, 중화연방이라는 국가가 탄생했을 겁니다. 당장 중국군 지휘체계가 무너진 상황이니, 각 군벌과 소수민족이 뭉친 수십 개의 자치구 연방세력이 되었겠지요. 이건 예상이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

잠과 술에 취한 정신으로 가까스로 말을 듣고 있었으나, 그는 혼자서도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이렇게까지 중국을 분리하려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 당연히! 각 세력은 규모경쟁에 돌입할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주변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수민족이고, 외국인이고, 각 군벌 세력은 위험에 처한 민간인들을 자기 세력 하에 복속시켰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계획대로 갔으면 다 잘됐는데, 내가 꼬장을 부린 덕분에,

‘중화연방’이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인만 바뀐 결과가 일어났다는 소리라.

이건가?

살짝 아리송한 심정으로 말을 듣고 있으니, 그는 자신만만한 제스처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내전의 위협은 미국이 차단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중국은 정권 유지를 위해 민간인을 희생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더 적극적으로 보호했으면 보호했지요. 이는 북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노스 코리아라는 영단어에, 나는 한 차례 정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나는 내 임기 동안 북한에 대해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내가 볼 때, 북한의 현 상황은 지극히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

“헌법상 한국 영토라는 이유로 주변국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지만, 남한에서도 북한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지요. 오히려 이용했으면 이용했죠. 서울에서 나온 괴수들을 북한에 밀어버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괴수를 북한에 밀어버린 사람으로서, 상당히 진중한 자세로 그의 말을 청취했다.

그는 고조된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국익을 위한 선택이나, 공익을 위한 선택은 아닙니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 그를 용인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죠!”

“…….”

“중화연방이 남한을 대신해 북한 인민들을 보호하는 건, 공익을 위한 선택이 아닌가 싶지 않습니까?”

이게 지나친 내정간섭이라 항변하기에는, 우리가 북한을 너무 매몰차게 대한 게 사실이었다.

다만.

내가 여기서 입 다물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무뚝뚝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보고 북한을 좀 적극적으로 도우라고 조언하셨으면 해결되는 일 아닙니까? 다소 지나친 내정간섭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만약 그랬다면 한국 정부에서 그 대가로 무언가를 지불하라고 주장하지 않았겠습니까? 예를 들면 7함대의 공습 추가 요청이라던가요.”

원옥분이 북한이랑 쇼부쳐서 핵폭탄 받아오던 시절에, 별 상관없는 미국까지 끌어들여서 공습지원 뜯어냈다는 걸 아는 내 입장으로서는, 솔직히 일리가 있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은 아직 지나치게 독선적이다.

내가 그에게 따져물었다.

“……그럴거면 주권이라는 게 왜 있고, 국가라는 게 왜 있습니까. 차라리 세계정복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하하! 다소 거칠게 말했다면 유감이지만, 나도 우리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택한 것뿐입니다. 국가 노릇을 못하는 국가를 제어하기 위해 말입니다.”

국가 노릇을 못하는 국가라.

언뜻 들으면 북한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북한의 주권을 주장하면서도 북한 인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를 돌려 까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이에 차분히 항변했다.

“우리가 북한 정권을 강경하게 제어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강대국이 개입해서 자기네 기준에 맞춰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말씀은, 제국의 심장에 폭탄 두 개를 박아넣은 나라의 총수가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

“흐음! 영어 실력이 굉장히 인상적이군요.”

참. 칭찬인 듯하면서도. 내가 영어를 이렇게 열심히 배울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느냐는, 그런, 뭐, 시발.

그래서 그냥 웃었다.

“……하하.”

“하하!”

참 웃으면서 사람 돌려까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었다.

“…….”

분명 전부 일리있는 주장이었지만, 유럽에 개판을 쳐놓은 놈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이 시점에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여기서 몇 마디 나누는 것 정도로 나랏일이 쉽게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지금 며칠밤을 샌 데다가, 아까 뤼미에르랑 마신 술기운도 아직 덜 가신 상태라, 여기서 입을 더 놀려봤자 실수를 했으면 실수를 했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마디 나눠보니까 이 양반이나 나나 둘 다 에고가 좀 강한 성격이라, 대화를 통해 뭔가 바뀔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

어차피 정치와 비즈니스는 실력과 실적으로 하는 거다. 국경없는 기사회가 유럽을 장악할 게 분명한 상황, 나는 내 홈베이스를 믿고 지금의 만남을 파하려 했다.

“……상당히 즐겁고 흥미로운 대화였습니다만, 아쉽게도 제가-”

“아아, 잠시만요. 장관. 아직 보여줄 게 더 남았습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나를 제지하고, 손목시계를 유심히 체크했다.

“……예?”

“잠시만요. 대충 지금 쯤이면…….”

그때.

리충빈을 내보내던 뉴스 화면이 바뀌었다.

방금 건 뉴스 속보였지만, 지금 것도 뉴스 속보였다.

“……이게, 뭡니까?”

그가 내게 말했다.

“중국은 충분히 이야기했으니, 이제 유럽으로 넘어갑시다.”

TV에선 뤼미에르가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손에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 내가 왜 유럽에 리즈레즘을 퍼뜨렸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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