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 Make world great again (3)
이理를 비우고 심心을 채운다.
성性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기氣는 날카롭게 벼려진다.
이윽고,
“……!”
베는 것은 공空.
설진운의 검기가 허공을 저며냈다.
하늘에서 날아드는 혈박쥐가 둘로 갈라졌고, 검객은 오른쪽 시체를 밟고 뛰어올라, 거인의 목을 참수했다.
거인은 자신의 머리를 더듬지만 머리는 이미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괴인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넘어진다.
쿠우우우웅-!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설진운은 가볍게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물론 칼에 피 따위가 묻어 있지는 않았다. 그저 피를 묻히며 싸우던 시절의 습관일 뿐이다.
“…….”
설진운은 한 걸음 옆으로 움직여 뒤에서 날아들던 공격을 피하고, 가볍게 뒤로 돌며 축생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 목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괴수 두 마리의 수급을 취했다. 푸른 검기는 얇은 실선을 그리며 짐승들을 동강내는 것이다.
검로劍路는 검의 위치에 구애拘礙되지 않았고. 검은 적의 위치에 얽매이지 아니하였다.
허공을 베어냈으나 동시에 괴수 여럿의 목이 베여나가는 건, 가히 신기神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다솔의 입에서, 짙은 찬사가 새어 나왔다.
“와 씨발, 다 뒤졌다……!”
“……다솔아?”
“아, 예, 충성충성! 수고하십니다!”
설진운은 장난스레 경례하는 소녀를 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정찰조의 스나이퍼가 최전방에 있단 말인가. 분명 그녀는 자신의 백업일 터였다.
그제서야 설진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이곳은 더 이상 전장이 아니었다.
토막난 괴수의 육편이 널린,
도살장일 뿐이다.
* * *
여도연은 자신의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괴수의 살점으로 피범벅이 되어 있다.
씁쓸했다.
“…….”
어느 정도 이상으로 커다란 괴수를 상대하다 보면, 주먹이라는 무기에는 결국 한계가 찾아온다.
거대괴수를 후려친다고 해서, 괴수가 끄아앙 하고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냥 살이 푹푹 파인다.
총알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인간의 주먹은, 거인을 후려치는 둔기같은 게 아니라, 거인을 찌르는 자그마한 바늘에 가까웠다.
하여, 주먹으로 거대괴수를 잡아낸다고 함은, 작은 바늘 하나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전투를 끝낸 여도연의 표정이 유독 험악한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고 말이다.
“카아악……! 퉤!”
그녀는 입에서 피 섞인 살점을 뱉어냈다. 물론 그녀의 것은 아니고, 뒤편에 쓰러진 괴수의 것이다.
괴수의 시체는 지저분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치즈, 혹은 벌집을 연상케 했다. 물론 주먹으로 맞은 흔적이다. 이따금 물어뜯기도 하고 말이다.
괴수를 곤죽을 낸 장본인이 툴툴거렸다.
“아, 시발. 조금 삼킨 것 같은데.”
“그러게 그걸 왜 물어뜯어요?”
조정식이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오늘도 피 묻은 교복에 단검을 매단 기묘한 차림이다.
소년은 여도연에게 생수통을 건네며 중얼거렸다.
“가끔 누님 싸우는 거 보면 좀 무섭다니까요? 이게 광견병인가 싶어.”
“……나보고 미친개라는 거냐?”
“굳이 부정은 안 합니다.”
여도연이 생수통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는 동안, 조정식은 여도연이라는 헌터의 싸움방식을 골똘히 되내었다.
“흐음…….”
맨몸으로 괴수에게 달려들어서 때리고 물고 발버둥치고.
으스러뜨리고 박살내고 분지르고.
으깨고 뭉개고 짓무르고.
가끔은 잡아먹힌 뒤 두개골을 박살내고서 피투성이로 아득바득 기어나오는 걸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 에일리언 유충도 아니고…….”
“……!”
확실히, 여도연의 싸움방식은 미친개(혹은 에일리언 유충 따위)를 연상시켰다. 그러니 조정식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원래 팩트가 가장 아픈 법이다.
“……야.”
패트병으로 머리를 감던 여도연이 스윽 고개를 들었다. 귀신처럼 늘어진 흠뻑 젖은 중단발에서는, 핏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물론 그중에서도 백미는 머리카락 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흉악한 눈빛.
조정식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어우씨…….”
비록 조정식이 미성년자이긴 해도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 암살자다. 그리고 그런 조정식이 움찔거린다는 건 보통 위협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액면가가 거의 사다코 수준인데요?”
“……야. 거기 풍양 조씨. 이리 와 봐.”
“어어어, 저 누님한테 맞으면 죽습니다. 장파열로.”
조정식이 잽싸게 여도연에게서 도망쳤고, 여도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털어내며 머리카락 물기를 말렸다.
그녀가 머리를 뒤로 묶으며 투덜댔다.
“야. 니나 나나 똑같은 강체술산데, 왜 나는 조뺑이를 치고, 니는 칼질 한 방에 괴수가 쑥 쑥 죽어 나가냐?”
“……똑같은 건 아니죠. 저는 스피드형이니까.”
조정식이 덧붙였다.
“그리고 저도 마석 위치 감지하고서, 매번 검기로 정확하게 찌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여도연은 조정식의 말을 끊고서 자신의 몰골을 가리켰다. 방금 정리한 머리를 빼면 피투성이가 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다.
“왜 나는 조뺑이를 치고. 니는 꿀을 빠냐고.”
“……대신 저는 괴수한테 한 대 맞으면 중상이잖아요. 이게 탱딜의 차이라 어쩔 수가-”
“대체 왜 나는 조뺑이고! 니만 꿀빠냐고!”
“또 시작이네.”
“아, 인생…….”
여도연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니, 저어 멀리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장! 언니! 저희 왔어요!”
“왔냐?”
설진운과 여다솔.
여도연과 조정식.
만능 공격수와 정찰조원으로 묶인 4인의 기동타격대는, 일종의 선발대 겸 정찰대가 되어 파리로 향하는 길을 뚫고 있었다.
칼레부터 파리까지의 200㎞. 그리고 남하南下하는 경로에 있는 게이트의 폐문과, 피난민 구출.
이것이 바로 국경없는 기사회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 프랑스 북부의 괴수 사태를 완벽히 진압하는 것.
“방금 본대랑 연락했어요!”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여다솔이 현 상황을 보고했다.
“아르마다 쪽 비행팀이 생토메르 쉘터 생존자들과 접촉해서, 일단 그쪽으로 빠진 다음에 피난민들을 지원하기로 했어요!”
조정식이 물었다.
“그러면 에스덴 쪽은 누가 닫아?”
“르윈 오빠 그윈이 아미앵 쉘터 간부인가 봐요. 일단 그쪽에서 예비인력 차출하기로 했고. 대공화력 부족한 건 다니엘이 합류하기로 했어요.”
설진운이 끼어들었다.
“그쪽에 김 팀장님 파견된 걸로 아는데. 김 팀장님은 서포팅할 화염술사 없으면 곤란하실 텐데요.”
“덩케르크 쪽 부길마가 파이로 아니었나요?”
“그래도 손발 맞는 사람이 가는 게 편하죠. 제가 알기로 지금 본대에 현정 씨가 있을 겁니다. 마침 근처니까 에스덴으로 파견하세요.”
“네넹.”
헌터들은 죽이 척척 맞아 돌아갔고, 여도연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 본대에 박 팀장님이 이미 그렇게 조치하셨대요! 그리고 저희 쪽으로 몬스터웨이브 간다고 공습요청 하라던데요.”
“블러드울프 말하는 거면 아까 멀리서 보이길래 이미 무전쳤다.”
“역시 조장!”
확실히 한국 헌터들의 최대 강점은 바로 기동전이었다. 방어를 국군이 하고 공격을 헌터들이 맡아서 그런 걸까.
유럽 헌터들은 대체로 괴수로부터 도시를 지켰지만, 한국 헌터들은 괴수 점령지로 들어가 괴수를 쫓아다니며 사냥하는 게 일상이었던 것이다.
신분당선, 경기남부 기동타격대, 서울 포위망 기동방어, 의정부 후퇴작전, 그리고 서울 난전을 거치며 정립된 헌터들간의 전술교리는 지금에 와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아주 순조로웠다.
“본대가 지금 80km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105㎞ 지점이고요. 일단 인근 몬스터웨이브만 정리되면, 인원을 더 차출해서 별동대를 두 개 정도-”
게다가 지금은,
“……아, 공습 왔다!”
공중지원까지 든든했다.
바닥에 둘러앉아 지도를 들여다보던 네 명의 헌터들은,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거대한 돌무더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 * *
수많은 괴수들이 광야를 질주했다. 한때는 도시였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1년이 지나니 평야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쇠파이프. 건물 잔해에 섞여든 뼛조각. 잔해에 매몰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구더기와 파리까지.
이곳이야말로 죽음의 땅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죽음들이 광야를 질주했다.
쿠구구구구-!
괴수들의 행진은 언뜻 질주하는 늑대 무리를 연상시켰다.
늑대 한 마리가 커다란 컨테이너 크기를 넘어가고, 갈기처럼 휘날리는 촉수 사이로 붉게 번들거리는 세 쌍의 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모습은 기병대의 질주처럼 웅장했고, 그 이상으로 파괴적이었다. 그들의 발자취에는 피난민들의 핏방울이 발자국처럼 남았다.
휘몰아치는 괴수들의 질주가 멈춘 건, 그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을 무렵이었다.
쿠우우우웅-!
하늘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졌다.
맨 앞에서 질주하던 괴수가 맞아 쓰러졌고, 뒤따르던 괴수가 돌덩이에 부딪혀 쓰러졌으며, 그 때문에 수많은 괴수들이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떨어지는 돌덩이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치 운석처럼. 수많은 돌덩이가 괴수들 위로 쏟아져 내렸다.
캬아아아아악-!
괴수들은 순식간에 돌무더기에 파묻혔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바위 언덕이 새로 만들어졌다. 언뜻 돌무덤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금씩 꿈틀거리던 돌무덤은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그리고 사방으로 몸부림치며 아래에 깔린 괴수들을 갈아버렸다.
거석巨石의 폭풍이다.
대형 아파트 다섯 개 분량의 잔해더미가, 압도적인 질량으로 괴수를 깔아뭉개고는, 사방으로 용솟음치며 육편을 으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저어 하늘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은 소녀가 말했다.
“오라-이. 오라-이.”
“이, 이렇게 하면 되나?”
“그르치. 그르치. 좋아요. 좋아. 나라시를 치는 게 아니라, 구라인다로 싸-악 밀어버리는 느낌으루다가. 옳지!”
금뱃지를 단 양복쟁이가 후드티를 입은 소녀를 꼬옥 끌어안고서, 하늘 높이 둥둥 떠 있는 건, 어찌 보면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었다.
“어어! 저 옆에 빠져나간다! 옆에! 옆에!”
한승문의 품에 쏘옥 안겨있던 감지윤이, 괴수를 삿대질하며 짜리몽땅한 팔다리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팔이 워낙 짧아서 펑퍼짐한 후드티 옷소매가 팔락팔락 흔들렸다.
“저, 저, 저……! 저 새끼 갈아버려야 한다니까!”
“야 인마, 가만히 좀 있어봐! 집중 안 돼!”
“아저씨 뭐 해! 빨리 잡아!”
잠시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 한승문은 무사히 도망치던 괴수들을 잡아 짓뭉갰다.
감지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리고 새침하게 한승문을 구박했다.
“……저걸 못 잡누!”
“내가 니랑 같냐?”
한승문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기계팔을 조작하는 데 숙달되었다 한들, 애초에 팔을 달고 태어난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기계팔로 수술하는 의사와, 처음 메스를 잡아본 일반인의 차이는 생길 수 있으나, 같은 의사끼리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특히 감지윤은 더더욱 그랬다. 이 정도 초능력이면 기계팔 수준이 아니라 천수관음이다.
당장 지금만 보더라도, 이 근방에 있는 모든 비행괴수들을, 사거리에 들어오는 족족 터뜨려버리고 있지 않은가.
한승문은 그저 수많은 돌덩이를 들어 괴수들 위로 뿌려버리고, 그 위를 문지르며 괴수들을 갈아버리는 간단한 컨트롤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괴수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것도 그나마 간단한 컨트롤로 말이다.
물론 말이 간단한 거지 움직이고 있는 힘의 총량을 생각한다면, 보통 정신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에 한승문이 물었다.
“……야, 지윤아. 너 왜 이렇게 세졌냐?”
“애들이 원래 빨리 크는 거지 뭐.”
“…….흐음. 맨날 지윤이 부르는 아저씨들이 해수부라 그런가?”
“해수, 뭐?”
“그, 바다 지키는 아저씨들.”
“으음……. 바다괴물 많이 잡긴 했는데.”
괴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해지고, 바다에 사는 괴수들은 금방 처리를 못하니,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물론 마석 크기도 장난이 아니다. 그런 걸 매일 잡았으니 오죽하겠는가- 라고 한승문은 내심 결론 내렸다.
그 와중 감지윤이 지상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으음. 아저씨? 요쪽은 대충 시마이가 된 것 같은디……?”
“그러면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넹.”
선선한 여름 하늘을 두 초능력자가 가로질렀다.
폭풍이 끝난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청명한 지평선에 우뚝 선 에펠탑이,
그들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그 시각,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에는 싸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다니엘과 아미앵 쉘터 지원군이 에스덴 게이트를 폐문했습니다. 생토메르를 휩쓸었던 블러드 울프들은 아브빌 일대에서 한승문 장관에게 제압되었고요.”
“…….”
“아르마다를 주축으로 편성된 임시 공군이 덩케르크와 아라스를 오가며 피난행렬을 보호 중이고, 몽트허 인근 늪지대를 기점으로 서부 해안도시들에 대한 방어선이 완성되었다는군요.”
뤼미에르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지도를 들여다보며, 연신 침착하게 판단을 이어나갔다.
“칼레부터 르 크로투이까지. 북부 해안선을 따라 쉘터 다섯 개를 잇는 보급선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든 피난민들과 헌터들의 역량이 해안선에 집중되고 있지요.”
“…….”
“한국의 헌터들과 스페츠나츠의 정예병력이 포함된 주력군이, 아브빌에서 아미앵으로 향하는 루트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루앙을 기점으로 센 강을 방어중인 프랑스군을 북상시킬 시점이 아닌가 싶은데요.”
뤼미에르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각하?”
“…….”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항상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중년은, 그 어느 때보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가 웃음을 되찾는 데에는 조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흐음. 뤼미에르? 이게 아주 멍청한 질문이라는 건 압니다. 아주, 아주 멍청한 질문이겠지요.”
“…….”
“혹시 내가 칼레에 고립된 헌터들을 포기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이었기에, 대통령은 망가진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었다는 말입니다. 뤼미에르.”
“…….”
“……내가-”
“각하.”
뤼미에르의 표정은 결코 싸늘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할 따름이다. 다만 그녀의 눈빛만은 차가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는 각하의 정치적 식견을 대단히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사태 초기부터 각하와 함께한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
“물론 각하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 판단이 결국 프랑스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신뢰 또한 있습니다.”
그녀가 정리했다.
“그래서. 가타부타 따져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마련이니까요. 다만…….”
“…….”
“한 장관이 좋아하는 표현입니다만, 지금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할 시간이 아닌가 싶군요.”
그리고 결론 내렸다.
“제가 좋아하는 표현을 쓰자면, 못할 이유도 없다는 겁니다.”
“…….”
“그러니 일단 사람부터 살리는 게 옳은 일입니다. 센 강에 있는 프랑스군을 북상시켜주십시오.”
칼레의 헌터들이 파리에 도달한 건, 그로부터 약 64시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