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33화 (133/296)

EP 21 - 국경없는 기사회 (15)

“……그러면 미국이 지금 중국이랑 싸우려고 한다는 겁니까?”

“꼭 전쟁을 한다고 싸운다는 건 아닙니다. 이거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감 기자는 듬성듬성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수지 김이나 총풍만 봐도 답이 나오잖습니까. 외부의 적은 내부를 단결시킵니다. 미국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래도 중국과 미국이 싸운다는 발상은, 너무 스케일이 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소설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미국은 중국과의 분쟁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이게 아주 가능성 없는 소리는 또-”

감 기자와 논쟁을 이어가던 와중, 천금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녀는 어느새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박 실장. 지금 회사에요……? 아, 잘됐네. 저번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주운 것 좀 갖다 줘요. 여기 창원에 맨날 가는 감자탕집-”

* * *

그녀는 사진 몇 장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문서가 찍힌 사진이었다.

“……이게 뭡니까?”

“밀수입 장부요.”

“……뭔 내용입니까?”

”미국산 무기가 러시아로 흘러들어갔어요. 정확히는 7함대 주일미군 무기들이요.”

“……어디서 구하신 건데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우리 그룹이 원래 러시아 쪽이랑 거래가 많았어요. 인맥도 꽤 있구……. 왜요. 그, 저번에 서울에서 일 터졌을 때, 러시아에서 컨테이너선도 다섯 척이나 빌려왔잖아…….”

그녀는 기다란 손톱으로 사진을 가볍게 톡 건드렸다.

“지지난달인가 국정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조사할 게 있으니까 협조 좀 해달라고. 그래서 요원들 몇 명 직원으로 위장시키고 러시아로 실어다 줬지요. 인맥도 나눠주고.”

“……이게 그겁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감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천 사장님께서는 그러니까, 미국 무기가 러시아로 들어갔고, 그게 또 중국으로 향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원래는 러시아 내전에 쓰일 거라고 생각했죠. 때 되면 무기 좀 팔아볼까 싶어서 꿍쳐두고 있었는데…….”

“…….”

확실히 푸틴 대통령의 급사 이후 동서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였다.

살아생전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해 시베리아를 버린 독재자는, 자신의 나라를 둘로 쪼개버리고야 만 것이다.

러시아 극동군관구 군벌세력은, 중앙정부에게 버림받은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며, 모스크바 쪽과 냉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천금순이 논했다.

“싸움을 하는 데는 무기가 필요하고, 싸움을 막는 데도 무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러시아 군벌들이 미국한테 무기를 수입한 줄 알았어요.”

“이제는 좀 생각이 바뀌신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석연찮은 구석이 몇 개 있었죠. 군벌 세력이잖아요. 군벌 세력이 무기를 왜 수입하죠?”

그녀는 손가락으로 장부의 몇몇 부분을 쿡 쿡 찔렀다.

“그것도 폭탄이나 미사일이면 또 몰라. 이거 거의 다 소총이랑 탄약이거든요? 러시아 애들이 설마 총이 없을까?”

“……중국한테 팔아넘기려고 총을 수입했다?”

“또 모르죠. 미국이 러시아를 통해 중국 내부에 무기를 넣어준 건지.”

감 기자가 지적했다.

“러시아 군벌이나, 중국 정부나, 총이 없어서 고생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뇌리에 스쳤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총이 필요할 수도 있죠.”

“예?”

“총이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국 정부한테 탄압받는 사람들이라던가…….”

“…….”

“정부 몰래 쓸 총이 필요한 사람이라던가.”

나는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총이 어디 괴수 잡는 무기입니까? 사람 잡는 무기지?”

“…….”

“…….”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구랄 것 없이 마른 침을 삼키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끔찍한 상상을 이어갔다.

“……하.”

헛웃음으로 침묵을 깨뜨린 건 감 기자였다.

“그러니까, 그…….”

그는 영혼없는 미소와 함께 우리의 추측을 정리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통해 중국 내부에 총기를 밀반입했고, 요즘 세상에 총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을 잡는 무기인데, 마침 미국이 중국한테 싸움을 거는 상황이 됐다?”

그가 비웃었다.

“하! 뭐, 중국에 쿠데타라도 터져서 나라 망가지고, 이대로 프랑스도 망해 버리면, 미국 입장에선 계라도 탄 기분이겠습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 * *

무언가를 벤다는 건, 생각보다 아주 쉬운 일이다.

잘라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날아드는 목검에 대한 두려움을, 살아 숨쉬는 것에 대한 망설임을, 그리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을 얽매던 인간성을.

한 번 베어내기만 한다면, 그 이후로는 검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

적어도 설진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 행했다. 사람과 괴수가 구분되지 않던, 그 서울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선을 넘었느냐 넘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자신은 한참이나 나아간 사람이었다. 선을 베어내고서 말이다.

베어낸 이유는 여럿이었다.

인간을 해하는 것들에 대한 증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혐오, 인간으로 남기를 원한 이들에 대한 애호.

그것이 소년을 단호한 지도자로 만들었고, 결국 세상과 부딪히게 만들었으며, 이제는 닳고 닳아 피를 두려워하는 검으로 담금질했다.

의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PTSD다. 혹은 간헐적 폭발 장애, 우울증, 불안장애라고도 했다.

어찌 사람의 마음을 한 단어로 정리하겠는가.

자신도 모르는 것을 의사가 주절대는 것이 불편했지만, 이제 닳고 닳은 소년이 기댈 곳이라곤 약이나 알코올뿐이었다.

그러나,

설진운은 차라리 검에 기대기로 했다.

그게 유럽에 온 이유다.

“…….”

소년은 처음으로 잡은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목검, 식칼, 우산 따위가 아닌, 진짜 검이었다.

스테인리스강이나 장우산이나 소년에게는 연필과 다름없는 무게였고, 비록 박물관에 비치된 장식용 검이었기에 예기銳氣를 기대할 순 없었으나 소년에게는 검기劍氣가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에 들었다.

“…….”

소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짙은 혈향이 느껴진다. 사람의 것과 괴수의 것이 뒤섞인, 지독하고 음습한 피비린내다.

때문에,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소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비로소 체감하는 것이다.

이곳은 전장이었다.

“……!”

뒤쪽에서 날아드는 파공음에 소년은 그대로 뒤돌아 베었다. 소년을 향해 질주하던 괴수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괴수의 시체는 그대로 소년을 향해 달려가며 쓰러졌고, 소년은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괴수의 시체를 피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른 괴수가 있었다.

소년은 횡橫으로 베어냈다. 푸른 검기가 괴수의 허리를 저며냈다.

때로는 종縱으로 베어냈다. 괴수의 정수리를 따라 얇은 실선이 생겨났다.

그렇게 베어내다 보면, 자신이 횡으로 베는지 종으로 베는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생긴다.

그저 베어낼 뿐이다. 단지 베어낼 따름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푸른 검기는 더욱 맹렬하게 불타오른다.

“…….”

전장에서의 판단은 생각이 되지 못한다. 생각이란 것은 싸움을 하기 전에나 하는 것이다.

싸움을 시작했다면 죽이는 것에 몰두해야 살아남는다. 죽일 수 있다면 죽이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면 이미 죽은 것이다. 생각이 되기 전에 몸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검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날아오는 야구공을 피할 것이라 믿고서 머리를 들이미는 것. 저 축생을 베어낼 것이라 다짐하고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전투는 이토록 오만과 아집으로 가득 찬 외줄타기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흥분에 끓어오른다.

소년은 그렇게 외줄 위를 걸어간다.

그렇게, 푸른 검기가 허공을 저며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이 처음으로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될 무렵에는,

“…….”

그는 시체로 이루어진 산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검의 끝에서 핏방울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고, 피는 괴수의 조각난 시체를 따라 또르르 흘러내렸다.

저어 멀리에 있는 사람들은 경외인지 공포인지 모를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뒤돌아 지평선을 바라본다면 붉은 노을에 비친 무수한 축생들이 꿈틀대었다.

“…….”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시리도록 푸른 불빛이 세상을 비춘다.

발 밑에는 쓰러뜨린 적수의 시체가 있고, 눈 앞에는 쓰러뜨릴 적수의 파도가 밀려온다.

피 냄새가 짙었다.

검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심장 박동과 함께 피가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이게 조금은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 * *

지평선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던 소년을 잡아세운 건, 괴수의 육편으로 범벅이 된 사냥꾼 하나였다.

“뭐해! 새끼야!”

“……누나?”

“미군에서 공습때릴 시간이야! 빨리 튀어!”

“……아! 네!”

그들은 끝도 없이 밀려드는 괴수의 파도를 뒤로하고, 잽싸게 쉘터의 성벽 너머로 숨어들었다.

괴수를 도륙하던 헌터들이 쉘터 안으로 들어오자,

쿠우웅-!

두꺼운 강철문이 닫혔다.

헌터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쓰러졌다. 다들 피칠갑을 하고 있었기에 드라마 속 연쇄살인마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두두두두-!

드높은 철조망과 바리케이트 사이로 튀어나온 총부리가 화염을 내뿜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총성이 고막을 찢어버릴 듯 울려퍼지는 가운데, 회복조가 다가와 헌터들의 살갖에 빛을 갖다 대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퍼지며 새살이 돋아나는 와중, 여도연이 피딱지 말라붙은 곳에 생수를 끼얹자 멀쩡한 피부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설진운이 슬며시 웃었다.

“부럽네요.”

“뭐, 이 뽀송뽀송한 피부가?”

“누나는 포션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헛소리할 시간에 포션이나 마시지?”

여도연은 설진운에게 자기 몫으로 주어진 포션을 던졌다.

“유럽 애들이 포션은 잘 만들더라. 딸기맛이야.”

설진운은 피식 웃고서 성벽 위로 향했다. 여도연이 그 뒤를 따랐다.

성벽 위에 올라가자마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설 대장이다! 아까 개오졌어요!”

“언니는 눈에 뵈지도 않냐?”

“언니는 항상 최고였으니까 따로 말 않는 거고!”

초소 꼭대기에서 2점사로 휴머노이드 괴수의 미간을 쏘아맞히던 여다솔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 옆에는 망원경으로 지평선을 관측하던 조정식과, 온갖 번개와 마력으로 괴수를 짓무르는 정신계 헌터들이 늘어서 있었다.

설진운은 그들 사이를 지나며 전황을 확인했다.

“김 팀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까 마나번 오셨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두철이 그 놈도 발모가지 짤리고 현장 뛰는데, 내가 두통 땜시 쓰러지면 까오가 살겠어!?”

소싯적에 프랑스에서 영업 좀 뛰었다던 43세의 배불뚝이 아저씨는, 핏발 선 눈으로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기름통에서 번져나간 불길이 뱀처럼 괴수의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그리고 입과 코로 들어가 뇌를 구워버렸다.

“이 봐봐! 나 아직 퇴물 아니야!”

“……수명 깎이니까 쉬엄쉬엄 하세요. 코피 자국도 아직 덜 말랐는데.”

설진운은 짐짓 미소 지으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핏빛 지옥도를 그려내고 있었으나, 인간은 아직 꺾이지 않고 있다.

“10분 뒤에 미군에서 공습이 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버티기만 하면 돼요! 다들 조금만 더 힘내십쇼!”

그러나.

10분이 지나도 공습은 찾아오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노을이 저물고, 어두운 밤이 찾아와도.

공습은 없었다.

* * *

그렇게 일곱 시간이 지났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