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20화 (120/296)

EP 21 - 국경없는 기사회 (2)

-GS 주총에서 대외사업부 개편안이 의결됨에 따라, GS 방위대행사의 해외파견이 사실상 무기한 보류에 이르렀습니다. 천금순 사장은 본 사안에 대해 완벽한 중립 의사를 밝힌 바…….

-헌터 아카데미가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중국의 유감 표명이 뒤따르는 가운데, 유럽 헌터들은 오늘 새벽 2시 경 귀국할 예정으로 알려졌…….

-한승문 초관부 장관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명을 발표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 * *

타악-!

온갖 뉴스로 가득한 노트북 화면을 덮자, 그 너머로 중역의자에 앉은 왜소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블라우스. 스마트폰, 그리고 담배.

“하여튼 미국도 여전히 미국이라니까요…….”

여느 때처럼 개성 팍팍 뿜어내고 있는 천금순은, 담배연기도 같이 뿜어내면서 나른한 미소로 이죽였다.

“일기예보 한 방에 초인연맹을 묵사발을 내버리네 그냥…….”

“그 코쟁이 새끼들 꿍꿍이가 뭐든 알 바 아닙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계획이 뭔지가 아니라 계획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 새끼들이 22일 전부터 짜놓은 판에 헌터들을 들이밀 수는 없어요.”

“흐음. 헌터 지원 안 했는데, 영국에 게이트 안 열리면, 모양 우스워지는 거 아닌가요……?”

“헌터 외국 보냈다가 부산에 게이트 열리면 모양이고 뭐고 다 뒈지는 겁니다.”

“아항.”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호루스 시스템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EU는 영국에 얼마나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미국의 의도는 과연 인류 공영을 위한 것인가.

그러나.

EU의 신뢰를 얻으려 도박수를 던졌다가 대한민국을 잃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다.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지킬 게 많은 사람은 도박을 끊어야 한다. 그게 옳다.

그리고,

“……천 사장님.”

그러기 위해선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국내 헌터들의 해외 파견을 최대한 미루고 싶습니다.”

“이예쓰……!”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래도 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기만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네! 적극적으로 협조해야죠! 당연히!”

“……아, 네.”

정치인의 외교는 결국 ‘까오’의 문제다.

국민이 가장 원하는 외교는 대한민국의 실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최대한 예쁘게 헌터들의 대외파견을 커트해야 했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더러운 일은 하청을 주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니 별로 특이하다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이번 일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자! 자!”

하청업체가 하청받을 걸 예상하고서 거기에 올인을 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1년. 딱 1년만 쉴드코어 독점할게요. 물론 2할은 정부에 납품할 거고요. 이거 컨펌해 주시면 이번 일 깔끔하게 처리해드리죠.”

“1년이면 다른 기업들도 쉴드코어 개발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1년이죠!”

“이 사람 좀 봐라. 지금 돈이 중요합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그녀의 눈빛은 참으로 순수했다. 더 이상 따져물을 기운조차 빠질 정도로 말이다.

나는 스멀스멀 치밀어오르는 두통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10개월. 10개월 드리겠습니다. 헌터들 한국에 붙들어놓을 자신 있습니까?”

“이래서 자기가 좋다니까!”

* * *

천금순은 곧장 주주총회와 뭔 사업부 절차를 복잡하게 꼬아버려서 사업을 무기한 보류시켜 버렸다. 나도 초상관리부 국내 2차관을 시켜 암암리에 적극 협조했고 말이다.

즉. 초상관리부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GS 방위대행사가 강짜를 놔서 판이 없어져버린 그림이 된 것이다.

정확히는 천금순의 통제에서 벗어난 주주들이 반란을 일으킨 모양새였지만, 어차피 알 사람들은 이거 다 개지랄인 거 다 안다.

다시 말해, 모를 사람들은 모르는 채로 남았다.

언론에서 적당히 끼워맞춘 뇌피셜이 그들의 사고를 지배했다. 어차피 이런 자잘한 거 따져가며 투표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게,

아카데미에 있던 1,000명의 내국인 2세대 헌터들 중, 930명가량이 GS 아이기스에 가입하며 해외파견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즉, 나머지는 어떤 상황이냐.

“아니, 시발 이게 말이 되냐고!”

이런 상황이다.

“가기 싫다는 사람들 안 보내는 것까지는 이해를 해. 근데!”

“…….”

“내가 내 발로 유럽 가겠다는데! 그거까지 막는 건 좀 아니지!”

여도연은 경호원이고 나발이고 죄다 뿌리치고 내 집무실까지 쳐들어와 깽판을 놓았다. 쒸익쒸익거리는 그녀의 신형身形 너머로 찌그러진 문짝이 보였다.

나는 담담히 중얼거렸다.

“경호원 뚝배기를 박살낸 게 아닌 이상, 혼자서 여기까지 뚫지는 못했을 테고…….”

“…….”

“유럽 가고 싶으신 헌터분들이 꽤 많나 봐?”

“……그래.”

“정도 참 많으셔.”

나는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래서. 보내달라고. 그거 말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건가?”

“전화를 받으시던가!”

하기야 아침부터 전화가 이어졌으니, 대충 수백 번 넘게 그녀의 전화를 무시하긴 했다.

나는 처리하던 서류를 이어서 검토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삐졌어?”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닌데.”

우리의 대화는 평소와 같았다.

필요 이상으로 언성이 높아지지도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혈기에 차지도 않았다.

남들이 보면 거칠다고 말할 정도였으나, 싸운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그런 종류다.

그러나.

“공사구분 못 하나?”

“……뭐?”

“나 표받고 당선된 사람이야. 그런데 어디 감히 집무실 문짝 까부수고 들어와서 깽판을 놔?”

오늘만큼은 둘 다 말에 독기가 가득 차있었다.

“지금 내 누나랍시고 강짜부리는 거. 썩 좋게 보이는 모습은 아니야.”

“호텔에 군인들 들여보낸 건 좋은 모습이냐? 미성년자들도 있는데 뭐하는 짓거리야?”

“군인이 아니라 경찰.”

“경찰특공대겠지. 그래서 걔네 총 들었어? 안 들었어?”

“이렇게 깐깐하신 분이 절차를 좆으로 아시나…….”

“절차대로 하면 들어줄 거였냐?”

나는 작게 한숨쉬고 녀석에게 손짓했다.

“일단 앉아.”

녀석은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

“그래 얘기해봐. 니가 대표로 온 거 맞지? 대충 교관들이 불만이 심할 것 같은데. 맞나?”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교관들은 대부분 압구정파나 동대문파 출신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압구정파. 특히 김춘식 직계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이고 나발이고 이미 죄다 죽어버려서, 괴수 때려잡겠다고 지 목숨 정도는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김춘식 그 양반 곁에 끼리끼리 모였던 거지.

자기 이익 챙길 줄 아는 사람들은 진즉에 홍선아 따라 GS로 옮겼다. 김춘식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헌터들은 진짜로 살짝 나사가 빠진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풍부한 감수성이 국내 한정이었다면 좋았겠건만, 아무래도 세상사가 사람 마음처럼 굴러가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그래. 뭐가 불만인데?”

“안 가겠다는 애들은 그렇다 쳐. 싸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가겠다는 애들은 왜 안 보내주는 건데?”

“안 보내주겠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 보내주겠다니까?”

“……이걸 믿어줘야 하는 거냐?”

“가만히 들어봐. 이게 원래 GS 방위대행사, 그리고 국군이랑 공동편성한 작전이야. 이게 단순한 게 아니라고. 헌터들만 달랑 보내놓는 게 아니라니까? 당장 숫자로 따지면 원래 계획상으로 외국 나가는 사람이 군인이랑 보조인력 합쳐서 16,000명이 넘어가요.”

“…….”

“그런데 봐봐. 원래는 헌터 1,000명 보내기로 했는데 200명으로 줄었어. 그러면 당연히 계획을 수정해야지. 국민 세금으로 사람목숨 다루는 일인데 주먹구구로 하면 안 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유럽 애들은 계획이 있어서 가냐? 일단 사람부터 살리겠다고 가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순간, 여러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니들은 정부 입장에서 인격체가 아니라 국가전략자원으로 취급해야 공익에 합치하는 인적자원이고, 그러니까 함부로 외국 못 보내겠다.

유럽 애들은 지네 집에 불나니까 가는 거고, 우리는 걔네 불까지 꺼줄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이 아니다.

괜히 유럽 보냈다가 헌터 싹 뒈지면 지지율 개박살나고, 그 순간 정책추진력 꺾여서 초상개혁이고 나발이고 국회에서 서로 드러눕던 시절로 돌아간다.

그거 막다가 헌터전력 상실하면 그만큼 대한민국에 피해가 생기는데, 우리가 왜 국방을 버리면서까지 영국을 챙겨야 하냐.

미국이 뭔 짓을 꾸미는지 모르는데, 헌터 보냈다가 부산에 게이트 열리면 누가 책임질거냐.

등, 등.

어떤 건 이유라기보다는 핑계에 가까웠고, 어떤 건 근거라기보다는 궤변에 가까웠다.

그러나 분명 그 속엔 당위가 존재했다.

하나, 이런 것들이 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나 참.”

말해 뭐하겠는가.

나는 이제 온갖 이해관계와, 책임과, 권한의 경계선 사이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건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이건 필必이었다.

이게 내가 짧지만 지랄 맞은 정치생활 끝에 얻어낸 자그마한 깨달음이다.

누군가는 정에서 벗어나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정이 정情인지 정正인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항상 피채원 앞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모호한 생각이다. 그러니 나는 평소처럼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말이다.

아무래도 정치경력 쌓일수록 빈웃음만 늘어가는 것 같았다.

“이게 다아-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입니다- 여도연 씨.”

“……그거 남영동 대공분실 단골멘트 아니었냐?”

“그렇게 생각할거면 그렇게 생각하던가요.”

어차피. 누구보고 알아달라고 하는 짓거리도 아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서류를 넘겼다.

“참나. 아마 나만한 애국자도 없을 거다. 이 나라에.”

정치라는 게 원래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짓거리였지만, 정작 남한테 잘 보이려고만 해서는 안 되는 짓이기도 했다.

“누나. 알겠으니까 이제 들어가서 발 닦고 주무세요. 나머진 내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나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가볍게 말했으나, 여도연은 나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집무실을 나가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다.

“옳다고 보냐?”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니까?”

꾸욱, 나는 묵묵히 다음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필요한 일이지.”

이후, 이번 조치에 반발하는 헌터들이,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에 의해 신변구속되었다.

* * *

잠들지 못하는 밤에, 여도연은 호텔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유럽 헌터들이 공항에 모여 귀국할 준비를 하고있을 터였다. 그녀가 직접 가르친 앳된 소년병들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비행기가 아니라 호텔방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거리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 귀에는 복도를 돌아다니는 경찰특공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 마음에는 동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

녀석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오히려 가끔 술먹고 싸울 때의 목소리가 훨씬 격양된 것이었지, 요전의 모습은 참으로 평소의 녀석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익숙함이,

여도연에게는 복잡한 두려움을 가져왔다.

“…….”

잠들지 못하는 밤에,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고, 복도에서는 소총 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카데미 기간동안 날고 기던 수많은 헌터들의 신변이, 고작 서면 몇 장과 전화 몇 통으로 구속되었다.

호텔에 경찰특공대가 진입했고,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의 특임대가 헌터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그리고 그걸 저지른 건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같은 방바닥에서 뒹굴며 맥주를 먹던 녀석이었다.

……유일하게 다른 건 눈빛이었다.

다른 건 전부 똑같았다.

피곤하게 웃는 얼굴은 보좌관으로 빡세게 구르다 자취방으로 퇴근했을 때의 모습과 똑같았고. 허탈한 목소리는 맥주캔 뺏어먹어서 살짝 삐졌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

뭔가,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 아니라 한낱 민원인을 보는 동사무소 직원같은 그 눈빛이.

여도연에게는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씨이팔…….”

잠들지 못하는 밤에,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고, 복도에서는 소총 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 귀에는 복도를 돌아다니는 하이힐 소리가.

“…….”

하이힐?

여도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각거리는 하이힐 소리는 분명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발걸음 소리가 호텔방 문 앞에서 멈출 무렵, 여도연은 이미 현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똑. 똑. 똑.

정갈한 노크 소리가 세 번 이어졌다. 곧장 현관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 있던 건,

“……언니,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결연한 눈빛의 피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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