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 국경없는 기사회 (1)
……속보입니다. 미국 국방부가 근시일 내로 영국에 사상 최대 규모의 게이트가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현지시각 12일. 피터 알렉슨 미 국방부 장관은 ‘연구통합위성을 통한 징조예보-Herald Omen through Research United Satellite’.
약칭, 호루스Horus 시스템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지구상의 모든 마력흐름을 측정할 수 있다 주장했습니다.
[……호루스 시스템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이제 우리는 괴수의 대규모 이동을 측정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에 게이트가 열릴 지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호루스의 관측자료에 따르면, 영국 캔터베리를 기점으로 50마일 이내에 대규모 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호루스 시스템이 예고한 게이트 위험범위 내에 런던이 포함되어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 *
초인연맹超人聯盟은 한국 헌터협회, 중국 초인공조(공산당 꼭두각시), 유럽 초능력 위원회(친 뤼미에르 헌터 모임)가 연합한 국제기구다.
어른의 사정으로 정부 간의 연합체계는 불발되었다. 그 대신 나와 리충빈은 자기 꼭두각시를 들이밀었고, 뤼미에르는 EU 개입을 차단하고 자기 본진을 끌고 왔다.
즉, 초인연맹은 엄연히 각국 헌터협회 간의 연맹인 것이지, UN처럼 국가 간의 결합은 아니라는 거였다.
물론 세상사람 모두가 말이 초인연맹이지 실제로는 3세력 동맹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사실상 정치적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쌀이랑 연구진도 오간 마당에 이걸 국제연합 아니라고 우기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정말.
그러나,
정치라는 건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권력의 덩어리이고,
따라서 정치적 요식행위도 특정 사안에 대해선 무시 못할 힘을 발휘하고는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초인연맹이랑 EU는 관계가 없고. 영국은 EU도 아니라는 소리죠.”
“그러니 초인연맹 입장에서 영국은 알바가 아니다?”
“3단논법 설립하는 거 아닙니까?”
브렉시트다.
사실 초인연맹과 EU가 남남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오겠지만, EU와 영국이 남남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 기적의 삼단논법이 설립하는 것이다.
“영국은 솔직히 EU 아니죠. 그렇죠?”
“……으음.”
“애매하지 않나? 솔직히?”
2016년에 영국이 EU를 나간다는 국민투표가 가결되었고, 17년에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동되었다.
게다가 2019년에 윈스턴 처칠과 마카렛 대처로 대표되던 영국 보수당이, ‘브랙시트 당’이라는 극우정당에게 대패하며 몰락했다.
심지어 2위는 노동당이었다. 의원 내각제 국가에서 극우와 좌파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거기에 21년 경협 불발,
22년 경제위기까지.
그렇게 영국은 EU와 점점 서먹해졌다. 정확히는, 집권당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미칠 듯이 쑤셔박았다. 정권 계속 잡고 있으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민족주의는 게이트가 열린 이후에 폭탄이 되어 영국을 휘감았다.
“영국의 위상이 지금 우리나라 제주도랑 비슷해요. 안전한 땅.”
“……거기도 게이트 있지 않았나요?”
“거기는 게이트가 많아서 나라가 박살난 게 아니라, 육군이 적어서 나라가 박살났던 거죠.”
그리고.
“유럽 본토에 비하면 영국은 천국 아닌가?”
“아하.”
반쯤 봉건사회에 들어선 유럽 본토에 비하면, 영국은 자체정부도 튼튼히 유지되고 있고, 군 체제도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왜냐.
유럽에 있던 나토군(미국군)이 대서양 건너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바다괴수한테 절반 넘게 죽어버리고서, 나머지 패잔병이 영국에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7함대가 태평양 못 건너가고 일본에 셋방살이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니,
동북아시아 친미 국가가 일본이라면, 유럽의 친미 국가는 영국인 것이다. 그리고 두 섬나라 모두 외국인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초인연맹과 영국의 애매모호한 관계성이 가까스로 성립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저런 상황이 많이 복잡하긴 합니다. EU에서도 아직 어떻게 대응할까 결정은 못한 것 같고요.”
“으음…….”
“근데 당신은 그걸 예측했지요.”
혼란스런 외교 상황.
누가 누군지, 누가 적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예측한 인물이 하나 있다면,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게 합리적인 행동이겠지.
“……대체 뭡니까 이거?”
“글쎄, 돈은 답을 알고 있다니까요…….”
그게 내가 천금순의 사무실을 방문한 이유였다. 그녀는 히죽 웃으며 자기 노트북 화면을 들이밀었다.
숫자와 그래프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녀가 화면을 콕 집었다.
“이거 보이세요?”
“뭐요.”
“요오~거.”
그녀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래프의 어딘가를 톡 톡 두드렸지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나는 설명을 시키는 사람이지, 설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작게 손짓하자 천금순이 살풋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가 지금부터 22일 전. 이 시점부터 영국 파운드 흐름이 조금 이상하거든요? 대충 아다리가 안 맞는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핵심은?”
“영국 정부에서 지네 돈 시세를 조작하기 시작했어요. 자! 그러면 왜 그랬을까?”
천금순이 클릭 몇 번으로 모니터 화면을 주르륵 넘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포션회사에 주목했다.
“요, 요, 요, 요놈 새끼들이 주범이거든요? 얘네가 말이 영국 회사지 사실 미국이랑 영국을 이어주는 환전소란 말이야.”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니, 뭐. 환치기랑 뭐랑, 이것저것 건드리다 보니까……. 아무튼!”
그녀는 다급히 화제를 돌리며 화면을 전환했다.
“여기 말고도 환전소가 여러 개 있어요. 평소에는 달러가 영국으로 흘러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22일 전부터 영국 돈이 미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기 봐봐요. 미국에서 대량주문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 이쯤인데.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대량발주 들어왔어.”
“……그냥 미국에서 포션이 필요했던 거-”
“그런데 그게 영국 정부에서 파운드 시세 조작을 시작한 시점이랑 겹친단 말이에요.”
“쓰읍……!”
지금부터 22일 전부터 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다른 나라들도 보자고요. 미국이 갑자기 어떤 건 거래를 끊고, 어떤 건 거래를 트고, 막 이러고 있단 말이에요.”
“몰도바 국적 회사라고 되어 있는데요?”
“미국이 대놓고 하겠어요? 하청에 하청을 주지?”
“아, 네…….”
나는 천금순에게 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이거, 이거, 옛날에도 딱 이랬거든요, 미국이 갑자기 이러는 거…….”
“……언제요?”
“이라크 전쟁 직전에.”
* * *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서,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정확히는 여러 사람들이 내게 연락했다,
“일단 국내를 빠져나갈 모든 방법을 봉쇄했습니다. 각하께서 언론사 사주를 만나며 일일이 입단속을 하시기도 하셨고요.”
“감사합니다. 대장님.”
김두식 대장.
“……호루스 시스템은 우리 기술로는 상상이 안 될 정도의 개념이에요. 이론상으로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긴 한데…….”
“가능은 한 거 맞죠?”
“……네.”
천화란 수석.
“오빠,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다음 주에 원내대표 선건데……. 일단 신중론으로 포지션 잡긴 했어요.”
“그래. 당분간 숙이고 있어.”
이호정.
“형, GS 저격한 반독점법. 일단 각 재놨는데. 쏠까요? 말까요?”
“일단 장전만 해놔.”
양일호.
“흐음……! 셈은 연구진 받고 각성제 주는 거에서 끝났고. 우리가 유럽에 헌터 파견하기로 했던 건 대가성 없는 무료봉사 차원이었으니까, 충분히 재고 가능하실 것 같은데요?”
“……흐음.”
“일단 대다수 헌터들은 죽어도 가기 싫대요. 저도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보고요. 애초에 EU에서 우리를 부른 게 아니라, 우리가 가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거니까……. 그쵸?”
홍선아.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죽는 것만큼 고달픈 일도 없을 게야. 본인에게든. 가족에게든.”
“…….”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리고 양판석까지.
각자가 각자의 입장을 내게 토로했다.
나는 모든 의견을 심사숙고했다.
정치가의 도장圖章을 시뻘겋게 적시는 것은, 인주印朱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피를 묻힐 권력자가 내게 찾아왔다.
“……장관.”
“어서 오십시오. 뤼미에르 집행관. 율무차라도 한잔하시겠-”
“어째서 공항이 닫혀 있지요?”
나는 접객용 소파에 앉아 건너편에 율무차를 놓았다. 뤼미에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건너편에 자리했다.
그녀의 후광은 위태롭게 일렁이고 있었다.
“장관.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그렇다면, 대한민국 초상관리부 장관으로서 3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도 내 목소리가 이렇게 무감정해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한국 헌터들은 대부분 돈을 목적으로 이번 해외파견에 지원했고, 그 누구도 타인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원자들에 한해서 유럽에 파견될 겁니다.”
그리고.
이거 도장 찍기 전까지 비행기 안 뜬다.
나는 불과 어제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이에게, 지극히 폭력적인 선택을 강요했다.
“…….”
뤼미에르는 짧은 침묵을 지켰다.
나는 묵묵히 그녀의 파란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서로에게 충분히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국 뤼미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장관.”
뤼미에르가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았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가 문고리를 잡았다.
내 입이 열린 건 그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헌터 한승문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뚝,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뤼미에르.”
왜였을까.
사실 이런 이야기까지는 안 꺼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은 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머리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22일 전부터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지극히 타당한 분석이 있었습니다.”
“…….”
“이건 단순한 게이트 발생이 아닙니다. 그들은 22일 전에 이 사태를 예견하고서,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에 우리에게 경고한 겁니다.”
나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다.
가지 마라.
적어도 조금만 더 나중에 가라.
앞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력을 움직이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함정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게이트가 열리지 않을 수 있다.
게이트가 열린 다음에 출발하는 게 안전한 선택이다.
나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
EU와 영국의 관계를 이용할 수 있다.
방법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화를 낸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정치인에겐 정치인의 방식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내게 표를 준 건 한국인들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가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렇게, 쾅-하고 문이 닫혔다.
나는 한참 동안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미안합니다, 노아.”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문이 닫힌 이후에서야 할 수 있다는 것을.
* * *
김 씨 성의 사내가 있다.
시흥 신천동 태생으로 올해로 57세가 된 중년이다.
젊었을 적엔 택배 사업을 해서 꽤 성공한 적도 있었고, 그때 만난 어여쁜 마누라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두었다.
IMF는 그의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술독에 빠져 살며 가족을 실망시켰고, 그를 잊기 위해 술독에 빠져들었다. 어여쁜 아내는 식당일을 하며 술값과 학비를 댔다.
술에 취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여고생을 자기 마누라로 오인하고, 그녀를 껴안고 질질 짜다가 경찰서에 갔다.
두 아들에게 맞아 이빨이 깨졌다.
자신을 죽이려 드는 두 아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마누라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김 씨는 뒤늦게 철이 들은 모양이다.
택배 사업을 하던 그는 택배 기사가 되었다.
‘우여곡절’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오랜 우여곡절 끝에, 월급 500만 원을 찍으며 뒤늦은 전성기를 열었다.
그도 나름 젊었을 때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매달 20만 원씩 비트코인을 샀다.
제때 팔았다.
그들은 강남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가족들은 거실에서 무릎 꿇고 울던 김 씨를 반쯤 용서했다.
김 씨는 요즈음 젊을 때보다 더 사랑스럽게 보이는 와이프를 보며 헤벌쭉 웃을 따름이다.
늙어서 이런 거 입으면 주책이라는 마누라에게 손편지를 곁들인 선물세례를 안겼고, 아들들에게 맞아 깨진 앞니에 드디어 임플란트를 박았다.
치과 갔다 오는 길에 게이트가 열렸다.
아파트 창문에는 생전 처음 보는 괴수가 있었다.
그는 몸을 던져 가족들을 감쌌다.
한쪽 팔을 잃었다.
괴수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때,
웬 불쟁이가 괴수를 태워버렸고, 그들은 압구정 캠프에 합류했다.
그들은 지금 충청도의 피난민 대피소에 있다.
둘째 아들은 집안을 일으키겠다며 각성제를 먹고 헌터가 되더니, 갑자기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가겠다고 덜컥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러니 팔 없는 장애인 김 씨와, 다시 식당 일을 시작한 마누라, 그리고 헌터 시다바리 짓하는 첫째 아들은,
작은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제발 막내가 외국 안 나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유럽이 알 게 뭔가.
이런 시대에 그들의 눈물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흘리기에도 부족한 것이었다.
-GS 주주총회에서 대외사업부 사업안 재고가 결정됨에 따라, 아이기스 방위대행사 헌터들의 대외파견이 무기한 보류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천금순 사장은 대규모 신규채용을 개시한다는 뜻을…….
한승문은 김 씨의 소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