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9 - 칼은 몸이 아니라 맴으로 쓰는겨 (1)
일본은 관서를 중심으로 야쿠자가 득세해서 정부랑 맞먹고 있다. 사태 초 자위대의 몇몇 개뻘짓과, 그 틈을 노린 야쿠자들의 전략적 행동이 조금 있었다.
미국은 하필 선거철에 사태가 터져서 좀비들 때문에 중부를 잃었다. 진부한 문제다. 좀비를 국민으로 보느냐 마느냐. 백신은 개발했다고 들었지만 내부적인 후유증이 거세다.
수천만 단위 감염자가 남아있다고 한다. 참고로 원옥분이 백신 프로토타입(우리가 쓴 백신)을 보내줬다는 사실을 양판석 당선 이후에 들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근처 빼고 싹 다 포기하고서 급사急死한 푸틴 때문에, 모스크바 정부와 그에 원한을 품은 동북아시아 군관구가 분리되어 냉전 중이다.
원옥분과 밀월관계였던 북한이야 뭐 국군과 미군의 공군지원을 받으면서 근근히 연명 중이고, 유럽이야 이제 와서는 말할 것도 없겠지.
하여튼 다들 개판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개판이 아니라는 소리도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죠?“
“유재경이가 그거 때문에 요즘 뭐 챙겨먹던데.”
“탈모약 아니면 위장약 아니겠습니까?”
“닥치게.”
* * *
갑자기 날아온 꾸사리에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양판석의 착잡한 표정과 이마를 보고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옛날에 지금처럼 혓바닥 잘못 놀렸다가 선임 보좌관한테 불려나가서 내리갈굼 당하며 쪼인트 까이고, 약 2주동안 왕따처럼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름과 동시에 트라우마가 도져서 흠칫 몸이 떨렸다.
어차피 지하 200m 벙커에서 단 둘이 있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었으나, 나는 서둘러 이 60대 중반 노인의 심기를 달래기 위해 화제를 전환시켰다.
“아, 아하하...! 물론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요. 예전에 각성제 만들어서 뿌릴 때는 나라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서울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국가를 분단시킨 의정부 사태와, 강원도 일부를 제외한 수도권을 완전히 상실시킨 서울 사태.
일련의 두 재앙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였다.
특히 수도권을 상실했다는 건 대한민국의 절반을 잃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주로 피라미드 계급의 재배열 측면에서 말이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강남에 상가 다섯 채를 가진 건물주보다, 부산에서 고시텔 운영하던 사람이 더 큰 부자가 된 것이다.
건물주들은 당연히 건물 보상해달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은행에 맡겨놓은 돈이라도 달라고 하다가, 이제는 당장 살 집이라도 좀 달라고 하다가, 결국 밥만 챙겨달라고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다 이제 가망이 없다 싶으면, 수명이고 뭐고 에라이 모르겠다 헌터나 하자. 그렇게 각성제 들이키고 헌터가 되는 거다.
사태 초 자연각성한 이들이 1세대 헌터라면, 이렇게 사회 밑바닥까지 가서 각성제를 들이킨 이들은 2세대 헌터였다.
그리고 내가 기자회견장에서 대가리를 처박을 때까지만 해도 2세대 헌터들이 밥을 굶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마석이 돈이 되는 세상 아닌가. 에너지 산업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 분야고, 광부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나도 의정부에 갑자기 뭐가 나와서 깽판을 치더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말아먹을 줄은 몰랐고,
그 와중에 김두식이라는 사람이 튀어나와서 죄 무너진 국군을 틀어잡고서는 뚝딱 충청 방어선이라는 희대의 역작을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충청 방어선이라는 시스템이 너무도 완벽해서 2세대 헌터들이 밥을 굶는다. 정확히는 2세대 헌터들 중 후발주자들이 밥을 굶고 있다.
헌터 실직이다.
왜냐.
“과장 조금 보태서, 막 각성한 헌터는 어지간한 사기 능력이 아니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겁니다.”
“하기야 우리 때는 괴수랑 싸운 이유가 살려고 그런 거였는데. 요즘은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이니...”
아무리 괴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서, 인생 막장에 몰린 나머지 수명을 버리며 각성제를 마셨다 쳐도. 역전의 용사처럼 괴수 모가지를 따고 다니기는 참 힘든 일이었다.
무슨 초보자 사냥터처럼 레벨 구분이 있는 세상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남는 데라곤 경호 쪽이나 택배, 노가다, 기타 용역, 그리고-
“깡패죠.”
“흐음......”
“초인들 설치는데 치안 통제 안 되면 큰일입니다. 일본이 이래서 망한 거에요. 우리야 일단 실탄 장전한 군인들이 눈깔 시퍼렇게 뜨고 있고. 기본적으로 모든 남성들이 군대에 소속되어 있어서 망정이지. 요즘 충청도 쪽에 깡패들이 설쳐서 난리도 아니랍니다.”
노가다는 돈이 안 되고, 깡패는 뭔가 좀 그렇고, 괴수 잡기는 조금 무섭고.
이게 현 2세대 헌터들의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헌터의 재능을 보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키워줄 수 있는 곳. 즉, 마석을 선불로 땡겨주는 PMC로 가야 했지만.
수없이 난무하는 군소 길드에선 마석은 쥐꼬리만큼 받고서 골수까지 빨아먹히기가 일쑤였으니, 그게 꼬우면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제대로 운영하는 민간군사기업이래봤자, GS 아이기스, 트리플 스타즈, SK 수렵대행사 뿐이라서, 그리 녹록치도 못한 상황이다.
게다가 금순이네 빼면 동대문파 압구정파 선에서 싸악 정리되는 게 현재 민간군사기업 수준이라, 2세대 헌터들이 믿고 기댈만한 곳이 없는 처지였다.
그들은 길거리를 떠돌고 있다.
술에 취한 나머지 지나가는 행인 뚝배기 정도는 ‘실수로’ 박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리고 술에 취해도 칼을 휘두르지 않는 절제심과, 홧김에 손을 휘둘렀더니 불덩이가 나가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래서 외국으로 보내자는 겐가? 뭔, 독일 탄광에 광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아뇨! 아뇨! 국제평화를 위해 의용군을 편성하자 이 말씀입니다! 국제평화군, 치안유지군, 한국 방위대행공사, 뭐 그런-”
“쯧, 이건 뭔 마귀도 안 할 짓거리를......”
양판석이 혀를 찼다.
“쓰읍......”
그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고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판석이 머리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톡 톡 두드렸다.
“노아 루미애루 한테 대략적인 사항은 전부 들었네. 물론 EU 쪽에게도 말이야. 관점이야 다르지만 대충 비슷한 소리를 하더군.”
“뭐라 그러덥니까?”
“그건 자네가 상관할 바 아니고.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알 바 아니고.”
그렇긴 했다.
우리가 하겠다면 하는 거지 뭐.
“베트남 전쟁이 생각나는구만. 참전하고 경제지원받는 꼬라지가 원....... 아무튼 이걸 루미애루랑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떠올렸다는 거지?”
“하하......”
“......설마 그때 이거 다 계산하고 말한 건가? 이 마귀같은 정치공학을?”
“아니,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래서 했어? 안 했어?”
“......저도 정치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말하다 보니까 자꾸 엮을 구석이 생각나는 걸 뭐 어쩌겠는가. 실제로 외환은 바닥나고 실업자만 남아도는 상황에서는 해외취업이 답이었다.
“그리고 거시적으로 보면 사람 돕는 일 아니겠습니까.”
“자네도 미시적으로는 문제가 많을 거라는 건 아는구만.”
쯧.
“거어... 한강에서 요트 몰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잖습니까.”
“그걸 아직도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양판석은 영 언짢은 표정이었다. 나는 심통맞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하기 싫으십니까?”
“누가 좋아하겠나?”
“그러면 안 합니다?”
나는 계획서를 주섬주섬 챙기려-
“아아이!”
-했다가 제지당했다.
“하기 싫다고는 안 했어!”
*
국제구호, 를 가장한 해외파병 계획이 슬슬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단 헌터들을 끌어들일 긍정적 유인은 충분하다. 상당히 저렴한 금리로 마석을 선지급하고서, 위험수당도 챙겨주고, 외국에서 얻는 마석도 시세보다 비싸게 쳐주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프로 헌터들이 그들의 호위 격으로 동행할 터이고, 현지 군인들과도 함께 싸울 것이었는데, ‘비교적’ 안전한 헌팅은 맞았다.
문제는 2세대 헌터, 그들 본연의 역량이었다. 싸움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들이 어떻게 외국에서 괴수를 죽이고 다니겠는가.
물론 김춘식의 압구정파, 설진운의 동대문파같은 1세대들이야,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력집단이었지만, 미쳤다고 1세대 헌터들을 외국에 보내겠는가.
당장 충청 방어선에서 예방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위권 헌터들은 일종의 전략자원이었고, 게다가 더 이상 헌터 협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조금 꺼려지는 선택이었다.
협회장 홍선아는 GS 소속이었으니까. 그리고 김춘식 밑에서 무료봉사하다 빡세서 떠난 1세대들도 GS 소속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2세대 헌터들을 교육시키는 것밖에 답이 안 나오는데.......
“어, 여보세요?”
그게 내가 지금 전화를 돌리는 이유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장관님께서 저 같은 서민한테 무슨 일이신데요?]
“누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권력 잡고서 전화 한 통이 없더라?]
“으응. 나도 잘 지내. 그래. 옆에 설진운 헌터 있지? 바꿔봐. 빨리.”
*
경상북도 울진은 태백산맥과 동해안 사이에 있는 고즈넉한 항구도시다. 사실상 강원도 바로 아래에 붙어있는 대한민국의 중부다. 그 중 가장 동부에 속했다.
울진은 평범한 농어촌이다. 서쪽에는 태백산맥이 펼쳐져 있고, 동쪽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다. 산기슭을 따라 줄지은 농촌이 아름다운 곳이고, 특산품인 대게도 참 맛있으며,
충청 방어선의 최고 격전지이기도 했다.
물론 수도권 바로 아래인 평택-천안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의 전투가 발발하기는 했으나, 그곳은 후퇴전술이 먹히는 지역이었다. 그린벨트로 몰아서 자주포 쏘면 되는 지역이다 이 말이다.
울진은 이야기가 다르다.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됐다. 가뜩이나 서울과도 멀어서 군인도 별로 없었건만, 그들은 자신의 시체로 괴수를 저지해야만 했다.
최고 전략거점 중 하나라 그렇다.
그곳에는 농촌이 있고, 죽변항이 있고, 망양정 해수욕장이 있으며, 한울 원전이 있었다.
원전原電.
하나라도 터지면 좆되는 그것.
팔팔하게 돌아가는 원자력발전소 여섯 기가 울진에 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태백산맥을 끼고 있어서 숲에서 괴수가 게릴라처럼 튀어나오는 지역이다.
물론 각지에 있는 그린벨트나, 속리산, 월악산, 소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무주공산을, 홍선아의 불꽃과 미제 폭탄으로 박살내며 강원지방 괴수를 소탕하기는 했으나,
울진이 충청 방어선의 최전선이라는 건 대한민국의 심각한 안보위협이었다. 그래서 그쪽만은 충청방어선 위쪽으로 북상하는 중이다.
강원도 속초에 고립된 사람들도 아직 남아있고 말이다. 대충 아직 250만 정도 된다. 그 중 군인이 50만이다.
물론 최정예들이다. 후퇴의 달인 유현종이 밑에서 각개전투와 후퇴작전을 마스터한 기동전의 명수들임이 지난 사태들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신병이 베테랑이 될만한 곳이다. 거기는.
결국 베테랑만 남았다.
아무튼.
이러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울진 쪽을 전략거점으로 잡고서 천천히 북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최정예가 파견된다.
군인이든 헌터든 말이다.
그게 동대문파 헌터들이 울진에 있는 이유였다.
“어어, 군인 아저씨!”
김춘식 밑에 있었다가 홍선아가 영 아니꼬와서 설진운네로 갈아탄 고등학교 2학년 헌터가 군인에게 설렁설렁 걸어갔다.
음침하고 인상 더러운 애가 피칠갑된 교복 차림으로 삐딱하게 걸어오고, 그 옆에는 K2 든 여중생이 딸려 있었지만, 군인은 이들을 보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인은 다소 음침한 인상의 고등학생 헌터에게 말했다.
“야. 쌍칼. 내가 형이라고 부르랬지.”
“그 얼굴로?”
“십새키......”
군인은 압구정 캠프 초창기 간부 중 하나였고, 신분당선 탈출작전을 거친 베테랑이었다. 국군은 그 경력을 인정해 그를 헌터 전담팀에 배속했고, 이는 퍽 효율적인 인사였다.
“아이씨, 뼈 맞았네......”
“40대도 원빈이면 형이야. 나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어쨌든 단검 두 개 휘두르며 걸어온 고등학생이 팩트를 꽂아넣자, 소총 든 중학생이 싱글벙글 웃으며 맞장구쳤다.
“맞어유! 맞어유!”
군인은 이를 갈았다.
“니들은 징집 안 되나 보자......”
“아니, 징집 문제가 아니라니까?”
“아 닥쳐 쫌!”
“형은 항상 그게 문제야. 왜 현실에서 자꾸 도망치냐고.”
군필 여중생이 군인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서 건빵을 훔치는 동안, 고등학생 헌터가 단검으로 숲 속 언저리를 설렁설렁 가리켰다.
“거어, 뭐냐. 머리 둘 달리고, 뱀 닮고, 막. 원숭이. 예?”
“그렇게 설명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새키야.”
“듣는 새끼 기분 나쁘게 자꾸 새끼새끼 거리지 말고. 아무튼 며칠 전에 양로원에서 어르신들 잡아먹은 그 새끼 말입니다.”
“아아. B타입 키메라?”
“키메라는 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무좀걸린 엄지발가락 닮았드만. 아무튼 모가지 땄습니다.”
“......그 새끼 날개 달리지 않았었나?”
“누님이 나무타고 올라가서 점프 뛰고 몇 대 후리니까 땅에 쳐박히던데요.”
“아아, 그 누님? 오셨어?”
군인은 건빵 씹는 여중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정도로 말이다.
“아니 그 누님 왔으면 내가 걱정이 없지! 하여튼 어제 저녁에 뉴스 보니까 속초에서 바다괴물 때려잡았다 그러던데 언제 여기까지 오셨대? 욕 본다잉. 증말.”
“하여튼 좋다고 괴물 때려잡는 거 보면 내가 이해가 안 돼요. 만약 내 동생이 장관이면 내가 제주도에서 귤이나 까면서 지냈다. 진짜.”
“야 임마. 좋은 일 하시는 분인데.”
“아이씨, 눈앞에 이빨 달린 살덩이가 침 뚝뚝 흘리면서 나 질겅질겅 씹으려고 덤비는데. 좋긴 뭐가 좋습니까. 괴물 좋다고 잡는 양반들은 죄다 정신병자들이라니까.”
괴물 좋다고 잡는 군필 여중생이 건빵을 씹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등학생 헌터는 홧김에 넥타이까지 풀어 주머니에 넣으며 투정을 계속했다.
“김춘식 그 정신나간 아저씨도 그랬어. 사람 살린다고 괴수 잡는 양반들이나, 돈 벌라고 괴수잡는 양반들이나, 싹 다 어디 맛탱이가 갔다니까?”
지켜보던 여중생이 건빵에 달린 별사탕을 오독거리다가 한 마디 보탰다.
“지도 춘식이 아저씨 좋다고 끝까지 따라다녔음서.”
“야! 임마! 나는, 그, 뭐냐! 어!?”
“뭐요.”
“......쯧! 정신나간 양반들......”
음침한 인상의 고등학생이 괜히 흙먼지 나게 땅이나 차고 있으니, 군인이 사람좋게 웃으며 분위기를 다독였다.
“아무튼 좋은 일 하시는 분들 욕하지 말자고. 괜히 욕하다가 본인이 들으면-”
콰아아아앙 - !
숲 속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어딘가에서 포탄이라도 날아온 것처럼 흙먼지가 일었다.
군인과 소녀는 소총을 견착했고, 소년은 단검을 꺼내 미미한 검기劍氣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긴장 속에 흙먼지가 사라지고, 그 속에서 걸어나온 건, 아주 다행히도 사람이었다.
소녀와 군인이 총부리를 내리고, 소년은 검기를 갈무리했다.
“......저거 도연이 누님 아녀?”
“......맞는 거 같은데요.”
“언니 통화하나...?”
여도연은 검은 양복바지에 한쪽 손을 집어넣고서, 성큼성큼 걸어가며 전화를 계속했다. 그녀의 걸음걸이에 땅이 미세하게 울렸다.
그녀가 소리쳤다.
“오랜만에 한다는 말이 뭐? 설진운이 바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