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8 - 웰컴 투 코리아 (3)
온갖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병원 입구로 들어설 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어어! 한 씨 아재!”
뒤를 돌아봐도 앳된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아리송한 표정으로 건물에 들어서려니 누군가 정수리를 툭 툭 건드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왠 어린애 하나가 둥둥 떠 있다.
“오랜만!”
“어어, 지윤아. 잘 지냈어?”
“아유. 말도 마셔요. 사는 게 바빠서 그냥......”
* * *
호로록!
지나가던 야쿠르트 아줌마한테 6,500원이나 주고 산 야쿠르트를 감지윤이 야무지게 빨대로 빨아 먹었다.
녀석은 간촐한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신발과 옷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자아, 지윤이. 만세- 해봐.”
“그냥 손 좀 들어보라고 하지?”
“새키. 까칠하기는.”
감지윤은 입을 삐죽이면서도 활짝 손을 들었고, 나는 공원 구석에서 감지윤에게 묻은 먼지를 탁 탁 털어주며 물었다.
“우리 지윤이. 오늘은 뭐하고 왔길래 이렇게 꼬질꼬질하셔요? 먼지구댕이라도 뒹굴었어?”
“으응. 금강 공구리 좀 치고 왔지!”
“......누굴 공구리 쳐?”
“아아니, 전라북도 금강 따라 괴수 들어온다 그래가지구. 강 상류 쪽 물길 건드리고 왔다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고 오셔서 이렇게 흙먼지를 묻혀오신 모양이었다.
“겸사겸사 새만금 쪽 방조제도 좀 건드리고... 어디 신고 들어와서 비행괴수도 좀 잡구......”
“이야아 참말로 바쁘시구만유? 군인 아저씨들이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고럼! 고럼! 돼지고기도 얻어먹고 왔지!”
감지윤은 신나게 방방 뛰다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녀석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감지윤이 공사장 썰을 풀었다.
“아파트 하나 강바닥에 박아넣는디, 그 밑에 이따-시만한 생선이 하나 있는거여?”
“생선?”
“괴수.”
“아하.”
“어디 무인도에다 올려놓고 다져버리니까 마석 튀어나와서 먹었지!”
감지윤은 눈에 띄게 밝아진 모습이었다.
사실 맨 처음 게이트 열렸을 때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봐서 그런가, 말도 없고, 밥도 잘 안 먹고, 행동하는 것도 살짝 이상하고 그랬었는데.
“하여튼 바닷놈 마석이 몸에 그렇게 좋디야...”
“박카스보다 좋아?”
“산삼보다 좋아유...”
요즘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오히려 피채원이 아직 후유증이 조금...
아무튼.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여자화장실 앞에서 등을 툭 밀었다.
“엄마 보러온 거 맞지? 손 씻고 오셔.”
“시른뎅.”
“출산 끝난 임산부랑, 막 태어난 애기는 병균에 많이 취약해요. 그러니까 지윤이 손 씻고 가야 돼.”
“2달이나 지났잖아.”
“손 씻고 오면 아저씨가 간식 사줄게.”
“비누칠도 하고 오겠습니다!”
원래 하는 거야 녀석아.
라고 말하기도 전에 감지윤은 후다닥 허공을 날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녀석의 손에는 촉촉한 물기가 묻어 있었다.
“됐지?”
감지윤은 내 양복바지에 스윽 슥 물을 닦아내고서는, 손 잡아달라고 뽀송뽀송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손을 잡았다.
“그래. 이제 천화란 박사님 보러 가자."
“우리 엄마 박사 아닌뎅.”
“똑똑하시잖아.”
“요즘 맨날 핸드폰 어디 놨는지 까먹던뎅.”
“나이 먹으면 다 그래.”
감지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7층으로 향하자, 병실 복도 의자에 작은 남자애 하나가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삼촌...”
“으응. 시호 오랜만이네?”
이제는 실종되어버린 보좌관 친구, 강석호의 동생 강시호였다.
나는 강시호의 침울하고 초췌한 모습을 보며 녀석의 기구한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시호를 뺀 나머지 동생들을 모두 잃은 강석호가 알콜중독에 빠져 시호를 폭행한 이후, 양일호와 이호정이 애를 대신 맡아 기르게 되었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 녀석들을 맨날 야근시키는 바람에 감기자님이 대신 길렀고, 설상가상으로 의정부 사태 당시 강석호마저도 실종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일종의, 그,
전쟁고아다.
생각해질수록 마음이 울적해져서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하하.”
나이를 먹으면 속에도 없는 웃음 흉내만 늘어나는지라,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강시호의 정수리를 토닥였다.
“시호 오랜만이네? 있다가 삼촌이랑 간식 먹으러 갈래?”
“......괜찮아요.”
“삼촌이 먹고 싶어서 그래.”
“......아니에요.”
“그래? 시호 배 안 고프구나-”
“괜찮다니까요!”
녀석이 머리에 얹은 내 손을 거칠게 쳐내자, 내 손을 잡고 있던 감지윤이 소리쳤다.
“사 주면 처 먹어 새꺄!”
“...!”
“어디 밥 귀한 줄 모르고 어른한테 싹퉁머리없게 이노무 새끼- 읍...! 으으읍...!”
감지윤의 입을 잽싸게 틀어막자, 강시호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서 어딘가로 도망쳤다.
녀석의 뒷모습이 병원 복도 어딘가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제서야 감지윤의 입을 풀어줬다.
“아! 저 새끼 버릇 고쳐야 한다니까요! 맨날 우리 엄마랑 아빠한테도 신경질이야!”
“지윤아.”
“세상에 지만-”
“가족이 죽으면 원래 다 그래.”
“......”
감지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녀석의 정수리를 토닥였다.
“아저씨도 부모님을 일찍 잃어봐서 그나마 알아.”
“안 죽었대요.”
“......뭐?”
감지윤은 착잡한 표정이었다.
“......맨날 안 죽었다고 우기더라구.”
감지윤이 강시호가 사라진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내게 잘 보이려는 대기업에서 서포트한 초호화 병실로 들어가니, 거실에서 감기자가 둘째의 걸음마를 구경하고 있었다.
포대기에 싸서 들고 다니던 갓난애기가 어느새 걸음마를 하다니. 세월이 참 무상하다.
그리고 감기자는 이제 감감찰관이었다.
“어이구. 애기 많이 컸네요!”
“어어! 장관님! 여기는 어쩐일로...?”
“우리 천 박사님 무탈하시나 싶어서 와 봤지요. 지금 주무십니까?”
“잠깐 애 밥 먹이고 있습니다.”
나는 선물 보따리를 식탁에 올려놓고서, 걸음마 중이던 둘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철이 잘 지냈어요?”
“아부부......”
“어어, 삼촌도 잘 지냈어요.”
“저어... 장관님?”
“네?”
감기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감 철이고, 얘가 감 석입니다.”
“......아.”
걸음마 하던 애기가 넘어져 아부부브베벱베 거리며 굴러다니는 와중, 감기자와 나 사이에는 극도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건 신생아를 안고 거실로 나온 천화란이었다.
“어머, 장관님 오셨어요?”
“아아! 천 박사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푸욱- 쉬어서 이제 편안- 합니다.”
천화란은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았다.
“한사코 괜찮대도 어디 사는 장관님이 삼성병원 출신 의료진을 공수해주셔서. 두 달이나 온갖 호강을 다 해서요. 이젠 오히려 몸이 찌뿌둥하네요.”
“그 장관님이 인재 볼 줄 아시는 모양입니다.”
“어머머...!”
천화란은 조심스레 내게 감 씨네 셋째 아기를 내밀었다. 나는 살포시 녀석을 받아들었다.
물론 받아들자마자 애기가 울상을 짓길래 재빨리 엄마에게 돌려줬다.
“애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글쎄요... 아직...”
“나중에 크게 성공하라고 판석이는 어떻겠습니까?”
천화란이 썩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소파에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감기자가 툭 덧붙였다.
“이번에는 장관님이 헷갈리지 않도록 이름 두 글자로 짓겠습니다.”
“거어, 참...”
*
걸음마 하는 둘째와, 포대기에 싸인 셋째를 간병인에게 잠시 맡겨두고서, 어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에 나는 대접받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초인연맹 설립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아, 네.”
“사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조금 이득을 봤습니다.”
“조금은 아닌 것 같던데요?”
“하하, 네. 중국한테 쌀 받고 EU한테 포션기술을 일부 받았지요.”
중국이 평소 굶어죽는 사람이 좀 있었다지만, 수출만 안 하면 식량이 무지막지하게 남아도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나라가 각성제니 뭐니 만들었어도, 유럽은 전통적인 세계의 중심이고, 수많은 나라가 모인 과학기술의 발상지다.
반면, 우리나라는 당장 극심한 식량난이 예측되는 상황이고, 연구를 천 박사나 도 박사같은 천재들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심했다.
“그 부분이 이제 그나마 나아진 거죠.”
감기자가 날카로운 구석을 찔러왔다.
“......미국이 그걸 보고만 있었습니까?”
“글쎄요. 잠잠해서 살짝 불안하긴 해도, 위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초상연합이라는 이름의 반미反美 동맹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우리는 중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미국과 아예 척을 진 중국-EU와는 달리, 한국은 아직 미국과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한미군이 있잖습니까.”
“아.”
“일단 우리가 미국이랑 아예 적대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코앞에 7함대를 두고......”
“그쪽 눈치를 봐야하는 겁니까?”
“그쪽도 우리 눈치를 봐야 합니다. 주한미군이나 7함대가 태평양 다시 건너가는 건 바다괴수한테 나 잡아 잡수라는 말이니까요.”
“......고립됐군요?”
“결국 7함대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고. 주한미군은 한국에 있지요. 문제는 일본도 야쿠자랑 내전 터지기 직전이라 믿을만한 나라가 한국뿐입니다.”
한국은 미국이 가진 동아시아 최후의 교두보였다.
정확히는 동아시아의 상대적 친미親美 중, 제 구실을 하는 곳이라고는 한국뿐이었다.
사실 전세계에서 국가 시스템 멀쩡하게 돌리는 곳이 몇 없긴 하다. 그 중국 러시아 미국도 개작살이 났는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야 가운데에서 노났죠.”
중-유와 미국, 양쪽에서 한국을 우방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상황이 완성되었다.
시대의 흐름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일 뿐더러, 초인을 생산 가능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두 번째 게 가장 크죠.”
상대적 안정. 그리고 초인생산.
그게 바로 우리가 초강대국들의 욕심어린 애정을 받게 만든 요소다.
그리고, 이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여러분입니다.”
“......저희요?”
“네.”
우선 천화란 박사.
“박사님은 제주도 연구본부에서 각성제와 제약 부분의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시게 될 겁니다. 특히 각성제 연구팀을 이끄시게 될 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중요한 건, 각성제 기술 유출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가장 큰 무기를 잃습니다. 당연히 앞으로도 온갖 산업 스파이들이 꼬일 겁니다. 물론, 그 어떤 경우라도 최고의 대우를 보장할테니......”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감 감찰관.
“각성제 선별인원 담당은 우리 측 헌터 협회가 맡습니다. 물론 초인연맹 산하 위원회가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 헌터 협회가 담당합니다.”
“......역시 그렇게 되는 겁니까?”
“물건 들고 있는 쪽이 우리니까요. 뭐, 거의 대부분 그쪽이 보내준 명단에 따라 선별하기는 하겠지만, 중요한 건 헌터 협회에서 헛짓거리를 못하게 하는 겁니다. 뇌물을 받는다던지, 아부성 인사를 감행한다던지, 국론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던지....”
“......국론이요?”
“아무튼, 그걸 단속하셔야 하는 분이 감기자님입니다. 외세의 꼬임이나, 돈과 권력의 유혹이 초상관리부와 헌터 협회에 스며드는 것을 막아내셔야 합니다.”
내가 그래서 굳이 감씨 부부를 요직에 앉힌 것이다. 전문가는 많아도 믿을만한 사람은 드무니 말이다.
감기자의 지나친 정의감이 살짝 걱정되기도 했으나, 처자식 딸린 양반이 뭘 어쩌겠는가.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게 정이라고. 그들과 나 사이에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있었다. 함부로 뒤통수에 칼을 박지는 않겠지.
“......아무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에게 제주도 집문서를 쥐여 주었다.
물론 양판석이 마련해준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그 양반 스타일로 정치를 하는 것 같았다.
*
초인연맹 기초협상이 끝나고 실무진 간의 조율만 남았다.
또, 현 체제 유지를 위한 인적자원 관리도 끝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 나는 갑작스런 저녁식사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부산 앞바다의 동백섬이 들여다보이는 해운대의 멋들어진 프랑스 레스토랑에 노아 뤼미에르와 오붓하게 앉아 식사를 가졌다.
창가 자리에 앉아 세상을 보니, 어둑한 바다에 찬란한 도시의 빛이 넘실댄다.
우리의 문명은 아직도 밝게 빛나며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한 명의 공무원으로서,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미소지었다.
가게 스피커에서 프랑스 샹송이 첼로 소리와 어우러져 들려왔고, 와인과 스테이크는 유독 고급스러운 풍미를 자극했다.
거기에 노아 뤼미에르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마력이 테이블을 촛불처럼 비추고 있으니, 더없이 낭만적인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다시 뵈어서 반갑군요. 일찍이 귀국하신 줄 알았습니다만.”
“이 식당 와인 맛이 잊히지가 않아서요.”
귀에 달린 통신기로 번역을 거친 말이었지만, 그녀의 프랑스어에서는 오묘한 쓸쓸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와인을 살짝 홀짝였다. 뭐가 맛있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맞장구를 쳤다.
“와인은 잘 모르지만, 일단 참 맛있다는 것만 알겠습니다.”
“제 고향 사람이 하는 곳이더군요. 지난 방한 때 찾은 바 있었습니다만, 그때 기억에 남아서 다시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 프랑스 분이 하시는 곳입니까?”
“코트도르. 부르고뉴 와인의 심장입니다.”
“아아. 전통 있는 와인이군요?”
“이제는 몬스터랜드로 변해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착각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와인의 쓴 맛이 갑자기 진해졌다. 술맛이 떨어져서 잔을 내려놓고 말없이 고기나 썰었다.
“......유감입니다.”
“아닙니다. 부탁하러 온 처지에 괜한 말씀을 드렸군요.”
“부탁이요?”
노아 뤼미에르는 슬픈 웃음을 짓고 있었다.
“EU에서 헌터들에게 폭탄 목걸이를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저런,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사안은 추측성 발언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민관 갈등이 제 생각보다 심한 것-”
“비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