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97화 (97/296)

EP 16 - 초상관리부 장관, 한승문 (3)

덜컹.

현관문이 닫히고 유재경이 떠나갔다. 동시에, 딸내미가 흔들던 손이 우뚝 멈추고, 그녀의 미소 또한 천천히 가라앉았다.

남은 건 침울한 무표정, 그리고 온갖 걱정을 담아낸 한숨뿐이었다.

“하아.......”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녀는 뒤돌아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녀가 배운 정치는 자비없는 정치였다. 양판석의 인수위는 전쟁에 이긴 점령군처럼 군홧발로 들어와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칠 것이었다.

어쩌면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아버지의 사무실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박스에 쓸어담아 가져가고, 아버지는 멍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저녁 포장마차 구석에서는 이제 직장에도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처량한 가장의 눈물방울이 소주잔에 뚝, 뚝, 뚝...

“으이익...!”

아버지에게는 가장타령을 했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위공무원이고 어머니는 금수저다.

돈이야 많다. 문제는 모가지였다.

모든 정권은 전 정권을 조지며 정당성을 잡았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원옥분은 맞을 구석이 너무 많았으며, 양판석은 주먹에 징박힌 장갑을 낀 프로 파이터였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다가오는 혈겁에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젠장...!”

그러나 이제 겨우 학교를 벗어난 대학원생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우유 한 잔을 원샷하고는 식탁에 너절히 주저앉았다.

“아으윽...!”

그녀가 정체모를 침음성과 함께 머리를 헤집었다. 가문을 지킬 사람은 그녀뿐이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그녀의 아버지를 구해야 한단 말인가?

“정계입문이라도 해버려?!”

그렇게,

그녀는 그녀 앞에 주어진 막중한 의무에 고민하며, 한참동안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2층에서 거실을 내려다보던 유재경의 와이프만이 시뻘건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웃음을 참을 따름이었다.

* * *

그 시각, 딸내미가 온갖 번뇌에 시달리는 것도 모른 채, 유재경은 싱글벙글 웃으며 전화기에다 대고 웃음기 섞인 딸랑이를 흔들었다.

“아이고 각하! 네! 네! 도착했습니다. 네. 아하핫! 옙,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검은 에꾸스가 도로에 멈추자, 차에서 보좌관이 후다닥 뛰어나와 뒷문을 열었다.

“크흠...!”

유재경은 보좌관의 의전을 받으며 위풍당당 걸어나와 커다란 한식당 앞 자갈마당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는 손짓으로 보좌관들을 물리고 한식당에 들어갔다.

“오!”

“아...”

사방에 경호원들이 깔린 식당 로비에서, 유재경이 방긋 미소지으며 달려가 악수를 건넸다.

“김두식 사령관님! 여기서 보네요!”

“아... 네. 반갑습니다.”

김두식의 반응이 살짝 떨떠름했지만 유재경은 반갑게 김두식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당선자께서 기다리시겠습니다. 가시죠!”

“아, 유재경 장관님?”

김두식의 곁에 있던 푸짐한 중년 하나가 유재경을 불렀다. 유재경은 웃는 얼굴로 눈알을 굴려 스캔을 끝냈다.

신수광이었다.

차려입은 거 보니 딱히 부유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긴, 애초에 시흥 촌구석에서 마트하다 수도권 피난민 대표 명함 얻은 서민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예비 국회의원이다.

하여, 유재경은 반갑게 웃으며 그를 알아봐주었다. 너무 친근하지는 않게.

“어어, 신 의원님 아니신가?”

“처음뵙겠습니다. 신수광이라고 합니다!”

“그래, 반가워요.”

신수광은 살짝 푸짐한 아저씨였다. 조회수 2천만 찍은 동영상보다는 살짝 더 쪄보였다.

그는 헤실헤실 웃으며 거의 90도로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유재경의 악수를 받들었다. 유재경은 절대로 이런 부류(자기 후까시 좀 넣어주는)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신수광과 악수하며 살짝 불쾌함을 느꼈다.

물론 그가 고졸 자영업자 출신이라 그런 건 아니다. 그런 마음도 살짝 있기야 하겠지만 절대로 이게 주된 이유는 아니다. 유재경은 스스로에게 살짝 꼰대끼가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그거야 50대 중년 엘리트 관료가 학벌 좀 따지는 게 어디 이상한 일인가.

게다가 항상 정계에는 이런 부류가 있었다. 공무원노조 오야붕이라던지. 수십만 노조연맹 위원장이라던지.

학벌과 재력을 떠나 그런 사람들은 엘리트 관료인 유재경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그가 ‘을’이 되는 상황도 부지기수였다.

하물며 신수광은 어떤 사람인가?

대한민국의 핵심은 엄연히 수도권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했다. 그리고 지금, 약 1천만 이상의 수도권 출신 난민이 존재한다.

“경인권 난민캠프랑... 괴수피해국민 권익보장위원회 총위원장이셨던가?”

“아, 넵!”

그리고, 신수광은 그들의 대표자였다.

물론 절대적인 지지는 아니고 어디 노조위원장 즈음 되는 직위였지만, 1천만이라는 숫자는 민주사회에서 그야말로 깡패나 다름없는 숫자였다.

다만, 그가 조금 꺼려지는 이유는ㅡ

“장관님께서 사태 초기부터 세종시 정부청사 이끄시는 모습! 일개 국민으로서 정말로 감사하고, 또, 존경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아, 그래요.”

ㅡ신수광은 원래 국민당 대선후보였다.

그러나, 그는 양판석의 출마와 동시에 대선후보에서 물러나 국회의원 후보에 등록했고, 심지어 김조인계의 축출로 인해 생긴 빈자리에 난민캠프 출신 인사들을 일부 박아넣기까지 했다.

이게 불과 이틀 안에 일어난 일이다.

유재경이 생각하기에, 이 행동은 철저하게 양판석에게 지시받은 행동이었다. 짝짜꿍이 맞아도 너무 잘 맞았고, 타이밍 또한 기가 막혔다.

즉ㅡ

“......나도 우리 신 의원님 동영상 보고서 가슴이 먹먹하더군요.”

ㅡ신수광이 울면서 딸의 죽음을 거론했던 건, 어쩌면 서울탈환을 저지시키려는 ‘정치적 감성팔이’ 였을지도 모른다고.

“......뭐, 같이 국정 잘 풀어나가 봅시다.”

딸바보 유재경은 그리 생각했다.

*

한식당 3층 밀실에 커다란 식탁이 있었다. 한식당에 안 어울리는 아름다운 샹들리에 아래로,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진수성찬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돈을 처바른 자리다. 익숙치 않은 사람은 쭈뼛쭈뼛 긴장할 게 분명했다. 실제로 신수광이 살짝 그래 보였다.

물론 유재경은 이런 식사자리에 익숙했고, 심지어는 상석에 앉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니, 퍽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다만, 평소와 다른 건, 상석에 대통령 당선자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각하!”

“나 원. 호칭 좀 어떻게 하지 그러나?”

“아이고, 저도 모르게...”

“속 보여 이 사람아.”

“아하하...!”

여기서 유재경의 눈치가 발동했다. 그는 눈웃음을 치며 실눈을 만들고, 눈동자를 잽싸게 굴려 방 안을 스캔했다.

양판석의 오른쪽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옆으로 몇 명이 앉아 있었으니 일부러 비워둔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를 위해 준비된 자리는 아니다.

“...!”

다행히도, 왼쪽 라인이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그는 뒤에 따라오는 김두식과 신수광을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양판석의 왼쪽에 앉았다.

이후, 흐뭇하게 웃으며 가벼운 인사치레를 끝내고.

유재경은 침착하게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스펙을 훑어보았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당이 근소하게 앞섰더군요, 154석이라. 축하합니다. 청중엽 지사.”

“하하, 군소정당 싹 빠진 결과인데요. 사실상 반반 아니겠습니까?”

“154대 146이라. 이런 결과는 앞으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우선, 제주도 맹주, 청중엽 지사.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땅을 꽉 쥐고서, 전경련을 비롯한 기성재벌을 끼고 있는 강철의 성주城主와도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석재봉 정무수석?

이 양반도 양판석 계열이었을줄이야.

원옥분의 심복인 줄로만 알았건만, 공화당 재선의원 출신 정치참모가 이번에 제대로 한 건 터뜨린 모양이었다. 서울탈환을 주장한 사람이 저 양반이었으니, 차기 정권에서 제대로 한 자리 차지하겠군.

“아이고, 이제 겨우 숨 돌리나 싶었는데 내년에 또 지선이군요.”

“하하,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청 지사님이야 워낙 인망이 넓으시니 속 편하시겠지만. 저야 죽을 맛입니다.”

거기에 전남지사 지회갑. 양판석이 예전에 꽂아넣은 초선 전남지사다. 전통적인 양판석 시다바리였으니 불려온 모양이고.

그 옆에는...

“어어, 이모, 여기 물 좀 더 갖다주이소.”

젠장. 간경수 검사다.

간검사. 고위공직자 때려잡는 특수통 네임드. 대검 중수부 출신 새끼검사일 때 재선의원 모가지를 치고, 그 후 강원도로 좌천되니 공화당 강원도지사를 보내버린 양반이다.

그 일로 양판석의 사위가 되어 중앙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요즘은 초능력 범죄자 잡아 조지면서 소일거리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대선 어딘가에 관여한 모양이다.

“......”

유재경은 그 후로도 한참동안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판사 출신인 양판석의 전통적인 아군인 사법부 측 인사들.

양판석의 동기인 대법원장과, 그가 데려온 대법관 하나. 아마 선관위원장 출신 법원행정처장인가 그럴 거다. 차기 대법원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을 통해 국내파-해외파 국정원을 통합시킨 국정원장도 있었고, 강원도 군부를 대표하는 유현종 사단장 또한 자리해 있었다.

물론, 유재경 본인, 그리고 김두식 사령관은 아예 대선후보급 거물이었고, 신수광이라는 거물급 정치신인 또한 자리해 있었으니,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수뇌부라 봐도 무방했다.

유재경이 내심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지금껏, 이런 자리는 4번 있었다.

첫째, 북한이 핵 터뜨렸을 때, 차재균이 소집한 밀실회의.

둘째, 중국이 원전 거론하며 깽판쳤을 때, 원옥분이 소집한 밀실회의.

셋째, 서울 게이트 폭주했을 때, 충무시설 지하벙커 연결망을 이용한 비상대응센터.

그리고 지금이 4번째다.

이런 비밀스런 자리야말로 권력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증거였다.

그 예시로, 이 4번의 회의에 모두 참석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그 3명이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다.

첫번째가 자신이고, 두번째가 여기 상석에 앉은 양판석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 턱.

소리가 들렸다.

- 턱.

- 턱.

지팡이 짚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웅성대던 방 안이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

지팡이 짚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윽고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양판석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만족스레 의자에 등을 누였고, 양판석의 오른팔 역할을 뺏긴 전남지사는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으며, 신수광이라는 양반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기까지 했다.

침묵이 부끄러웠는지, 나이 지긋한 전남지사가 애써 웃으며 말문을 텄다.

"...하하! 여튼 이번 선거는 참 치열했습니다. 용호상박이라 하던가요?"

유재경은 피식 웃었다.

혹자는 이번 선거가 국민당 154석, 국방당 146석의 박빙의 승부였다고 평할 것이다.

그러나, 유재경의 생각은 달랐다.

절대로.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당 154석에 국방당 146석?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총선 결과는 그렇게 간단하게 파악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흐음."

유재경은 머리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선, 국방당.

친 양판석 민주당계 호남 지역구 63인.

친 원옥분 공화당계 영남 지역구 46인.

수도권 상실지역구 비례대표 국방당 37인.

그리고 국민당.

친 청중엽 제주도계 비례포함 34인

친 신수광 수도권계 비례포함 7인

친 한승문 동대문계 지역구 헌터 15인

친 한승문 압구정계 지역구 헌터 15인

친 한승문 전국 지역구 13인

범 한승문 수도권 상실지역구 비례대표 70인

결과는 뻔하다.

- 턱 !

지팡이 짚는 소리가 멈추고, 한식당 격자문 창호지 너머로 한 사내의 실루엣이 멈추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아, 다들 모여계셨습니까?”

국회 내 한승문 직계 추종세력 약 50석.

국민당 내 한승문파 113석.

당권 장악.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이리로 오게.”

범 한승문 우호세력.

국민당, 양판석계 포함.

217석.

개헌선 확보.

“아아! 한 장관님! 오랜만입니다!”

“아, 유재경 장관님?”

“한 장관... 어째 입에 착 달라붙습니다?”

“아직 임명장도 못 받았는데요. 뭘... 그간 잘 지내셨지요?”

“하하! 내각에 큰 인물 하나 들어오시니까, 제가 요즘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째서 이번 총선에 용호상박이란 말을 갖다 붙이겠는가. 유재경은 결단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하하..."

상석에 있는 양판석의 바로 왼편에 앉아있던 유재경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건너편에 앉아있는 승리자에게 두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P 16

초상관리부 장관, 한승문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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