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 정치판 속 엑스트라 (7)
“오빠 우리 못 믿어요?”
“뭐?”
“아니 상황이 그렇잖아. 작전은 있는데, 안 알려주냐고 왜.”
“커엌...!”
양일호가 김밥을 먹다가 목이 맥혀 화들짝 일어나 정수기로 도망쳤다. 이호정은 양일호가 내뱉은 밥풀을 휴지로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저 오빠 믿어요. 이번 상황 빠져나갈 방법도 분명 있겠죠.”
“응.”
“근데 그걸 말씀을 안해주니까 저는 살짝 섭섭한 거죠.”
“으음......”
이호정의 말이 계속될수록 양일호의 얼굴이 하얘졌다.
“신중한 거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도 섭섭한 건 섭섭한 거 아니겠어요?”
“그치.”
“총선은 솔직히 희망 있어요. 오빠가 데려온 헌터들만 밀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 문제는 대선이에요. 우리 당에 대선주자가 없다니까요? 원옥분이 대통령되면 우리 모가지 날아가는 게 기정사실인데, 참, 심적으로 버티기 힘들지 않겠어요? 우리들 멘탈이라도 좀 관리를 해 달라 이 말이죠.”
“으음.”
“어차피 우리는 오빠한테 목숨 맡긴 사람들인데, 좀 알려주면 돕기라도 하지. 단두대에 목만 얹어놓고 있으니까 불안하다 이거에요.”
“......흐음.”
* * *
한승문의 ‘흐음’을 끝으로 사무실은 침묵에 감싸였다.
이호정은 평소와 다름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율무차를 홀짝였고, 한승문은 오묘한 미소로 침묵을 지켰으며, 양일호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식도에 냉수를 쏟아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양일호의 동공이 리히터 8 즈음에 다다랐을 무렵,
“일단 네가 어떤 지점에서 불안이 생겼는지는 짐작이 된다.”
손으로 김밥을 두 개 정도 집어먹은 한승문이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내가 굳이 원옥분 안 물어뜯었으면 깔끔하게 헌터들 데리고 총선만 이기는건데 말이야. 괜히 충청방어선에서 원옥분 잡겠다고 니들 데려다 선거법 위반으로 모가지 들이민 게 불만이라는 거. 맞지?”
이호정이 속내를 들켰다.
“......네. 실익이 거의 없는 도박이었어요. 그것도 원옥분한테 목숨을 내어준.”
“모든 병신짓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알 거고.”
“그걸 말 안 해주시니까 섭섭한 거죠.”
한승문은 이호정의 말을 이해했다.
승부사는 선거에 지고있을 때보다, 손발이 묶였을 때 더 불안한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무례한 질문이었다면 죄송하다. 그래도 당신 밑에서 구른 게 있는데, 이렇게 우리를 신뢰 못하면 섭섭하다.]
라는 이야기 따위, 그녀는 덧붙이지 않았다.
이 질문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호정이 보기에.
그들은 양당제 시스템의 정치공학적으로 완벽하게-
엿 되기 직전이었다.
“지금 우리 아주 위험한 상황이에요.”
그녀는 지금이 왜 위험한 상황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네거티브 때문에 국민 전체가 중도층으로 돌아섰어요. 그리고 상황 주도권도 저쪽으로 돌아갔어. 여기서 원옥분이 프레임 잘 잡으면 우리는 끝장이라니까요?”
“......”
“양당제의 맹점이 이거잖아요. 저쪽이 뭘 내세우면 우리는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야 해요.”
만약, 여당이 뭘 내세웠고, 야당이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여야가 협치를 한다 치자. 그래서 결국 일이 잘 풀렸다.
그런데 투표지에 찍어도 되는 도장은 하나뿐이다.
그러면, 일을 추진시킨 여당을 뽑겠는가? 아니면 일을 도와준 야당을 뽑겠는가?
게다가, 임기 중에 터진 공과功過를 모두 책임지는 게 우리나라 정치판 국룰이었다. 여야가 협력해서 무언가를 성공시켜봐야 여당만 득을 보는 구조라는 거다.
그게 양당제다.
그래서 양당이 맨날 싸우는 거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정책이라도, 절대로 협치는 일어날 수가 없다. 야당이 여당 도와주는 순간 게임이 끝난 거다.
정치판 병신짓의 대부분이 이 포인트에서 발생한다. 상대방 의견에 무조건 반대해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여 반대하는 거다. 절대로 정치인이 병신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이 말인 즉슨,
“......원옥분이 제대로 된 정책 하나만 빼들면, 우리 죄다 병신되는 거라고요.”
“너 양판석 의원님이랑 뭐 있냐?"
“네?”
"어떻게 알았어? 대체?"
한승문이 담담하게 츄파춥스를 하나 까서 물었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빙글빙글 손잡이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분명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있어.”
“네.”
“근데 나도 그 방법이 뭔지 몰라서 니들한테 말을 못해줬던 거야.”
“네?”
“방법은 있는데 나도 그게 뭔지 모른다고.”
"네??"
"그냥 짐작만 조금 하면서......"
양판석만 존나 믿은거지-
라는 말은 생략했다.
한승문은 반쯤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도 살짝 불안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 원옥분이 와꾸 잘만 잡으면 우리 병신되는 거지. 근데, 원옥분이 프레임 잘못 잡으면, 우리가 영웅되는 거 아니냐?”
“네?”
“내가 보기에는, 그래서 지금 상황을 양비론으로 몰고갔던 거야. 이제는 네거티브가 안 먹히는 상황이거든? 결국 정책으로 쇼부를 쳐야 하는데, 원옥분이 실수하는 순간 게임 끝나는 거라고.”
"......원옥분이 여기서 실수한다는 보장이 있어요?"
"어."
"그 실수가 뭔데요?"
“서울 탈환.”
*
“택시!”
부랑자와 피난민들로 가득 찬 어수산한 부산 시내. 한 사내가 택시를 잡아탔다.
사내는 택시에 올랐으나,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택시는 출발했다.
그리고, 인적드문 도시의 외곽도로에 들어서자, 사내가 비로소 운전수에게 말했다.
“원옥분 대행이 오늘 저녁에 서울 탈환을 공약할 겁니다.”
운전석의 양판석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활짝 웃었다.
“오오, 잘했네. 잘했어. 석 수석. 아주 수고 많았어.”
“이 나이 먹고 뿌락치 노릇 하려니 살 떨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그래. 고생했어.”
“고생이라뇨.”
석재봉 정무수석이 양판석에게 방긋 웃어보였다.
정무수석비서관政務首席秘書官.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
대통령의 정치적 참모다. 청와대와 국회를 이어주는 역할인 탓에, 보통 재선의원 급이 맡으며, 석재봉 정무수석 또한 전직 공화당 재선의원이었다.
정무政務를 담당하는 만큼 거의 모든 국정에 관여하는 중직이다. 매일 대통령과 독대하며 국민여론을 보고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을 보좌한다.
석 수석은 당연히 원옥분이 신뢰하는 측근이었으며, 동시에 양판석이 심어넣은 스파이 중 하나였다. 그것도 차재균이 죽기 이전 시점에 말이다.
이게 양판석이 사람을 쓰는 방식이었다. 용도는 없어도 무기는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나중에 용도가 생긴다.
그리고 석수석은 원옥분의 심장을 꿰뚫은 비수였다.
“안팎에서 도와주신 덕택에 한층 수월했습니다.”
“다 자네 능력이지 뭐.”
“아닙니다. 하도 네거티브가 성행하는 바람에, 원옥분 대행도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시더군요.”
"원래 선거철에는 다들 살짝 맛이 가는 거야."
네거티브가 성행한 이유는 양판석의 공작질 덕분이라는 걸 석수석은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한승문 원내대표, 유재경 장관, 청중엽 지사, 김두식 장군같은 거물들을 움직였을까.
그러나 청와대 내부의 작전세력이었던 석수석은 자세한 연막을 알지 못했다. 오직 양판석의 지시만이 유일한 연결점이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승문만이 양판석의 지시를 직접적으로 전달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으나, 다들 대충 서로가 양판석으로 연결되었다고만 암암리에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양판석은 결국 성공했다.
그러니, 석수석은 양판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당연히. 두려움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 여론이 너무 악화되는 상황이 마련되는지라,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강수를 둬야 한다는 설득이 점차 먹히기 시작하더군요.”
“그래. 서울 탈환. 참 그럴듯한 명분 아닌가? 국민들 자존심도 세워주고! 국방대통령 이미지도 다시 가져오고!”
“하하.......”
“수고 많았네 석수석. 아니, 이제는 석실장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그리고, 양판석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데 능통한 인물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각하?”
택시에 웃음꽃이 피었다.
*
안녕하십니까. 신수광이라고 합니다.
어어, 으음. 헤헤...
아마도 제가 누군지 다들 모르실 겁니다.
저는 국민당 대선후보 경선의, 기호 3번 후보입니다. 지금은 사퇴하신 청중엽 지사님이 기호 1번이었고, 그, 강원도 부지사님이 2번인가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옛날에는요, 시흥에서 마트하는 평범한 40대였고요.
요즘에는요. 수도권 난민캠프에서 대표 했습니다.
어, 음. 그리고요.
제가,
맨날.
적자나는 마트 붙들고 있느라,
어디,
학원 하나 못 보내줬는데도,
장하게,
아주 장하게 커서,
이화여대 의대 붙은 신입생,
신수정 학생의 아버지고요.
그리고.
그리고요.
지금.
충청 방어선에서.
우리나라의 튼튼한 국방을 지키고 있는,
신수철 상병의 아버지이기도 합니...!
합니다.
큼...!
아,
죄송합니다.
눈물이 막 나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아,
그...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네.
그...
어제 저녁에요.
원옥분 대행님께서,
서울을 탈환하자고.
그리 말씀을 하셨지요?
저,
원옥분 대행님.
사실 많이 존경합니다.
국민당 후보긴 한데,
허허...
존경해요.
네.
왜냐면, 제가.
수도권 난민대표 하면서.
못된 지자체장들이랑 많이 싸웠습니다.
피난민들 못 받아준다고.
막.
시설도 안 지어주고.
길거리에서 자게 하고.
근데 원옥분 대행님이 대피소 지어주셨어요.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근데요.
아직 좀, 불편합니다.
결국 집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우리.
언제 내쫓길지 모르고.
은근히 거지취급이나 받고.
사실 우리 다 알거지 됐잖아요.
그죠?
서울로 돌아가고 싶죠.
당연히.
그리고요.
우리 딸이 괴수한테 죽었어요.
제가 보는 앞에서. 잘...... 근잘근. 씹혔어요.
저.
그래서.
서울 쳐들어가서.
탱크로 막. 괴수 새끼들 골통을 막 밀어버리고. 예? 산채로 불로 태워버리고. 이, 씨발것들을다가 한반도에서 씨를 말려버리고 싶어요.
근데요.
네.
근데요!
근데요! 이, 씨발...!
우리 수정이 복수라도 해주고 싶은데요!
그러다 우리 아들까지 죽어버릴 것 같아요.
수정이 복수 하자고,
이제 하나 남은 수철이까지 죽어버리면,
저도 죽어버릴 것 같단 말입니다.
......서울에요. 가장 커다란 게이트는 닫혔는데요. 아직 게이트가 참 많대요. 그때 나온 괴수들도 막, 지하철에 엄청 숨어있고 그래서. 참 위험하답니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우리가,
충청 방어선 버리고 위에 처들어가면요.
예비군은 다시 소집될 거고.
누군가는 괴수 한가운데로 걸어가야 하고.
결국, 죽어야 하잖아요?
......저는요.
만약에,
딸내미 복수하고,
우리 집 되찾는 대신에,
하나 남은 아들이 죽어야 한다면.
그냥 평생 집없는 알거지로 살고 싶어요.
좀.
무시당해도요? 네?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먹고 살아도요?
군대에 있는 우리 아들 죽여서 밥 처먹게 되면, 평생 토만 하다가 걍 굶어서 뒈지렵니다.
여러분.
제가, 제가 부탁 하나만 드리, 드리겠습니다.
진짜, 참, 염치없는 말인 건 압니다.
......우리요.
서울 탈환 안하면 안됩-
ㅡ뚝.
나는 핸드폰으로 보던 영상을 일시정지 시켰다.
영상 아래에는 조회수 22,153,923 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뒤로가기 버튼을 눌렀더니 네이버 메인 페이지가 나왔다. 온갖 기사에 이 양반 얼굴이 도배되고 있다. 리모콘을 집어들어 TV를 틀어도 이 신수광이라는 양반의 얼굴이 튀어나오고 있다.
“......”
나는,
수많은 정치신인들의 내막을 안다.
정치판은,
절대로 신인이 튀어나오는 걸 용납하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다리를 걷어찼으면 몰라도 말이다.
기성 정치권이란 그런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 사회의 괴물같은 권력자들. 그리고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점.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혜성같은 정치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나조차도, 양판석이 사위를 움직여 상대방 후보를 털었기 때문에 금뱃지를 달았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쑤셔넣은 내가 당선되면 그건 100프로 공관위원장의 공적이 되는 것이었고, 쓸만한 계보원 하나 늘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정치신인은 기성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맞기에 정치판에 기어 올라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당 신수광 대선경선 후보의 인터넷 연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역대 최단기간 조회수 기록을 석권할 정도인데요, 전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신수광 후보가 국민당의 새로운 대선주자로 떠오르는 가운데, 서울 탈환이라는 난제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습......]
[여러분! 무엇을 위한 싸움입니까! 예비군 재소집으로 끌려가서 서울에서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애초에 정권 잡겠다고 예비군 풀어줬던 게 누굽...]
정치판에 주연은 없다.
감독, 혹은 배우로 나뉠 뿐이다.
그러니 신수광 저 양반도,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혜성같은 정치신인이 아니라,
그저,
철저하게 ‘누군가’의 손으로 기획된,
EP 15
정치판 속 엑스트라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