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 아사리판은 원래 또라이가 먹는다니까 (4)
“텔 미. 누나가 다 들어준다. 히힣.”
“......징그럽다니까.”
“취해서 그래 새끼야!”
어느 포인트가 웃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도연은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과 함께 속내를 털어놓았다.
딱 봐도 다음날 필름 끊길 것 같아 보였으니까.
“그...... 맨 처음에 당선됐을 때 말이야. 나는 정치가 참 재미있을 줄 알았어?”
“어엉.”
“아니더라고.”
* * *
20대 국회의원. 탄탄한 포지션, 그리고 차기 당대표와의 연줄까지.
나는 내가 운이 좋은 줄 알았다. 의원선서 외는데 천장에서 괴수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상 좋을 줄 알았지. 어디서 답답하게 호구맞을 일 없고. 항상 갑으로 다니고. 인생 고속도로 뚫린 것처럼 시원하게 살 줄 알았지.”
돌아다니면서 지긋한 공무원들한테 깍듯하게 인사도 받고. 아슬아슬하게 줄도 타면서 성공도 하고. 선거철에는 고생 좀 하면서 보좌관들 부려먹고.
물론 피곤하고 머리 아픈 일은 있겠지만, 그걸 감수할 정도로 권력은 참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민주사회에서 행복한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바꾸려는 사람, 혹은, 권력에 목마른 사람만 정계에 뛰어든다.
나는 명백한 후자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후자다.
“...게이트 열리고서도, 이게 기회라고만 생각했지. 딱히 권력이 싫지는 않았어.”
사회 상류층에 알박기 한 다음. 이리저리 갑질이나 하면서, 국정운영에 손가락도 얹고, 지지율도 올리고.
어디 동창회나 나가서 옛날 애인 앞에서 으쓱거리고, 선거철에만 국밥 조금 먹으면서 이미지 관리하고. 12명밖에 안 남은 귀중한 국회의원 중, 가장 젊고 인기 많은 유망주로 탄탄하게 꽃길만 걸으면서.
“......나는 내가 그렇게 살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런 새끼가 공화당 민주당에 들이받고 내란죄로 법정까지 끌려갔냐?”
순간적으로 무언가 북받쳤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냥, 속편하게 살면 재미있고 좋은데.
누구 죽든 말든 신경끄고 부산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수많은 기득권들 사이에 숨어서 갑질이나 하면서. 그냥. 그렇게.
그렇게 살았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는데-
“차재균이 그 미친 새끼 때문에...!”
선善 없는 세상.
모든 게 뒤섞이고, 혼란에 빠져버려서,
선線을 그어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봐버린 이상,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괜히 사람한테 헛바람만 넣어가지고.”
엘릭서 먹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30대에 늙어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내 손에 여러번 피까지 묻혔다.
여도연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듬성듬성 흰머리가 난 신경질적인 30대의 모습일 것이었다.
“......그래서?”
대답은 곧장 튀어나왔다.
“정치가 싫다.”
아니. 이 표현은 적절하지 못했다.
“......권력이 싫다. 이젠.”
“......무섭냐?”
정곡이었다.
“그래서 정치 안할려고?”
대답을 피하고 습기에 차 삐걱대는 의족을 괜히 꺾고 있으니, 여도연이 툭 내뱉었다.
“호정 씨가 너 정치 때려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더라.”
“......누나한테까지 와서 그랬어?”
“그냥, 뭐, 스팸 선물세트 챙겨주면서 은근히 물어보던. 아이, 민폐 끼치는 애는 아니잖냐. 적당히. 응? 지도 걱정됐겠지 뭐.”
“......참. 나.”
그래. 걔네들도 내 옆에서 나 뒷바라지하다 이제 겨우 빛 보는데. 불쌍한 젊은 애들 데리고 설치다가 겨우 빛 보여줬는데. 내가 끝까지 데려가야지.
헌신짝처럼 쓰고 버리면 안 되니까. 내 어깨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이제 나도 철없이 굴지는 못하게 되었으니까.
짊어져야지.
생각을 정리하느라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술기운에 못할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가족에게 너무 지나친 말을 하는 건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동안 빗줄기는 여전히 지붕 끝자락에서 흘러내렸고, 여도연은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권력이 참, 좋고, 재미있고, 가벼울 줄 알았어.”
“응.”
“그냥, 참. 좋지. 그래.”
“어.”
“그게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지는 모르고, 잡으려고 지랄만 했다 이거야.”
“보통 다 그러지 않냐?”
“본인이 책임을 안 지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래도 되는, 그러기 쉬운 세상이었다. 대선자금 수백억은 말단이 떠안고 감방 살다 금방 사면되고, 성추문이나 인사비리도 연예인 게이트로 덮으면 되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그래서 참 편한 직업이다.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조금만 눈치가 빠르면, 사람이 머리가 좋으면,
그냥, 남 신경 안 쓰고, 자기만 챙기면서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직업이니까.
그러니 다들 하고 싶어했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그러다 결국 기어코 해냈다.
근데.
“지금은 책임도 모르는 새끼가 권력을 잡으면 나라가 망해.”
“그래서 니가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껏 지랄을 한 거지.”
“근데 이제와서 보니 다 좆같다?”
“그렇지.”
“의무가 너무 무겁다?”
“......어느 시점부터 나도 의무감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결론은 그러고 싶다는 거야? 그래야 한다는 거야?”
“안 그러고 싶은데 그래야만 한다는 거지.”
“야 이 씹새끼야.”
“뭐...?”
“이제와서 그러면 나는 뭔데?”
여도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술냄새가 유독 심했다.
“나는 내 꼴리는대로만 살다 인생 좆빻은 사람이야! 시발거. 알아? 몰라?”
“...알아.”
꿈만 좇다가 청춘 날려먹은 29세 고졸. 그게 그녀의 스펙이었다.
그녀가 내게 삿대질했다.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나는 쌈박질 한다고 지랄하다 인생 말아먹은 게 아니라. 내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거야.”
“......뭐?”
“내가 처세를 못해서. 내가 재능이 없어서. 내가, 내가 씨발 노력을 덜 해서 실패한 거라고!”
“......”
“그래서 난 후회 덜 한다.”
처음에는 이건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실제로도 반쯤은 그랬다. 여도연은 살면서 술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맥주 세 캔 처먹고서 몸도 못 갸누고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유감이지만 대충 흘려들으려고 했다.
“근데, 니는 아니잖냐. 승문아.”
그 말이 내 귀를 뚫었다.
“머리도 좋고. 그, 남들은 못하는 것들. 지금까지 다 해내놓고서, 이제와서 그러면 안 되지.”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 것 같지 않나?”
“남 마음에 불 질러놓고서 빼냐!”
“...뭐?”
봄비 내리는 밤에, 여도연이 내게 삿대질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사람 살리고 다니는데!”
“......!”
“신분당선에서...! 그, 괴물이랑 매연 득실거리는 시꺼먼 터널에서, 수천명을 데리고, 그, 그거. 그거 때문에 내가...!”
“......”
“애 데리고 있던 아줌마가, 나한테 살려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내가, 내가...!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 살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여도연이 또라이처럼 나를 향한 손가락을 방방 흔들었다.
“니 때문이야 새끼야! 사람 살리는 맛 보여준 게, 너라고! 너!”
그녀가 울먹이며 내게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씩 물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근데...! 이제와서 때려친다 그러면 어떡하냐...?”
“......어. 어어?”
“내가, 내가 도와주는 걸로는 부족하겠냐?”
“......”
“내가. 목표고 꿈이고 다 물거품이 되가지고! 28년 인생 진창에 꼴아 박고서 진짜...! 격투기 때려치고 자살하고 싶었는데...! 응!?”
나는,
얘가 꿈만 쫓다가 청춘 다 날려먹은 줄 알았는데.
“야!”
아니었다.
“니가 나한테 새로운 꿈을 줬잖아 이 새끼야!”
여도연은,
아직도 청춘을 날려먹는 중이었다.
그녀는 부릅뜬 눈으로 가슴을 퍽퍽 치며 나를 노려보았다. 거센 바람에 빗방울이 심하게 날려와서, 나는 그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 이이, 좆같은 세상 살려보겠다고. 지금까지 니가 나한테 보여준 게, 그거 아니었냐?
사람 살리고, 개새끼들 조지고, 괴수 몰아내서, 이 나라 살려보겠다고! 니가 지금까지 행동으로 보여줬던 게 그거 아니었냐고! 근데 이제와서 이러면 내가 뭐가 돼!”
“......”
“대답해 이 개새끼야!”
“어, 어어...”
이 또라이 새끼는 옷 젖는 것도 신경 안 쓰고서 비오는 거리에 뛰쳐나갔다. 시골 부둣가에 있는 고향집이고, 새벽인지라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아아아악! 씨발!”
그녀는 미친년처럼 소리치며 악을 썼다. 울분에 찬 발길질이 보행자용 바위말뚝을 박살내고, 아스팔트 위에는 깊은 발자국이 남았다.
그녀는 문득 출렁이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달려가 난간에 몸을 걸치길래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술 먹고 바다 들어가면 뒤져 미친년아!”
“닥쳐!”
아무리 뛰어난 각성자라도 폐에 물이 차면 죽는다.
특히, 비오는 날의 밤바다는, 바람 불어와 파도가 거친 날의 밤바다는, 그것도 좆같기로 유명한 통영 앞바다는. 사람 잡아먹는 아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난간 위에 올라간 또라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야! 씨발! 정치 할 꺼야 안 할꺼야!”
“하, 할게! 한다고!”
“이대로 죽는 수가 있어!”
“한다니까!”
“약속해 새끼야!”
“한다고 씨발!”
“어어, 씨이벌......”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방파제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다행히도 썰물 때라 망정이지 흙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모부!”
“어, 어어?”
“나와요! 빨리!”
“왜? 왜!”
“도연이 굴러 떨어졌어!”
버선발로 뛰쳐나온 이모부와 나는 죽을힘을 다해 여도연을 끌어올려 집으로 돌아왔고, 여도연은 이모에게 뺨을 열 다섯 대나 맞으며 혼났다.
그리고 이모는 손가락이 부러져 응급실에 갔다.
*
혼돈과 공포의 새벽이 지나고, 아침메뉴는 짭쪼름한 계란 후라이였다.
우리는 갈색 반상에 둘러앉아 젓가락으로 후라이를 들어 밥그릇에 올렸다.
다들 너무 지친 나머지 말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생각없이 오전 8시 뉴스를 틀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각성자용역조합의 핵심 조합원이자, 한승문 의원의 혈연 겸 최측근인 Y씨가, 오늘 오전 5시 경, 투신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푸우웁 - !
물을 마시던 이모부가 밥상에 분무기처럼 물을 뿜어냈다.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왼손으로 깨작깨작 불편하게 젓가락질을 하던 이모가, 들고있던 나무젓가락을 여도연에게 힘껏 던졌다.
- 찰싹!
“아얏...!”
젓가락은 눈치보며 밥상머리에서 무릎 꿇고 있던 여도연의 정수리에 맞고 데구르르 바닥에 굴러갔다.
그리고 나는 7년만에 이모의 사투리를 들었다.
“가시나 니 한번만 더 술 처묵으면 호적에서 파버린다.”
“......”
“알았어!! 몰랐어!!”
“아, 알았어요...!”
밥상에는 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덕분에 뉴스가 잘 들렸다.
[경찰의 CCTV 확인 결과, Y씨는 한승문 원내대표와의 언쟁 중 인근 도로에서 기물파손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서울 사태 당시, 7인의 열사 중 한 명으로-]
이모가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했다.
“테레비 꺼!”
“거, 좀 봅시다. 내 이야긴데.”
“저게 집안 망신이지!”
다행히도 설진운은 아침 일찍 집으로 돌려보냈기에, 우리 가족의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볼 거 다 본 후이기는 했다. 나는 계란후라이와 밥을 김에 싸서 냠냠 말아먹으며 리모콘을 사수했다.
그리고.
나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속보입니다! 설진운 헌터가 부산 시내에서 염산테러를 당했습니다. 범인은 50대 여성 박모씨이며, 현장에서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