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82화 (82/296)

EP 14 - 아사리판은 원래 또라이가 먹는다니까 (1)

대선 D - 26

원옥분. 대통령 권한대행. 53%

한승문. 국민당 원내대표. 13%

김두식. 충청방어선 총사령관. 9%

청중엽. 제주도지사. 7%

유재경.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재부총리. 3%

* * *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소리도 들려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내지르는 비명소리는 실제로 들으니 등골이 괜히 오싹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저...! 저...! 씨뻘, 저거 아사리판 났네...!“

이곳, 통영항은 실로 아사리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아사리판이란 무엇인가. 각종 문법적 어원과 불교적 용례에서 추정되는 고루한 설명이 있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아사리판의 유의어에는 개판과 난장판, 그리고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있다.

“끼에에엑!”

방파제에 기어올라온 은갈치가 활어시장을 통째로 뭉개는 모습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 은갈치한테 팔다리 다섯 쌍이 촉수로 달려있으니 금상첨화다.

저, 저, 저, 쒸이뻘 저거 아사리판났네, 라는 말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대사를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녀석이 치니까 문제지.

“야, 니 그 말 누구한테 배웠어!”

“지금 괴수가 중요하지 그게 중요햐!?”

노가다판 경력 반년짜리 꼬맹이가 앙칼지게 쏘아붙이자, 나는 감지윤을 껴안은 상태로 혀를 쯧쯧 찼다.

확실히, 시덥잖은 이야기나 지껄일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눈을 굴려 지형을 살폈다. 하늘 높이 둥둥 떠 있었기에 주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통영항, 경상남도 최남단 통영시에 있는 항구다. 남해안이 그렇듯 워낙 섬이 많아서 해안선이 복잡했고, 덕분에 조류도 참 세서, 다들 바다가 참 좆같다고 그랬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여기 앞바다에서 돌아가셨나 그러셨을 거다.

여기는 내 고향이었고, 덤으로 내 지역구였으니까.

잘 아는 편이다.

이 바다가 오죽 좆같았냐면 이순신 장군께서 역물살을 이용해 거북선 학인진으로 왜군을 쌈싸먹은 한산도대첩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장군님께서 복병을 숨겨두셨던 그 한산도閑山島가 저어 멀리 보였다.

아무튼. 이쪽 바다는 참 복잡하고, 물살도 드센 곳이었다.

“끼에에에에엨!”

그러니까 저 괴수놈이 해군이랑, 해경이랑, 기뢰까지 뚫고 통영항까지 들어왔겠지. 워낙 섬이 많아서 해군으로는 다 커버가 안 되는 모양이다. 덕분에 은갈치놈은 방파제 쪽으로 기어올라와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어민들의 삶의 터전을 힘껏 으깨는 중이었다.

괴수가 횟집을 하나 뭉갰다.

“아, 저기 맛있었는데...”

“아는 데야?”

“저어기 산 넘어가면 아저씨 집이고, 저어기 초등학교가 내 모교란다.”

“나 갈래!"

"저거부터 잡고."

우리는 여유롭게 지형을 살피며 각을 쟀다. 해경의 활약으로 진즉 주민소개가 끝난 덕분이었다.

여기 만 안쪽으로 들어온 군함도 몇 척 보이고, 이리저리 휘말리는 배들도 조금 보인다. 최대한 건물 덜 부수고, 뒤처리도 깔끔하게 되도록 조져야 했다.  지난번에 별 생각없이 괴수 찢었다가 시체 치우는 공무원들이 울면서 멱살을 잡더라. 우리는 당구공을 노리는 플레이어처럼 조심스레 각을 잡았다.

나는 감지윤에게 말했다.

“일단 아저씨가 저쪽 섬으로 들테니까, 지윤이 네가 촉수 돌돌 말아서-”

“죽어라아아앗!”

내게 안긴 감지윤이 팔다리를 바둥거리자 괴수 모가지가 180도 비틀렸다.

물론 죽지는 않아서 근처 바위섬에 올려놓고 한참을 으깼다.

척추동물이라는 건 지구에서나 통용되는 상식이었으니 말이다.

*

총선과 대선까지 25일이 남은 지금, 국방당은 원옥분을 앞세워 여유롭게 뒷짐을 진 상황이었다. 청중엽이 뒤통수에 칼을 박기 전까지는 말이다.

‘차재균 부역자’ 논란이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다. 원옥분이 차재균 군사정권이 세운 허수아비였다는 논지의 네거티브다.

원옥분의 약점을 찌르다 못해 후벼파는 공격이었다. 원옥분은 의원 출신 장관이 관례를 깨고 의원직을 포기한 다음 우겨넣기로 계승에 성공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원옥분과 차재균 간의 밀약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 밀약을 중재한 건 양판석이었다.

아무튼. 나라가 뒤집힌 마당이다.

뒤쪽에서도 파장은 컸다. 당장 원옥분의 오른팔인 유재경 장관이 천금순이랑 머리끄댕이 잡고 실랑이하던 와중에, 금융위를 움직여서 청중엽 라인 전경련 인사들에게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청중엽은 원옥분에게 억압받던 언론을 해방시켜 온갖 자료들을 풀며 사방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언론들도 쌓인 게 많았는지 원옥분을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청중엽은 국민당의 대선주자가 아니라, 국민당의 대선주자로 인정받기 위해 대선주자 경선을 뛰고 있는 신분이었고, 원옥분은 표면상 무소속이었으나, 각각 국방당 국민당의 대선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건 확실했다.

즉, 국민당 대선후보가 국방당 대선후보에게 선빵을 날렸다. 그 여파로 원옥분이 쥐고 있던 언론이라는 카드가 적으로 돌아섰고, 본격적인 양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시작되었다.

갑작스런 기습, 그리고 전면전의 시작.

이게 대선의 판도였다.

그리고 총선을 대선이랑 같이하는만큼, 총선 또한 대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즉, 그들 또한 순식간에 ‘차재균 부역자’ 논란에 휘말렸다. 모두의 이해관계가 이 커다란 논란 속에 휩싸였고, 모든 정치인들이 잠옷 차림으로 단검 하나 들고 콜로세움으로 들어갔다.

정치판 한 가운데에 커다란 토네이도가 생긴 격이다. 원하든 원치않든 휘말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만 논란에 대해 말하자면 솔직히, 그 시절 경험자로서 보는데,

반쯤 팩트다.

다만, 애초 차재균이라는 인물 자체가 본격적으로 권력지향형 인물이 아니었고, 그때는 국회랑 군대랑 또이또이해서 으쌰으쌰하다보니 다들 한통속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같이 합심해서 국뽕도 뽐뿌질하고, 북한에서 백두산에 핵터뜨려서 난리도 치고, 그러다가 생체실험 스캔들 터져서 난리도 아니었던 건데......

아무튼.

누누이 생각하는 거지만 정치에서 뭐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뭐가 진짜라고 여겨지느냐다. 그게 민주정이다.

그래서였다. 모든 정치가들이 각자의 주장을 소리치며 이게 진짜라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 진짜라니까!”

“싫다고오!”

심술궂게 웃으며 감지윤에게 산낙지를 들이밀고 있었다.

“마! 무바라! 디진다 아이가!”

"차라리 죽여!"

나는 부러 입을 크게 우물거리며 탄성을 냈다.

“으음...!”

“애한테 이러니까 재밌냐!”

우리는 괴수사냥에 성공한 김에 회식으로 횟집에 들린 참이었다. 물론 내가 초등학생 데리고 산낙지 집을 온 건 아니고, 스끼다시로 우연찮게 나와서 장난 조금 쳐본 거다.

감지윤은 회는 잘 먹는지 마구로를 하나 집어 초장에 찍었다. 그리고 삐진 표정으로 우물우물 회를 집어먹었다.

“......에휴.”

“왜?”

“나 체할 것 같아......”

감지윤이 횟집 바깥을 가리키며 칭얼거렸다. 창문에는 사람들이 좀비들처럼 달라붙어 카메라로 우리를 찍어대고 있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지윤이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가라 그러면 안 돼...?”

“너 좋아서 온 사람들이잖냐.”

“아저씨 보러 온 사람들이잖아!”

나는 힐끔 창문을 엿보았다. 피켓에 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나는 능청스레 웃으며 광어를 간장에 퐁당 찍었다.

“아 이거 뱃살이네.”

“......아저씨.”

지윤이가 가게 구석 TV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긴급편성된 100분 토론에서 얼굴만 봐도 아는 정계인사들이 썰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저씨는 저런 데 안 나가?”

“으음?”

“요즘 정치하는 아저씨들 엄청 바쁘던데.”

지윤이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는 나랑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지윤아.”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저씨는 이게 숨어다니는 거야.”

*

청중엽이 처음에 터뜨린 의혹은 그저 의혹에 불과했다. 그저 잠재적 대선주자(아직 경선중이다)의 공식발표라 무게가 실린 것 뿐이었지.

문제는 원옥분 측 대변인이 1차 반박을 내놓은 이후였다.

이빨만 까는 줄 알았는데 증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 지지율 얼마야.”

“45% 정도요.”

“확실해?”

“방송3사 평균냈습니다. 45.3%요.”

이호정이 똑부러진 모습으로 노란색 노트를 넘기며 보고를 계속했다.

“청중엽 지사 지지율 20%로 뛰었습니다.”

“원옥분 안티가 붙었네. 그리 영양가 있는 수치는 아니겠어.”

“아뇨.”

이호정이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듣는 사람에 따라 날카롭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익숙해서 불편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원 대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이 죽은 사람들이에요. 헤이터들 영양가가 없는 건 맞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수하다고 봐요.”

“원한이 깊다?”

이호정은 칼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주장 확실해서 편한 녀석이다. 나는 부담없이 녀석에게 물었다.

“청중엽이 이걸로 원옥분을 잡겠냐?”

“못 잡죠. 대신 커다란 변수는 될 거에요.”

“그건 다 하는 소리고.”

“제 생각에 청중엽 밑천 털리려면 한참 남았어요.”

이호정은 가볍게 머리를 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이 씨익 미소지었다. 보기만해도 꿍꿍이가 새까매보이는 웃음이었다. 어이구. 슬슬 요놈들 본 성격이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다들 청중엽 지사가 원 대행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성질이 급해서 먼저 때렸다고 그러는데, 사실 이게 위험부담이 아주 큰일이잖아요. 이거 실패해서 원 대행이 당선되면 어쩌려고요. 그 날로 끝장인데.”

“그렇지.”

“그러면 원옥분이 당선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 하에 일을 추진했다는 거니까, 싸울 준비가 끝난 다음에 칼을 뽑은 거잖아요.”

이호정이 단정지었다.

“청중엽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

"아니면 이게 다 연막이거나.”

내 생각과 일치했다. 그래서 나도 섣불리 나대지 않고 몸을 사리고 있는 거였고 말이다.

“니네 출마 준비는 어떻게 되가냐?”

“조용히 하고 있습니다. 일호도요.”

이런 시국에는 뉴스에 이름만 올라가도 지지율이 떨어진다. 이게 다 내 덩치가 커져서 그렇다. 이 덩치 작은 녀석들은 나 때문에 선거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녀석들을 다독였다.

“그래. 고맙다. 따로 들어온 연락은 없고?”

“정무가 아니라 사무 관련이라 제 선에서 처리했습니다.”

“저녁에 대충 파일로 정리해서 보내고. 당분간 나는 지윤이랑 괴수 잡고 다닌다. 기자들은 네 선에서 접촉 끊고. 협회 쪽은 뭐 없어?”

“설진운 길드장이 부협회장 자리를 거절했다고 하네요.”

“......왜?”

“알아보는 중입니다.”

“별 일 없어야 하는데......”

“너무 숨어계신 거 아니에요?”

“너 같으면 이 상황에 나대겠냐?”

“아뇨.”

이호정은 칼같이 대답했고, 나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또각또각 걸어나간 후, 나는 사무실 소파에 반쯤 누워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은거생활중이다. 물론 나가서 매일 지윤이 옆에서 폼나게 괴수나 잡고 다니지만,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은거 중이었다.

왜냐. 네거티브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이겨도 이미지가 깎이고, 졌다가 잘못하면 정계은퇴다. 네거티브 전쟁의 결론은 결국 상처많은 캐삭빵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다른 정치적 문제들이 보통 원내대표 간 국회의사당 근처 중국집 양자회담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성향을 띈다면, 네거티브 전쟁은 반드시 피를 본다. 그만큼 사람들의 독기와 악바리가 차오른다.

그리고 그건 유권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이너스 에너지는 부정한 이미지로 덧씌워지고, 결국 승자도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입는다.

즉, 이 돌풍에 휘말린 사람 모두가 서서히 데미지를 받는 중이었다. 전쟁의 패자는 돌풍 속에서 기력이 다한 사람이지만, 돌풍의 승자는 돌풍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돌풍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뻔했다.

차재균 군정 당시, 모종의 중재로 의원들을 억류에서 풀어주고, 원옥분과 차재균을 이어줬던 중재자. 본인 표현을 말하자면 박쥐.

......양판석.

*

대선 D - 25

원옥분. 대통령 권한대행. 45%

청중엽. 제주도지사. 20%

한승문. 국민당 원내대표. 18%

김두식. 충청방어선 총사령관. 5%

유재경.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재부총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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