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77화 (77/296)

EP 13 - 국제적 헌터 시점 (4)

“연방이든, 연맹이든, 연합이든, 어떤 형태이든지 상관없소. 다만, 동아시아 전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게 중국의 확고한 입장이오. 중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해산시킬 것이며, 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이란 나라를 배제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할 예정이오.”

칼이 뽑혔다.

“사상적, 경제적, 외교적 전면전을 계획한다 해석하셔도 무방하오. 물론 일이 심각하게 흘러간다면 실제 전면전이 될 수도 있겠지.”

중국의 2인자가 가벼이 웃으며 전쟁에 대해 논했다.

“마지막 말은 반쯤 농담이니 크게 괘념치 마시오.”

반쯤 진담이니까 작게는 괘념하고 있으라는 소리였다.

* * *

나는 한참동안 침묵한 끝에 대답했다.

“......으음. 그렇습니까?”

“그렇소. 조만간 국내 간첩들을 전원 체포할 예정이고, 동부전구 최정예 병력이 댜오위다오를 둘러쌀 것이오.”

“그렇군요.”

“필요하다면 오키나와의 주일미군 기지 앞까지 갈 생각도 있소.”

거, 화끈한 무력시위군.

더 입을 열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나올 모든 말들 따위는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저 차분히 찻잔을 기울이며 리충빈 상장의 눈을 바라본다. 그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한 대표, 만약 이 사실이 이 밀실 밖으로 유출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지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소?”

“정보기관에서는 다음 분기에 사람 좀 뽑아야 하겠습니다.”

“허면, 그 커다란 죽음을 막기 위한 하나의 죽음이 큰 대가라고 생각하시오?”

그는 아직도 통역사 하나의 죽음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생명을 경시하는 자가 아니오. 요즘 같은 시대이기에 더더욱 그렇소.”

“......”

“물론 한 대표께서도 아실 것이오.”

이제는 이 양반 말이 어느정도 이해가 돼서 살짝 슬펐다. 내가 짐작했던 사유가 곧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목숨의 가치를 더 잘 알고, 또, 아끼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오. 군인으로서든, 정치가로서든.

“......”

“우리의 업무는 결국 누구를 희생시킬지 결정하는 일이니까. 한 대표께서도 능히 짐작하시리라 믿소.”

“다소 이해합니다.”

“우리는 모든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결국 어떤 삶을 위해 다른 삶을 희생시켜야 하오. 그게 결국 정치와 전략의 본질이지.”

부자를 위해 빈자를 착취하고, 빈자를 위해 부자에게 갈취하고. 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히기 위해, 더 적은 피해가 입혀질 부대를 진격시키고.

실로 그러했다. 정치와 전략의 본질은 어떠한 삶을 위해 다른 삶을 희생시키는 것이었으니.

리충빈은 빠른 어조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으나, 성조와 단어 하나하나가 고막을 뚫고 뇌리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다 못해 공감하고 있었다.

“허면 이 존중의 맹점에서 위정자들의 책무가 무엇이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것이고, 손실과 이득을 조정해서 총량을 증대시키는 것 아니오?”

“공리주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까?”

“삶의 무게가 같다면, 그 가치를 예단할 수 있는 건 그 수효요. 위정자의 공리주의가 부도덕한 사회를 함의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렇기에 그를 감당해야 하는 게 응당 우리의 책무요.”

리충빈은 잠시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동안 나는 이 공리주의자일 수도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미안하지만 정치가는 사람을 믿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이해하고, 절실히 공감하나,

설득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흔들리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태풍을 견뎌냈다.

실리實利와 공리公利.

굳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100만 명 이상을 죽인 또라이가 만드는 세상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곳이 천국이 아님은 분명했으니까.

그러니,

“......”

나 또한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굳이 입을 놀려 알량한 철학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다.

또, 뜬구름 잡는 소리에 기운빼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리충빈은 내게 이념에 대해 말했지만 정책에 대해 논하지는 않았고. 이 자리는 정책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으며. 나는 아직 그의 제안을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서론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왜 접니까?”

그가 답했다.

“서론이 길었군. 대관절, 왜 이 늙은이가 바다까지 건너와서 한 대표에게 고루한 정치철학에 대해 강변하고 있느냐면......”

리충빈 상장이 털털하게 웃어보였다.

“이런 관점에서 내 한 대표를 진정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오!”

*

“지난 날 미연방의 핵탄두 200개와 관련하여, 일본 측에서 접촉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말을 전해 들으셨소?”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일본 육자대가 주일미군의 핵탄두 200개를 탈취했고, 그 중 100개를 한국에 증여할테니 함께 중국의 횡포를 저지하자는 이야기였지요. 우리는 내심 일본과 미국이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명하시오. 상당히 미국에게 유리하게 들리는 말 아니오? 그 강력한 7함대의 주둔지가 일본이니만큼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겠지만...”

리충빈이 혀를 몇 번 차더니,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261개. 중국이 보유한 전략 핵탄두의 수효요. 최고기밀사항이니 발언에 유념하셨으면 좋겠소.”

“미국의 200개와 대치되는 측면이 있군요.”

“200개가 아니라 261개요. 그리고, 그것들은 원래부터 일본 본토에 배치되어 있었소. 그들은 우리가 비밀리에 핵탄두 하나를 개발할 때마다, 하나씩 우리의 영토 앞에 핵탄두를 올려놓았소. 아주 효과적인 억제책이었지. 우리의 핵개발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거였으니까. 덕분에 우리는 핵개발을 종종 중단했소."

리충빈 상장은 거침없이 국제사회의 이면을 파헤쳤다.

"일본 본토에 배치된 핵탄두 200개는 당연히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를 무시한 행위이며. 중국을 6시간 내로 멸망시킬 무기라는 건 굳이 문제삼지 않겠소. 국제사회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특히 우리가 규약준수에 대해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겠지."

"......"

"문제는 그 핵폭탄을 꺼내든 이유요."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빙그레 웃어보였다.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었소? 전쟁을 막기 위함이었소? 그도 아니면 괴수를 처단하기 위함이었소?"

"......"

“그저, 자국의 이익을 위함이었소. 중국이 세계정복을 위해 유대인을 학살하겠다고 주장했던가? 동아의 단결을 주장하니 핵탄두를 들이밀며 우리를 압박한 게요. 실제로 동아의 화평이 깨지니 어쩌니는 상관이 없고, 그저 우리를 막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총알받이로 사용한 것이다. 이 말이오.”

리충빈이 차분히 읊조렸다.

“보통 이걸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 일컫소.”

그리고 단호히 덧붙였다.

“미국은 그저 중국의 확장을 저지하려 핵 이라는 그악한 수단을 빼들었소. 그것도 자신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동족상잔의 형태를 유도하는 형국으로 말이오. 참으로 비효용적이고도, 끔찍한 일이오.”

그의 어조는 점차 정치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에 나 리충빈은 작게는 개인으로서, 크게는 옛 선양군구의 대사령으로서, 그리고 현 중화 10억 인민의 두 번째 아버지로서, 결코 이를 용납할 마음이 없소.”

그는 어느새 군인이 되어 있었다.

“중국의 이름으로, 미국을 다시 태평양 너머로 내쫓아버릴 것이오.”

그리고,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오.”

그가 나긋한 어조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국가에게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지 아시오? 인민들의 불신이오. 나는 중국 내부에서 이미 일곱 차례의 대규모 반란을 진압했소. 러시아가 동군과 서군으로 갈라진 것 또한 같은 이치요. 러시아의 차르는 소수를 버려 다수를 구명했으나, 나라를 반으로 쪼개버린 채 세상을 떴지.

헌데 한국은 어떻소? 인민이 국가를 신뢰하오, 인민대표 하나가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가더니 1200명을 구해오지 않았던가?”

신분당선 탈출작전.

“미국은 영토의 3할을 상실했소. 바로 시역屍疫때문이지. 정치가들은 좀비를 사살할지 말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2천만의 감염자를 만들어냈소. 헌데, 한국은 어떻소? 시역이 퍼짐과 동시에 치료제가 보급되었고, 그 와중에 의정부에 있던 수백만 인민을 구출해내는 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의정부 사태.

“노아 뤼미에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하오. 수많은 초인들을 이끄는 유럽의 영웅. 그러나 그녀도 초인들의 지극한 협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소. PMC들 사이의 갈등이 점차 첨예하게 변하고 있지. 헌데 한국은 어떻소? 길드, 협회, 특수군까지. 서울의 영웅들이 하나되어 게이트를 닫아내지 않았던가?"

서울 폭주.

“열국이 부딪힌 난관을 한국은 거침없이 해결했소. 이 사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오?”

그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읊었다.

“바로 한승문 인민대표, 당신이 있었다는 거요.”

리충빈은 말라 비틀어진 고목같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세상에 우연은 없소. 이걸 단지 우연이라 보아서는 안 될 일이오. 대한민국과 한 대표에게는 이 난관을 해쳐나갈 저력이 있소. 그리고 당금의 시대에서 그야말로 진정 동아의 화평과 공존을 위한 첫 번째 역량이오.”

나를 가리키던 손가락이 악수를 청하는 손바닥으로 바뀌었다.

“한 대표는 어찌 생각하시오?”

나는 악수 따위가 아무런 힘을 가지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기꺼이 그 손을 붙잡아 흔들며 미소지었다. 물론 웃음이라기에는 너무도 텅 빈 겉치레였다. 그리고 그게 내가 리충빈에게 보여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에게 묻는다.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요.

“상장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중화中華!”

대답은 빠르고 거침없었다. 내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허면, 상장님의 중화란 무엇입니까?”

그의 청사진靑寫眞이 막힘없이 터져나왔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 같은 웅변이었다.

그가 내뱉는 중국어의 성조와, 어조와, 음의 높낮이와, 내 손을 붙잡은 힘과, 주름진 눈가 사이에서 번뜩이는 눈빛이, 그의 열정과 환희를 표현했다.

“작게는 중한일 삼국과, 조금 더 크게는 저 빈해변강구(연해주)의 러시아 동방군구까지 힘을 합하여, 시베리아 전역에서 남하하는 수많은 괴수들을 막기 위한 북방전선을 구성할 것이오!”

중국, 한국, 러시아를 잇는 북부 방위선.

“동아시아의 비상무역을 활성화시킬 것이오. 중국의 쌀로 한국의 식량난을 해소하고, 한국의 초인들이 일본을 방위하고, 일본의 기술이 중국에 쓰인다면, 이 어찌 유익한 일이 아니겠소?”

무역의 재활성화.

“초인사회의 교류와 공동연구를 통해 이 사특한 현상에 대한 해법을 추구해야 하오. 서로 기꺼이 손을 빌려 막아낸다면, 동아에는 진정 뜻이 있다고 보오.”

초인 공동 전선.

“뜻은 천명이외다. 오직 동아만이 이 비참한 세상을 바꾸어낼 힘이 있소. 그렇다면 능히 행하는 것이 의무요. 그리하여 이 시련을 이겨낸 후일에, 이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에 화하는 것이오.”

리충빈이 선언했다.

“이것이 나의 중화요!”

그리고 내게 물었다.

“함께하겠소?”

*

리충빈은 차량에 몸을 실었다. 운전석에는 아까 도망쳐나간 통역사가 있었다.

“아, 그, 잘 끝나셨습니까? 대사령?”

리충빈이 백미러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

통역사는 백미러 너머로 전해져오는 노인의 날카로운 시선에 마른침을 삼켰다.

26년간 모신 양반이지만, 저 눈빛, 젊을 때부터 변하지 않은 저 눈빛만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됐다. 집 가자.”

“원 권한대행이랑 만찬이 있으십니다.”

“지병이 악화되어 급히 귀국하니 유감스럽다고 그래.”

“알겠습니다.”

성질 더러운 늙은이가 또 성을 내는 모양이다. 통역사 겸 비서는 26년간 모셔온 영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스레 엑셀을 밟았다.

오늘 일은 조지셨구나.

비서는 가볍게 한숨쉬었다. 하여튼 계급장은 높아져도 하는 짓거리는 옛날 그대로다. 조금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도 저렇게 뚱하게 삐져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긴 뭐 어떻게 돼. 일단 연합이고 나발이고 선거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하더군.”

리충빈이 10년은 늙은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비서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뭐, 오늘 꽌시 만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녁밥이라도 같이 먹자 그랬는데 까였다.”

“이런 싸가지 빵쯔놈이...!”

비서는 한참동안 리충빈의 속을 풀어주려 한승문의 흉을 봤다. 리충빈은 늘 그렇듯 그 재롱에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다. 이게 다 내 부덕이지.”

“명령만 하십시오! 제가 당장 혼꾸녕을...!”

“1절만 해라.”

“네.”

차는 다시금 침묵이 맴돌았다.

비서가 눈치좋게 리충빈의 18번, 등려군의 미주가가배를 틀었다.

간드러지고 한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그제서야 리충빈의 찌푸려진 미간이 느슨하게 풀렸다.

여느 노인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비서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리충빈이 답했다.

“한국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함 먹고 갈까요?”

“배 안 고파.”

“저 혼자 시킵니다?”

“한 입만 덜게.”

“그러다가 한 그릇 다 드실 거면서.”

“노래 안 들린다.”

“넵.”

비서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육군상장이 답했다.

“서부전구에서 첩보 들어왔습니다. 판첸 라마가 초인들 데려다가 달라이 라마 환생제를-”

“아직도 살아있었나?”

“넵.”

비서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부주석이 답했다.

“미국 7함대가 대만 앞에 또 얼쩡거렸답니다. 중화민국 총통 석방하라고 항의서한 날아왔는데요.”

“주석께선 뭐라시디?”

“대만에서 너무 많이 죽였다고. 그냥 풀어주시랍니다.”

“풀어준 다음에 공안 풀어. 총통한테 접근하는 조직 꼬리부터 밟는다.”

비서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진짜로 저 죽이려고 그러셨던 건 아니죠?”

“이 놈아. 어린놈이 자꾸 느물거리길래 겁 좀 준 것 가지고 꽁해 있었느냐?”

“그럼 됐습니다.”

비서가 짐짓 새침하게 입을 닫자, 리충빈이 비웃었다.

“겁 준 놈은 꿈쩍도 안 하는데, 옆에 있는 놈이 오들오들 떨었구만 그래.”

“한승문이 겁을 안 먹었습니까?”

“꿈쩍도 안 해.”

비서가 감탄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본 자기도 쪼는데.

“담이 조금 있는 인물인 모양입니다.”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어.”

“네?”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더군.”

리충빈이 말없이 시트에 몸을 기대며 맥없이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멀쩡해보이는 부산의 풍경이 참 부러웠다.

멀쩡한 건물이 탐나는 게 아니다.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이들의 표정이 신기했다. 평소처럼 노상에 좌판을 깔고 잡동사니를 팔지 않나, 화장품 가게를 들락거리는 연인들이 있지를 않나.

국國의 본本은 민民이고, 인人의 본本은 정精이라. 인민의 생각이 근간에서 벗어나지 않게 잡아두는 국가라. 지금같은 난세에는 극락과도 다름이 없었다.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는지는 뻔했다.

“한 대표도 참 신기하단 말이지.”

“무엇이 말입니까?”

"......"

리충빈이 입에 담배를 꼬나물었다.

“......쯧."

말로 하기에는 무언가 모호하고, 그저 침묵으로 넘기기에는 선명했기에.

적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없고, 벗이라고 하기에는 차가웠기에.

노인은 복잡한 심정을 담배 한 개비로 삭힐 따름이었다.

......묘한 패배감을 느끼면서.

*

한승문은 밀실 밖에서 기다리던 통역사에게 말했다.

“통역해봐.”

피채원이 답했다.

“......지윤이를 우리가 인공적으로 만든 인간병기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미국의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게 생각하죠. 중국은 지윤이의 양산을 걱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은 각성 촉진제의 제조법을 얻고 싶어해요. 그러기 위해 우리 헌터들을 중국 본토로 불러들이려는 거에요. 정보를 빼내고, 머리카락이나 피라도 조금 얻어가려고요. 또, 필요하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건 다 연막이에요.”

*

모두가 연막 속의 비수를 준비하는 가운데.

노아 뤼미에르가 한국을 방문한 건 다음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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