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75화 (75/296)

EP 13 - 국제적 헌터 시점 (2)

우리 외가집은 참 가난했다. 정확히는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 버리고 외국으로 튀었다. 재산 싹 다 챙겨서.

그래서 그런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랑, 우리 이모는 돈에 참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 소원을 풀었다.

어머니는 사업가인 우리 아버지랑 결혼했고, 이모는 고시원에서 목숨걸고 사법고시 붙어서 변호사 됐다. 그리고 로펌에서 기업 뒤 닦아주면서 이 악물고 돈을 벌었다.

중요한 건, 어머니가 아버지 재산 보고 결혼했다는 거다.

솔직히 아버지랑 어머니, 그러니까,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썩 인격자들은 아니셨다. 모든 사람이 결점이야 있겠지만 두 분 사이도 많이 안 좋으셨고, 가정이 화목하지도 않았다. 그냥저냥...?

나도 부모님을 닮았는지 먼저 다가가서 애교부리는 성격은 아니었고, 한때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피씨방에 다니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그럴 정도면 가족 분위기가 대체 어떤 모양이겠는가. 맨날 둘이 싸우는 거 보기 싫어서 애가 밖으로 나도는데.

그러니까, 솔직히 나도 부모님이랑 화기애애하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근데, 없으니까 마음이 찢어지더라.

내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사랑했다는 걸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 15살때.

맨날 자식 앞에서 리모콘 집어던지면서 싸우고, 이혼이나 운운하는 양반들이었지만, 돌아가신 지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부모님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그런 게 가족이었다.

총에 맞고 나서야 가슴에 구멍이 뚫린 걸 알았다.

그래서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전력질주로 병원까지 달려갔다. 정확히는 깽깽이 스텝을 밟았다. 주변 시선은 생각도 안 했다.

“이모! 이모부!”

미칠 듯이 뛰어오느라 헐거워진 의족을 덜렁거리며,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병실에 뛰어 들어갔다.

가장 처음으로 보인 건,

아직 누워있는 이모부 옆에서,

평생토록 싸웠던 여도연과 이모가, 꼬옥 껴안고 오열하는 모습이었다.

* * *

한바탕 가족드라마를 찍은 후, 우리는 각자 새빨개진 얼굴로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사과를 돌돌 깎아 이모에게 내밀었다.

“......좀 드실래요?”

“......그래.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이모는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상태였다. 좀비로 지내는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 링겔을 꽂지 않았다면 많이 위험했을 것이었다.

여도연이 툭 내뱉었다.

“그래도 사람고기 안 먹은게 어디야.”

“말하는 것 하고는......”

평소와 같이 날 선 대화였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둘 다 웃고 있었다.

“......내 핸드폰 어딨니?”

“여기요.”

이모는 초췌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받아들더니 곧장 문자를 보냈다. 삐쩍 마른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며 액정을 두드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한숨쉬듯 토해냈다.

“회사 그만둔다고 말했다.”

“뭐!?”

여도연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이러고 살아서 벌 받은 건가 싶고...... 아니 넌 뭘 또 따지니? 그냥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아니 왜!?”

이모는 국내 2위 대형로펌의 변호사였다. 특기는 로비고, 취미는 노조파괴, 별명은 Fee 빨아먹는 모기.

즉, 블랙기업 뒤 닦아주는 일의 프로페셔널이었다. 오죽하면 예전에 JTVC에서 이모가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서 자살한 노조원 3명을 캐낼 정도로 말이다.

언론사에서 나를 맥이려고 진짜로 이모 뒤를 캤던 건지, 천금순이 나와의 첫만남에서 페이크를 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모가 사람 목숨까지 날리면서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사람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그게 평생토록 여도연과 이모가 싸운 이유이기도 했다.

이모는 여도연이 공부 열심히 해서 엘리트 상류층이 되기를 원했고, 여도연은 이모가 엘리트랍시고 하는 짓거리를 보면서 자랐으니까.

집 앞까지 찾아온 사람을 경호원 불러서 가차없이 내친다거나, 법원 앞에서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는 사람들을 발길질로 털어내거나, 또, 누군가 이렇게 자기 바짓가랑이를 잡을만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하고 다닌다던가, 등등.

좋게 말하면 돈귀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수전노다. 솔직히 백화점이나 식당에서 직원들 까탈스럽게 갈구는 부류가 이모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우리 가족 중에 인격자는 이모부뿐이었다.

그래서 여도연은 안다.

“일을 갑자기 왜 그만두냐고!”

“어머 얘 좀 봐라. 그렇게 그만두라고 성깔을 부리더니, 이제와선 그만둔대도 악을 쓰네?”

“아, 아니...! 그...!”

“그래. 뭐?”

여도연은 이모에게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녀에게 돈이라는 게 단순한 자본이 아니라, 어릴적의 트라우마를 해소시켜주는 삶의 활력소라는 것도 안다.

그녀가 변호사를 하면서 나쁜 짓을 한 날에는 저녁에 아버지랑 같이 독한 술을 먹으러 나간다는 것도 잘 알고, 이모가 왜 돈을 밝히는지, 어떤 고생을 해서 변호사가 되었는지, 주말도 없이 과로에 치이면서 살았는지, 여도연은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랑 딸이니까.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서로를 각자보다 더 잘 아는 사이였다.

“......아, 몰라!”

부끄러워서 말은 못해도 말이다.

그러나 이모는 가차없이 비수를 던졌다. 언제나 그렇듯 또박또박 날카롭게 사람을 갈군다.

“말을 할거면 확실하게 하고 살아. 언제까지 다 큰 성인이 아직도 애처럼 성질이나 부리고 다니고 있어?”

“남이사.”

“내가 니 남이니? 보렴. 생각을 한 다음에 입으로 뱉는 거야. 말은 못 주워담아. 그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몇십년을 가르쳐도-”

이모는 지금 딸이 엄마보고 ‘남’이라는 표현을 써서 삐졌는지, 평소보다 더 거센 맹공을 이어갔다.

전직 격투기 선수가 베테랑 변호사를 말로 이겨먹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아서, 이 정치인 님이 한 번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근데 이모.”

“왜?”

“도연이한테 고맙다고는 말 했남...?”

“......”

[그걸 꼭 말해야 아냐고는 말씀 안하시겠죠? 다 큰 ‘성인’이.]

라고 마무리 멘트를 날릴 수는 있었지만, 그러면 정말로 삐질 것 같아서 굳이 유치하게 내뱉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알아들을만한 사람이다.

여도연만 지금 대화의 맥을 못 짚고서 불퉁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사과를 씹고 있었다. 이모는 잠시 눈을 끔뻑끔뻑 거리더니 작게 한숨쉬고는 뒤로 자빠져 누웠다.

“어쩜 남매가 쌍으로......”

“자식농사 잘 지으셨수.”

“그래......”

한숨쉬듯 말했지만 결국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뜻이었다.

이모는 피식 웃고서 나직이 말했다.

“일어나서 뉴스 보니까 니들 얼굴 나오더라. 괴수잡는 이야기나 좀 해보련?”

“아이씨, 그러면 내가 또 가만히 못 있지.”

여도연이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녀석은 낚시꾼이 잡은 물고기 센치미터 늘리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모는 걱정도 하고, 기특해도 하면서 대화에 충실히 임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 응어리가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 칼잽이 고딩이 스걱스걱 하니까, 마악! 응? 요래요래 해갖고...”

“설진운이라고? 그 학생 집으로 불러다 뭐라도 좀 먹여야겠네. 신세는 갚아야지.”

“그르자! 내 데꼬 오께!”

여도연은 어찌나 신났는지 모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혀짧은 사투리 억양이 튀어나왔고, 이모는 살짝 어색한 듯 싶었지만 살아서 딸이랑 이야기하는 게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여도연 목소리에 콧소리가 섞이는 게 조금씩 거북해져서 뒤통수를 때릴까 생각하던 무렵,

“으어얽!”

옆에 누워있던 이모부가 괴성을 지르며 깨어났다. 나는 이모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여도식 씨, 정신이 드십니까?”

“...으어! 아으! 씨부럴!”

“여 사장님. 정신 좀 차려요.”

“스, 승문이냐!?”

이모부는 반쯤 풀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소, 소정이랑 도연이!”

“여보, 창피하니까 좀 얌전히 있어.”

“아빠, 그냥 좀 더 자라.”

마누라랑 딸이라는 게 쌍으로 성격이 되먹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여도식은 역시 그 인격에 걸맞게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모부, 괜찮아요?”

“......어, 어어.”

이모부는 그제서야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멍하니 굳어버렸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 왜요.”

“그, 그래. 내 얼추 짐작은 했다.”

이모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몇 년이나 지났나?”

“예?”

“새키... 와 이리 늙었노? 그래. 숨길필요 없다. 받아들일 준비가-”

그러니까. 그 뭐냐.

냉동인간이 일어나서 날짜 확인하는 것처럼,

내 얼굴을 보고서 추정한 세월의 흐름이, 적어도 년 단위라는 소리였다.

“......”

환자복을 붙잡고 길길이 날뛰는 내가 진정하는 데에는 약 19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

“야, 내가 그렇게 노안이냐?”

“아이 엠 그루트.”

“아니, 빼지말고 임마.”

“위 아 그루트.”

뒷자리에 앉아서 질문하자,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있는 연놈들이 대답을 피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양일호와 이호정에게 말했다.

“야, 나 뒤끝없는 거 알잖아. 그냥 편하게 대답해도 된다니까.”

“그래요. 오빠 삭았어요.”

“......야, 너 말이 좀 심한 거-”

부스럭, 이호정이 잽싸게 선물 보따리를 내밀었다.

“가족분들 쾌차하신 거 정말 축하드려요.”

“......오냐.”

양일호가 운전하다 살짝 덧붙였다. 내가 운전에 가지고 있는 결벽증을 아는 놈이라 그런가, 고개도 안 돌리고 양 손으로 핸들을 붙잡고 입으로만 말했다.

“고기는 너무 비싸고, 그나마 초콜릿이 좀 싸길래, 둘 다 사서 넣었어요.”

“역시 배운 사람은 좀 다르다니까.”

“형이랑 저 대학교 같이 다녔잖아요.”

“그러니까 배운 사람은 좀 다르다고.”

이호정은 은근히 미소지으며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거렸다. 화장품 없어서 가꾸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아주 예전처럼 중무장을 하고 다닌다.

“의원님 이제 좀 낯빛이 괜찮네요. 눈치 덜 봐도 되겠어.”

“니들이 내 눈치 본 적은 있냐?”

“저희가 얼마나 의원님 심기에 예민한지 알면 깜짝 놀라실걸요? 아침마다 작전회의하고 나온다니까?”

사실이면 사실인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거북한 소리라서 뚱한 표정을 지었다.

“니네 지역구는 알아보고 있냐?”

“무슨 지역구요?”

“니네가 출마할 지역구.”

양일호가 번개처럼 나를 뒤돌아보았지만, 내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잽싸게 전방을 주시했다.

이호정이 감격한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으, 의원님...!”

“뭔 감격한 척이야. 어차피 다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우리는 다 국회의원 하고 싶어서 보좌관 루트를 탄 사람들이었다. 가뜩이나 믿고 쓸 사람 없는데 얘네들을 이번 총선에 안 내보내면 대체 누구랑 정치를 한단 말인가.

나를 위해 주말도 없이 일하며 고생한 녀석들을 생각한다면, 녀석들의 노고에 합당한 보답이었다.

항상 팔자에도 없는 권총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특검이랑 검찰한테 물어뜯길 당시에는 얘네들도 수갑차고 끌려갔었으니까.

이호정이 가볍게 미소지었다.

“예상은 했어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요.”

“오냐. 평생동안 충성을 바쳐라.”

“저희가 그러면 한승문의 첫 계파가 되는 건가요?”

“그렇겠지?”

“우와! 한승문파 직계다!”

대한민국은 계파정치系派政治의 나라였다. 야매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겪어서 보스 정치가 살짝 심한 나라라서 그랬다.

누구나 알만한 계파로는 박씨 가문의 ‘친박’. YS의 ‘상도동계’, DJ의 ‘동교동계’, 참여정부의 ‘친노-친문’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한승문계系가 생긴다는 건 그야말로 역사적인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의원님 뱃지 단 지 1년도 안 지나지 않았어요?”

“작년 여름에 달았고, 지금이 봄이니까... 그렇네?”

“세월이 참......”

문득 울컥했지만 여기서 울면 진짜로 갱년기 온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꾸욱 참았다.

양일호가 툭 내뱉었다.

“......고생 진짜 많이 했네요.”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별 생각은 안 들었다. 그냥 이름 몇 개가 생각났을 뿐이다.

차재균.

김춘식.

“후우......”

가까스로 속을 추스르고 복잡한 심경을 한숨으로 내쉬니, 조수석에서 킁 소리가 났다.

“......아, 죄, 송해요.”

“......”

“잠깐만요. 아, 왜 이러지...”

이호정이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

몇 년동안 보면서 대충 짐작하건대 가정폭력을 당하면서 자란 녀석이었다. 그래서 게이트 열린 첫 날에 가족들을 망설임없이 버리고 도망친 거고.

물론 나름의 정황과 짐작일 뿐이다. 기가 막히게 눈치가 좋고, 누가 손들면 움찔거리고, 턱에 있는 조그만한 흉터 가리려고 화장 진하게 하고, 마침 흉터가 뭐에 긁힌 것 같고, 술 먹고 중얼거린 넋두리가 심상치 않고.

그냥, 확실히는 잘 모른다.

그래도 안다.

사정없는 인간은 세상에 없었으니까.

우는 이유는 모르지만 존중해주는 건 당연했다.

“일호야, 뭐하냐. 차 대라.”

“휴게소 갑니다잉.”

원옥분으로부터 다급하게 중국발 속보가 전해진 건, 세 명이 휴게소 벤치에 나란히 둘러앉아 갖다놓은 컵라면이 익어갈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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