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 - 짐을 짊어진 이들 (8)
충무시설 지하기지의 상황실.
수많은 정치가, 기업가, 전략가들이 커다란 화면 앞에 넋을 놓았다.
비인간적인 싸움이었다.
팔이 잘리면 발로 차고, 발도 으스러지면 입으로 물고, 그렇게 죽기 직전에 치료받아 다시 일어나 돌격하는 게, 어찌 사람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염동술사들은 한데 모여 여왕을 끌어내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여도연이 염동술사들을 지키려 거대한 괴수의 머리를 단숨에 으깨버렸다.
여도연을 덮치려던 비행괴수가 설진운의 푸른 연격連擊에 휘말려 두 동강나 지상으로 곤두박질쳤고,
데이비드 김은 그 추락하는 괴수 시체를 밟고 허공을 뛰어다니며 팔 한 쪽으로 괴수의 마석을 적출해대는 신기神技를 선보였다.
푸른 밤에 한 줄기 번개가 떨어지고,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허공에 떠올라 괴수에게로 쇄도한다.
이리저리서 치유의 빛이 번쩍이며 사지가 잘린 이들이 일어났고, 누군가는 그들을 일으켜 세웠으며, 누군가는 그들을 싸우게 만들었다.
이게 어찌 인간의 싸움이겠는가.
충무시설 지하벙커의 화면으로 보기에, 드론을 통해 한참 멀리서 바라본 그들의 처절한 분투는.
어두운 밤, 시퍼런 게이트만 밝게 빛나는데.
그리로 달려드는 불나방들과 다름없었다.
* * *
“여왕만 잡으면 됩니다!”
이곳에 영웅은 없었다.
“4시 방향! 박쥐떼!”
“아래서도 올라옵니다!”
“우리들은 위쪽에 집중해! 지상은 박팀장 쪽에서 호위한다! ”
그저, 사람이었다.
“바, 박팀장님! 늑대 무리 달려옵니다! 도, 도망을-”
“저 새끼들 우리 몰이사냥하는거야! 방어막 깔고 여기서...! 이런 니미럴!”
“티, 팀장님 피토한다. 이거 뭐야! 힐러야! 팀장님 눈코입에서 피가 줄줄...!”
“원래 마력 떨어지면 발작 일어나요! 피까지 난다는 건 가망 없다는 소리-”
“흐아아아악 - !”
"팀장님!"
사람에 불과했으나,
“...제가 잡아두고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불꽃이었다.
“이쪽으로 유인할테니 다들 도망치세요!”
“유정아!”
“저는 나중에 따라-”
“야 이 싸가지없는 년아!”
물론, 바람 앞의 촛불보다 미약했지만,
"티, 팀장님...!?"
“어디 씨발 어른보다 먼저 뒈질라 그래!?”
“진정하세요!”
"내가 니들 방어막이야! 이 새끼들아!"
"마력 떨어지셨-"
"미끼는 내가 한다!"
스러질 것을 알면서 자신을 불태우고,
“야, 박팀장님 어디갔어.”
“......이제, 제가 팀장입니다.”
“......Fuck. 미안한데, 동대문 쪽 애들 지원하러 갈 수 있나? 저쪽 아파트 단지에.”
“가겠습니다.”
“배리어 횟수 남았나? 아니. 잠깐만. 너 그쪽 능력이-”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방금.”
촛불은 모여 횃불이 되고,
“이, 이 방어막 누가 깔았어!?”
“......반갑습니다.”
“누, 누구십니까?”
“......박팀장. 박팀장이라고 불러주세요.”
바람 앞의 불씨는 들판에 번져,
“설 대장! 길드 헌터들이 아파트 쪽 상공 제압했어요! 누가 와서 아파트 단지 전체를 방어막으로 덮었답니다!”
“우리는 여왕 끌어내리는 데 집중합니다. 염동술사들이 끌어내리고 있는 중이니까. 그쪽 근처로 비행괴수 못 접근하게-”
“마법사들 전부 죽었습니다!”
“......길드 쪽 원거리 능력자들한테-”
“야, 싹 모아서 데려왔다.”
“누나...?”
“내 동생이 만든 곳이고, 나도 한참동안 같이 일했는데 얼굴을 모르겠냐.”
마침내, 이 어두운 밤을 걷어낼 등불이 되어,
“야. 거대괴수 있다며.”
“아, 그거 도연이가 지나가다 잡고 갔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3조장님도 마법사셨죠? 동대문 쪽 애들이 마법사 급하다고-”
“아니, 도연이 걔가 왜 여깄어?”
“글쎄요. 오랜만에 봤네. 아무튼 걔 아니었음 저격팀 싹 죽었어요.”
찬란한 빛을 발했다.
“저격팀이 드래곤 다운시켰습니다!”
“좋아! 다음 새끼 담구러 간다!”
그렇기에 이곳에 영웅은 없는 것이다.
“뭐야...? 우리가 왜 이기고 있어?”
“용잡던 양반들이 합류했습니다!”
“......본부에 염동술사 더 보내!”
‘영웅’이 아닌, ‘영웅들’이었기에,
“설 대장! 여왕 끌어내리는 것도 한계입니다!”
“사정거리까지 끌어내리기 직전입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염동술사가 너무 부족합니-”
“4조 염동술사 세 명 합류합니다!”
불꽃은 서로에게 이어지며,
“여왕...! 여왕이 사정거리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포대에 전하세요! 조준하라고!”
“조준하란다 씨팔 !”
어느새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오르며,
“저기 하늘에 저거, 저거 맞추라는 거 맞지?”
“네. 동대문 애들이 준비하던 게 저거네요."
"저거만 잡으면 된다 이거 아니야!"
이 푸른 밤의 어둠에 맞섰다.
“난 이거 쏘고 기절할테니까 내 몸뚱이는 니가 수습해라.”
“......그거 수명깎는 기술 아니에요?”
“지금 아니면 언제 쓰겠냐.”
그리고 진정,
거대한 불의 파도波濤가 하늘에 몰아쳤다.
“와 씨발, 이거 뭐야. 이. 미친...!”
“......나 아직 안 썼는데?”
찬란한 불꽃의 폭풍이 맹렬하게 요동치며 온갖 괴수들을 집어삼켰다.
“하, 하늘이, 불꽃으로...!”
“미친......”
“와아. 와아아... 씨이발. 와. 와아아...”
"......!"
남쪽 하늘로부터 불의 해일海溢이 밀려와.
“......춘식 대장. 이 마력 아무리 봐도 그건데.”
“......그래.”
"2팀장 드디어 돌아왔네. 씨불년..."
시리도록 푸른 밤하늘을 붉게 뒤덮었다.
“우리 선아 왔나보다.”
*
미간에 구멍이 뚫린 친구를 부여잡고 울부짖으며, 홍선아는 피눈물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그 배경만은 확실히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압구정 캠프의 미담은 지금껏 회자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심할만 하면 압구정의 생존자들이 언론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출연료 수십만원을 받아갔다. 또 국가가 여론수습 차원에서 그걸 은근히 장려하는 편이기도 했다.
초능력자들끼리 서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모두의 만장일치로 서울에 남아 일반인들을 지켜내기로 결의했던 것.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승문이 압구정에 도착하기 전,
홍선아가 견뎌내야 했던 그 짧은 세월은, 그녀의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그저께는 정이 오빠가 죽었고. 오늘은 은아 시체를 수습했어요.”
압구정은 지독한 곳이었다.
1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식량난에 시달리고,
사방에는 처음보는 괴수들이 도사렸으며,
군인 시체에서 총을 주운 미치광이들이 도심을 배회했다.
그리고, 수십 명의 헌터들이 도시에서 1200명분의 식량을 수급해야 하루 배급이 가능했다.
소총으로 무장한 일반인을 포함한 전투인력이 70명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백화점과 마트에선 총소리가 끊이지를 않았으며, 사람들은 점차 죽음에 적응해야만 했다. 감동적인 생존기의 이면에는 그런 아수라장이 존재했다.
‘......춘식 아저씨. 글쎄 은아요. 우리 은아가요. 창고에서, 그, 양아치 패거리 창고에서, 나왔어요. 머리에 구멍이 뚫려가지고.’
‘......시체는 어떻게 했니?’
‘태웠죠. 맨날 하듯이.’
홍선아는 항상 죽은 이의 시체를 불태웠다. 절대로 그들의 시체를 괴수에게 먹이로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홍선아는 항상 동료들의 마지막에 함께했다.
가장 먼저 머리카락이 불타고, 살가죽 위의 아픔과, 비쩍 말라붙은 각질, 슬픈 기억과, 하나의 생애가 그녀의 손끝에서 타들어갔다.
상흔을 정화한다. 홍선아는 불꽃으로 하여금 조심스레 전우들의 영혼을 배웅했다.
그래도,
‘그, 애가. 얼마나...! 그, 그 어두운 창고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걔가...! 그, 어린 애가, 그, 흐, 흐흐흐...! 흐으으으...!’
마음 속에 남은 그 한恨만은 도저히 씻어 없앨 수가 없어서.
‘흐흐흐...! 흐으, 흐으으...! 우, 우리가. 불을 뿜어도요. 총은, 총은 못 피하잖아.’
‘......’
‘아저씨..., 우리, 우리만이라도, 탈출하면 안돼요?’
장례가 끝날 때마다, 홍선아는 매번 김춘식의 앞에 엎드려 흐느끼며, 제발 서울에서 나가자고 간절히 빌었다.
김춘식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래.’
‘......’
‘그래도 나는 남을 거란다.’
홍선아는 총 12번의 장례식을 통해 수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가장 먼저 깨달았던 건, 사람이 정말 슬프게 흐느낄 때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그 고문 속에서 내는 소리가 언뜻 웃음소리와 비슷하다는 거였다.
홍선아는 그래서 울고 싶을 때 차라리 웃는다.
‘아니, 왜 각성자들만 식량을 많이 배분받죠?’
‘...하하, 식량을 조달해오는 쪽이니까-’
‘참 내. 우리도 총 생기면 들고 나가면 되잖아, 나가면...’
‘......헤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웃는다.
나중에는 시체를 태우며 웃으니까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
‘당신이었구나? 반가워요!’
‘사, 사, 살려주세요...!’
‘뭐야. 학생이었어?’
‘자, 자, 잘못, 형들이, 형들이 하자 그래서...!’
‘은아도 학생이었는데. 둘이 좀 친하게 지내지 그랬니!’
‘죄송, 진짜, 지, 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
‘개새끼양!’
‘흐아아아아악! 끄으윽! 흐이..! 흐아아! 아아아악!’
복수심이 극에 달하면, 평범하게 살던 사람도, 살아있는 인간을 망설임없이 태워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홍선아는 나름 살랑살랑 웃으면서 살기로 했다. 그녀는 차라리 웃음으로서 감정소모를 억눌렀다. 평소의 감정소모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인종을 미친년이라고 한다.
‘아니, 선아 씨, 왜 우리 단지에 배분된 식량이-’
‘꼬우면 니들이 구해오세용!’
‘......’
‘오홍홍!’
‘...미친년 아냐 이거!’
홍선아는 지키고 싶은 사람을 구분하며 살기로 했다.
‘춘식이 아재요! 서울 탈출하자요!’
‘글쎄 나는 남는다니까.’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이걸 준비했징.’
‘......그건 또 뭐냐.’
‘선 서! 홍선아 외 공격조 16인은 맨날 밥달라고 지랄하는 미친년을 추방하지 않는다면! 단체로 집구석을 뛰쳐나가 파업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그러니 어서 부녀회장을 쫓아내라! 이 미친 공리주의자야!’
홍선아는 나름 정치도 조금 배웠다.
‘...춘식아재. 오늘은 두 명이나 죽었다. 그죠.’
‘......’
‘정규아재랑 정식이 아재. 맨날 술먹고 치고받더니 갈 때는 사이좋게 손잡고 가셨어 그랴......’
‘......미안하다.’
‘미안하면 서울에서 좀 나가자. 각성자들끼리.’
‘......’
‘......나쁜 새키.’
욕도 배웠다.
‘아니 왜 안간다는 거야! 왜! 왜!’
‘......’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봐요!’
‘......니들끼리 가라.’
‘아저씨 못 버리고 간다는 거 알고서 공갈치는 거 아니야! 이 나쁜놈아! 서울 나가자고 쫌!’
‘......’
‘한국말 못 알아먹냐 이 코쟁이 새키야!’
외국인이랑 대화하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았고.
‘......진짜, 왜, 왜 안 가겠다는 거에요? 말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어?’
‘......’
‘옛날에 무슨 사람 못 구한 트라우마라도 있어요?’
‘......전쟁 나갔다 온 사람한테 옛날 이야기를 물어본다는 건, 뭐. 사흘동안 잠을 안 자겠다는 건가?’
그게 꼰대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술을 먹였다.
‘자, 자, 시원하게 들이키시고! 왜 서울 안 나가겠다는겨?’
‘......The life just.. 그냥. Um. 많이 save할수록 좋은 거야. 음. yep.’
‘그래서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으셨다?’
‘1200이라는 숫자가, 참. 어. 음. Too much more than you thought. Dear.'
‘영웅놀이에 흠뻑 빠져가지고. 옆에 있는 사람은 죽으나 마나 상관이 없으시다?’
‘저는 죽이다... I, I kiled fucking inocent. sorry baby. i'm, so sorry, baby......'
술 취한 김춘식의 입에서 '암 쏘 쏘리 베이비'라는 말이 튀어나온 이유가, 갓난아기들 모아놓은 천막에다 박격포를 쏴제꼈다는 소리라는 걸 안 이후로,
이해할 수 없는 상대보다,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증오할 때, 사람이 더욱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뭔, 회개용 헌금이에요? 우리를 죽여서 사람을 살리면 죽어서 천국 가?’
‘......’
‘그래. 춘식이 아저씨, 당신은 한 번도 우리보고 같이 싸워달라고 말한 적이 없죠. 아마 천국가고 싶은 생각도 없을 거야. 그런 사람이니까. 근데.’
‘......’
‘......내가, 뭔가, 뭔가 멋지게. 막, 아저씨를 욕하고 싶은데.’
‘......’
‘여기서 뭐, 더, 말이 안나온다. 어쩌냐...?’
그녀는 스스로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나한테는 1200명보다 소중한 12명이 있어요.’
‘......’
‘미안해요.’
결국 숫자 세는 것도 포기했다. 즉.
"......에휴."
그녀도 결국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하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거였다.
홍선아는 한참동안 생각한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원옥분과 대화하던 한승문에게 다가갔다.
“감지윤 양이 올라오고 있답니다. 예. 여기서 절 데리고 함께 서울로 갈 예정입니다. 군 헌터들은 지금...? 아, 네. 알겠습니다. 1군단-”
“한 의원님!”
“? 무슨 일이십니까 홍 길드장님.”
“저 좀 데려가줘요.”
홍선아는 화면 구석, 익숙한 얼굴들을 흩어보았다. 자신이 아닌 데이비드 김을 선택했던 그들은 지금 서울에서 하나씩 죽어 나자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화면에서 박춘봉 팀장을 보았다. 압구정에 있을 때는 김춘식의 전술적 백업이었고, 신분당선에서는 후열 방어선 부책임자였다.
각성한 능력은 방어막을 치는 거였고, 좋아하는 음식은 과메기, 고향은 전라도 담양, 사는 집은 경기도 시흥, 직장은 인터넷쇼핑몰 서버관리자, 아들 둘은 괴수한테 죽었고, 부모님은 생사불명, 마누라는 예전에 사별, 욕을 참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먹는데, 의외로 담배를 안 핀다. 이유는 유방암으로 죽은 마누라 유언이 ‘홀애비가 담배피면 애들도 핀다’라서다.
그가 화면 속에서 늑대들에게 둘러싸여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홍선아는 문득 웃었다.
아주 활짝 웃었다.
“나가자고 몇 번을 말했는데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복창이 터지네요! 저 개노답 새키들! 이번에야말로 멱살잡고 끌고 나오렵니다!”
“예...?”
“우리 오랜만에 돌아갑시다!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