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 - 짐을 짊어진 이들 (1)
“......”
침울하게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투명한 관 속에 두 번째 부모님이 들어가 있다. 아직 온 몸에 퍼진 검은 혈관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나는 작게 한숨쉬며 잠시 눈을 붙였다. 금방 잠들 것 같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항상 눈을 감으면 장례식장이 생각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이었기 때문일까.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이곳저곳에 수많은 빚을 남기고 가셨다. 어머니가 즉사하지 않고 수술을 4번인가 받고서 의식불명 상태에서 끝내 숨지셨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재산도 거진 날려버렸다.
나도 그때 배에 쇳덩이가 박혀서 장이 터진 바람에 몸속에 똥독이 올랐다고 그랬다. 살려내는데 의사들이 개고생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의식불명 상태로 2개월인가 있었고.
덕분에 나는 상조 직원들이 아니라 빚쟁이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뤘다.
우리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만 찾아왔으며, 누구는 돈을 빌려준 척 달라붙기도 했다.
턱, 나는 투명한 관 위에 손을 얹었다.
그 속에 내 가족이 있었다.
밥상을 한 손으로 붕붕 휘두르며 빚쟁이들을 쫓아내던 이모부와, 자기 집까지 팔아서 빚을 갚아준 이모. 그리고 나를 껴안고 펑펑 울던 누나.
“......”
다들 내 곁에 없다.
* * *
차에서 머리를 꾸벅이며 졸고 있으니 양일호가 백미러를 흘끔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어? 왜?”
“으으으음... 아니에용.”
“말끝에 비음 넣을 때마다 빠따 한 대야. 핸들 똑바로 안 잡어?”
양일호는 우는 소리를 내며 운전에 집중했다.
“......”
정치인이 되며 바뀐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기분을 잘 숨기게 됐다. 원래 그런 편이기는 했지만.
“아아, 아이우에오. 간쟝공쟝공댱댱... 크흠...!”
목소리도 좀 변했다. 살짝 갈라졌다고 해야 하나.
나는 시무룩하게 차량 뒷좌석에 앉아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으로 눈밑을 아래쪽으로 주우욱 내려봤다.
“다크써클 장난 아니네......”
볼도 홀쭉하게 파인 게 사람이 참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해보였다. 절대로 내가 참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는 건 아니다.
"야 히터 좀 꺼라."
"안 틀었는데요?" "시끄러."
나는 조수석에 앉아 내 일정표를 넘겨보던 이호정에게 말했다.
“야, 나 아침에 몸무게 재봤는데. 너보다 가벼운 것 같더라.”
“몇 나오셨는데요.”
“60.”
“미쳤어요!?”
이호정이 캬아악 발끈했다.
“내가 이 몸매 지키려고 닭가슴살을 얼마나 퍼먹었는데! 무슨 60이야 60은!”
“찔렸냐?”
“52거든요!?”
양일호가 해맑게 중얼거렸다.
“54던뎅.”
“입.”
“......”
나는 피식 웃고서 녀석들에게 말했다.
“야, 내가 정치하고서, 사람이 좀 많이, 그 뭐냐.”
“삭았다고요?”
“너무 표현이 적나라한데. 아무튼 좀 바뀐 것 같지 않냐?”
“요즘 충성심 테스트 너무 자주 하시는 것 같은-”
“그 소리가 아니라. 다크써클도 생기고, 흰머리도 나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살도 빠지고, 막, 막, 사람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보이고. 좀 그렇게 바뀐 것 같지 않냐고.”
나는 괜히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자, 팩트폭격기 이호정이 살짝 토라졌는지 내 가슴에 비수를 박았다.
“팔에 주사기 200번 박아서 그렇죠. 정치 때문이 아니라.”
*
“정치가 사람을 망쳤다?”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정치할 맛이 안 난다?”
“굳이 말하면 그렇지.”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호정이 피식 웃고서 무너진 편의점에서 훔쳐온 초콜릿을 내게 내밀었다.
“당 떨어지셨죠 지금?”
“살짝.”
냠. 싸구려 초콜릿이었지만 오랜만에 먹어서 참 맛있었다. 스팸이랑 햇반만 퍼먹고 살아서 그런가.
“솔직히 의원님 하는 거 옆에서 보다 보면 그럴만도 해요. 뭐, 누린 적이 없잖아.”
“야, 임마. 누리자고 국회의원하는 사람이 어딨-”
이호정이 씨익 웃으며 치고들어오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진짜?”
“......”
“설마 애국하려고 국회의원하셨던 거에요?”
이호정의 말이 맞았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애국하려고 공무원 하는가. 권력 좀 잡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한국대까지 나온 사람이 20년동안 의원 시다바리하겠다고 국회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우리도 마찬가지고. 저는 하늘대학교 나오긴 했는데. 아무튼.”
양일호만 봐도 온갖 최연소 타이틀 줄줄이 달고있는 녀석에, 마지막 사법시험까지 붙어서 연수원까지 나온 놈이었다.
변호사 자격증도 있는 놈이 왜 의원 히스테리 받아주면서 커피나 타고 있겠는가. 다 정치에 뜻이 있어서 그런 거지. 나처럼 의원이 던져주는 개뼈다귀 받아서 뱃지라도 한 번 달아보려고.
이처럼 국회 보좌관은 거의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하는 직종이라 봐도 무방했다.
“근데 지금 국회의원이, 의원님이 생각하던 국회의원이랑 다르잖아요. 그쵸?”
“그렇지.”
하늘에 빵꾸난 이후로 극한직업도 이런 극한직업이 없었다.
6시간도 못자고, 정부 무너졌을 땐 월급도 못받고, 수명도 깎이고, 기자들 때문에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툭하면 어디서 누가 총부리 들이밀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 그렇게 살면 누구나 살기가 싫지. 초심이라는 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아니, 그, 국회의원이 싫다는 게 아니라...”
쩝.
“......오늘 저녁밥 뭐냐?”
정치가 질린다고요. 정치가.
*
솔직히 요즘 회의감이 심하다.
뭐 빠지게 고생해서 얻은 게 뭐가 있는가.
그야 물론 명성, 권력, 뭐, 이것저것 얻었는데, 가족이랑 건강을 잃어버리니까 사람이 살짝 허무해지는 것 같다.
일종의 정치 혐오증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냥 슬럼프가 온 건가.
열심히 고생해서 사회 돌려놓으니까 흑산양이 튀어나와서 음메에 하니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물론 진짜로 도루묵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사람 사이에서 자꾸 치이는 것도 좀 그렇고. 정치적 선택 하나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좌우되는 상황이라 그게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짐이 좀 무겁다.
그리고 이제 살짝 지쳤다.
그래서 힘들었다.
그 와중에 가족도 병중病中이고, 누나란 것은 이미 있는 치료제 찾겠다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를 싸돌아댕기고 있다. 언제 시체로 돌아올지 모른다.
“후우......”
나는 문 앞에서 작게 한숨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똑. 똑. 똑.
그리고 천천히 노크했다. 최대한 단정하고 깔끔하게.
“들어와요...”
“오랜만입니다, 천사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잠시 멈칫했다. 정확히는 어정쩡하게 굳어버렸다.
“어서와요......”
“한 의원님, 오랜만!”
구부정한 자세로 비척비척 고개를 꾸벅이는 천금순 사장 앞에, 여유롭게 늘씬한 다리를 꼬고 앉아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홍선아가 있었다.
분위기도 딴판이고, 덩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이미지적으로는 극과 극이었으나, 내 눈에는 둘 다 비슷한 짐승으로 보였다.
뭐지. 뱀굴인가.
홍선아가 방긋 웃었다.
“의원님 오신다 그래서 잠깐 들렸어요!”
“...아, 네.”
예전에는 머리카락 끝부분만 빨간색이었는데, 이제는 한 절반 정도가 옅은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요즘은 염색을 네온으로 합니까?”
홍선아의 머리카락은 진짜로 ‘빛’났다. 은은하게.
그녀는 여유롭게 웃으며 찰랑이는 중단발을 넘겼다. 아니, 못보는 사이에 장발長髮이 되었다.
“제가 너무 강력해져서 그런 걸 어떡하나요? 불꽃소녀 홍선아는 오늘도-”
“지랄 좀 하지 마세요 제발.”
“히잉......”
우는 소리를 내도 표정은 생기발랄했다. 마주편에 앉아있던 천금순이 기운없이 내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이네요, 자기...?”
“아, 예. 요즘 마석으로 재미 좀 보신다고 들었는데.”
“다 자기 덕분이죠, 뭐...”
검찰과 특검에게 한승문 재단이 강제로 해체되기 직전에, 나는 지금껏 쌓아놨던 모든 마석을 GS 그룹에 증여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지시한대로 딱 적절한 가격대의 마석시장을 형성하는 중이다. 겸사겸사 시장 주도권도 틀어잡고서.
나는 빈자리에 앉으며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PMC 하나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아이기스 맞죠? 황금 방패에다 GS 그려놓은 마크가 촌스러워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돌부터 던지기에요...?”
나는 그녀 앞에 마주앉은 홍선아를 힐끔 보았다. 얼굴도 보송보송하고 화장도 한 게 방송이라도 찍고 온 모양이다.
“홍선아 씨가 길드장이라 그런가. 어째 두 분이 잘 지내시나봅니다.”
헌터의 국유화를 깨고, 헌팅의 시장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엮어준 인연이었다.
이에 천금순이 처연히 웃었다.
“얘 좀 도로 데려가세요. 기 빨려...”
“아, 언니, 왜그랭.”
“말 놓지 마세요...”
“언니야아.”
천금순은 얌전히 홍선아가 입에 넣어주는 마카롱을 받아먹었다. 아무래도 천적을 만난 모양이다.
“유재경 장관님한테 들었는데 요즘 장사 잘 된다던데.”
“처죽일 새끼.”
“예?”
“아, 아니에요...”
아 맞다. 유재경이 금융위 움직여서 천금순 계열사 하나 찢어버렸다고 했지.
금융위원회야 국무조정실 직속기관이었지만 위원들이 죄다 기재부 고위관료들이라, 사실상 기재부 장관이 거기 오야붕이었다.
그러니 유재경 장관이 죽일 놈으로 보일만도 하지. GS그룹이 재계 순위 5위까지 폭풍처럼 치고 올라와서 금융위원회에서 벼르고 있댔는데, 그거 막느라 그런가 천금순은 유독 다크써클이 진해 보였다.
나한테 빚져서 더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는지 딱히 청탁도 해오지 않았으니, 천금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장관과 내가 모르는 곳에서 금권전쟁을 벌이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아이기스가 업계 톱 찍었다면서요?”
“스타트업에 톱이 어딨어요... 일단 묵혀놨다 크게 판 깔아야죠.”
아까부터 살살 띄워주는 게 불안한지 천금순이 어색하게 겸양을 떨고 있었다.
눈치도 빠르기는.
그래도 정치인보다 구질구질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요즘이 PMC 전성시대 아닙니까?”
시중에 각성제가 슬슬 풀리고, 의정부 게이트를 통해 각성자들이 급증하면서, 온갖 PMC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소수였지만 그쪽 업계에 돌기 시작한 액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마석사업이라는 게 가능성이 워낙 무한했기 때문이었다.
“PMC에서 얻은 마석으로 포션 만들고. 전기 만들고. 뭐, 신기술 막 해서 R&D도 팍팍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해석 : 내 덕분에 돈 좀 만졌지?
“그렇죠... 그쪽에서 들어오는 마석량이 예상 이상이더라구요. 홍 헌터가 워낙 수완이 좋으셔서...”
해석 : 너 때문 아닌데.
홍선아가 자랑스레 미소지었다.
“태백산맥을 싹 태웠죠!”
“그린피스한테 욕 엄청나게 퍼먹으시드만. 아무튼 일하는 건 조금 편하세요?”
“싹 태운 다음에 반쯤 시체가 된 녀석들만 정리하면 되니까요! 가끔 불이 안 통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친구들이 워낙 실력이 좋아서!”
아이기스에 있는 양반들도 원래 김춘식 밑에서 구르던 치들이라 실력은 보증된 녀석들이었다. 아이기스는 사실상 길드 탈퇴파들의 모임이었으니까.
“......”
데이비드 김이 홍선아가 애들 데리고 떠난 이후로 주욱 울적하게 소주병 까던데. 그건 비밀로 해야겠다.
누가 누구를 위해 죽어야 한다거나,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수가 마땅히 희생해야 한다는 건, 정답이 없는 문제였으니까.
잠시 침울하게 바닥을 쳐다보고 있으니, 천금순이 하품하며 내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그, 뭐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아는 사람들끼리 조촐하게 파티를 열기로 했는데.”
“네?”
모처럼 천금순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홍선아는 여전히 특유의 웃는건지 아닌건지 모를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아니, 그. 지금까지 도움주신 분들 있잖습니까? 고마운 분들 한 자리에 모셔놓고, 약소하게 음식이나 좀 대접하고. 친목도 다지는 자리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파티에 초대했다.
“워낙 힘든 시절이라 크게는 못하는데. 와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감사할 것 같아서......”
“저 갈래요!”
홍선아가 방긋 웃으며 손을 들었지만, 천금순은 석연찮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잔치요?”
*
“지금부터 제 1회! 국민당 전당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
- 와아아아 !
어느 대형 야구장에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울려퍼졌고, 나는 겉으로는 감격스럽게, 속으로는 심드렁하게 기립박수를 쳤다.
“한승문 원내대표께서 자리해주셨습니다! 박수로 맞아 주시길 바랍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
- 끼요오오오옷 !
- 우와아아아악 !!
아까보다 더 큰 함성소리가 울려왔다. 커다란 전광판에 내 얼굴이 잡혔다. 실시간으로 모든 채널에 생중계되고 있을 모습이었다.
옆자리에는 천금순과 데이비드 김이 각각 앉아있었다. 둘 다 사회적으로 인기가 높은 인사였기에 병풍으로는 S급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동안, 천금순이 바싹 굳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게 보였다. 불편한 자리라 이를 갈고 있을 게 분명했다.
국방당이 선거 이기면 국민당 전당대회에 참여한 천금순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여 재벌들에게 정치란 항상 애매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지금 정치의 꽃이라고 불리는 자리에 와 있는 꼴이었으니까.
......그래, 정치의 꽃.
봄꽃이 피었다.
대선과 총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