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 저건 우리집 미친개야 (3)
회의의 핵심 쟁점은 3가지로 좁혀졌다.
“프로파간다, 그, 선동선전을 할거면 국내에서 해결할 것이지. 왜 국제적으로 물의를 빚어서 적을 만듭니까? 그, 적이 생겨야 내부가 단합하는 건 알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강경한 방법을 쓸 필요가...”
“흐음,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걸까요?”
“아뇨, 아뇨,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프로파간다 이외에도 뭔가 더 있지 않나 싶다. 이겁니다.”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군요.”
첫째, 이 새끼들은 왜 지랄인가.
“우리한테 동맹군을 파견해달라는 건, 좀 이상한데요. 차라리 인도나 러시아면 몰라도...”
“일본도 언급되긴 했습니다만, 그쪽을 원하는 눈치는 아니었지요? 요시무라 간사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 절실히 동의합미다.”
“허면... 헌터들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헌터는 그쪽에도 많겠죠. 사람이 얼만데, 아, 땅도 넓긴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감지윤 양을 위험한 전략병기로 취급하는 것 같기도.......”
둘째, 왜 하필 우리보고 지랄인가.
“......어쩌죠?”
셋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 *
“.....조금만 쉬지요.”
회의가 한참 무르익어갈 때,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유재경 기획재정부 장관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자리를 뜨는 바람에, 회의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틈새시장을 노린 밀실 정치가 시작됐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권한’ 안 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어지간한 서류에 도장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즉, 여기서 이빨 잘 까고 가면 빅딜 몇 개 터뜨릴 수 있다는 거다. 다들 은근슬쩍 쑥덕쑥덕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휴.”
가족이 실종됐는데 뭔 놈의 정치냐.
나는 딱히 할 일 없이 마음이나 졸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양판석은 청중엽 지사와 4월 합동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원옥분은 요시무라 간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둘 다 한국어 발음이 이상했다.
흐음. 나도 화장실 가겠다고 그랬다가는, 소변기 옆에서 유재경 장관 마주칠 것 같아서, 뻘쭘하게 그냥 앉아있을 무렵,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아...! 김 장군님!”
김두식 제 2 작전사령관이 악수를 건네왔다.
소장파 작전참모. 지금은 충청 방어선의 국민영웅.
그리고 차재균의 손아귀로부터 나를 구출해줬고, 그 날 저녁에 차재균의 사망 소식을 알려준 대머리 장군님이다.
“춘식이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녀석이 강원도에 고립되는 바람에...”
“아, 환자복 입고서-”
“담배피고 있지요?”
“네.”
“썩을 놈......”
그는 데이비드 김의 삼촌이기도 했다. 김춘식이나 김두식이나 군인 집안 사람이라고 그랬으니까.
그는 잠시 모자를 벗고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매끈한 머리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톡톡 두드려 닦아내었다.
양판석도 매번 머리에 맺힌 땀을 저렇게 조심스럽게 닦았는데. 나는 양판석을 힐끔 살폈다.
“...!”
아니나 다를까 양판석이 김두식을 보고 흠칫했지만 나는 슬그머니 모른 척했다. 김두식 사령관이 무감정하다 못해 기계같은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왔다. 표정도 그랬다.
여전히 꺼림칙한 목소리다.
“춘식이도 그렇고 의원님도 그렇고,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흑산양 토벌과정에서, 네.”
“포션 먹으니까 좀 괜찮습니다. 금방 낫더라구요.”
“듣기로는 그거 수명 깎는 치료제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단기간에 세포 재생을 촉진하느라, 세포분열 횟수를 소모하는 건데, 얼마나 줄어들었을는지는 뭐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살고 보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한약이라도 보내드릴까요.”
“흑염소만 아니면 됩니다.”
“그거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도라지 배즙?”
우리는 잠시 배즙과 포도즙이 약인가 설탕물인가에 대해 차분한 토론을 나누고서, 한국 영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경기도 북부랑 강원도 북부가 고립된 상황인데, 군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강원도 동해안 쪽을 정상화시켜서, 북부와 남부를 잇는 통로로 사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동해안 인근은 어느정도 정상화가 된 상황입니다만, 태백산맥이 워낙 험하고, 소형 게이트가 다발적으로 분포된 상황이라......”
어느정도 정리는 끝났지만 100%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참, 내. 조선시대도 아니고 강원도 지나가면서 야생맹수 튀어나올까 걱정하며 다녀야 하다니.
“괴수를 완전히 몰아내기는 어렵겠군요.”
“네. 그러다보니 전선에 따라 전략이 조금 다릅니다. 서부 전선, 그러니까. 평야나, 도시에서는 대규모 포격전이 일어나고 있지만, 동부에서는 뭐, 태백산맥에서 빨치산, 아니. 배트콩-”
“게릴라요?”
“아, 네. 숨어있는 놈들 잡아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게이트 없앨 방법도 모르고요.”
나는 짐짓 걱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고생 많이 하고 있을테니 함부로 한숨은 쉬지 않았다.
문득 김두식이 고백했다.
“사실, 북부를 포기한 게 접니다.”
“예...!?”
어느정도 예상하던 사실이었지만, 나는 깜짝 놀란 척 휘둥그레 눈을 껌뻑였다.
김두식은 차가운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당시 군 내부에서 다시 커다란 서울 포위망을 형성하자는 의견이 주류였습니다만, 제가 월권으로 전부 꺾어버렸습니다.
그때 상황에서 새로운 서울 포위망을 재구축하면, 그 방대한 전선을 국군이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략의 기본 골자가 전선의 최소화 아닙니까? 그러다 전선 뚫리면 정말로 나라 망하는 거였습니다.”
김두식 사령관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미간을 꾹 꾹 눌러 폈다.
전쟁과 정치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도 충분히 긴장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원옥분 권한대행님께 도움을 청했고,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월권으로 모든 지휘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충청도 방어선을 형성했지요. 지금 언론에서 필요 이상으로 저를 띄워주는 것도 그 영향입니다.”
원옥분이 있는 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밀폐된 지하벙커에서, 남들에게 다 들리게 할 말도 아니었고.
김두식의 표정이나 목소리나, 감정이 싹 빠진 건조한 어조였으나, 하는 짓거리는 아주 여우같은 짓이었다. 이제는 이게 장성들 종특인가 싶다.
“네. 서론이 길었군요. 다름이 아니라, 저는 지금 국방당 측의 묵인으로 군 작전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편향적인 작전을 성사시켰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아직 덜 알려져서 그렇지, 김두식은 지금 고립당한 모든 수도권 피난민의 원수였다.
국군 참모부가 그때 충청도 이북 지방을 포기했다는 소리였으니까.
물론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할 일은 아니었다. 서울 포위망의 붕괴로 인한 편제 붕괴, 급박한 각개전투, 북한 전선에 있는 국군들.
하지만, 수백만 명이 죽어나간 마당에, 가족 잃은 국민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당장 나부터가 가족들 때문에 멘탈이랑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도 우울증 약 처방받고 링거 맞고 오는 길이다.
김두식이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네. 짐작하시는 바와 같을 겁니다. 북한 쪽 전선에 배치된 군인들이 피난민을 구출해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세운 방어선이었습니다만은,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아주 비겁한 짓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아마, 한승문 의원님의 국민당이 이 문제로 국방당을 공격한다면, 상당히 치명적인 수가 될 겁니다. 특히 4월 연합선거가 코앞이라는 시기적 측면에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는 거리낌없이 내게 자기 직관을 들이밀었다. 예전에 목숨빚 비스무리한 걸 진 입장이라 차갑게 굴기도 조금 힘들었다.
상당히 고도의 정무政務적 문제였다. 김춘식을 닮은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하니 살짝 어색했다.
“충청도 방어선은 전략적 최선이었습니다. 왜냐, 서울 포위망 재구축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충청, 전라, 경상으로 괴수들이 내려오면 정말 개판나는 거였으니까요.”
지금 일본측 전권대사에, 우리나라 지도층이 몰려있는 마당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조금 거북했지만, 생명의 은인 비스무리한 양반이니 조금 더 들어주기로 했다.
“정치권에서 가급적이면 군부의 작전권 행사에 간섭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네?”
“......”
김두식이 잠시 침묵하며 모자를 벗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으음...”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지 말라고요? 국방부도 엄연한 내각인데?”
김두식이 다시금 무감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역시 이런 설득은 저에게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김두식이 진중한 눈빛으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목소리나 표정은 방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한승문 의원님.”
“말씀하세요.”
“제 자리 좀 지켜주십쇼.”
“네?”
“계급장 때지 말아주십시오.”
끔뻑. 끔뻑. 할 말이 없어서 눈만 깜빡였다.
“아니, 솔직히, 진짜, 다들 정치권 눈치 보면서 서울 포위망같은 말같잖은 소리를 하길래, 제가 총대매고 나라 지켰는데. 정치싸움 때문에 가는 건 좀 그렇잖습니까. 저도 가장입니다. 가장.
짤릴 거 각오하고 나라 지켰는데 4월에 모가지 날아가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입니다.”
“아, 네......”
“양판석 의원님이나, 청중엽 지사님한테 말씀드릴까 생각해봤는데. 저분들이야 지지율 올리려면 가차없이 제 목 따실 분들 아닙니까.
그나마 연줄 붙어있는 게 한승문 의원님이고. 그리고 예전에 제가 차재균이 하는 짓 아니꼬워서 도와드렸잖습니까?”
“그렇죠......”
“제 형님 일찍 돌아가시고, 김춘식이도 제가 매달 돈 보내주면서 키웠는데. 아니, 아니, 그래서 한 의원님, 데이비드 김이랑 남입니까?”
“어, 으음. 남은 아닌 것 같......”
“그러면 우리도 남은 아니죠. 그렇지요?”
“네...?”
김두식은 당당하고 진중하게,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내게,
그, 뭐냐.
“그래서 그나마 연줄 붙어있는 한승문 의원님한테 이렇게 한 번 비벼보는 겁니다.”
비볐다.
“애국하시는 분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구차하게 애국심 운운하지는 않겠습니다.”
“아, 네......”
이미 하셨잖아요. 아저씨.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솔직히 다들 정치장교랑 기업군인들 뿐이지, 제대로 전쟁하는 건 저같은 소장파 뿐입니다.
게이트 초기를 생각해보십시오. 1군단이고 7군단이고 수도군단 갈릴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지 않았습니까. 총대 매기 싫어서. 혹시 북한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자리를 지키겠다고.
그리고 나서 차재균이 총대 매니까 그제서야 움직이대 이 새끼들이. 진짜.
제 말이 틀립니까?”
“으, 으음.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정치장교가 살아남는 세상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군대를 정치용으로 쓰면 안 되는 겁니다. 요즘 세상에.”
“아, 네......”
“남들 시선이 조금 따갑네요.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괜히 곤란한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뇨, 뭐, 으음. 네.”
후루룹. 김두식 사령관은 태연스럽게 보온병에서 유자차를 홀짝였다.
보온병에 들어있는 음료가 유자차인지 어떻게 알았냐면, 보온병에 붙어있는 꽃무늬 스티커에 앙증맞은 글씨체로 ‘유자차’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다들 우리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나는 뻘쭘해서 눈을 깔았지만, 김두식은 무덤덤하게 보온병 뚜껑을 닫아 가방에 집어넣었다. 지이익. 가방 지퍼 닫는 소리만 밀실에 울려퍼졌다.
합의된 사항이 아니었는지 원옥분도 참담한 표정으로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
“......”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무렵,
끼이이익-!
육중한 철문에서 쓸데없이 큰 소리가 났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화장실 갔던 유재경 장관이 돌아왔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 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하.”
“......”
“......너무 늦었나요? 제가?”
“......”
“아, 그으. 속이 좀 안 좋아서......”
*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양판석이 물었고, 원옥분이 답했다.
“지금 중국 쪽 대사는 뭐라 그러덥니까?”
“회견 내용 그대로라고. 더 할 말이 없다고 하더이다.”
김두식이 물었고, 청중엽이 답했다.
“그새 짠 겁니까?”
“아뇨, 본국한테 따로 지침을 못 받아서 비상시 지침대로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찌 아십니까?”
“아는 사이라......”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사실 프로파간다라고만 한다면 괴수나, 뭐. 괴수가 딱 아닙니까? 직접적 가해자를 상대로 욕하는 게 최고인데. 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우리를 끌어들입니까. 단순히 프로파간다라고만 보기에는 조금 속이 검은 것 같습니다.”
“으음... 헌터를 보내달라는 뜻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더 의문스럽다. 이 말씀입니다.”
해석 : 안해줄 거 알면서 왜 이 지랄이냐고.
“나중에 뭐, 우리가 그때 보내달라 그랬는데 너희들이 안 보내줬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좀 들어줘. 라고 말할 핑계 같으면, 외교라는 게 아직 살아있고, 그쪽에서 가하는 경제제재가 먹힐 때 이야기지. 뭐, 핵폭탄으로 협박하는 거 말고. 지금은 중국이 우리를 건드릴
만한 건덕지가 없지 않-”
“......아, 잠깐만요.”
유재경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 말을 끊었다.
“......”
그는 한참동안 진중하게 침묵을 지켰다.
“......경제제재. 먹힙니다.”
“예...?”
“그... 마석을 전기로 바꾸는 방법이, 한승문 재단 연구소나, 미국이나, 그쪽에서 암암리에 돌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아니 이 양반이 일본사람 있는 데서 왜 이 지랄이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유재경 장관도 그걸 생각 못했는지 흠칫했다.
정치 초보인가.
나는 신중히 대답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확답 못 드립니다만. 개발 과정이라는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미 완성됐다. 같은 양의 마석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느냐의, 효율에 관해 개발이 진행되고 있을 뿐, 마석의 에너지화 연구는 상당히 진척된 상태였다.
심지어 일본에서 수입한 마석으로 말이다. 일본이 그때 마석의 가치를 잘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아무튼 유재경이 말을 이었다.
“......네. 그, 전략자원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채산성 핑계 대면서, 이런 비상시에 캐낼 자원 숨겨두는 그런 거 말입니다. 석유, 뭐, 금, 가스, 그런 거요.”
“......”
“중국이랑 미국이 그쪽으로는 최고입니다. 미국은 석유, 중국은 셰일가스랑 희토류.”
유재경은 인상을 찌푸렸다.
“바다가 봉쇄된 상황이라, 앞으로 중국이 그런 전략자원들을 통해 향후 동아시아 국제경제를 주도하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조금 쉽게 말씀드리자면, 비축유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스마트폰 앞으로 안 만들 건 아니지 않습니까.”
김두식이 말을 보탰다.
“뭐어, 중국이 이 기회에 천하통일을 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랑 육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사실 우리 공군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이유가, 중국이 북한 도와주겠다고 군대 보내는 거 막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죠.”
“국제 질서가 무너진 지금,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특히, 중국같은 나라에 핵폭탄이 얼마나 있을지는......”
분위기가 참담해질 무렵,
“아, 시쯔레이하겠습니다.”
요시무라 간사장이 잠시 실례하겠단다.
“아노... 핵폭탄 문제에 관해, 잠시 보태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원옥분이 허가했다.
“으음. 중국이 센카쿠 열도를 이미 점거했다는 사실은 이미 아실 겁니다.”
센카쿠 열도, 혹은 댜오위다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 지역이다. 독도 비슷하게.
“우리 측 자위대가 본토를 지키러 회군한 틈에, 중국이 다소 민감한 군사행동을 감행했고. 우리 측의 항의에 상당히 무례한 답변을 일삼았습니다.”
일본 외교에서 ‘무례’라는 말이 나왔다는 소리는.
진짜, 갈 데까지 갔다는 소리였다. 요시무라 간사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불만 있으면 싸우쟈. 그들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러했스니다. 전 세게적 위기 앞에 자국의 이를 우선하여, 이욷을 해하려 들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스니다.”
드디어 본론을 터는군.
“......우선, 한국 측에 상당이 무례한 제안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점, 미리 사죄드리겠습니다.”
일본이 ‘사죄’를 먼저 언급한다는 점에서 다음에 나올 말이 얼마나 무례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주일미군, 그러니, 까, 미군에서는 전쟁을 대비해 일본 본토에 대량의 핵미사일을 배치한 상태였습니다.”
- 쾅 !
“이, 뭔! 씹!”
김두식 사령관이 쌍욕을 내뱉으며 책상을 두들겼으나, 간사장은 숙연히 말을 이어갔다.
“미국 측도, 우리 정부와이 협의 없이 비밀에 숨긴 것들이었스니다."
협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우리야 모를 일이었지만, 요시무라 간사장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 자위대가 미군의 돌발행동을 염려해 그것들을 회수했습니다.”
“......얼마나요?”
“니백개 이상입니다.”
“200개요?”
내가 손가락 두 개를 내밀며 물었고, 간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병, 진짜.
“......일본 측에서는, 핵탄두 일백개를 한국 측에 양도하려 합니다.”
“우리보고 고기방패를 하라는 겁니까? 그러다 핵전쟁나요 이 사람아!”
“중국 측에게 공멸의 가능성을 시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압제에 굴복하는 수바께 없습니다. 그게 본국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과 손을 잡고 동북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이, 뭔...! 중국이랑 한 판 뜨자는 소리 아니야!”
“아니, 침착하세요. 장군님.”
“전쟁나면 다 죽습니다!”
“전쟁을 하자는 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저쪽에서 우리보고 강제 핵무장을 시키겠다는 거 아닙니까.”
“아님미다. 본국 혼자서는 들기 힘든 짐을, 부디 같이 들어주셨으면-”
“우리는 중국 코앞에 있는 나랍니다! 2주 안에 탱크가 서울까지 들이닥칠 수도 있다고!”
“핵전쟁에서 거리는 무관한니다.”
“전쟁하자는 소리야 뭐야!?”
“장군님! 침착하세요!”
“아이고 두야......”
“다들, 다들 일단 진정하시고.”
쾅 - !
책상이 부서져라 내리치는 소리에 좌중이 침묵에 잠겼다.
“......담소는 나누셨습니까들?”
원옥분이 태연스레 말했다.
“우선, 일본 측에서 말씀하신 바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공동의 적을 상대로 한 동맹, 그리고 공동 핵무장 선포로 중국에 경고하자. 이 말씀이시지요?”
부담은 같이 지지만 우리가 더 위험해지는 상황이다.
우리는 중국과 육상으로 붙어있는 나라였고, 일본한테 핵폭탄을 진짜로 받아먹으면 미국과 중국 양쪽에 척을 지게 될 수도 있었다.
보니까 일본은 이미 미국이랑 한 판 떴다. 그리고 중국이랑도 뜨려고 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우리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요시무라 간사장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원옥분이 물었다.
“......누가 우리보고 핵무장 안 했다 그러더이까?”
*
......이에!
동북아시아의 화평을 해치는!
선동, 선전적 수작질에 대하여!
총폭탄 정신으로 완전 무장한!
인민군의 선군 용사들은!
공화국 인민의 안전과!
세계 질서의 조화를 위협하는!
천인공노할 승냥이 무리를 향하여!
언제든지!
멸적의 포문을 열 수 있음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