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 겨울의 끝자락 (6)
“몰골이 말이 아니군.”
데이비드 김의 말에 나는 뺨을 쓸어보았다. 피, 흙, 나뭇잎이 섞인 걸쭉한 죽이 묻어나왔다. 역겨운 냄새가 났다.
세수라도 하고 싶어서 바닥을 살폈다.
......눈이 없다.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한산의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깨끗했다. 의정부는 눈폭풍이 몰아치는 중인데 말이다.
소용돌이가 인근의 구름을 끌어모은건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른 나뭇잎을 손으로 바스라뜨렸다.
“괜찮으세요? 정신 차려요!”
말도 안하고 허공만 쳐다보며 나뭇잎 바스라뜨리고 있으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데이비드 김의 옆을 지키던 여자가 손수건을 꺼내들고 내게 다가왔다.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무려 데이비드 김을 무식하다고 구박한 그 여자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3조! 남는 힐러 있어?”
“아, 괜찮습-”
"가만히 좀 있어요!"
"네."
그녀는 정성스레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박조장님! 여기 이분 치료 좀 해주세요. 아니, 이분이랜다. 여기 한 의원님 치료-”
우뚝,
그녀가 동작을 멈췄다,
무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한 의원?”
“예...?”
“한승문 의원?”
“네?”
“......진짜네?”
“예?”
“!??!?”
“으앙!”
그녀가 나를 패대기치고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데이비드 김에게 소리쳤다.
“하, 한승문 의원이 왜 여기 있어요!”
“맨날 하이라이트 영상 돌려보고도 못 알아보나?”
“피칠갑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봐!”
그녀는 두키 정도 높은 목소리로 다시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아, 씨. 뭐라고 말해야 하나.”
데이비드 김이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팬이라고 해.”
“그러면 너무 없어보이잖아요.”
“지금은 안 그래?”
“......에이씨!”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데이비드 김에게 손을 뻗었다.
“앗! 따가!”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그녀는 다시금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얼굴을 은근슬쩍 조물딱거렸다.
“아아, 갑자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반갑습니다. 아무튼 팬이에요. 그것도 엄청. 신분당선에서 의원님이 내 목숨 두 번인가 살려줬는데, 기억 못 하시나?”
“......아. 죄송-”
“그래요. 기억 못할 것 같았지. 워낙 정신없었잖아. 그러면 지금부터 기억하세요. 김한빛이에요. 다음에 물어볼꺼니까 외우세요! 내가 누구?”
“김, 한빛...?”
“좋아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자기 손수건을 내 앞주머니에 쏘옥 꽂아놓고 데이비드 김에게 돌아갔다.
데이비드 김이 김한빛에게 물었다.
“원 풀었냐?”
“이번 싸움이 끝나면 청혼할거에요.”
“부정타는 소리하지 말고.”
* * *
“어! 어어! 좀비 아니야! 아니래! 그냥 제압만 해! 다리몽댕이를 뽀개버리든지 으응!? 사살을 금지하는 건 아닌데, 제압할 수 있는데 죽이지는 말라고!”
장원장은 지휘관이 내리는 명령을 듣고 생긋 웃어보였다.
“저 정도면 적당하네요.”
“......”
“우리는 병원으로 돌아갑시다.”
괴수가 들이닥쳤다는 걸 깨닫고, 지휘관이 제 목숨을 지키려 군인들을 사방으로 퍼뜨린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병원으로 복귀했다.
병원 옥상으로 올라가던 길. 양일호는 묘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장원장을 바라보았다.
장원장이 그 눈빛을 간파했다.
“이상하십니까?”
“네. 네!? 아뇨! 아, 아뇨가 아니라...! 뭐, 뭐가요?”
두 번이나 정정한 대답에도 무색하게, 장원장이 의표를 찔러왔다.
“그런 사람이 민간인 피해 줄이겠다고 하는 게 어색하냐. 이거죠.”
장원장이 뭘 ‘그랬’는지는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양일호는 그저 불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별 말 없이 저벅저벅 계단을 올랐다.
저벅. 저벅. 저벅.
턱.
장원장이 멈췄다. 양일호는 계단 언저리에 어색하게 멈춰, 자신을 내려다보는 장원장을 바라보았다.
장원장이 물었다.
“제가 악당으로 보이십니까?”
양일호가 무심코 대답했다.
“네.”
그리고 자기가 놀라 입을 막았다. 양일호는 눈을 굴려 장원장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미소에서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10명을 죽여서 한 명을 살리는 버튼이 있으면. 누를 겁니까?”
“......”
“구체적으로는, 핵전쟁을 일으키려는 미치광이를 죽이기 위해, 버섯캐던 북한 꼬맹이를 총으로 쏠 수가 있느냐. 정도의 예시가 있겠군요.”
양일호는 대답하는 게 무서웠다.
눈앞에 있는 인간 만큼이나.
“흐음.”
“......”
양일호는 금방이라도 이 양반이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낼 것 같았다.
“......”
“......”
잠시 정적이 있었다.
장원장이 살풋 미소지었다.
“올라갑시다. 일행들 기다립니다.”
“......예?”
장원장은 말없이 병원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확실히, 그가 이제와서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은 관성으로 사는 거였으니까.
그저, 양일호는 어정쩡하게 계단에 남아 그가 올라간 길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피로 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
“서울 포위망이 무너지고 있어. 전선 부담을 줄이려고 서울에서 보이는대로 죄 때려잡고 있었는데, 의정부 하늘에 뭔가 파박 반짝이지 뭔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튼 제 2 작전사령부에서 충청도에 방어선을 세우고 있는 중이야. 현재 상황은 어떤가?”
“하늘에서 튀어나온 흑산양이 종양덩어리로 도시를 폭격하고, 촉수를 휘두르며 전투기들을 격추시켰습니다. 종양에 맞은 사람이 뭐, 좀비가 된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건 잘......”
“총체적으로 좆됐다, 이 말이군!”
데이비드 김이 씨익 웃었다.
“작전은 있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계획을 물었다. 미간에 골이 파였다.
“작전이 막 누르면 튀어나오지는 않죠.”
“그래서 있냐고.”
“......하나 있긴 합니다. 방금 떠오른 거요.”
바스락. 발치에 놓인 나뭇잎이 부스러졌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고소공포증은 없으시죠?”
“이라크 공수부대 출신이야.”
“쥐불놀이 하러 갑시다.”
*
추적추적 나리우던 눈보라는 어느새 거센 폭풍이 되어 도시에 몰아치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입김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소용돌이의 영향으로 인근의 모든 구름이 의정부 상공으로 밀집했다.
2월이라고는, 아니, 대한민국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눈보라가 들이닥쳤다.
좁은 트럭에 몸을 끼운 노인, 행렬을 역행하며 자식을 찾아내려는 부모, 그들을 북쪽으로 몰아넣는 군인들.
그들 모두의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불안이 담겨 있었다. 고층 아파트가 흐린 하늘 아래서 불타올랐다.
그때. 군인 하나가 무언가를 삿대질했다.
괴수들이 길목에서 달려나왔다.
“저, 저! 옆에! 옆에!”
삿대질은 이윽고 총성으로 바뀌었고, 들개 몇 마리가 쓰러졌지만, 대형 버스만한 괴수의 돌진을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갖 비명과 함께 행렬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총성과 경악이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도망치는데 실패한 사람들이 죽음을 체감하고 바닥에 엎드리던 찰나,
- 퍼어어억 !
전봇대 하나가 날아와 괴수의 몸통을 꿰뚫었다. 헌터들이 건물 옥상을 타고 달려와 근처에 있던 괴수들을 처리했다.
불과, 얼음과, 번개가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그 사이로 초인들이 괴수의 몸통에 팔을 박아넣어 마석을 흡수했다.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김한빛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서쪽 행렬 방어 시작합니다!”
[아, 아, 3조. 옥상 대기중. 지원 필요하면-]
“그냥 힐러 하나만 미리 보내줘요! 조장님!”
[......야! 손 남는 사람! 어어, 수찬이가 간댄다.]
“여유롭나봐?”
[나름.]
실제로도 그들은 퍽 여유롭게 괴수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평소에 뛰놀던 서울이나 여기나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오히려 군대의 지원이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세 명이서 흑산양을 잡는다고?”
*
악전고투惡戰苦鬪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싸움이다.
- 크아아아아악 !
- 끼에에에에엑 !
사방에 괴수가 가득하다. 북한산 도립공원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괴수들의 파도에 휩쓸렸다.
입에서 하도 피를 토한 나머지 이제는 비리지도 않았고, 잘근잘근 씹어댄 아랫입술은 너덜너덜한 살코기가 되어 있었다.
코피가 입 안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괴수를 다시금 북한산 산골짜기에 박아넣었다.
- leo Coms eoShm......!
다시금 녀석이 이 근처의 모든 괴수들을 불러모았다.
몬스터 웨이브가 또, 또, 또 다시 이어졌다.
전후좌우, 상하좌우로 날아드는 비행괴수들을 막아내고, 이따금 날아드는 미사일을 노려 흑산양을 북한산 골짜기로 찍어누른다.
- 휘이이이익 !
그리고 이따금 날아드는 촉수를 피한다. 따라오는 풍압에 중심을 잃었다.
“밑에!”
“젠장...!”
나는 급박하게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괴수를 허공에서 찢었다.
반으로 갈라져 죽은 괴수의 시체가 양쪽으로 지나갔고, 말 그대로 피바람이 불어왔다. 차갑다. 눈에 피가 들어갔다.
우리는 약 4시간동안 북한산의 고도를 괴수의 시체로 늘렸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괴수들의 수효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신나간 방어가 가능한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끄으으윽...!”
데이비드 김이 이빨로 촉수를 물어뜯으며 버틸 정도로 분투하고 있다는 것,
“젠장! 떨어진다!”
“아저씨!”
염력은 질량의 영향을 받기에, 우리가 아무리 지쳐도 성인 남성 하나 정도는 들어서 집어던질 수 있다는 것,
“차라리 떨어지게 해줘! 좀 쉬게!”
“안 돼!”
“Fuck! Fuck! Fucking goat!"
"? 저게 무슨 뜻이야?“
“아직 팔팔하대!”
따라서, 세 명 모두가 철저히 공중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 즉, 지상을 가득 매운 괴수들은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지윤아! 이거 먹어라!”
“끄응...!”
내가 비행괴수의 마석을 감지윤에게 먹이면서 싸우고 있다는 것.
[다음 공습 20초 전입니다!]
“오케이!”
마지막으로, 적절한 공중지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게 마지막입니다!]
“사령부에서 결단한 겁니까!?”
[이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북한산 국립공원 전체가 수도권에서 몰려온 괴수들로 가득 찼어요!]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최대한 많은 괴수를 북한산 도립공원에 몰아넣는 것.
우리는 성공했다.
그리고, 슈우우우우 - !
“온다...!”
최대 규모의 비행기 편대가 북한산으로 찾아왔다. 우리는 멀찌감치 물러나 그 웅장한 광경을 구경했다.
이 엔진 소리가 들리면 상황이 아주 좆같아진다는 걸 인지했는지, 흑산양이 요상한 주문으로 비행괴수들을 자기 주변에 밀집시켰다. 일종의 고기방패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수많은 비행기들 중 단 한 대도 흑산양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저들은 멀리 흩어져 각자 맡은 구역을 향해 날아갔다.
전투기가 아니라,
폭격기였으니까.
이윽고.
- 쿠우우우웅.......!
저어 멀리,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쿠우우우우...!
- 쿠우웅....!
폭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불꽃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미군의 네이팜이다. 소이탄燒夷彈의 일종인데.
그 뭐냐.
“......잘 타네.”
북한산 도립공원의 외곽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즉, 북한산을 둘러싼 거대한 불의 고리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산불은 원래 정상으로 번진다...! 이 개새끼들아...!”
“우와아! 개새끼들아!”
“후우...! 쒸이,,뻘!”
우리 세 명은 피를 뚝뚝 흘리며 산불이 빛의 속도로 번져나가는 것을 감상했다. 소용돌이가 이 근처 구름을 모두 끌고간 바람에 북한산에는 비교적 눈이 적었다.
좋은 뗄감이다.
이따금 불붙은 나무 하나 꺾어서 중턱에 던져놓으니 효과는 기가 막혔다. 비쩍 말라붙은 나무와 낙엽들이 괴수들에게 엉겨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크아아아아악 - !
괴수들의 마지막 비명소리가 이렇게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아직 한 발 남은 상태였다.
“......조준.”
“제기랄...! 올 것이 왔군...!”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늘 그랬지!"
피칠갑을 한 데이비드 김이 이를 악물고 자세를 잡았다. 마력이 정교하게 움직이며 일직선의 길을 만들어냈다.
나는 감지윤과 함께 염동술念動術의 합을 맞췄다. 그렇게 우리는 총이 되었고, 데이비드 김이라는 최강의 총알이 그 안에 들어왔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볼이 축축한 게 눈에서 피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폭격기를 지켜주던 호위기들이 마지막 남은 미사일을 흑산양에게 퍼붓고 갔다. 종양과 촉수가 터져나가 산자락에 볼품없이 떨어졌다.
이윽고,
마석이. 저 빌어먹을 검은 마석이 빛났다.
그리고.
“......쏴!”
그 시린 겨울 하늘이,
- 파아아아아앙 !
반으로 갈라졌다.
주변을 감싸던 파란 마력들이 흩뿌려졌다. 감지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토록 아름다웠다.
우리는 초인적인 본능으로 그 마력을 타고 괴수에게 돌진했다. 흩뿌려지던 파란 가루들이 다시금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2초도 채 되지 않을 찰나였지만, 나는 다섯 마리의 비행괴수들을 데이비드 김의 비행경로에서 치워냈다. 감지윤은 그 두배 정도 치워냈으리라.
그리고,
데이비드 김이 마석에 손을 뻗은 찰나.
산양의 눈이 붉게 빛났다.
- eo Col......!
데이비드 김이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
그대로 추욱 늘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
판단은 빨랐다.
나는 아까 한 짓거리를 나에게 했다.
나를 쏘았다.
- 우드득 ! 콰직!
물론 나는 데이비드 김이 아니라. 그 정도의 초능력을 감당한 육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감당할 짓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뼈가 부러지고, 검은 피가 터져나왔지만, 나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서,
결국 닿았다.
"...!"
데이비드 김에게. 몸에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데이비드 김의 발목을 붙잡았다.
“죽어라 이 개새끼야아아!”
온 몸의 근육이 터져나갔다.
공중에서 데이비드 김을 데이비드 김의 근력으로 집어던졌다.
데이비드 김이 마석으로 다시금 날아갔다.
나는 똑같은 속도로 그 반대 방향으로 떨어졌다.
즉,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전혀 강화된 상태가 아닌 맨몸으로 말이다.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아니면 주마등인지, 세상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석을 향해 날아가는 데이비드 김.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와 마석을 번갈아 바라보는 감지윤.
그리고.
데이비드 김이 마석에 닿기 직전,
옆에서 날아와 그를 밀어버린,
비행괴수.
틀어진 궤도.
부러진 팔뚝.
피 섞인 각막.
붉은 시야.
떨어지는 육신.
그리고.
“ 멈춰 - ! ”
선명한 목소리.
그 말에 모든 것이 멈췄다.
착각이 아니다.
마석을 향해 날아가던 데이비드 김과, 그를 튕겨낸 괴수마저도.
서서히 떨어지던 눈송이와, 거세게 불어닥치던 낙엽마저도.
불붙은 상태로 발악하던 괴수와, 그 불꽃마저도.
전부 멈춰버렸다.
말 그대로 세상이 정지했다.
“......”
멈춘 세상에서, 검은 산양의 몸이 서서히 흩어졌고. 그 마석을 흡수한 감지윤이.
푸른 눈동자를 은은하게 빛내며 지상에 내려앉았다.
나는 땅에 부딪혀 산산조각나기 직전이었다.
즉, 흙바닥 바로 위에 멈춰 있었다.
서서히 감겨오는 눈꺼풀 속의 눈동자를 굴렸다.
괴수들의 피륙과 타오른 잿더미 사이에.
내 코 끝에서 뚝 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맞으며.
작고 푸른 새싹 하나가 돋아나고 있었다.
EP 10
겨울의 끝자락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