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 겨울의 끝자락 (5)
텅! 텅!
우리는 경기북부청사 건물 바깥에서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지휘관은 무전기 부여잡고 소리치느라 정신이 없다.
“야! 씨팔! 흑염소새끼 밑에 있는 사람들 전부 대피시켜! 전투기는 접근하지 말라 그래! 원거리! 어? 멀리서 미사일만 쏘고 째끼란 말야! 아 씨팔 안 맞으면 어때! 존나
갈겨!”
텅! 텅!
“얼타지 말고 계획대로 대피한다! 어차피 막을 방법 없으니까 쭉 빼! 아, 아, 아! 호원 1동에서 출입통제하고 거기 이남 사람들은 수락산, 부용산 넘어서 29번으로 가라
그래! 서울에서 튀어나온 새끼들 있으니까 박소령이 내려가서 땅크 몰고 가!”
나는 지휘관을 부르려 창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그는 무전에만 열중할 뿐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보다못한 감지윤이 팔을 뻗었다.
“얍얍.”
- 와장창 !
건물 외벽과 창문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히에에엨!”
지휘관이 질끈 눈을 감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다. 우리는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들어갔다.
“유 대령님!”
“어...? 하, 하, 한 의원님이 왜 거기서 나와...?”
“공중지원 가능합니까!?”
“왜, 왜, 왜 거기서 들어와요? 여기 4층인데...?”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감지윤이 버럭했다.
“저거 잡아야지!”
* * *
천화란은 허탈하게 바닥에 넘어졌다. 그렇게나 뜯어 말렸지만 딸내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날아가버렸다.
“으, 으흐흑...!”
“여보......”
천화란이 울분을 못 이겨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을 쥐어뜯었고, 감기자가 그녀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괜찮아?”
“지, 지 애비 똑 닮아가지고...!”
“어...?”
양판석은 옥상 난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장원장.”
“네?”
“......저기 좀 보게.”
양판석이 가리킨 곳에는, 검은색 진물에 뒤덮힌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어슬렁대고 있었다.
군인 몇 명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들이 군인들을 덮쳤다. 장원장이 견착하며 말했다.
“저거 정신병입니다."
“......뭐?”
탕 - !
피난민을 덮치려던 감염자의 발목이 날아갔다.
그가 슬며시 웃었다.
“함부로 못 죽입니다.”
*
눈보라 치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나는 감지윤을 품에 안고 공중에서 휘청거렸다.
“아저씨! 조심해!”
“어어, 고맙-”
“삐꾸야!?”
"......공사장 아저씨들이랑 친하게 지냈구나?"
반년동안 공사장에서 뭘 배워 온거니. 감지윤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괴물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앞! 앞!”
“너무 가까이가면 촉수 맞는다!”
“가까이 갈수록 세져!”
젠장, 막무가내군. 나는 염력으로 우리들의 비행을 담당했다. 귀에 달린 통신기에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의원님!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요!]
“......방어막 치겠습니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방향 잡을 테니까 신호 주십쇼!”
우리는 천천히 괴수 주변을 돌며 각을 잡았다. 날아가는 전투기도 촉수로 때려맞춘 놈이다. 촉수 닿는 거리에 들어가면 안 된다.
[가, 갑니다! 10, 9, 8,]
“지윤아! 방어막!”
“아, 아라써!”
감지윤이 긴장되는지 이를 악물고 주변에 염력장을 만들었다. 두 힘이 부딪히는 바람에 비행이 힘들어졌다.
[7, 7654!]
실수가 있던 모양인지 카운트가 갑자기 빨라져서 영 미덥지 못했다.
[3!]
소닉붐이 들려온다.
[2!]
전투기 엔진 소리가 뒤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소리가 좌우로 지나간다.
[1!]
시야 뒤쪽에서 튀어나온 미사일이 괴수에게 날아갔다.
매연 냄새가 난다.
- 콰아아아아앙 !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감지윤이 손을 뻗었다.
나는 몇 겹으로 방어막을 쳤다.
괴수가 빠르게 재생되며 우리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 까드득 !
“썅!”
맞고 나서 욕이 나왔다. 촉수에 얻어맞고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보이는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흐린 하늘. 눈보라. 나무. 갈색 바닥.
쾅 ! 콰지직 ! 우지끈 !
공중 수백미터에서 순식간에 지상으로 추락했다.
“흐으...! 아으으!”
나는 파르르 떨며 감지윤을 꼬옥 껴안았다. 전투기가 원래 날아가는 비둘기랑만 부딪혀도 추락하는지라, 촉수가 이렇게 강할 줄은 예상 못했다.
내가 친 방어막은 순식간에 전부 깨져나갔다. 순간적으로 감지윤이 방어막을 보태줘서 망정이지.
본능적인 컨트롤로 정신력을 소모했는지 녀석은 기절해 있었다. 추워서 그런건지 무서워서 그런건지 몰라도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숲의 바닥에는 우리를 중심으로 크레이터가 파여 있었다.
그렇다. 숲이다.
정확히는 북한산 국립공원. 우리 위에 괴수가 있었다.
통신기에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양! 종양 떨어집니다! 튀어요!]
검은 구체가 지상에 떨어진다. 나는 이를 악물고 감지윤을 껴안았다. 피 맛을 느끼며 날아올랐다.
파리처럼 이리저리 이동하며 떨어지는 종양들을 피한다.
내 턱 끝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하얀 와이셔츠를 적셨다.
나는 괴수와 멀리 떨어져 종양들이 터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숲이 검게 물들었다.
지휘관이 웃었다.
[절반! 절반은 성공! 성공입니다!]
폭격 한 번에 수백명씩 죽어나갔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1차 목표 달성!]
괴수를 도시의 상공에서 몰아냈다.
괴수는 이제 북한산 위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가 주저앉아 괴수를 공중에 붙들어놓았다.
괴수가 허공에 멈췄다.
물론 재생이 반복되며 질량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괴물을 발버둥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쏴!]
- 콰아아아아앙 !
북한산에서 강원도 방면으로 퇴각중이던 온갖 포들이 화염을 뿜어냈다.
*
“똑같은 거 아닌가?”
“그건 옛날 얘기죠! 저는 기초훈련만 받은 행정병이에요! 6학점 준대서-”
덥썩.
장원장이 양일호에게 권총을 쥐여주었다.
“기초훈련 받았으면 됐죠. 뭐. 3세계에서는 애들도 총 잡습니다.”
“......예?”
“갑시다.”
양일호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장원장은 안주머니에서 파란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태연히 웃으며 제 팔에 꽂아 넣었다.
“이런, 시력강화네요. 가장 안 좋은 건데... 괜히 수명만 버렸습니다.”
“......”
“양 비서관님?”
“아! 예! 갈게요! 가겠습니다!”
*
내 품에 안겨있던 감지윤이 눈을 떴다. 녀석은 흐린 눈빛으로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불꽃놀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틀린 소리는 아니다.
콰아아아앙 - !
북한산에 배치되어 있던 자주포들이 퇴각 방침을 받고 북상하던 길에, 일제히 포문에서 불을 뿜어댔다.
촉수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포탄을 쳐냈지만, 어디 포탄이라는 게 쳐낸다고 쳐내지는 물건인가. 터졌으면 터졌지.
- Comse me eoSh......
거대괴수가 괴상한 울음소리로 울부짖었지만 별 다른 효과는 없었다. 그저 자주포와 미사일로 이루어진 화망에 들어가 파괴와 재생을 반복할 뿐이었다.
감지윤이 말했다.
“저거! 저! 마석 흡수해야 돼!”
“우리 목적은 퇴각이야. 사람들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해. 미안하지만 저거 저 자리에 잡아두느라 날아오를 여력이 없단다.”
종양 폭격 한 번에 수십 수백명 죽어나가는 거 막는 걸로도 벅차다.
“아, 아니...!”
“저거 보렴. 아무리 때려도 삼분지 일 아래로는 안 줄어들잖니. 접근하면 촉수 맞을 수도 있-”
감지윤이 내 양쪽 볼살을 부여잡고 빼액 소리쳤다.
“오고 있잖아!”
그리고.
자주포의 화망이 무언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통신기에서 반쯤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 의정부 주변 괴수가 전부 몰려들고 있어요! 북한산 자주포 포대를 덮쳤습니다! 괴수밭으로 변하고 있으니까 당장 빠져나오세요!]
씨팔 진짜.
이제는 괴수가 전략을 쓰네. 까득! 까드득!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 하나만 잘근잘근 씹어먹을 뿐, 뒷골목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장원장이 잠시 안도했다.
“큰일날 뻔했-”
탕 !
“.....”
털썩. 뒤에서 덮쳐오던 감염자가 양일호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미간에 구멍이 난 상태였다.
“으, 으으...!”
“......덕분에 살았군요. 잘하셨습니다.”
“저, 저 지금-”
“정신병이긴 해도 불치병입니다. 걱정 마십쇼.”
장중장은 착한 거짓말로 양일호를 달래고, 뒷골목을 신속히 누비며 지휘관에게 향했다.
그리고.
7분 후, 감염체에 대한 무차별 사살이 중지되었다.
*
- omse ......
검은 산양의 몸에 다시금 종양이 부풀어올랐다.
[흐, 흑염소 새끼! 다시 의정부로 오고 있습니다!]
“퇴각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군인들이 양주 방면으로 뚫고 올라가는 중이고! 민간인들이 그 사이에 섞여서 따라오고 있어요!]
“아니! 퇴각이 어디까지 진행됐냐고요!”
[이 와중에 그걸 어떻게 파악합니까 이 책상물림아!]
“미, 미안합니다.”
[면적이랑 부대규모 대충 때려맞추면 47% 탈출했습니다!]
“......”
나는 감지윤을 데리고 북한산 산기슭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남쪽에서 괴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젠장! 의정부를 중심으로 괴수들이 우릴 포위하고 있어요! 양주 쪽은 전차가 많아서 괜찮은데, 나머지가 문젭니다!]
“군인들 있지 않습니까!?”
[뭔! 짝퉁 좀비 나타났는데! 그거 방금 대충 정리됐습니다! 전경들 보내니까 금방 잡았어요! 애초에 맨날 날뛰는 양반들 체포하는 게 일이었으니까!]
“그게 대체 뭔 소리에요!”
[아, 민주당 양반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
“개소리하지 말고 좀 이 양반아!”
쿨럭! 갈비뼈가 나갔는지 입에서 피가 나왔다. 아무래도 이 양반이랑은 너무 안 맞는다.
“......”
실수로 감지윤 정수리에 피를 토해버렸다. 옷소매로 슥슥 닦아냈다.
“? 왜 갑자기 쓰다듬어?”
“기특해서.”
“나도 알아!”
감지윤은 다시 눈을 감고 주변 괴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나는 그 애매모호한 느낌을 몰라 잡아낼 수 없는 기척이었다.
감지윤이 흠칫 몸을 떨더니 중얼거렸다.
“으음... 여기서 오른쪽 아래? 거기서 살짝 위? 쪽으로 조금 멀리!”
나는 번역했다. 그리고.
“워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개판이 났대서 사우스 서울부터 쭈욱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최악은 아닌 것 같은데?”
“사우스 서울이 아니라 서울 남부요 이 무식한 사람아.”
“그게 그거지. 쯧,..! 김비서는 조용히 해.”
김춘식이 옆에 있던 길드 헌터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데, 데이비드 김...!”
“이런! 우리 의원님께서는 왜 피칠갑이시래?”
김춘식이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뒤쪽, 북한산의 숲 속에서.
"도차아아악!"
"···여기도 괴수야?"
"이젠 팔자려니 해야죠 뭐..."
수십명의 길드 헌터들이 시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